#제348화
트리톤은 북부제국의 주력 병기이자 전략자산.
지난 100년 동안 북부제국이 쌓아 올린 기술력의 집합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북부제국만이 트리톤을 사용하란 법은 없었다.
물론 현재 대륙의 기술력으로는 트리톤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한다.
기술도 없거니와, 트리톤을 생산할 시설조차 갖추지 못했으니까.
당장 기술력을 쥐어준다고 한들 트리톤을 생산해내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러나 트리톤을 노획해서 사용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쿤타치 가문 마검사들의 실력은 북부제국 트리톤 파일럿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조종법만 익힌다면 트리톤을 운용하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트리톤만 많이 확보할 수 있다면 이번 전쟁뿐 아니라 아라드 제국의 내전을 막는데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아.”
카미유가 오토의 의도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북부제국의 무기인 트리톤을 많이 확보할 수만 있다면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일단 노획한 트리톤들을 옮기고 전장 정리부터 시작하자. 곧 재침공이 벌어질 테니까.”
“예, 전하.”
이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북부제국의 침공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수틀리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를 놈들이지.’
오토는 북부제국, 정확히는 황제인 바실리의 집요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바실리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황가의 운명, 그리고 북부제국까지 걸고 이 전쟁에 임하고 있었다.
전투에서 몇 번 패배했다고 물러날 인간이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독이 더 바짝 올라서 달려들 게 분명했다.
병력을 잃으면 잃은 만큼 징집할 테고, 트리톤은 더욱 많이 생산해내려고 들 공산이 컸다.
첫술에 배가 부른 상황이긴 했지만, 아직 전쟁의 승리를 예측하기에는 갈 길이 먼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토는 노획한 트리톤들을 곧장 키이우 왕국의 병창으로 옮겨 분석에 나섰다.
“역시 단기간에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겠습니다. 대륙의 기술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골렘들은 엄청나게 정교한 기계장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토의 예상대로, 드워프 에릭슨은 가장 멀쩡한 트리톤을 분해해서 살펴보고는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트리톤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마공학 엔진은 물론이고, 부품들이 워낙에 정교하고 많기도 해서 현재 대륙이 가진 기술력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수리 정도는 가능할까요? 노획한 걸 운용할 정도로.”
“그 정도는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
“기체에서 부품을 꺼내 그나마 쓸 만한 기체에 끼워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품을 생산해낼 능력조차 되지 않으니, 고철 덩어리가 된 트리톤의 부품들을 재생해서 사용하겠단 뜻이었다.
“쩝.”
오토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기술력 격차가 크네요.”
“예, 전하.”
에릭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로서도 상식이 깨지는 기분입니다.”
“하하.”
“일단은 노획해 오신 트리톤들을 수리해보겠습니다. 이미 파괴된 트리톤들의 잔해라도 모아 주십시오. 그래야 부품을 빼서 수리에 사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오토는 즉시 베즈도리자 평야에 버려져 있는 트리톤들의 잔해를 수거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술력의 격차라…… 확 그냥 써 버려?’
오토는 무심코 대학살의 서를 떠올렸다.
현재 대학살의 서는 영혼에너지를 어마어마하게 흡수한 상태.
오토가 원한다면 트리톤의 설계도와 마공학 엔진의 기술력마저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영혼에너지가 충분한 상태라면 미래를 예지하는 것조차 가능한 아이템이 대학살의 서.
그러나…….
‘아냐. 잘못 건드렸다간 빨려 들어갈지도 모른다.’
오토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허공법계.
온 우주의 정보 데이터가 보관되어 있는 곳.
하지만 그곳에 자주 드나들었다간 언젠가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 했다.
‘이미 난 이 세계의 역사를 너무 많이 바꿔 놨어. 그런 짓까지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렇게 오토는 유혹을 떨쳐내는 데 성공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살의 서를 사용해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고대의 금지된 마법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게 부담이 훨씬 적었다.
몇 세대나 앞선 기술력을 함부로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 * *
오토는 트리톤들의 수리가 이루어지는 동안 마검사들이 가진 야시경을 업그레이드해주었다.
야시경에 더욱 강화된 투시 권능을 부여함으로써, 착용한 사람으로 하여금 투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야시경을 낀 마검사들은 트리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파일럿들이 자폭을 시도하는지 시도하지 않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오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투 중에 자폭하는 것도 위험하다.’
트리톤이 가장 무서운 점은 전투 중에 자폭 버튼을 눌러 아군의 뛰어난 기사들과 함께 폭사할 수 있다는 것.
북부제국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트리톤들을 아예 자폭 공격으로 운용하기도 했다.
바실리는 대장벽을 무너뜨릴 당시 여러 기의 트리톤들을 투입해 자폭 공격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자폭을 방해할 수단이 필요하다.’
오토는 혹시나 주변 인물들이 트리톤을 상대하다가 자폭에 휘말릴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트리톤의 자폭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자폭은 여기 이 신관이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이걸 외부에서 무력화시킬 순 없을까요?”
“일시적으로 강한 전기 충격을 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트리톤의 외부 장갑이 워낙 두껍고 마법이 잘 통하지 않아서…….”
“일단 개발해 보죠.”
“알겠습니다, 전하.”
오토는 에릭슨과 함께 트리톤의 자폭을 막을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토는 세뇌시킨 파일럿으로 하여금 마검사들을 가르치게 했고, 그 덕분에 트리톤 조종 방법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다.
위잉, 위잉!
쿵쿵쿵!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가 탑승한 트리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술을 선보이고, 방어막을 펼쳤다.
- 전하!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트리톤에 탑승한 최초의 마검사가 들뜬 목소리로 오토에게 보고했다.
- 한 며칠만 훈련한다면 충분히 전쟁터에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 예! 전하!
과연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은 트리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조종해내었다.
“마, 맙소사.”
오토에게 세뇌당한 파일럿은 마검사들이 능숙하게 트리톤을 조종하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록 영혼강탈의 권능에 의해 세뇌를 당했다지만, 그렇다고 바보가 된 게 아니었다.
오토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지, 그의 지능과 이성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
그런 파일럿의 눈으로 보기에도,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는 트리톤을 큰 어려움 없이 조종해내고 있었다.
“어때?”
“저 정도 수준이라면…….”
오토의 물음에 파일럿이 대답했다.
“지금 당장도 전투에 투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주인이시여.”
“좋아.”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일단 트리톤은 노획하는 족족 사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엄청난 성과를 올린 셈이었다.
과연 쿤타치 가문 마검사들의 수준이 이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나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니네 트리톤, 내가 다 뺏어 써 줄 테니까.’
오토는 트리톤 기동 훈련을 지켜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토는 단순히 전투 중 노획한 트리톤의 운용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오토는 트리톤을 대량으로 노획하고 싶었다.
‘전투 중 파괴된 것들은 별로인데. 고쳐 써야 하니까. 어떻게 새것들만 노획할 방법 없나?’
오토는 조금 더 큰그림을 그렸다.
중고품(?)을 노획해서 쓰는 것도 좋았지만, 따끈따끈한 새 트리톤들을 훔치고 싶었다.
“……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카미유가 불안한지 오토에게 물었다.
오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아하니 또 무슨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 공장에서 생산된 트리톤들을 훔치면 어떨까?”
“예?”
“아니면 적진에 세워져 있는 걸 노획한다든지.”
“그, 그건.”
카미유는 오토의 발상에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다.
노획을 넘어서 아예 훔칠 생각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 * *
첫 번째 전투 이후에도 키이우 왕국군은 그야말로 대활약하며 북부제국군을 괴롭혀대었다.
키이우의 왕 크바르는 동쪽을 아예 진창으로 만들어서 북부제국군의 진격을 방해하는 한편, 게이볼그 사수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인 <재블린 기사단> 운용해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그리고 그 전술은 북부제국군에게 아주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위잉, 위이잉!
철푸덕, 철푸덕!
푹, 푸욱!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진 트리톤들은 한 번 진창에 빠지면 자력으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몸부림치면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진창에 파고들어서, 그대로 돈좌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재블린 기사단은 그렇게 일렬로 돈좌된 트리톤들을 향해 게이볼그를 발사하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또한, 이오타 왕국의 용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와이번을 타고 공중에서 트리톤에게 게이볼그를 발사하기도 했다.
덕분에 북부제국군은 진격은커녕, 그 무시무시한 트리톤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한 채 100여 대가 더 파괴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말았다.
본래 대로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베즈도리자 평야를 점령하고 키이우 왕국의 수도를 점령하고도 남았을 텐데, 오히려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도 모자라 발목이 제대로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북부제국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통신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북부제국의 무서운 점은 트리톤도 트리톤이었지만, 바로 통신에 있었다.
북부제국은 몇 세대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마법과 접목해 통신망을 구축하는 게 가능했다.
마공학을 통해 송·수신이 가능한 통신장치를 개발, 망이 구축된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일일이 전령으로 소식을 전하는 대륙에 비해 소통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전략적으로 어마어마한 장점이었다.
“폐하, 키이우 왕국 점령에 나선 제1군단 사령부와의 통신망 구축이 완료되었사옵니다.”
“그런가? 즉시 연결하라.”
“예, 폐하.”
황제 바실리는 통신이 연결되자마자 제1군단의 군단장과 얼굴을 마주했다.
- 폐, 폐하를 알현하나이다.
바실리는 제1군단장의 표정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당당한 표정으로 승전 소식을 전해야 할 제1군단장의 모습이 어째서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한단 말인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바실리는 제1군단 내부에서 누군가 사고를 크게 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실리는 자신의 군대가 알콜중독, 도박, 구타, 가혹행위, 민간인 학살 등등 온갖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평시에도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전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충분히 각오하고 예상했던 일.
‘도대체 이 썩어 빠진 병영문화는 어떻게 개선해야 한단 말인가.’
바실리는 속으로 깊게 탄식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제1군단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편히 보고하라.”
- 마, 망극하옵니다.
제1군단장이 어쩔 줄을 몰랐다.
“편히 보고해도 된다 말했다. 키이우 왕국의 수도까지는 진격했나?”
- 그, 그것이…….
“……?”
- 죽여 주시옵소서! 폐하!
군단장이 바실리를 향해 넙죽 엎드려 죄를 청했다.
- 폐하, 신이 무능하여 그만 패전하고 말았사옵니다.
“……뭐라?”
바실리는 제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