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화
오토는 북부제국군의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보았다.
오토가 북부제국에 심어 놓은 간첩들은 매우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해내고 있었다.
영혼강탈의 권능에 의해 정신지배를 당한 권속들은 정기적으로 마검사들과 접선해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덕분에 오토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받아볼 수 있었다.
“어어? 이거 안 좋은데?”
보고서를 든 오토의 얼굴이 점차 굳어갔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거 같은데……?”
오토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미유의 물음에 대답했다.
“누가 화가 났단 말씀이십니까?”
“누구긴. 바실리지.”
“북부제국의 황제 말씀이십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아주 잔뜩 난 모양이야.”
“그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 전투에서 그런 대패를 기록했는데 당연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런데. 정도가 과해.”
“예……?”
“벌써부터 징집을 시작했어.”
“……!”
“심지어 군수공장에서 생산하는 군수품도 평소의 3배로 늘리라고 지시했고, 트리톤의 생산량도 만 대까지 늘리라고 했다네.”
“맙소사.”
카미유는 트리톤 만 대라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베즈도리자 평야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리톤이 만만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카미유의 눈에 비친 트리톤은 강철로 이루어진 악마였다.
그나마 성물을 이용해 전장을 질벅한 진창으로 만들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키이우 왕국군의 피해가 더 컸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트리톤을 만 대나 더 생산할 계획이라니…….
“처음부터 총력전으로 갈 생각인 것 같은데……?”
“맙소사.”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우리도 힘든데…….”
오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북부제국은 기술력뿐 아니라 가진 자원도 대륙을 압도하는 국가.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수록 유리한 건 북부제국이었다.
그 압도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소모전을 펼치면, 결국 큰 피해를 입는 건 대륙이 될 터.
그렇게 되면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이긴 게 아닌 격이 될 공산이 컸다.
키이우 전투에서의 대승이 바실리로 하여금 전쟁 초기부터 총력전을 기울이도록 유도한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 어떡합니까?”
“일단은 지켜봐야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해나가는 게 전략의 기본이니까.”
“예, 전하.”
“우선 트리톤들의 수송 일정부터 파악하자고.”
“알겠습니다.”
오토는 트리톤의 확보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기로 했다.
* * *
오토가 흑해 너머에서 작전을 펼치는 사이.
베즈도리자 평야에서는 키이우 왕국과 북부제국 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북부제국군은 어마어마한 머릿수를 앞세우며 연신 베즈도리자 평야를 점령하려 시도하면서, 전선을 크게 넓혔다.
키이우 왕국으로서도 그 넓은 베즈도리자 평야 전체를 방어해낼 수 없으니, 압도적인 머릿수를 바탕으로 전선을 넓힌다는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는 법.
북부제국군이 전선을 넓히자 키이우 왕국군의 피해도 조금씩 누적되어 가기 시작했다.
대규모 전면전이 아니라, 평야 곳곳에서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불구하고, 키이우 왕국군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키이우 왕국군은 신무기인 게이볼그를 들고 평야 이곳저곳을 뛰어 다니며 트리톤들을 사냥했다.
그런 키이우 왕국군의 치고 빠지기식 트리톤 사냥에 북부제국군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첫 번째 전투 이후 무려 200기의 트리톤을 추가로 파괴당하는 굴욕을 겪었던 것이다.
“온다.”
“쉿.”
키이우 왕국군의 재블린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들은, 이동 중인 북부제국군을 발견하고 게이볼그를 장전했다.
거리는 약 200미터.
이 정도 거리라면 게이볼그를 발사해 트리톤을 파괴하고 도망치는 게 가능할 터.
‘조준.’
기사는 저 멀리 보이는 트리톤을 향해 게이볼그를 겨냥했다.
‘셋, 둘…….’
바로 그때.
촤락!
기사는 순간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푸화아악!
시뻘건 피가 튀어 오르고.
툭, 데구르르르…….
게이볼그를 들고 있던 기사의 머리가 분리되어 차디찬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뒈져라!”
“흐흐!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적들이 재블린 기사단을 포위했다.
“적이다!”
“이런 빌어먹을!”
재블린 기사단에 소속된 이들이 황급히 나서 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적들은, 그들을 무참히 도륙 내버렸다.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니라, 시신을 수습할 수 없도록 몇십 조각으로 일일이 토막 내었다.
“히, 히익?!”
마지막 남은 재블린 기사단 소속 기사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적들을 바라보았다.
“가라.”
적들의 우두머리가 그에게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가서, 전하라. 네놈들과 같은 쥐새끼들이 어떤 최후를 맞는지.”
“……!”
“똑똑히 전해라. 그것이 네놈을 살려주는 이유이니.”
드미트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운 좋은 줄 알아라, 키이우의 버러지.”
“큭큭큭. 탈영이라도 하는 게 나을 거다. 다음번에 우릴 또 만나면 네놈은 뒈질 테니까.”
용병들은 그렇게 이죽거리고는, 기사를 등지고 드미트리를 뒤따랐다.
그게 반격의 시작이었다.
드미트리가 이끄는 수천여 명의 용병들은 베즈도리자 평야를 돌아다니며 아군 트리톤을 노리는 키이우 왕국군 장병들과 기사들을 사냥에 나섰다.
전쟁이 대규모 전면전 대신 게릴라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국지전의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 * *
“전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오.”
비밀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토는 기다리고 있던 보고가 올라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3일 뒤에 트리톤 1,000기를 태운 수송선이 출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1,000기나요?!”
“예, 전하.”
“대, 대박.”
무려 1,000기의 트리톤을 빼앗을 기회라니!
‘그 정도 숫자면 예비로 준비해 놨던 물량을 다 털어낸 거라고 봐도 좋겠는데?’
북부제국의 전력은 오토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다.
본래 오토는 북부제국이 가진 트리톤을 3,000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올라오는 보고서들을 보니 그 2배는 족히 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1,000기나 되는 트리톤들을 온전한 상태로 노획할 수 있다면, 오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인 셈이었다.
‘기회다.’
오토는 이번 기회를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즉시 아군 함대에 연락하세요.”
“예, 전하.”
오토는 근처 해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레이크의 검은 함대를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언제 이동한답니까?”
“3일 후 밤에 수송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좋습니다.”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밤이라면 더욱 자신 있었다.
북부제국의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지만, 아직은 야시경을 개발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반대로, 연합군에는 오토의 투시 권능이 담긴 야시경을 가지고 있는 기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야간에 벌어지는 전투라면 연합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할뿐더러, 이러한 작전을 수행해내기에는 최적의 조건일 터.
“곧 출동입니다. 대기하세요.”
“예, 전하.”
그로부터 3일 후.
“전하를 뵙습니다.”
인근 해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레이크가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서 와. 오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드레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좀이 쑤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래? 후후후.”
“그런데 전하.”
“응?”
“왜 함대 전체를 끌고 오라고 하지 않으신 겁니까?”
드레이크는 그게 의문이었다.
사실 드레이크는 오토가 북부제국군이 흑해를 건너가도록 그냥 내버려둔 것이 의문이었다.
흑해에서 그들을 침몰시킨다면, 굳이 대륙에서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보짓이니까.”
“예?”
“해전에서 대승을 일궜다고 치자. 그게 끝일 것 같아?”
“……?”
“침공이 그저 몇 년 정도 미뤄질 뿐이야. 북부제국은 기를 쓰고 군함들을 개발해내려고 하겠지. 그 뒤에는 어떡할 건데. 바다를 장악한다고 해도 연합군이 북부제국에 상륙해서 전투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아?”
“아.”
드레이크는 그제야 오토의 말뜻을 이해했다.
개전 초기에 해전에서 큰 승리를 이뤄낸다 한들 북부제국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북부제국의 해군력도 만만치 않아. 제대로 맞붙으면 우리 함대도 무사하지 못해.”
“이해했습니다, 전하.”
“그러니까 당분간은 참아야 돼. 뜸이 들 때까지.”
“그럼 오늘 임무는 뭡니까?”
“나포.”
오토가 대답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나포하는 거야.”
“아……!”
“성물들, 가지고 있지?”
“예, 전하.”
“그럼 됐어.”
오토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드레이크는 해적영주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성물을 얻었고, 바다에서는 그야말로 황제나 다름없었다.
단지 마공학 엔진을 탑재한 북부제국의 강철 군함들이 너무나도 강력할 뿐.
“가자.”
“예, 전하.”
그날 밤.
오토는 드레이크가 지휘하는 검은 함대를 이끌고 흑해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스으으……!
검은 함대를 중심으로 짙은 해무(海霧)가 번져 나가 흑해를 뒤덮었다.
드레이크가 해적영주 중 하나가 지니고 있던 성물의 힘을 발휘해 짙은 해무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함대를 숨긴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이이이이이!
쏴아아아아!
드레이크는 소규모 태풍까지 불러내어 흑해에 비바람을 몰아치게끔 했다.
“이야.”
오토는 드레이크가 성물을 사용해 함대를 숨기는 걸 보고 감탄했다.
짙은 해무가 깔린 데다가 거센 비바람까지 휘몰아치니, 북부제국이 검은 함대를 발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해전이 벌어져 수송선이 사라진다 한들 북부제국이 진실을 알아챌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저 거센 태풍을 만나 침몰하거나 실종되었다고 생각하지, 누군가에 의해 나포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론상 완전범죄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온다.”
저 멀리 앞을 가리켰다.
투시 권능을 발휘한 오토는 거센 비바람과 해무를 뚫고 북부제국군의 함대가 다가오는 걸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뿌우우!
촤아아아아!
북부제국의 해군기지에서 출발한 거대한 군용 화물선 한 척과 3대의 강철 군함이 다가오고 있었다.
“쏩니까?”
“아니?”
오토가 드레이크의 물음에 대답했다.
“광고할 일 있어?”
“예……?”
“함포를 쏠 일은 없어야 돼.”
드레이크를 데려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흑해의 날씨를 조작해 작전을 숨기기 위해서지, 전투가 목적이 아니었다.
함포를 쏴서 강철 군함들을 침몰시킨다면 그 잔해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게 될 터.
그럼 환경적 요인에 의한 침몰인지 아니면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인지 금방 알아챌 게 분명했다.
단 한 발의 포탄도 쏘지 않고, 깔끔하게 적들의 화물선과 군함들을 나포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가자.”
“예, 전하.”
오토와 카미유가 기함의 함장실을 나섰다.
수십여 명의 마검사들이 그런 오토와 카미유를 뒤따랐다.
그렇게 오토와 카미유는 작은 쾌속정들에 탑승에 북부제국의 함대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밤이다?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짙은 해무가 깔렸다?
그런 건 오토 일행에게는 아무런 제약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악화된 날씨가 북부제국군 함대의 눈으로부터 오토 일행을 숨겨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 폐, 폐하.
바실리는 일어나자마자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다.
- 트리톤들을 수송 중이던 화물선과 군함 세 척이 실종되었다고 하옵니다.
“……뭐라?”
- 통신이 두절됐을뿐더러, 흔적도 없이 사라졌사옵니다. 아무래도 간밤에 휘몰아친 태풍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바실리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