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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57화 (358/401)

#제357화

“마, 마음의 준비라니. 그게 무슨…….”

“으헤헤헤헤!”

카이로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뺀질이 녀석이 어지간히 쫄았나 보구나?”

“뭐어?”

“푸헤헤헤헤헤!”

카이로스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배를 잡고 웃어 댔다.

그간 놀림과 조롱만 당하다가, 오토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의기양양해진 모양.

“뭐야. 왜 쳐 웃냐?”

“푸헤헤헤헤헤헤헤헤헤!”

“왜 쳐 웃냐고.”

오토가 카이로스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정작 오토 본인은 심각한데, 카이로스가 웃어 대니 기분이 나빠졌던 것이다.

“뺀질아.”

“뭐.”

“뭘 그리 걱정하냐?”

“응……?”

“운명이란.”

카이로스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향상성이 있어서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가려는 성질이 있지. 그래서 운명을 바꾼다는 게 어렵다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데 네 녀석은 너무 큰 미래를 바꿨으니,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운명 또한 정해진 수순대로 되돌아가려고 할 테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문제는 네 녀석이 덕을 크게 쌓았다는 것이다.”

“덕……?”

“네 녀석이 북부제국 놈들의 침공을 막아냄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하겠느냐?”

“그야…….”

세계대전을 저지한다는 것은 적게는 수백만 명에서 많게는 억 단위의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소 수백만 명은 되겠지?”

“그럼 그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에 대한 대가는?”

“어?!”

“만약 네 녀석이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운명을 바꿨다면 가차 없이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바꾸는 과정에서 살린 사람이 많으니, 그 공로가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지.”

“상쇄됐다는 말이야?”

“그렇다.”

카이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녀석이 쌓은 공덕이 워낙에 크니 상당 부분 상쇄된 거지.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

“대신 앞으로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 정도 생기기는 할 게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르고 당하면 크게 손해를 입겠지만, 이미 알고 있으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면 될 것이 아니냐?”

“아……!”

오토는 카이로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들으니 마음에 놓였던 것이다.

‘변수가 크게 터진다는 것 같네. 그건 좀 더 신중하고 침착하면 될 문제야.’

만약 여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 다 때려치우고 목이라도 매달 뻔했는데, 그건 아니라니 천만다행이었다.

“하여간 네놈도 어지간하긴 하구나.”

카이로스가 솔직히 놀랐다는 듯 오토에게 말했다.

“우주의 법칙을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뭔 소리야, 그건.”

“운명을 바꿔 놓고도 공덕을 쌓아 천벌을 상쇄시켰으니, 우주의 법칙을 속인 셈 아니겠느냐?”

“그, 그건가?”

“가만 보면 네놈이야말로 우주 제일의 사기꾼일지도 모르겠다.”

카이로스는 그 말을 남기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부들부들……!!!

오토는 약이 잔뜩 올라서 몸을 떨었다.

“누가 사기꾼이야!!!”

이젠 하다하다 술주정뱅이 꼰대에게까지 사기꾼이란 소리를 들으니 억울하기 그지없는 오토였다.

* * *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저 개인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소중한 사람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꿈.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해진 미래, 즉 세계대전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이고 소시민적인 행보가 오토 본인조차 미처 알아채지 못한 공덕을 쌓는 결과를 낳았다.

그 덕분에 응당 치러야 할 대가가 상당 부분 상쇄될 줄이야.

만약 오토가 야망에 미쳐 있었다면 결코 쌓이지 않았을 공덕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잠들기 전.

‘우주의 법칙이 어떤 반격을 가해올지는 모르겠지만…….’

오토는 와인을 마시며 살짝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 두고 보자. 어떤 변수가 생긴다 해도 극복해 줄 테니까.’

알고 당하는 것.

그리고 모르고 당하는 것.

그 차이는 가히 어마어마하다.

이미 위험을 감지했으니, 손 놓고 당할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왜 그렇게 웃는 건가.”

엘리제가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세상이 나를 질투하나 봐.”

“그게 무슨 말인가.”

“자기 같이 예쁘고 훌륭한 여자를 곁에 뒀잖아.”

“……?”

“헤헤헤.”

오토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제를 끌어안고, 침대로 향했다.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치고, 오토는 엘리제를 꼭 끌어안고 곤히 잠들었다.

그리고 악몽이 찾아왔다.

“……알겠으니까 좀 자자.”

오토는 엄습하는 악몽을 간단히 떨쳐내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이, 악몽이 씻은 듯 사라졌다.

카이로스의 조언을 듣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악몽이 어떠한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예지몽과 같단 뜻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걸 경고하기 위해 악몽의 형태로 나타난 게 분명했다.

새근새근-

결국, 오토는 엘리제를 품에 안고 숙면을 취했다.

“다행이다.”

엘리제는 오토가 움찔! 몸부림치려다 다시 잠든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엘리제는 오토가 이틀 연속 심한 악몽을 꾸는 게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엘리제는 오토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다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드르르르륵, 쿠웅!

북부장벽이 열리고.

척! 척! 척! 척!

연합군 본대가 북부장벽을 지나 야만부족들의 영토로 향했다.

북부제국군과의 대규모 전면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에 나선 것이다.

오토는 총사령관으로서, 그런 연합군의 선두에 서서 병력을 지휘했다.

‘피해가 크겠지만…… 어쩔 수 없지.’

오토는 야만부족의 영토에서 벌어질 전투에서 아군 피해가 엄청나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야만부족의 영토에서는 힘 대 힘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을 터.

아무리 게이볼그를 이용해 트리톤들을 요격한다고 해도 한계란 존재하는 법.

트리톤은 단 한 기만 돌진해 와도 최소 수십 명은 죽어나가는 무시무시한 병기였기에, 피해는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가 끝날 때까지만 버티자.’

지금 후방에서는 마검사들이 트리톤 조종법을 익히고, 기동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드워프들이 트리톤들을 개조하는 작업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기에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게다가 트리톤 노획 작전도 두어 차례 정도는 더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오토가 노획한 트리톤들을 투입하는 때.

바로 그 순간이 이번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시점이었기에, 그때까지는 아군 피해가 있더라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부제국군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특이사항이 없더라도 보고는 매시간마다 할 수 있도록 하세요.”

“예, 전하.”

오토는 정찰에 용기사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게 연합군이 북부제국군보다 유리한 몇 안 되는 장점이기도 했다.

북부제국군은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공중자산이 아예 없었다.

이 세계는 오토가 살던 세상과는 다르게 공중자산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상황.

오죽하면 몇 세대나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북부제국군조차 공중자산에 대한 개념조차 없을까.

덕분에 연합군은 용기사단을 적극적으로 활용, 북부제국군의 움직임을 거의 들여다보듯 관찰하는 게 가능했다.

‘야만부족이 잘해 주고 있어.’

오토는 야만부족들이 생각 이상으로 북부제국군의 진격을 늦춰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흡족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지금 이 구도라면…… 어쩌면 대승을 거둘 수 있을지도.’

오토는 지도를 들여다보던 중 뭔가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북부제국군의 이동 경로를 보니 공교롭게도 전장의 환경이 연합군에게 매우 유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북부제국군의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행운이었다.

북부제국군은 군사력, 정확히는 전투력만 강할 뿐 다른 능력치는 확연히 떨어졌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군기가 개판일뿐더러, 정찰과 첩보에 관해서는 깡통 수준이었다.

물론 북부제국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었다.

그들로서는 야만부족의 영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방법이 아예 없었으므로, 전장 환경에 무지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찰해서 미리 정보를 수집할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야만부족의 영토에 사람을 보낸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겁의 호수.’

오토의 시선이 지도의 특정 지점에 머물렀다.

‘북부제국이 이곳을 알까?’

영겁의 호수란 야만부족의 영토에 자리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호수로서, 야만부족이 아니라면 호수인 줄 아는 이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늘 얼어붙어 있고, 눈이 매일 같이 오는 곳이라 사실 호수인 줄 모를 수밖에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설마.”

엘리제가 오토가 지도를 들여다보는 걸 보곤 물었다.

“적들을 영겁의 호수로 유인하려는 건가?”

“헉?!”

오토가 엘리제를 돌아보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지금 병력 이동의 흐름을 보니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북부제국군이 영겁의 호수에 대한 정보가 없어야겠지만.”

엘리제는 장벽 너머 야만부족의 영토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왔기에, 영겁의 호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북부제국군을 유인할 수만 있다면…….”

엘리제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전투에 참여한 북부제국군 절반은 수장시킬 수 있을지도.”

“맞아.”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훌륭한 발상이다.”

엘리제가 오토를 칭찬해 주었다.

그녀 역시 영겁의 호수가 어떠한 곳인 줄 알기에, 오토의 생각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이해했던 것이다.

“적들이 영겁의 호수의 존재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부터 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아마 모를 거야. 안다고 해도 상관없어.”

“상관없다?”

“알면 아는 대로 불리한 지형에서 싸우게 될 테니까.”

“……!”

“알고 피해 가려고 하면, 사방에서 공격당하게 될 거야. 이렇게.”

오토가 연합군을 상징하는 말(馬)을 이리저리 옮겨 자신이 생각하는 구도를 엘리제에게 보여 주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병력의 이동과 흐름을 직접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수월할 테니까.

“이, 이건.”

엘리제가 흠칫 놀랐다.

그 역시 수년간 야만부족과의 전쟁에 종군해 온 지휘관답게, 전략 전술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토처럼 모략과 협잡질에 능하지는 못할지언정, 전략 전술의 기본에 대해서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놀라움을 표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오토가 고안해낸 전략 전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

“북부제국군은…….”

엘리제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걸려들었다. 회군하지 않는 이상…… 이건 걸려들 수밖에 없는 함정이다.”

“맞아.”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는 대승이 될 거야. 역사서에 길이 남을 불멸의 전투로 기록되겠지. 설령 우리가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 하더라도, 북부제국은 역사서에서 이 전투를 지워 버릴 수 없을 거야.”

“……!”

“영겁의 호수는.”

오토가 선언했다.

“북부제국군의 무덤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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