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58화 (359/401)

#제358화

전장을 정하자마자 작전은 일사천리로 수립되었다.

핵심은 북부제국군을 영겁의 호수로 끌어들이는 것.

만약 북부제국군이 영겁의 호수로 오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오토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플랜B뿐 아니라 플랜C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북부제국군이 영겁의 호수 근처까지만 와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을 판 것이다.

‘여기가 영겁의 호수. 여기가 서리괴수들의 땅. 그렇다면…….’

오토는 작전 검토에 이틀 밤을 꼬박 지새웠다.

아무리 완벽한 작전을 세웠다고 한들 빈틈이 있다면 그것은 곧 아군 피해로 이어질 것이었기에, 빈틈이 없는지 검토하는 것은 필수.

지휘관의 실수가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아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칙, 치익!

결국, 오토는 작전 검토를 마치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지휘관, 그중에서도 총사령관이니만큼 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끝난 겁니까.”

“응.”

오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를 훅! 하고 뿜었다.

뿌연 담배 연기가 막사 안을 가득 메웠다.

“이따 회의에서 설명할 거고, 마지막으로 의견을 구할 거야. 물론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후우.”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했지, 고생.”

오토가 히죽 웃었다.

“한숨도 못 잤더니 지금 죽겠어, 아주.”

“좀 주무십시오.”

“그러려고.”

오토가 담배를 비벼 끄고 막사 한구석에 자리한 야전침대에 몸을 뉘었다.

총사령관인 오토는 잠조차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굳이 이번 작전을 수립하는 게 아니더라도 일이 너무 많아서, 이렇듯 막사 안에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쪽잠을 자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딱 2시간만 있다가 깨워 줘.”

“그걸로 되시겠습니까?”

“한가하게 잘 순 없잖아. 시간도 없고. 지휘관 회의하고 병력을 움직이려면 딱 그 정도가 적당해.”

“그럼 얼른 주무십시오.”

그로부터 2시간 뒤.

“전하, 전하.”

“……으어어어.”

오토는 카미유가 흔들어 깨우자 거의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좀비처럼 일어났다.

그간 쌓인 피로가 얼마나 심했으면 머리칼이 푸석거리고, 피부도 거칠었으며, 입술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곳 장벽 너머는 매우 추워서 씻지도 못했기에 꾀죄죄한 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나 욕조 좀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오토는 욕조가 준비되자 마법으로 물을 데우고는, 그 안에 들어갔다.

그런 뒤 잠을 깨고 정신을 맑게 해 주는 포션을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켜 정신을 깨웠다.

전쟁을 수행하는 야전지휘관의 일상이란 이렇듯 사람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토는 씻고 잠을 깬 뒤 즉시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 자신의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오오.”

“대, 대승입니다.”

“이대로 갑시다.”

주요 지휘관들은 그 누구도 오토의 작전을 반대하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이고 합리적인, 성공만 한다면 북부제국군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각 부대가 맡을 작전 내용은 따로 하달할 테니까 대기해 주세요.”

오토는 그 말과 함께 회의를 끝마쳤다.

* * *

회의가 끝나고 병력이 이동하기 직전.

‘이 전투에서 북부제국군이 대패한다면…… 잠시 공세를 수세로 전환하고 대규모 추가 병력을 요청하겠지.’

오토는 그 뒤에 벌어질 북부제국군의 움직임조차도 예측했다.

‘이미 지금도 북부제국군의 추가 병력들이 끊임없이 흑해를 건너고 있을 테고…….’

그때.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카미유가 오토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주며 말했다.

“곧 병력이 이동하는데 그때까지만이라도 좀 휴식을 취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토가 대답했다.

“지금이 기회니까. 북부제국군이 아무것도 모르고 내 손에 놀아나고 있을 때, 최대한 이득을 봐야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하지만…….”

“적이 내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때가 좋을 때인 거야.”

변수라도 발생하는 순간, 오토조차도 이 전쟁을 이렇듯 수월하게 수행해 낼 수 없을 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도 있듯이, 오토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무리하는 거였다.

이 전쟁은 단 한 번의 실수에도 아군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기에,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바짝 긴장한 채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오토는 연합군을 영겁의 호수 근처로 이동시켰다.

그런 뒤 오크 군주 바그람이 끌고 온 천둥발굽 부족의 전사들과 함께 최전방에 나가 있는 야만 부족들과 합류했다.

이번 전투의 핵심은 북부제국군의 본대를 영겁의 호수로 유인하는 것이었으므로, 기동성과 저지력이 뛰어난 바그람과 천둥발굽 부족의 전사들을 기용했던 것이다.

“내일 아침을 기점으로 북부제국군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후퇴하시면 됩니다.”

“영겁의 호수라…….”

야만 부족의 왕 라그나르가 오토의 말을 곱씹었다.

“만약 작전이 성공한다면 어마어마한 대승을 거두겠지. 확실히 좋은 전략이오. 하지만 후퇴하는 과정에서 큰 피해가 발생할 터인데.”

“그걸 최소화해야죠.”

“으음.”

“내일 아침부터 작전을 시작할 겁니다. 지구력이 중요한 작전이니까, 전사들에게 포션을 넉넉하게 챙기라고 하세요.”

“알겠소.”

라그나르는 더 이상 오토에게 반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동생 올리브가 뒤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로 라그나르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브의 말에 따르면, 오빠인 라그나르는 야만 부족들 중에서도 최고로 무식하고 힘만 센 머저리라 언제 얼간이 같은 행동을 할지 모른다나?

그래서 올리브는 전쟁에도 참전할 겸, 오빠인 라그나르의 얼간이 같은 행동도 사전에 차단할 겸, 야만 부족 진영에서 종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시오! 이곳의 지형은 우리 야만 부족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

라그나르가 가슴을 탕탕! 치면서 호언장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야만 부족들의 전투력은 역사상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토가 몰래 탈취했던 성물 혹한의 강인함을 이용해 야만 부족들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놓았기 때문에, 최소한 1.5배는 더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북부제국군을 상대로 최전방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것이고.

“믿겠습니다.”

“혹한의 자손들의 강인함을 똑똑히 보여 줄 것이오.”

라그나르가 시퍼런 눈빛을 빛내며 각오를 드러내었다.

* * *

한편, 북부제국군은 한동안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야만 부족들의 영토를 점령해 나가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본국에서부터 추가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동안 대기한 것이다.

“폐하, 추가 병력이 거의 도착했다 하옵니다.”

“그런가?”

“곧 상륙할 예정이라 하옵니다.”

“그렇다면…….”

바실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만 부족들의 본대는 어디 있는가?”

“멀리 있지 않사옵니다. 정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매우 가까운 곳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옵니다.”

“작전 환경은?”

“아군에게 더 없이 유리하옵니다.”

총사령관이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물론 그 지도는 북부제국의 것이었기에, 대략적인 지형만이 표시되어 있어 그리 신뢰할 만한 물건은 되지 못했지만.

“야만 부족들이 방어선을 구축한 이 언덕 지형만을 탈환한다면, 그 뒤로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雪原)이옵니다.”

“탁 트인 평야라는 건가?”

“예, 폐하.”

“그럼 우리 군의 전투력이 극대화되겠군.”

“그러하옵니다.”

트리톤을 앞세운 북부제국군은 좁은 지형보다는 탁 트인 넓은 지형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면전에 특화된 군대.

일단 야만 부족들의 방어선을 뚫을 수만 있다면, 그 뒤로는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는 게 가능할 터였다.

“단숨에 방어선을 뚫고 야만 부족들을 섬멸할 수 있겠나?”

“충분히 가능하옵니다.”

“즉시 진격하라.”

바실리가 결정을 내렸다.

“이고르 공작.”

“예, 폐하.”

바실리의 부름에 북부제국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중년의 검호(劍豪) 이고르 공작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전사한 드미트리보다 더욱 강하다고 평가받는 자로서, 바실리가 가진 가장 뛰어난 기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대가 전투를 직접 지휘하라. 라그나르라고 했던가? 야만 부족 왕의 목을 가져올 것을 명한다.”

“영광이옵니다.”

이고르 공작은 바실리의 명을 받들어 즉시 북부제국군의 본대를 이끌고 전선을 향해 나아갔다.

쿵! 쿵! 쿵! 쿵!

척! 척! 척! 척!

20만 명이나 되는 북부제국군의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야만 부족의 영토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부제국군은 이번 전투에 거대한 쇳덩이인 트리톤들을 무려 1,500기나 투입했기에, 그 위압감은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북부제국군의 앞선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수백 대의 자주포(自走砲)들 역시 뒤따랐다.

자주포를 통해 원거리에서 포탄을 퍼부은 뒤 트리톤들을 앞세워 몰려드는 북부제국군의 전술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평지에서 싸운다면 제아무리 야만 부족들이라 할지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멸을 면치 못할 정도로, 그들의 군사력은 가히 막강하기만 했다.

“슬슬 움직이네.”

한편, 두 눈이 초록색으로 물든 오토가 입을 열었다.

“뭘 보시는 겁니까?”

“북부제국군.”

“그게 보이십니까?”

카미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야만 부족 진영의 참호 안에서 북부제국군을 볼 수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응, 보여.”

오토가 대답했다.

“최대 3킬로미터 정도까지는 내다볼 수 있어.”

“맙소사.”

카미유는 오토가 천리안(千里眼)의 권능을 보이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엘리제와의 폐관 수련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무지막지하게 강해진 오토는, 이제 앉은 자리에서 수 킬로미터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을 정도의 대마법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슬슬 올 거야. 준비하라고 해.”

“예, 전하.”

카미유는 오토의 명령에 따라 곧 북부제국군이 진격해 들어올 것을 알렸다.

“전투 준비!”

“모두 전투 준비!”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야만 부족들은 바짝 긴장한 채 북부제국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저 멀리 북부제국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곧 포격이 시작된다! 참호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

“참호 안으로!”

꽝꽝 얼어붙은 땅을 파내어 만든 참호는 그 방어력 또한 막강해서,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 포격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야만 부족들이 여태 북부제국군을 상대로 시간을 끌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콰앙!

쾅! 쾅! 쾅! 쾅!

뒤이어 북부제국군의 포탄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포격은 무려 1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거 더럽게 오래도 퍼부어 대네.”

오토는 참호 안에 숨어서 귀를 후비적거렸다.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참호 안에 숨어 방어막을 몇 겹이나 둘러쳤으므로, 포탄에 맞아 죽을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쿵쾅! 쿵쾅! 쿵쾅!

쿵! 쿵! 쿵! 쿵!

트리톤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북부제국군의 함성도 들려왔다.

“준비해.”

“예, 전하.”

오토와 카미유는 참호 바깥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포격이 멎음과 동시에 북부제국군이 돌격해 들어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참호를 나서자마자 전투를 벌여야 할 게 분명했다.

얼마 가지 않아 포격이 멈췄다.

“가자.”

“예!”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참호를 나섰다.

쿠웅!

그런 오토의 머리 위로 트리톤의 거대한 발이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어딜!”

때마침 바로 옆 참호를 나섰던 올리브가 버럭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뒤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악!

올리브가 떨어져 내리는 트리톤의 발길질을 맨손으로 막아 낸 것이다.

마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세계를 떠받드는 거인처럼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맙소사.”

오토와 카미유는 전투 중인 것도 잊어버린 채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야만 부족이라지만, 사람이 순수 힘으로 트리톤의 발길질을 버틸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