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9화
올리브가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예컨대, 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던 폭력배들에 맞서 17대 1로 싸워 때려눕혔다던가.
커다란 침대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옮겼다거나 하는 괴담(?) 혹은 무용담(?)이 따라다니곤 했다.
게다가 와지르 대공을 암살하려던 에르제베트 왕국의 암살자들을 모조리 접어 버린 전적이 있었기에, 올리브의 강함은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오토도 카미유도 미처 몰랐다.
물론 올리브 역시 야만부족이었으므로 이곳 장벽 너머에서는 성물인 혹한의 강인함의 효과를 제대로 받았고, 그에 따라 최소 1.5배는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비정상적인 강함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트리톤의 무게는 적게는 수십 톤에서 많게는 백 톤이 훌쩍 넘어간다.
거기에 더해서, 마공학 엔진이 발휘하는 힘이 더해진다면 발길질에 실린 운동에너지는 순간 몇백 톤 정도는 훌쩍 넘어가기 마련.
그런데 그걸 두 손으로 막아내다니…….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삽조차 들어가지 않는 땅에 발목까지 푹 잠긴 걸 보면,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딜…… 쇳덩이 따위가……!”
올리브가 힘껏 트리톤의 발을 밀어냈다.
갸우뚱!
그러자 그 무거운 트리톤이 휘청거렸다.
올리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슨 아름드리나무를 붙드는 것 마냥 트리톤의 다리를 움켜쥐더니, 그대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붕! 부웅!
거대한 강철 골렘이 인간에 의해 돌아가는 광경이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미, 미친.”
“제가 뭘 보고 있는 겁니까.”
오토와 카미유는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올리브의 활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부웅!
트리톤이 저 멀리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올리브가 손을 툭툭 털더니 오토와 카미유를 돌아보았다.
“전하, 이제 편히 싸우셔요.”
“아하하하하…….”
오토는 그저 당황스러워서 땀을 삐질 흘리던 그때.
쿠웅!
트리톤 한 기가 추가로 나타나 올리브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감히.”
올리브가 트리톤을 향해 주먹을 마주 뻗었다.
콰앙!
그러자 트리톤의 강철 주먹이 찌그러지면서, 그 거대한 동체가 뒤로 몇 미터는 날아가 처박혔다.
혹한의 강인함 효과를 받은 올리브의 펀치력이란 트리톤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올리브는 그렇게 말하더니 훌쩍 뛰어올라 쓰러진 트리톤 위에 올라탔다.
콰앙! 콰아앙!
올리브의 주먹이 파일럿이 탄 흉부 장갑을 찌그러뜨리더니, 아예 뜯어내었다.
“히, 히익?!”
당황한 트리톤 파일럿.
“장난감 안에 숨으면 안전할 줄 알았나?”
“……!”
“나와라.”
올리브가 트리톤에서 파일럿을 끄집어내더니, 저 멀리 던져 버렸다.
“……”
“……”
오토와 카미유는 그 광경을 보고 잠시 침묵하다가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올리브의 활약에 그만 넋이 나가버려서, 잠시나마 전투 중인 것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 * *
방어선으로 쳐들어온 트리톤들은 가히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쿵쾅쿵쾅!
쾅!
콰앙!
그 육중한 동체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파괴하는 통에, 야만부족 전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전투에는 대 트리톤용 대전차화기인 게이볼그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트리톤들의 돌파력과 전투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 아무리 야만부족들이라 한들 제 목숨 지키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이번 전투에서 게이볼그를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번 전투에 아라드 제국군과 키이우 왕국군, 그리고 이오타 왕국군이 동원되는 일은 없었다.
왜?
북부제국군이 몰라야 했으니까.
키이우 왕국, 야만부족, 아라드 제국, 그리고 이오타 왕국까지.
여러 세력이 연합군을 형성했다는 게 알려지면 북부제국으로서도 더욱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면 전쟁이 더 길어질 터.
오토는 북부제국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연합군의 존재를 철저히 은폐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했고, 그게 잘 먹혀 들어가는 중이었다.
적어도 이번 전투까지는 연합군이 투입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버티고, 퇴각하면서 유인해야 돼. 그래야 연합군이 적들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다.’
오토는 지금쯤 북부제국군의 사각으로 이동하고 있을 아군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촤라락!
오토가 쿠란을 뽑아들고 덤벼드는 트리톤들과 맞섰다.
화르르르르르!
오러 파이어를 일으킨 쿠란은 트리톤들의 팔, 다리를 너무나도 손쉽게 잘라내었다.
카미유 역시 광속검을 사용해 트리톤들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리며, 이 무시무시한 강철 거인들을 하나둘 무력화시켜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으악!”
“크아아아악!”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몇만 명에 불과한 야만부족들만으로는 1,500기나 되는 트리톤들과 20만 명에 달하는 북부제국군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인다!”
그 와중에 북부제국군의 보병들까지 들이닥치자 전투는 더욱 힘겨워졌다.
야만부족 한 명이 북부제국군 수십 명을 감당할 수 있다지만, 그것도 한계란 있는 법.
“더는 못 버티네! 크으윽!”
라그나르가 거대한 도끼로 트리톤 한 기를 쳐내며 오토에게 소리쳤다.
“이대로라면 전멸일세!”
“예! 지금 후퇴합니다!”
오토가 소리쳤다.
“전군! 후퇴하라!”
라그나르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후퇴! 후퇴하라!”
“신속히 후퇴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야만부족들이 일제히 방어선을 등지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쫓아라!”
북부제국군의 사령관인 이고르 공작이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북부제국군으로서는 도망치는 야만부족들을 그냥 보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미 대승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게다가 이 방어선 뒤 지형은 탁 트인 설원이라 북부제국군에게 더 없이 유리했다.
추격, 그리고 섬멸.
야만부족들의 영토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 * *
후퇴가 시작되고.
펄럭!
오토는 즉시 대학살의 서를 꺼내들었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
그간 키이우 왕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규모 전투를 치른 덕분에, 대학살의 서는 영혼에너지를 흠뻑 머금은 상태였다.
이만한 양이라면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어쩌면 죽은 사람마저 되살리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고, 오토는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러야 할 테지만…….
‘축지(縮地).’
오토는 대학살의 서를 이용해 어릿광대의 재간 권능 중 하나인 축지를 시전했다.
스륵, 스르륵!
그러자 대지가 압축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나며, 후퇴하는 야만부족들의 이동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대학살의 서를 이용해 아군 전체에게 축지의 권능을 걸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야만부족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북부제국군의 추격을 뿌리치는데 성공했다.
‘너무 빠르면 안 돼.’
오토는 마음만 먹으면 북부제국군을 완전히 따돌리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오토는 그러지 않았다.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해야지. 그래야 쫓아오지.’
오토는 일부러 속도를 조절하면서 북부제국군의 애를 태웠다.
이번 전투의 목적은 싸움이 아니라 유인.
영겁의 호수 안으로 북부제국군을 끌어들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더 빠르게 쫓아라! 절대 살려 보내선 안 된다!”
오토의 의도대로, 이고르 공작은 몸소 선봉을 내달리며 북부제국군을 독려했다.
자신이 아군 병력들을 이끌고 사지로 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모른다.’
오토는 북부제국군이 집요하게 쫓아오는 걸 보고 자신의 전략이 들어맞았음을 직감했다.
지금 움직임을 보면, 북부제국군 영겁의 호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저 탁 트인 평야라 자신들이 전술적으로 유리한 전장이라 판단하고, 이를 악물고 쫓아오는 게 분명했다.
‘이러면 더 대승이다.’
오토의 눈이 빛났다.
북부제국군이 걸려든 이상 대기하고 있는 이오타 왕국군, 그리고 아라드 제국군은 굳이 플랜B에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을 터.
정해진 대로 움직이기만 해도 북부제국군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안겨주는 게 가능한 구도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아직 뜸이 들려면 멀었다.’
오토는 야만부족을 이끌고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통과했다.
거리가 조금 벌어졌기 때문일까?
슈우우우웅!
펑! 펑펑! 펑! 펑펑!
머리 위로 북부제국군의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뒈질 리가.’
오토가 대학살의 서를 펼쳐 권능을 발휘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펑펑! 펑! 펑펑펑! 펑! 펑펑! 펑펑!
계속해서 포탄이 쏟아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맞는 아군이 거의 없었다.
오토가 포탄이 빗나가게끔 운을 조작해서 아군 피해를 줄였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방어막을 치는 것 이상으로 고등한 마법이었고, 오직 대학살의 서를 소유한 자만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길 어언 1시간여.
마침내 탁 트인 설원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오토는, 후퇴를 멈추고 돌연 뒤돌아섰다.
야만부족들은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었지만, 오토는 카미유와 함께 설원에 남았다.
쿵쾅쿵쾅!
두두두두두두두두!
거의 20만에 달하는 북부제국군이 트리톤들을 앞세워 덮쳐오고 있었다.
말이 20만이지, 그 어마어마한 대군(大軍)의 위용이란 개인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했다.
“다 죽이지는 않겠으나…….”
오토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리라.”
다음 순간.
스으으!
오토의 두 눈에서 시퍼런 섬광이 터져 나오고.
촤라라라라라!
대학살의 서가 저절로 펼쳐지더니, 고대의 금지된 마법이 발동되었다.
“흘러가는 나그네여. 붙잡을 수 없는 동반자여…….”
오토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쩍! 쩌억!
끝도 없이 펼쳐진 탁 트인 설원 곳곳에서 균열의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 설원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땅이 아니라 영겁이라 불리는 거대한 호수 위.
일 년 내내 수 미터 두께의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은 만년빙(萬年氷)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영겁의 호수도 얼어붙지 않는 날이 있었다.
단 하루.
매년 1월 1일이 되면, 영겁의 호수는 단 하루 동안 스스로 녹아 수면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거짓말처럼 얼어붙곤 했다.
그래서 야만부족들은 영겁의 호수를 가리켜 한번 빠지면 두 번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 불렀다.
그 얼음장 같은 수온이 야만부족들조차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기에, 빠지는 순간 익사하기도 전에 동사(凍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라앉아 버리면 다음 날이 되면 다시 얼어붙은 호수에 의해 갇히게 되므로, 시체조차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괜히 영겁의 호수라 불리며 야만부족들조차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토는 그런 호수의 시간을 대학살의 서를 이용해 강제로 되돌리고 있었다.
1년 365일 중 단 하루 있는 그날로 되돌림으로써 북부제국군이 땅인 줄 알았던, 몇 미터 두께는 되는 빙판을 없애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영겁의 호수가 붕괴를 일으키며,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촤아! 촤아아아아아!
첨버엉!
영겁의 호수가 북부제국군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