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9화
“곧 적들의 공격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오토가 연합군 수뇌부들을 모아 놓고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가 마지막입니다. 오늘. 북부제국과의 전쟁은 끝납니다. 오늘 이후로 더 이상의 대규모 전면전은 없을 예정입니다.”
오토는 오늘로서 전쟁이 끝날 것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전쟁에 내일은 없었다.
북부제국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이상 오늘이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겁니다. 적들은 강합니다. 여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손쉽게 쓰러뜨릴 수 없을 겁니다.”
오토는 적당히 아군 수뇌부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간 너무 쉽게 이겨 왔어.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당황할지도 모른다.’
연합군은 오토의 준비와 전략·전술에 힘입어 승리를 날로 먹어 왔다.
저 강대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북부제국군을 상대로 늘 연전연승하며 대승을 이뤄내었으니, 자만할 만도 했다.
사기가 오른 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북부제국군을 은연중에 경시하며 방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토는 아군 수뇌부들이 약간의 긴장감을 갖기를 원했던 거였다.
“그러나 최후에 웃는 자는 우리가 될 겁니다.”
오토가 위스키가 든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연합군 수뇌부들 역시 일제히 잔을 들어 올리며 저마다 입을 열었다.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엘리제가 말했다.
“이번에도 승전하실 것입니다.”
카미유 역시 말을 보탰다.
“뺀질아, 짐은 전쟁에 나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느니라.”
카이로스가 짐짓 뻐기며 말했다.
“다 이긴 전쟁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지. 암, 그렇고말고. 끌끌끌.”
“취익, 우리는 늘 승리한다.”
“성스러운 가호가 함께할 것입니다.”
나머지 수뇌부들 역시도 술잔을 들고 한 마디씩을 던졌다.
“좋습니다.”
오토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저 역시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 같이 건배하겠습니다.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연합군 수뇌부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 승리를 기원하는 건배와 함께 위스키를 나눠 마신 뒤 각자 맡은 곳을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누구도 죽지 않길.’
오토는 막사를 나서는 수뇌부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특히나, 엘리제의 뒷모습이 유독 눈에 밟혔다.
그녀는 느끼고 있을까?
숙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꽈악!
오토는 자기도 모르게 쿠란의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엘리제를 지켜내겠다는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오늘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운명의 날임을 알았기에…….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카미유가 그런 오토의 속내를 읽어내고는 말했다.
“아가씨는 전하께서 지켜주실 것 아닙니까.”
“그럴 거야.”
오토가 얼굴에 굳은 의지가 떠올랐다.
“내가 지켜줘야지. 누가 지켜주겠어.”
“맞습니다.”
“가자.”
오토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기러.”
오토는 오늘 전투에서 패배할 생각이 없었다.
* * *
눈보라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북부제국군의 모습은 전과 달랐다.
그들의 눈에서는 시뻘건 흉광이 번뜩였고, 몸에서는 새하얀 증기가 뿜어졌으며, 입에서는 기괴한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병사들 같았다.
최후의 전투를 위해 전 장병들이 전투자극제를 여러 차례 투여하는 바람에 오직 살육밖에 모르는 전투기계로 돌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웅! 쿵! 쿵!
정체불명의 외계종족이 깃든 트리톤들은 전보다 더욱 거대해져 있었고,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에너지 역시도 더욱 농밀해져 있었다.
그 위압감이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고,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사람의 정신이 붕괴될 것만 같은 두려움마저 일으킬 지경이었다.
실제로, 북부제국군 장병들은 외계종족이 깃든 강화 트리톤들의 영향을 받아 정신이 붕괴된 것은 물론 육체도 변이를 일으킨 뒤였다.
이미 인간이 아닌 끔찍한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북부제국군의 선봉에 선 존재가 있었다.
그는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연합군을 전체를 압박하고, 또한 압도하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게다가 그의 주변은 마치 시공간이 일그러진 것 같았고, 시간의 흐름 역시도 뒤틀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존재감이다.’
대장벽 위에 올라선 오토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바짝 긴장했다.
아주 멀리서 본 것만으로도 그런 위압감을 발휘하는 자라면…….
‘마신인가.’
그는 100년 전 북부제국에 추락했던 정체불명의 비행체 안에 있던 존재들의 우두머리이자 엘리제의 숙적이 분명했다.
스윽.
그가 팔을 들어 올려 기괴하게 생긴 검으로 대장벽을 겨눴다.
그것은 명백한 공격 신호였다.
스으으으으!
북부제국군의 포들이 일제히 붉게 달아올랐다.
다음 순간.
펑펑! 펑펑펑! 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 펑펑! 펑펑! 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펑! 펑……!!!
북부제국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30만에 달하는 북부제국군이 일제히 대장벽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왔다.
그렇게 연합군과 북부제국군 간의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빠, 빠르다!’
오토는 북부제국군의 속도에 경악했다.
전투자극제를 중복으로 투여하고, 외계종족들이 내뿜는 에너지에 의해 변이한 북부제국군 장병들의 이동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
“3! 2! 1! Fire!”
“Fire!”
연합군은 즉시 대응사격에 나섰으나, 덮쳐 오는 북부제국군의 진격을 늦추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쿵쾅쿵쾅!
게다가 방어막을 전개한 북부제국군의 트리톤들이 연합군의 포격을 맞아주고 있기까지 했다.
슈우우우웅…… 퍼엉!
슈우웅…… 퍼어엉!
강화된 북부제국의 트리톤들은 연합군의 게이볼그 공격까지도 버텨내면서, 꾸역꾸역 전진해 왔다.
그 결과.
어느덧 눈 깜짝할 사이에 장벽 앞까지 밀려들어온 북부제국군이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콰앙!
콰아아앙!
강화된 트리톤들이 연신 성벽을 두들겼다.
트리톤들이 장갑차이자 전차였으며, 또한 공성병기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헬무트 경!”
“예! 전하!”
오토의 부름에 헬무트가 소리쳐 대답했다.
“버텨 주십시오! 성벽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예!”
헬무트가 변경백의 결의를 발동시켰다.
우웅!
그러자 대장벽이 초록색으로 물들며 그 견고함이 수십여 배는 증폭되었다.
콰앙! 콰아앙!
쩌어엉!
변경백의 결의 효과가 발휘되자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던 대장벽이 다시 굳건해졌다.
또한, 성벽 너머로 날아들던 포탄들의 명중률이 대폭 하락했다.
그게 오토가 최후의 전투를 공성전, 그것도 수성(守城)으로 정한 이유였다.
헬무트의 능력과 변경백의 결의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펑펑! 펑펑펑! 펑! 펑! 펑펑! 펑펑! 펑펑펑! 펑펑펑! 펑펑펑펑! 펑펑! 펑! 펑! 펑! 펑! 펑펑…… 펑!!!
그러는 사이 연합군의 포격과 게이볼그 공격이 성벽에 달라붙었던 트리톤들과 북부제국군 장병들에게 쏟아졌다.
촤라락!
오토가 대학살의 서를 펼쳤다.
“서로 싸워라.”
오토가 야만용사의 권능 중 하나인 살육의 함성을 발휘, 북부제국군으로 하여금 서로 싸우기를 ‘명령’ 했다.
그러자 북부제국군 사이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일어났다.
오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죽어라.”
오토의 입에서 죽음의 언령이 흘러나오던 순간.
“……!”
“……!”
“……!”
수천여 명의 북부제국군 장병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 했다.
야만용사의 함성의 마지막 권능인 ‘죽음의 함성’ 발휘되어 북부제국군 수천여 명의 생명을 박탈한 것이다.
하지만 오토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촤라라락!
성벽 위에 선 오토가 검을 휘둘렀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
부채꼴 형태로 뻗어 나간 회색 오러가 마치 안개처럼 북부제국군을 덮쳤다.
쩍! 쩌어어어억!
와르르르르!
석화(石化)된 북부제국군 장병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더.’
오토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
이번에는 초록색 안개가 퍼져 나갔다.
“커헉!”
“커어어어어억!”
맹독에 중독 당한 북부제국군 장병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마, 맙소사!”
“저런 권능이라니!”
“아아아!”
연합군은 오토의 활약에 경악했다.
성벽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데도 적들을 적게는 수백여 명에서 많게는 수천여 명을 쓸어버리는 오토의 모습이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그것은 완성된 마검사의 진정한 위용이었다.
어느덧 오토는 모든 마검사들이 꿈꾸고 지향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토의 대활약으로 인해 북부제국군은 좀처럼 성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무적황제의 권능들을 아낌없이 선보인 오토는 그야말로 전쟁의 신으로서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오토가 버티고 있는 한 누구도 성벽을 뚫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에 대한 북부제국군의 전술적 판단은 성벽을 뚫어내는 게 아니라, 아예 뛰어넘는 거였다.
쿵쾅쿵쾅쿵쾅!!!
북부제국군의 트리톤 수백여 기가 성벽을 향해 내달리다가 일제히 뛰어올랐다.
부웅!
부우우웅!
수십 톤에서 수백 톤에 달하는 강철 거인들이 뛰어오르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십여 미터를 훌쩍 뛰어올라 성벽 너머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트리톤들.
“……어딜 감히.”
그러나 오토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토가 날아오는 북부제국의 트리톤들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강력한 염력(念力)이 북부제국군 트리톤들을 공중에서 ‘정지’ 시켰다.
총 무게로 따지자면 수만 톤에 달하는, 그것도 날아오는 트리톤들을 멈춘 것이다.
- ……!
- ……!
- ……!
북부제국군 트리톤들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감지한 순간.
“조준!”
게이볼그 사수들이 소리쳤다.
“발사!”
그러자 수천 명에 달하는 게이볼그 사수들이 일제히 공중에 멈춰선 북부제국의 트리톤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슈우우우우웅……!!!
펑펑! 펑펑펑! 펑! 펑펑! 펑펑펑! 펑! 펑펑! 펑! 펑펑! 펑펑펑! 펑펑! 펑펑펑! 펑! 펑! 펑펑…… 퍼엉!!!
그렇게 공중에 떠 있던 북부제국군의 트리톤들은 대장벽을 넘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사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게이볼그 한두 발 정도는 거뜬히 버텨낼 내구력을 지녔다고 한들, 거의 속사포처럼 쏟아진 게이볼그의 탄두들까지 버텨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 * *
북부제국군의 트리톤 수백 기가 공중에서 폭사하던 순간.
“나의 권속들이여.”
마신(魔神).
외계종족 시타델의 군주인 라미레스가 명령을 내렸다.
“예, 제왕이시여.”
“예, 제왕이시여.”
“예, 제왕이시여.”
시타델의 고위기사들이 라미레스를 향해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렸다.
“저 조잡한 건축물 위를 점령하고, 성가신 존재를 처단하라.”
“명을 받듭니다.”
마침내 외계종족 시타델의 고위기사들이 대장벽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마신 라미레스는 알았다.
오토가 버티고 있는 한 대장벽을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으으으으……!!!
대장벽으로 향하는 고위기사들의 검에서 플라즈마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온다.’
한편, 오토는 마신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속들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다.
느껴졌다.
강력한 존재들이 성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구도는 완성됐다.’
오토의 눈이 빛났다.
‘적들은…… 더는 후퇴하지 못한다.’
북부제국군은 이미 대장벽 앞으로 몰려든 상태였고, 성벽 위를 기어오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이다.’
촤라락!
대학살의 서의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갔다.
“나의 의지로 명하노니.”
오토의 입에서 강력한, 이 세계의 법칙을 넘어서는 강한 언령의 권능이 흘러나왔다.
“오라, 나의 군대여. 내가 여기 있음이다.”
그러자 전장의 공기가 뒤바뀌면서, 북부제국군의 좌, 우, 그리고 뒤쪽에 강한 역장(力場)이 생성되며 시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직, 파지직!
일그러진 시공간의 틈이 벌어지며, 거대한 차원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뒤이어 대규모 병력들이 차원문을 빠져 나와 북부제국군을 포위했다.
“툰드리아에 평화를!”
“평화를!”
뒤쪽 차원문에서 이제는 툰드리아의 왕이 된 카심이 이종족들로 구성된 연합군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키이우에 영광을!”
“영광을!”
왼쪽 차원문에서는 크바르가 키이우 왕국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대제국 아라드를 위하여!”
“위하여!”
마지막으로 오른쪽 차원문에서 북부제국의 수도를 공략하고 있던 아라드 제국군이 나타났다.
그렇게 완벽한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오토가 대학살의 서를 이용해 어릿광대의 재간 권능을 증폭, 차원문을 열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아군 병력들을 이곳 전장으로 소환해낸 것이다!
“아, 안 돼!”
북부제국의 황제 바실리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각각 좌측과 우측, 그리고 뒤쪽에서 나타난 세 개의 대규모 병력들.
그리고 장벽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연합군의 본대.
그들이 일시에 들이닥친다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대장벽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나, 총사령관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명령한다.”
오토의 근엄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전 병력…… 적들을 섬멸하라.”
다음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연합군이 전, 후, 좌, 우에서 북부제국군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