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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73화 (374/401)

#제373화

설렘은 짧았다.

이곳은 살얼음판과도 같은 생사결의 현장.

엘리제는 오토가 내민 손을 맞잡고, 몸을 일으켰다.

“산 것들에 깃들어 있던 의지의 힘이여…… 가장 가치 있는 물질이여…….”

오토가 주문을 외워 엘리제에게 영체로 이루어진 갑옷을 씌워 주었다.

갑옷은 어마어마한 양의 영혼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단 한 번 입는데 무려 1,000명분의 영혼에너지가 필요하기에, 평소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주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상황.

키이우 왕국에서부터 계속해서 전쟁을 치러온 터라, 대학살의 서는 족히 이십만 단위가 넘는 영혼에너지를 듬뿍 머금고 있었다.

“이건…….”

“갑옷이야. 도움이 될 거야.”

영체로 이루어진 갑옷은 방어력을 폭발적으로 올려줄 뿐 아니라 치명상을 입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시켜주는 재생력을 부여했다.

목이 잘리거나 머리가 터져 나가지 않는 한 웬만한 부상은 즉시 치유될 것이었기에, 마신 라미레스를 상대하는 데 있어 분명히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는 사이.

“……감히.”

라미레스가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그의 가슴팍에 난 상처는 대부분 아물어 있었고, 콸콸 뿜어져 나오던 피도 거짓말처럼 멎어 있었다.

놀랍게도, 무형검에 의해 입은 상처를 단기간에 수복해낸 것이다.

“하찮은 놈이 어딜 끼어드는가.”

라미레스가 오토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대기가 진동하며 어마어마한 압력이 오토를 짓눌렀다.

“크윽!”

숨이 턱 막혀와 숨을 제대로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마신 라미레스의 말에 깃든 언령의 힘에 주변 환경이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조심해라.”

엘리제가 오토에게 조언했다.

“저자는 찰나의 시간을 조작해 반격을 가해온다.”

“시간을…… 조작한다고?”

“저자의 의지가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나조차도 대응하기가 버겁다.”

“……하.”

오토는 마신 라미레스가 공간을 지배해 시간마저 조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알겠어, 조심할게.”

“가자.”

오토와 엘리제가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게 대항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마신 라미레스가 분노 섞인 으르렁거림을 토해내며 기괴한 형상을 한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둘 다 죽이고, 네놈들의 문명과 종족을 말살시켜 버릴 것이다.”

뒤이어 마신 라미레스가 오토와 엘리제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

“……!”

오토와 엘리제는 어느새 라미레스의 공격권 안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노릇.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에 반응하려 했던 게 무색했다.

텔레포트 같은 게 아니었다.

마치 그가 지배하는 영역 안으로 끌려 들여온 것 같았다.

“죽어라.”

라미레스가 오토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엘리제의 검 아드리안이 라미레스의 검을 튕겨냈다.

‘지금!’

오토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

무형검으로부터 뻗어 나간 무형의 칼날이 라미레스를 덮치던 순간.

촤라라라락!

엘리제가 몸을 날려 라미레스의 빈틈을 파고들어 치명타를 가했다.

“……!”

놀란 라미레스가 뒤로 훌쩍 물러섰다.

콸콸콸!

쩍, 하고 갈라진 그의 배에서 시커먼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토와 엘리제의 완벽한 연수합격에 당한 것이다.

* * *

오토와 엘리제는 눈만 마주쳐도 서로가 어떠한 움직임을 원하는지, 어떻게 움직일지를 훤히 알고 있었다.

1년 동안 함께 폐관수련을 진행하면서,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게 된 덕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신 라미레스를 상대하는 오토와 엘리제의 움직임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유기적이었고, 또한 효율적이었다.

그런 엘리제와 오토의 연수합격에 마신 라미레스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미 무적의 검술을 완성한 엘리제.

그리고 무적황제의 검술을 거의 극성에 가깝게 익혀낸 오토.

두 사람의 실력이란, 수만 번의 정복전쟁을 거치며 수없이 많은 강자들을 상대해온 라미레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하찮은 벌레들이!!!”

수세에 몰렸던 라미레스가 순간적으로 플라즈마 에너지를 뿜어내었다.

우웅!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발생해 오토와 엘리제를 저 멀리 밀어내었다.

퍼어어어어엉!

이윽고 대폭발이 일어나 일대를 집어삼켰다.

플라즈마 에너지 방출이 마치 소형 핵폭탄이라도 터진 것과 같은 효과를 일으켰던 것이다.

“벌레만도 못한 존재들 주제에 감히, 감히 이 내게 대항한단 말인가.”

공기가 달라졌다.

쩍, 쩌어억!

땅이 쩍쩍 갈라지며 돌덩어리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하늘이 기이하게 일그러지며 시공의 균열이 벌어졌다.

“이 행성에는 작은 식물 한 뿌리도 남겨 놓지 않을 것이다. 오라, 나의 권속들이여.”

이윽고 벌어진 시공간의 균열에서 온갖 끔찍한 생명체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생명체들은 단순히 몬스터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들은 마물(魔物)이었다.

이 우주의 여러 생명체들에 시타델 종족이 빙의해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그 외형이 정말이지 기괴하고 끔찍하기만 했다.

시공간의 균열을 통해 빠져나온 마물들은, 그 숫자가 어림잡아 백만 마리는 넘어 보였다.

“가라, 나의 권속들이여.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말살하라.”

마신 라미레스가 마물들에게 명령했다.

- 까득, 까드드득!

-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끼이이익, 끼이익!

마물들이 오토와 엘리제를 지나쳐 연합군 진영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크윽!”

겨우 몸을 일으켰던 오토가 마물들이 연합군 진영을 향해 내달리는 걸 보고 경악했다.

돌발 상황.

마신 라미레스가 자신의 권속들을 소환해낼 줄은 오토조차도 몰랐던 바였다.

오토가 알기에, 마신이 자신의 권속들을 추가로 소환해내는 시나리오는 없었건만…….

‘어떻게 하나?’

오토는 고민했다.

이대로라면 연합군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대학살의 서에 담긴 모든 영혼에너지를 사용한다면, 저 마물들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마신 라미레스를 상대하는 데 필요한 영혼에너지가 부족할 테고, 그럼 엘리제뿐 아니라 오토 본인까지 위험해질 터.

주어진 선택지.

이에 대한 오토의 선택은…….

- 걱정하지 마라, 오토야. 이쪽은 우리가 막아 줄 터이니.

뇌리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오토는 머릿속에 울려 퍼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최후의 드래곤, 쿠란.

그가 오토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어르신께서?’

오토가 무심코 저 뒤를 돌아보았다.

-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연합군을 향해 내달리는 마물들을 상대로, 거대한 레드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 * *

“아직 시공의 저편에 살아 있는 놈들이 있었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혹시 몰라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쿠란과 아드리아나 부부는, 마신 라미레스가 시타델 종족을 소환한 걸 보고 엄청나게 분노했다.

그들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했다.

드래곤들의 입장에서, 마신 라미레스뿐 아니라 시타델 종족은 철천지원수나 다름없었다.

드래곤들은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 시공의 저편에서 이 세계를 침공하려던 시타델 종족과 맞서 싸웠고, 오랜 전쟁 끝에 멸종하고 말았다.

그 처절했던 전쟁에서 살아남은 개체는 쿠란과 아드리아나 단둘뿐.

그마저도 시타델 종족이 내뿜는 플라즈마 에너지에 의해 뇌가 손상되었고,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치매를 앓으며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끝내 멸종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시타델 종족이 잔존세력들이 이곳 북부장벽에 대규모로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쿠란과 아드리아나 부부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어딜 감히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가!”

“모조리 소멸시켜 버릴 것이다!”

쿠란과 아드리아나 부부는 즉시 본체로 현신(現身)했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

이윽고 본체를 드러낸 쿠란과 아드리아나 부부는, 즉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드래곤의 숨결은 정신기생체인 시타델 종족을 소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

더욱이, 마신 라미레스와 같이 군주가 아닌 평범한 시타델 종족이야 두말할 필요는 없을 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란의 붉은 숨결이 시뻘건 화염을 머금고 마물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뒤이어 아드리아나의 황금빛 숨결 역시도 무시무시한 바람의 폭풍을 휘몰아치며 마물들을 덮쳤다.

이른바 드래곤 브레스.

이 세계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들이 내뿜는 용의 숨결 앞에서, 마물들은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졌다.

- 크아아아아아아악!

- 캬아아아아아아악!

마물들의 육체에 깃들어 있던 정신기생체들 역시도 쿠란과 아드리아나 부부의 숨결에 갈기갈기 찢겨 소멸되었다.

완전한 소멸.

다른 생명체에 갈아타 빙의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무(無)로 되돌아간 것이다.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쿠란과 아드리아나의 활약으로, 마물들의 숫자는 처음의 10분의 1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 우리 드래곤들의 사명은…… 이것이 끝이다…… 인간들이여…… 이제 너희의 몫이다.

쿠란이 지칠 대로 지쳐 털썩! 주저앉으며 연합군을 향해 말했다.

쿠란과 아드리아나 부부는 전쟁의 후유증과 노화로 인해 숨결을 내뿜는 것조차 버거워서, 남은 마물들까지 처리해 줄 순 없었던 것이다.

“전군!”

이에 카미유가 나섰다.

“적들을 쳐부숴라! 단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이에 연합군이 일제히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덮쳐오는 마물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 * *

“이 무슨……!”

마신 라미레스는 쿠란과 아드리아나의 등장에 놀랐고, 또한 그들이 자신의 권속들을 쓸어버리는 것에 경악했다.

“이 세계에 드래곤들이 아직 남아 있었던가…….”

그와 그가 이끄는 시타델 무리는 드래곤들과의 전쟁 말기에 시공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이 세계에 불시착했던 자들.

그러다 보니 드래곤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시타델 종족으로서도 드래곤들은 상대하기가 버거웠던, 무시무시한 생명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인가…….”

마신 라미레스는 자신의 권속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 결단을 내렸다.

파직, 파지지지지지지직!

그의 몸에서 전보다 더 강력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푸슥, 푸스슥!

이윽고 그가 몸담았던 육체가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계의 돌파.

빙의한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본체의 힘을 다 끌어다 쓰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즈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라미레스의 기형검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의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또한, 육체가 붕괴하면서 플라즈마 에너지로 이루어진 본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네놈들부터 처단하고, 모조리 학살해 주마.”

마신 라미레스가 오토와 엘리제를 향해 다가섰다.

“……!”

“……!”

오토와 엘리제는 빙의한 육체를 붕괴시켜가면서까지 본모습을 드러낸 라미레스의 압박감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본모습을 드러낸 라미레스가 어떠한 권능을 발휘할지, 감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죽어라, 하찮은 것들이여.”

라미레스가 기형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 결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지가 쩌억! 하고 갈라지며 두 동강이 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뒤이어 대폭발이 일어나 오토와 엘리제를 덮쳤다.

‘이, 이건 못 피한다.’

오토는 닥쳐 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폭풍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텔레포트?

아까부터 시도해 봤지만 마신 라미레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에너지의 간섭 때문인지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폭발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다.

최소한 반경 2킬로미터를 초토화시킬 폭발이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한들 이 무시무시한 광역 공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막는다.’

오토가 무형검을 휘둘렀다.

쩍,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석화(石化)의 회색 오러가 마치 장막처럼 뻗어나가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내며 폭발로부터 오토와 엘리제를 보호했다.

“돕겠다!”

엘리제가 빛의 검들을 소환해 장벽 앞에 촘촘하게 박아 넣었다.

콰아앙! 콰앙! 쾅! 콰앙! 콰앙! 콰아아앙!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폭발의 충격파가 오토와 엘리제가 만들어낸 장벽을 때리며,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그러는 사이.

“어리석은 짓이다, 하찮은 존재들이여.”

마신 라미레스가 장벽 안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다음 순간.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라미레스의 기형검으로부터 날카로운 쇠사슬 수십여 개가 뻗어 나와 오토와 엘리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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