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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76화 (377/401)

#제376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빛의 기둥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신 라미레스를 이루던 플라즈마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도 빛의 기둥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오토……!”

엘리제조차 빛의 기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플라즈마 에너지가 모두 사그라지고, 이윽고 오토의 모습이 드러났다.

엘리제는 황급히 오토에게로 달려갔다.

오토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찬란하게 빛나던 금발은 은은한 은발이 되어 있었고, 몸은 다소 야위어 있었으며, 초록색을 띠던 눈동자 색은 보라색이 되었다.

“괜찮나?”

엘리제가 오토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오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을 뿐…….

“괜찮냐고 물었다.”

엘리제가 재차 물었다.

스윽, 오토가 고개를 돌렸다.

“……해.”

엘리제는 오토가 정확히 무어라 말했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다시 말해 봐라.”

“……ㄱ해.”

“……?”

“……피곤해.”

오토는 지칠 대로 지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픽 하고 쓰러져버렸다.

너무나도 격이 높은 존재의 힘을 담아낸 탓에 완전히 지쳐 버렸고, 그만 정신을 잃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

엘리제가 황급히 오토를 안아 들고는, 조심스레 땅에 뉘고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오토는 엘리제의 품에서 마치 죽은 듯, 세상모르게 잠들었다.

엘리제는 오토의 상태를 살피고는, 당장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박동이 미약하긴 했지만, 호흡이 일정한 걸 보니 탈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고생했다.”

엘리제가 오토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고맙다.”

엘리제는 감히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했던 오토가 약속을 지킨 게 정말이지 대견했다.

그녀에게 있어 오토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지켜주겠다던 남자였고, 실제로 그것을 지켰으며, 또한 세상을 구했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 이런 남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저 멀리서 승리의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연합군이 마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서, 길었던 전투가 드디어 막을 내린 것이다.

* * *

그로써 북부제국의 대륙 침공은 사실상 완전히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북부제국의 본대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음은 물론.

이계의 정신기생체인 시타델 종족마저 사라졌으니 더 이상의 대규모 전투는 없을 터였다.

“전하!”

카미유는 빛의 기둥이 사라지자마자 싸움이 벌어졌던 현장으로 달려왔다.

카미유뿐만이 아니었다.

“뺀질아!”

“전하!”

“귀이이익!”

“취익!”

“매제!”

“전하아아!”

“오토야!”

“오토 이 녀석아!”

카이로스, 카심, 펭이, 바그람, 잘츠부르크 가문 사람들, 올리브, 쿠란, 콘라드 등등등.

연합군 수뇌부들이 일제히 현장으로 달려와 오토를 둘러쌌다.

“전하께서는…….”

“탈진한 것뿐이다.”

“아.”

카미유는 엘리제의 대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오토의 모습이 꼭 죽은 사람 같아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이다.

다른 이들 역시 안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위험하진 않을까?”

그때, 케레스가 의견을 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라버니.”

“사람이 너무 지쳐서 쓰러지면 건강에 큰 타격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 그건.”

“이대로 위독해지면 어떡해.”

그런 케레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토를 걱정했다.

오토는 북부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내고, 나아가 마신을 처단한 영웅.

그런 그가 전투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하고 허무한 최후는 없을 터.

“일단 기력을 보충해야지 않을까?”

“기력이라 하심은…….”

“그 약 있잖아.”

“……?”

“나도 그 약 먹고 죽다 살아났거든. 그 약을 먹이면 깨어날 것 같은데?”

그 순간.

“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 탕약’이라면 탈진한 오토를 깨우고, 손실된 기력을 보충해 주는 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할게.”

케레스는 이때야말로 오토를 도와줄 기회라고 생각하고, 품속에서 ‘그 탕약’이 잔뜩 든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키이우 왕국에서 죽을 뻔한 이후 언제 어느 때고 늘 탕약을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이걸 이렇게 끼우고…….”

케레스가 오토의 입을 벌리고, 깔때기를 꽂았다.

그리고는 가죽 주머니에 든 탕약을 깔때기를 향해 냅다 들이부었다.

콸콸콸―!!!

걸쭉하고, 거무죽죽하며,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탕약이 깔때기를 통해 오토의 목구멍 안으로 쏟아졌다.

그로부터 약 3초 후.

“……!”

오토가 눈을 번쩍 떴다.

“커, 커헉!”

오토가 탕약을 토해내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잡아!”

케레스가 소리치고, 연합군 수뇌부들이 일제히 오토의 몸을 찍어 눌렀다.

“컥! 커허어어억! 컥!”

오토는 있는 힘껏 발버둥 쳤지만,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꽈아악!

다른 누구도 아닌 올리브가 상체를 찍어 누르고 있어서, 몸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콸콸콸콸콸―!!!

꼬르르르르르르르르르……!!!

“컥! 커허어어어어억! 어어어어어어억!”

그렇게 오토는 다른 연합군 수뇌부들이 지니고 있던 것들까지 더해서, 거의 2리터는 되는 탕약을 억지로 먹어야만 했다.

‘그,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미친놈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오토는 번쩍 정신을 차린 것으로도 모자라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문제는 그다음.

“우웩!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엑! 우웨에에에에에에엑!”

오토는 한동안 토하고, 토하고, 또 토했다.

오죽했으면 위액까지 모조리 게워내고 난 이후에야 구토를 멈췄다.

“으어어어어…….”

문제는 하도 토하다 보니 정신을 차려도 차린 게 아닐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탕약의 효과가 있었는지, 오토는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평소처럼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탕약을 2리터가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정상 컨디션이 돌아오기는커녕 여전히 골골대었던 것이다.

후들후들!!!

심지어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좌들의 전당에서도 가장 높은 격을 지닌 존재의 힘을 담아낸 후유증이었기에, 단순히 육체적인 부담을 넘어 오토라는 인간의 존재 자체에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남겼던 것이다.

“괜찮나?”

“괘, 괜찮아.”

오토가 엘리제의 물음에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칠칠맞기도 하시지.”

“윽, 으윽.”

올리브가 손수건으로 오토의 입가와 얼굴 주변을 닦아 주었다.

온통 오물…… 이 아니라 탕약에 토사물 범벅이라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올리브가 몸단장을 도와주는 동안 카미유는 잠시 빌려 썼던 검을 곱게 닦아서, 다시 오토에게 돌려주었다.

스윽.

드래곤의 뼈로 만든 명검 쿠란을 오토에게 바치는 카미유.

“전하, 승전을 선언하실 시간입니다.”

“그래.”

오토가 쿠란을 받아들고,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그런 오토를 연합군 수뇌부들과 쿤타치 가문의 마검사들이 호위했다.

이윽고 오토가 연합군 장병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연합군 장병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오토를 맞이했다.

오토는 북부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륙을 지켜낸 영웅이자 이 전쟁을 전승으로 끝마친 불패의 지휘관이었으며, 이제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전하.”

카미유가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취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연합군 수뇌부들 역시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그가 이룩한 업적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다.

“총사령관 각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끌끌끌.”

심지어, 카이로스마저도 오토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총사령관 각하.”

엘리제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연합군 장병들, 심지어 툰드리아의 이종족들까지도 오토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오토는 모든 이들의 존경과 우러름을 받으며, 연합군 진영으로 귀환했다.

역사서에 길이 남을, 불멸의 승리였다.

* * *

북부제국군의 잔존 병력들은 황급히 후방으로 도주했지만, 연합군의 추적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들에게는 후퇴할 여력조차 없었다.

전투자극제를 과다 투여한 것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북부제국군은 전투자극제의 후유증으로 빼빼 마른 몸을 이끌고 어기적어기적 후퇴하다가 연합군에게 뒤를 잡혔고, 대부분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했다.

그리고 그런 북부제국군의 기사들은 자신들의 황제인 바실리를 체포해 연합군에게 넘기기까지 했다.

본래 어떻게든 흑해를 넘어 본국으로 밀항하려던 바실리는 도주를 준비하던 중 반란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 길로 연합군에 넘겨졌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바실리는 북부제국의 역사상 가장 무능한 황제였다.

역사상 가장 강한 국력과 군사력을 자랑하던 북부제국이 불과 3개월 만에 폭삭 망해 버렸다.

본토는 초토화되었으며, 거의 50만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그 몇 배나 되는 북부제국인들은 가족을 잃었다.

게다가 이번 전쟁으로 인해 북부제국이 입은 경제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서, 향후 100년이 지나도 전쟁 배상금을 갚지 못할 게 분명했다.

대륙보다 몇 배나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부를 이룩했던 북부제국의 찬란한 번영이 이제는 아주 잠깐 동안 존재했던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모든 게 이번 정복전쟁을 기획하고 주도하고, 또한 실행했던 황제 바실리의 책임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이 개 같은 새끼!”

“캬악! 퉤!”

“이 씨발놈아!”

끌려가는 바실리의 뒤로 북부제국군 장병들의 오만 욕설과 가래침이 쏟아졌다.

오죽했으면 정작 반란을 일으킨 북부제국의 기사들이 바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을 지경이었다.

“황제는 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예.”

북부제국의 기사들은 황제인 바실리를 연합군에 넘김으로써, 그들의 안전을 보장받길 원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제대로 된 포로 대우를 받을 수 있을뿐더러, 전범으로 몰려 처형당하는 신세를 면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바실리는 자신의 기사들에 의해 연합군 진영으로 끌려오게 되었고, 결국 오토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죽여라.”

바실리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마당에 목숨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오히려 목숨을 부지하는 게 바실리에게는 더욱 큰 고통이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평생토록 오만 비난과 조롱, 욕설을 듣고 살아야 할 터.

북부제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황제이자 전범으로서 조국뿐 아니라 대륙인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고 살아야 할 테니, 그보다 더한 치욕스러운 삶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부제국으로 무사히 도망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훗날을 기약할 여지라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잡혀 온 이상 처형당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 마음대로?”

옥좌, 그러니까 총사령관만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앉은 오토가 느긋하게 다리를 꼬며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오토도 바실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야욕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고, 앞으로도 고통받을 텐데 깔끔하게 죽여주는 건 지나치게 큰 호의를 베푸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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