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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80화 (381/401)

#제380화

오토는 이번에는 분신을 보내지 않고 직접 로웨나에게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분신을 만들어 보내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마신 라미레스와의 전투에서 소모한 마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서, 분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토는 카미유, 그리고 마검사들과 함께 와이번을 타고 로웨나의 영토로 향했다.

만약 로웨나가 잡아먹으려고 든다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면 넘어갈 테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죽을 정도는 아닌데, 뭘.”

“하지만…….”

“이건 내가 직접 가야 돼. 괜찮으니까 어서 가자.”

“예, 전하.”

오토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카미유를 안심시키고는, 와이번 위에 올라탔다.

‘그래도 회복되고 있으니까.’

회복이 더디긴 했지만, 그렇다고 악화되는 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오토는 느낄 수 있었다.

소모되었던 마력이 조금씩이나마 다시 차오르고, 바닥을 쳤던 체력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엘리제 역시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니, 몇 개월만 지나면 다시 힘을 쓸 수 있을 터.

그 전에 뭔가 사건이 터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영토에 도착한 오토는, 로웨나를 바로 만날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한바탕 살육을 저지르며 광기를 발산하던 로웨나는 오토가 왔단 소식을 전해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

“…….”

“…….”

기사들은 로웨나가 정신을 차린 걸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조금 전까지는 눈에 보이는 시종들과 시녀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며 피에 미친 악귀처럼 행동하다가, 오토가 왔단 이야기에 이성을 되찾은 것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어, 어서 몸단장을 준비하라! 어서!”

“예, 전하.”

로웨나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피를 씻어내기 위해 황급히 몸단장에 들어갔다.

“저, 정상이 아니시다.”

“빌어먹을.”

기사들은 그런 로웨나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뛴 것이라고 치자.

정신을 차렸으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도는 알아차리고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나 로웨나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깨닫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왜?

그녀는 귀족이 아닌 이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으니까.

뒤틀린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잠깐 눈이 돌아 화풀이를 했다 정도로 여길 뿐 자신이 미쳤다는 자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시체를 치우고 주변을 정리해라.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이 이 광경을 보면 안 된다.”

“예.”

기사들이 황급히 로웨나가 저지른 살육의 현장을 치우기 시작했다.

* * *

한편, 황제는 나름대로 연합군을 견제하기 위한 대책회의에 나섰다.

아무리 아둔하고 어리석은 황제라 한들, 그 역시 황가의 일원.

그는 형제들에 대해 유독 관대할 뿐이지, 권력에 대한 집착만큼은 여느 황족들에 못지않았다.

황가의 피가 흐르는 사람답게, 오토와 연합군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신하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라드 제국은 대륙 최강대국답게, 인재들 또한 많았다.

그들 역시 상황이 변했고, 오토와 연합군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폐하, 오토 드 스쿠데리아는 이제 위험인물이옵니다.”

“그가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에는 크게 활약한 건 사실이오나, 폐하의 군대의 역할이 더욱 주효했사옵니다.”

아라드 제국의 대소신료들 또한 오토와 연합군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토사구팽이다?

너무한다?

혹은 은혜를 모른다?

권력 앞에서,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서를 뒤져봐도 구국의 영웅, 혹은 개국공신들이 군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권력과 국제정세라는 것은 그렇듯 피도 눈물도 없이 비정하고, 비열하기 마련이었다.

“폐하, 북부대공을 불러들이시옵소서.”

“북부대공?”

“잘츠부르크 가문은 충신 중의 충신이옵니다. 아무리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그의 손녀사위라 하나, 그가 폐하께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음!”

“그로 하여금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힘을 견제하도록 하시옵소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북부제국으로부터 노획한 트리톤이 족히 5,000대가 넘는다 하옵니다.”

“트리톤이라면…… 크흠!”

황제 역시 보고를 받았기에, 트리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략병기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연합군이 트리톤들을 앞세워 수도로 진격해 온다면…….

오싹!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북부대공으로 하여금 노획한 트리톤들을 본국에 반납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오오오! 그런 방법이!”

황제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북부대공과 잘츠부르크 가문은 제국의 충신 중의 충신이자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들.

그런 잘츠부르크 가문을 앞세워 트리톤을 가져올 수 있다면, 충분히 연합군을 견제하는 셈이었다.

사실상의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였으니, 그만하면 연합군을 견제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좋소.”

황제가 웃음꽃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내 북부대공을 불러들여 이 사안에 대해 논의하리다. 역시 경들의 의견은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구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황제는 싱글벙글 웃음꽃을 피우며 어전회의를 마무리했다.

* * *

북부대공 지안카를로는 황제의 부름을 받자마자 와이번을 타고 즉시 황궁으로 날아갔다.

‘폐하께서 우리의 공로를 치하하시려는 것이겠지.’

안 그래도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로부터 딱히 연락이 없던 중이었다.

지안카를로와 황제의 만남은 독대로 이루어졌다.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지안카를로가 옥좌에 자리한 황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대공, 정말 고생이 많았소.”

황제가 지안카를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이까?”

“아니옵니다, 폐하. 다 폐하의 은덕 덕분이옵니다.”

“하하하! 대공께서는 언제나 겸손하시구려!”

“망극하옵니다.”

“저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 것은 다 그대와 잘츠부르크 가문의 공인데, 어찌 그리 겸손하시오. 대공께서는 구국의 영웅이시오.”

그 순간.

‘이 무슨……?’

지안카를로는 황제의 말에서 뭔가 괴리감을 느끼고 내심 당혹스러워했다.

어째 황제의 말에 다분히 시커먼 속내가 섞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잘츠부르크 가문이야말로 본국의 보배와 같소. 가히 충신 중의 충신이라 할 것이오.”

“과찬이시옵니다.”

“내 전쟁이 끝났으니 곧 칙서를 내려 그대와 그대의 가문을 크게 치하할 것이오.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본국의 지휘관들과 기사들에게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줄 것이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런데 말이오.”

황제가 은근한 어조로 지안카를로에게 말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더는 북부제국의 위협은 없는 것 아니오?”

그 발언에서, 지안카를로는 황제의 의도를 간파했다.

‘……폐하께서 연합군의 해체를 독촉하시는구나.’

지안카를로는 내심 씁쓸해했다.

기껏 목숨 바쳐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견제부터 들어온단 말인가?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사람이라면 단언컨대 오토였다.

그런데 황제는 정작 오토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잘츠부르크 가문의 공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지안카를로는 황제의 의도를 알아차리자마자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하고, 일단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여기서 까딱 잘못했다간 이대로 팔, 다리가 잘려 토사구팽당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폐하, 위협이 사라진 건 아니옵니다.”

“음?”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 것은 사실이오나, 아직 연합군을 해체하기엔 시기상조이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북부제국의 본토가 심상치 않다고 하옵니다.”

“음?”

“지금 연합군을 해체했다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없사옵니다.”

“그, 그런 것이오?”

황제가 당황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연합군 무용론을 들어 트리톤부터 빼앗으려 했는데, 위협이 끝난 게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부제국에는 무시무시한 이계의 존재들이 득실거렸사옵니다. 아직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옵니다.”

“으음…….”

“한동안은 연합군의 군대를 유지하면서 대륙의 북부를 방어하는 게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그, 그렇구려.”

황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럼 트리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예……?”

“트리톤은 무서운 전략병기가 아니오? 본국도 본토를 방어하려면 트리톤을 보유해야 할 터인데…….”

“물론 본국도 차차 트리톤 생산에 대한 기술을 획득할 것이옵니다.”

“지금 당장은 안 되겠소? 연합군에서 노획한 트리톤이 많다고 들었는데…….”

“노획한 트리톤들은 대부분 이오타 왕국의 소유라 신이 무어라 확답을 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크흠!!!”

황제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토해내었다.

지안카를로를 앞세워 트리톤들을 빼앗으려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불편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폐하.”

지안카를로는 일단 황제를 달래야 한다는 걸 깨닫고,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신은 폐하의 신하로서, 본국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옵니다.”

“물론 짐은 그대의 충성심을 믿어 의심치 않소이다. 암, 그렇고말고.”

“트리톤에 대한 건은 차차 논의해서 본국의 국익에 보탬에 되게끔 할 것이옵니다. 또한, 연합군의 해체는 모든 위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 곧장 시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필 것이옵니다.”

“그게 정말이오?”

“신은 폐하의 신하이옵니다. 누가 뭐래도 본국의 국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대공께서 그리 말하신다면 짐이야 더없이 든든하오. 하하하!”

황제는 지안카를로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는 듯 크게 웃었다.

오토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지안카를로가 이렇게까지 말해 주니 경계심이 아주 조금은 누그러졌던 것이다.

* * *

“……후우.”

지안카를로를 알현을 끝마치자마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속내는 쓰리다 못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큰일이로군. 폐하께서 이미 경계심을 품으신 이상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터인데.’

지안카를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말 몇 마디에 안심하는 듯 보이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황제는 오토와 연합군을 계속 신경 쓸 테고, 견제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끝은…….

‘그 녀석이 역적이 되는 날도 머지않았구나.’

지안카를로는 가까운 미래에 황제가 오토를 역적으로 지목할 것이라는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권력은 한번 의심한 상대를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게 권력이 가진 잔인한 속성이었고, 그 결말은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끝나기 마련.

그렇다고 오토가 가진 모든 트리톤을 내놓고 연합군을 해체했다간…….

‘그땐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반란을 일으킬 터인데.’

그럼 아라드 제국이 내전에 휩싸이게 되고,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렇게 해도 피바람.

저렇게 해도 피바람.

산 넘어 산이라더니, 북부제국의 침공을 막아냈음에도 전쟁의 불씨는 사그라지기는커녕 여전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녀석과 상의해 봐야겠다.’

지안카를로는 이 건에 대해서 오토와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하고, 다시 잘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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