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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82화 (383/401)

#제382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밖엔 없어.’

그게 지난 며칠간 오토를 괴롭혔던 화두였다.

현실적으로, 세계대전을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세계대전으로 번지기 전에 아라드 제국의 내전으로 끝내는 건 가능했다.

문제는, 그러려거든 대륙의 패권을 아라드 제국의 황제가 아닌 오토가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

‘평화는 강한 힘으로 유지된다.’

오토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

강한 군사력으로 대륙을 찍어 누르면, 세계대전은 자연스레 벌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즉, 이오타 왕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대륙의 패권을 완벽히 장악한다면 세계대전이 벌어질 일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내전을 가속화시켜서 속전속결로 끝내야 돼.’

오토는 이게 시간 싸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주변 군소 왕국들을 규합해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에 끝장내는 것만이 전쟁의 불씨가 전 대륙으로 번지는 걸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토는…….

“졸지에 황제 되게 생겼네.”

오토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오토가 카미유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가 황제가 되는 게 세계대전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야.”

“드디어 그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시는…….”

“아니야!!!”

오토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누가 황제 같은 거 하고 싶은 줄 알아!!!”

“아니셨습니까?”

“내가 미쳤어? 그런 피곤한 걸 하게? 어? 지금도 일이 많은데?”

“농담입니다, 농담.”

카미유가 킥킥거렸다.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러십니까?”

“발끈 안 하게 생겼냐고. 어휴.”

오토가 지쳤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 졸지에 대륙의 패권까지 장악해야 하는걸.”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겁니다.”

“난 아냐.”

오토는 정말로 그런 야망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게임을 할 때야 무력을 통해 최종 승자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방향성이 그런 것이지, 오토 개인의 성향과는 별반 관련이 없는 것.

게이머 김도진은 그저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는 캐릭터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집중했던 것일 뿐이었다.

“할아버님이 어떻게 반응하실지 그게 걱정이야.”

“잘 설명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설명한다고 납득시킬 수 있는 문제냐고.”

“하긴.”

카미유는 오토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잘츠부르크 가문은 아라드 제국의 개국공신이며, 지난 수백 년 충성해 온 가문.

그런 잘츠부르크 가문의 가주인 지안카를로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오토를 도와주기는커녕, 단칼에 베어 버리려 들지도 몰랐다.

기사인 카미유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설득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세상을 위한 길이라면.”

“그래야지.”

오토는 지안카를로가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전부터 황위를 노리는 게 아니냐며 의심을 받던 중이라 마음이 더 불편했다.

카미유의 농담대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냐며 노발대발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 * *

잘츠부르크 가문으로 돌아온 오토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지안카를로에게 만남을 청했다.

지안카를로를 만나러 가는 길.

‘으으. 살 떨려.’

오토는 내심 떨려서 조마조마했다.

- 네 이노오오옴! 네놈이 드디어 그 야욕을 드러내는구나!

벌써부터 지안카를로의 호통이 귓가를 찢어발기는 듯했다.

‘몸도 안 좋은데 맞아 죽는 거 아냐?’

지금의 오토는 지안카를로의 분노 앞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가 정말로 노발대발한다면 진짜로 꽥! 하고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로 오토를 두들겨 패지는 않겠지만…….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았느냐.”

다시 만난 지안카를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황제를 알현한 뒤의 심적 고통이 가히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뵙기를 청했습니다.”

“드릴 말씀이라…….”

“부디 불편해하지 마시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지안카를로는 오토가 평소와는 다르게 굳은 얼굴과 진중한 어조로 말하는 걸 보고 올 것이 오고야 말았음을 직감했다.

“그래, 말해 보아라.”

“대륙이 위험합니다.”

“어째서냐.”

“곧 황제 폐하와 황족들이 우리 연합군을 견제하려 들 겁니다. 먼저 무장해제를…….”

오토는 자신이 예상하는 미래와 그 결과를 지안카를로에게 아주 상세히 말해 주었다.

연합군이 무장해제하고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다 한들 그 뒤엔 내전이 기다리고 있고, 그러면 대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미래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답은…….”

오토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성혁명뿐입니다.”

“…….”

“오직 역성혁명만이 다가올 큰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안카를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역성혁명이라.”

지안카를로의 얼굴에 씁쓸하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화를 안 내?!’

오토는 그런 지안카를로의 반응에 더욱 불안해졌다.

차라리 길길이 날뛰며 화라도 냈다면 마음이 좀 편했을 텐데.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원을 아느냐.”

“예……?”

“네 처가의 기원에 대해서 아느냐 물었다.”

오토는 지안카를로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매우 당황했다.

잘츠부르크 가문의 기원이라니?

“잘츠부르크 가문이라면…….”

물론 오토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잘츠부르크 가문의 선조들은 대대로 이곳 북부장벽을 지키던 기사 가문이었다.

그러던 중 아르곤 대제가 세운 크라레스 제국이 부패하고 무너지면서, 세상에는 또다시 난세가 찾아왔다.

당시 잘츠부르크 가문은 북부장벽을 지키는 한편, 도탄에 빠진 대륙인들을 위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 아라드 제국의 초대 황제를 도와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일조하면서, 개국공신이 되었다.

“우리 가문이 아라드 제국에 충성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그거야…….”

왜 모를까.

잘츠부르크 가문이 대를 이어 희생하고, 봉사해온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대륙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충성심도 충성심이었지만, 대의를 위해 이 거대한 장벽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가문은 더는 북부장벽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지안카를로가 말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싸워 온 야만부족들과 화친을 맺었고, 그들을 대륙으로 이주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 오토 덕분이었다.

연합군을 결성하면서 혹한의 자손들과 잘츠부르크 가문 간의 동맹과 화해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그럼 이제는 무엇을 지켜야 하겠느냐?”

“그건…….”

“잘츠부르크의 검은 황제를 향한 것이 아니다.”

“……!”

“우리 가문은 대대로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검을 휘둘러왔다. 이곳 대장벽을 지켜낼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제는…….”

지안카를로가 담담히 말했다.

“대륙을 지켜내기 위해서 검을 들 것이다.”

“하, 할아버님.”

“네 뜻에 대의가 있으니, 뜻대로 하라. 어찌 반대하겠느냐.”

오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안카를로의 반응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역성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들 우리 잘츠부르크 가문이 역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터.”

“아.”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지기 마련이겠지. 지난 수백 년 동안 충성하고, 희생하고, 봉사했다. 그만하면 충분한 것이겠지.”

결국, 지안카를로 역시 돌아가는 정국을 읽어내고 결단을 내렸단 뜻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충성을 지키기를 고집했다간 대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이다.

“할아버님의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토 역시 그런 지안카를로의 진심을 알았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됐어.’

그로써 오토는 자신의 마지막 계획을 실행시킬 강한 원동력을 얻은 셈이었다.

이오타 왕국 다음으로 연합군의 핵심 세력인 잘츠부르크 가문의 협력이 있다면,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는 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지안카를로의 허락이 떨어지자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실 지금의 오토는 대륙의 패권을 장악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세력, 군사력, 무력, 경제력 등등등.

황제가 경계하고 견제하려 드는 게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오토와 연합군의 역량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덕분에 오토가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오토와 잘츠부르크 가문은 역성혁명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자산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나 불렀어? 헥헥! 헥헥헥!”

케레스는 오토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헐레벌떡 달려왔다.

어찌나 황급히 달려온 건지, 숨을 다 헐떡일 지경이었다.

“곧 결혼식을 열 예정이니까, 당분간 몸조심해 주세요.”

“겨, 결혼식?!”

케레스가 흠칫 놀랐다.

“나 이제 쿠사키나와 식 올려도 되는 거야?”

“…….”

“아, 아니야?”

“아니이.”

오토가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감쌌다.

“형님 아직 로웨나 대공이랑 약혼한 사이십니다만?”

“헉!”

“약혼을 했으니까 결혼식도 하셔야죠.”

“하, 하지만 나는…….”

케레스가 발을 동동 굴렀다.

현재 케레스는 곧 아버지가 될 예정이었다.

쿠사키나와 그렇게 사고를 쳐 대는 바람에 속도위반으로 출산이 임박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결혼식이라니…….

케레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게 분명했다.

“결혼을 하셔야 이혼도 하는 겁니다.”

“으응?”

“쿠사키나 님께는 죄송하지만, 상황이 그렇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러게 누가 덜컥 사고부터 치라고 그랬어요? 피임이라도 잘 좀 하시던가.”

“미안…….”

“어차피 결혼식만 올릴 뿐이지, 합방 같은 게 이뤄질 리 없으니까 걱정 마시고요.”

케레스와 로웨나의 결합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정략결혼일 뿐이라서, 서로 눈도장만 찍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같이 생활할 필요조차 없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단 결혼식을 올리면, 공식적으로 형님은 황족이 되시는 겁니다.”

“그, 그렇겠지?”

“그걸로 된 겁니다.”

“으응?”

“결혼식만 올리면 끝나요. 모든 게.”

로웨나가 독단적으로 추진했던 케레스와의 정략결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주고 있었다.

‘형님과 로웨나가 결혼하면, 역성혁명을 일으킬 명분은 충분하다.’

현재 황위 계승 서열 1위는 로웨나.

만약 황제, 로웨나, 테르테미안, 그리고 파라곤이 사망한다면?

로웨나의 남편인 케레스가 황위 계승 서열 1위가 될 터.

그럼 잘츠부르크 가문은 황위 계승권을 획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오토에게도 황제에 오를 자격이 생기는 셈이었다.

본래 같았으면 역성혁명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케레스의 존재로 인해서 연합군에게도 아라드 제국을 집어삼킬 명분이 생긴 것이다.

“이혼까지는 1년도 안 걸릴 겁니다. 굳이 이혼하실 필요도 없고요.”

“왜?”

“로웨나가 죽을 테니까요.”

오토가 냉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웨나는 타고난 잔혹함과 피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위험인물.

그런 그녀가 황위에 오르기라도 한다면, 대륙이 피로 물드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자비를 베풀고 싶어도 이미 지은 죄가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일단 형님은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알겠죠.”

“으응.”

“좋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잘츠부르크 가문은 케레스와 로웨나의 결혼식이 열릴 것임을 발표했다.

한편, 황제는 오토로부터 한 편의 밀서를 전해 받았다.

“이런 기특한지고! 기특하도다! 기특해! 껄껄껄!”

황제는 오토가 보낸 밀서에 매우 기뻐했다.

왜냐하면…….

“트리톤을 모두 바치겠다니! 껄껄껄!”

오토가 보낸 밀서에는 북부제국과의 전쟁에서 노획한 트리톤 5,000기를 모두 아라드 제국에 바치겠단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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