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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85화 (386/401)

#제385화

마칸 왕국과 아가르타의 동맹은 이곳 대륙 동쪽 정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벤트였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인지라 주변 세력을 견제할 수단이 필요했던 마칸 왕국.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나와 본래 모습, 그러니까 인간으로 되돌아오고 싶은 아가르타.

이 둘의 야합(野合)은 대륙 동쪽에 매우 큰 파란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마칸 왕국은 아가르타의 괴물들이 대륙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거나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반대로, 아가르타는 마칸 왕국에 적대적인 세력을 공격해 줌으로써 무력을 제공했다.

곧 대륙 동부는 괴물들의 출현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질 예정이고, 마칸 왕국이 그 틈을 타 공격적인 세력 확장을 이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좀 쉬자. 오래 비행했더니 피곤하네.”

“예, 전하.”

오토는 마칸 왕국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그 옆 나라의 국경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들었는가? 요즘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마구 죽여대고 있다는 이야기?”

“나도 들었네.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들이라고 하더군.”

“벨킨 왕국에서는 작은 소도시 하나가 아예 초토화되었다군.”

“도대체 그 괴물들의 정체가 뭔가? 벨킨 왕국군은 뭘 했고?”

“그걸 알면 가만히 있겠는가? 어디 벨킨 왕국뿐인가? 다른 나라들도 괴물의 출몰로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네.”

“허. 말세로구먼. 말세야.”

여관 1층 주점은 온통 괴물 이야기뿐이었다.

그건 이미 지저세계의 괴물들인 아가르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가르타가 대륙 동부의 여러 나라들을 공격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게.”

오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주문했다.

“그런데 마칸 왕국으로 가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왜?”

“그야…….”

카미유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마칸 왕국이 그들의 비밀을 전하께서 알고 계신다는 걸 알면…….”

“어쩔 건데?”

“예?”

“알면 어쩔 거냐고.”

오토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죽이려 들지 않겠습니까?”

“내가 무슨 동네 시골 영주도 아니고, 제깟 놈들이 날 어떻게 죽여?”

“아?”

“날 죽이고 싶기야 하겠지. 문제는 나 하나 죽는다고 그 비밀이 과연 묻힐까?”

“……!”

“이오타 왕국의 정보부를 통째로 없애 버릴 수는 없는데?”

“설마.”

카미유가 그제야 오토의 의도를 이해하고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마칸 왕국의 약점을 쥐고 흔드시려는 겁니까?”

“정답.”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냥 가서 갑질만 좀 해 주면 돼. 그럼 놈들은 알아서 설설 길걸?”

“하하하…….”

“우리도 갑질 좀 해 보자고. 후후후.”

“…….”

“딱 기다려. 아주 탈수기를 돌려버릴 테니까.”

오토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목을 매달고 죽는 게 나을지도.’

카미유는 그런 오토의 얼굴이 마치 사악한 악마처럼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오토가 작정하고 탈수기를 돌리면 당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나았다.

오토는 사람 피를 말리는 데는 도가 튼 인물.

적들이 오토에게 당하며 차츰차츰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동정심이 들 지경이었던 것이다.

* * *

다음 날 오후.

“……뭐라?”

마칸 왕국의 알렉스 국왕은 갑작스러운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이 방문해? 아무 연락도 없이?”

“예, 전하.”

“도대체 어찌하여?”

알렉스 국왕은 오토의 방문이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오토의 주요 활동 무대는 대륙의 서쪽, 남쪽, 북쪽.

딱히 접점도 없는 이곳 동부지방에 방문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마칸 왕국과 이오타 왕국 간에 교류가 있었던 적도 없고, 외교적으로 겹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마 와지르 대공께서 날 소개해 주신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알렉스 국왕 역시 과거 와지르 대공에게 6개월 정도 정치와 외교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으므로…….

“언제 도착한다고 하던가?”

“예, 전하. 1시간 안에 도착할 예정이라 하옵니다.”

“이런 빌어먹을.”

알렉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오토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대륙의 서쪽 지방을 장악한 신흥강국 이오타의 국왕일뿐더러, 잘츠부르크 가문의 사위이며, 또한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 영웅이었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과거 대륙을 통일했던 무적황제의 진전을 이었다고도 했고, 용의 자식이란 소문마저 있을 지경이었다.

곧 아라드 제국에서 백작의 작위를 내릴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런 오토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에, 1시간은 너무나도 촉박했다.

최소 1주일.

시간만 여유 있게 주어진다면 한 달 이상 공들여 환영행사를 열어도 부족할 판이 아니던가?

“우선 가장 좋은 차와 와인을 준비하라! 또한 접대에 있어 한 치의 실수도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는가!”

“예, 전하.”

알렉스 국왕은 그렇게 명령하고는, 자신 역시 몸단장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토와 같은 인물을 맞이하는데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이라…… 그와 같은 인물이 어찌하여 본국에 찾아왔단 말인가.’

알렉스 국왕의 속내는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정식으로 회담을 요청했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을 터였다.

젊은 국왕인 알렉스는 오토를 깊이 존경했다.

오토는 불과 몇 년 만에 변방의 코딱지만 한 영지를 신흥강국으로 일구어놓은 창업군주였으며,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배한 적 없는 불패의 지휘관이었다.

게다가 대륙 제일의 미남인데다가, 검술과 마법에도 능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른다는 전쟁의 여신 엘리제의 약혼자이기도 했다.

모든 젊은 군주들이 롤모델로 삼고 동경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오토의 방문이 마칸 왕국의 부흥시킬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알렉스 국왕의 가슴이 뛰었다.

“저, 전하!”

바로 그때.

“오토 국왕 일행이 도착하였사옵니다!”

“뭐라? 벌써?”

“그, 그런데…….”

“……?”

“어서 나가 보시옵소서!”

알렉스 국왕은 기사들의 다급한 외침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왕궁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기사들이 안내하는 방향은 그곳이 아니었다.

“지금 어딜 가는 것인가!”

“저, 전하.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은 정문을 통해 방문하지 않았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길 보시옵소서.”

기사단장이 하늘을 가리켰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저 멀리서 와이번들의 사나운 포효성이 들려왔다.

“서, 설마.”

알렉스 국왕은 너무나도 놀라 흠칫 뒷걸음질 쳤다.

오토가 용기사단을 이끌고 마칸 왕국의 왕궁 한복판으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쿵, 쿠웅!

펄럭!

와이번들이 거칠게 왕궁 정원에 착지했다.

덕분에 정원은 쑥대밭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수십여 마리의 와이번들이 정원을 깔아뭉개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대단한 결례였다.

미리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와이번들로 정원을, 그것도 왕궁 한복판을 깔아뭉개 버린 건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제국이 속국을 상대할 때도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가, 감히!’

알렉스 국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펄럭!

와이번에서 내린 오토가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당당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오토의 주변에는 이오타 왕국의 마검사들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은연중에 무력을 과시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마칸 왕국의 국왕 알렉스라고 합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알렉스와 마칸 왕국의 대소신료들이 인내심을 발휘하며 오토에게 예를 취했다.

맘 같아선 당장에 쳐 죽이고 싶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인내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렉스 국왕?”

“예, 전하.”

“들어가지.”

오토는 그렇게 말하고는, 알렉스 국왕을 지나쳐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저, 저런!”

“허어!”

“이 무슨!”

마칸 왕국의 대소신료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움찔!

오죽 했으면 기사단장부터 기사단의 말단 기사까지 검에 손을 올려놓고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을까.

“그만.”

알렉스 국왕이 손을 들어 대소신료들과 기사들을 제지했다.

“오토 전하를 모신다.”

알렉스 국왕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오토의 행동은 아라드 제국의 황제쯤 되어야 가능할 법한 무례.

그마저도 외교적으로는 국제정세에 크게 악영향을 미칠 폭군의 행보에 가까웠고, 지탄받는 걸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 국왕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지금은 분노할 때가 아니다. 참아야 한다.’

지금 마칸 왕국은 아가르타와 동맹을 맺고 이런저런 공작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럴 때 괜히 오토와 분쟁이 생겨봤자 좋을 건 없었다.

복수할 땐 복수하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알렉스 국왕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벅저벅!

어전으로 들어선 오토가 옥좌에 살포시 몸을 뉘고, 카미유가 그 곁에 자리를 잡았을 때.

“감히……!!!”

알렉스 국왕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오토를 향해 사자후를 토해내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옥좌를 차지하는 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채애앵!

마칸 왕국의 근위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 오토를 옥좌에서 끌어내린 뒤 단칼에 베어 버리고도 남을 만한 기세였다.

그러나 오토 일행은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여전히 오만하고, 오연하고, 또한 여유로운 태도로 분노한 이들을 대할 뿐.

“당장…… 내려오지 못할까.”

알렉스 국왕이 씹어내듯 오토에게 으르렁거렸다.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할 수 없다.”

“무례라…… 큭.”

오토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피식 코웃음 쳤다.

“네놈 같은 쓰레기가 무례를 논할 자격이 있나?”

“뭐, 뭐라?”

“괴물들로 하여금 주변국들을 공격하게 하고, 그 틈을 타 영토를 확장 중인 주제에?”

그 순간.

“……!”

“……!”

“……!”

알렉스 국왕을 포함한 마칸 왕국 수뇌부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마칸 왕국과 아가르타의 동맹은 극비 중의 극비.

마칸 왕국 내에서도 알렉스 국왕을 포함한 극소구의 인물들만이 관여하고, 진행하고 있는 건이었다.

그런데 오토의 입에서 그러한 사실이 흘러나오니, 마칸 왕국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뭣들 하느냐!”

누군가 소리쳤다.

“당장 저들을…….”

“닥치시오!”

알렉스 국왕이 황급히 그에게 소리쳤다.

여기서 더 말실수를 했다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알렉스 국왕 역시 오토를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그 주둥이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오토가 다 알고 찾아온 이상 살인멸구가 가능할 리 없었다.

오토가 알고 있다면, 이오타 왕국의 실세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검술의 명가 잘츠부르크 가문까지도.

“저, 전하.”

알렉스 국왕은 언제 분노했느냐는 듯 저자세로 오토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방금 하신 말씀은…….”

“한 번 더 말해 줘? 아가르타와의 동맹을?”

“몇몇 이들만 남고, 모두 물러가라.”

그런 오토의 대답에 알렉스 국왕은 황급히 대소신료들을 물렸다.

이 건은 마칸 왕국 내에서도 비밀에 붙여야 하는 사안이니만큼, 관련되지 않은 신하들이 들으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내가 입을 열면, 주변국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그, 그건.”

알렉스 국왕은 오토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했다.

분노한 주변국들이 한꺼번에 쳐들어올 테고, 그럼 마칸 왕국은 끝장이었다.

나라가 폭삭 주저앉다 못해 역사에서 사라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알렉스 국왕을 포함한 왕가가 몰살당하리라는 것 또한 기정사실이었다.

즉, 오토가 입을 뻥긋 하는 순간 마칸 왕국 전체가 산산조각 날 게 분명했던 것이다.

“아. 목이 좀 마른데.”

오토가 셔츠를 풀어헤치며 갈증이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알렉스 국왕이 황급히 오토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그런 알렉스 국왕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아주 공손하게, 심지어 허리까지 90도로 숙인 채 오토의 잔에 와인을 따라 주었던 것이다.

‘슬슬 탈수기가 돌아가는군.’

카미유는 그런 알렉스 국왕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토에게 약점을 잡혔다?

나 죽여줍쇼. 하고 배를 발라당 까뒤집고 절대복종하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실시간으로 폭삭 늙을 정도로 스트레스야 받겠지만, 일방적으로 탈탈 털리는 것보다는 납작 엎드려서 기는 게 상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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