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87화 (388/401)

#제387화

아라드 제국.

대륙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최강대국.

그런 아라드 제국의 분열은 그 어떤 징조도 없이, 로웨나의 거병(擧兵)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지난 수년 동안 조용히 웅크린 채 자신의 세력을 키워 왔던 로웨나군의 군세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차기 황위 계승 서열 1위라는 혈통상의 우위로 인해 그녀를 지지하는 지방귀족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녀가 지배하는 대륙의 서쪽 또한 비옥한 곡창지대가 대부분이었다.

막강한 경제력과 여러 세력들을 아우르는 군대이니만큼,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로웨나는 자기 사람―귀족에 한해서지만―들에게는 한없이 자비롭고 관대한 인물이었다.

피에 대한 갈망 때문에 미쳐 날뛰는 것만 빼면, 제국의 황제가 되기에 충분한 통솔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로웨나가 군대를 일으켜 동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자 아라드 제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황제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분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듯 갑자기 내전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북부에 자리한 연합군의 팽창으로 인해 어느 정도 긴장감이 돌았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라드 제국이 연합군을 경계했던 것이지, 내전을 염려했던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웨나의 갑작스러운 거병은 모두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로웨나에게는 명백한 근거가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근거란 오토의 책략이었다.

‘누님. 제가 신호를 드리면, 즉시 거병하시고 테르테미안 대공의 영토를 공격하세요.’

‘갑자기?’

‘파라곤 대공이 누님을 지원할 겁니다.’

‘정말……?’

‘물론 파라곤 대공은 제가 누님의 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

‘누님이 파라곤 대공과 같이 테르테미안 대공을 공격하는 동안 저는 적당한 시기에 수도를 공격해서 황제 폐하를 체포하겠습니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동생만 믿어.’

‘물론입니다.’

로웨나의 거병은 오직 오토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오토에 대한 집착과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토의 책략과 연합군이라는 초거대 세력이 건재했기에, 이 거병은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오토가 연합군을 움직여 밀어주기만 한다면, 로웨나가 황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 * *

“으음!”

한편, 테르테미안은 로웨나의 거병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놀라기는커녕,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로웨나 대공과 파라곤 대공을 움직여 대공 전하를 공격하게끔 하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오토 국왕?’

‘그러는 사이 제가 수도를 장악하고, 황제 폐하의 신병을 확보하겠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그때까지만 버티시면 됩니다. 그럼 수도를 장악하자마자 즉시 남하해 로웨나 대공의 후방을 치겠습니다.’

‘……!’

‘그럼 남은 건 오직 파라곤 대공뿐. 대공 전하와 제가 힘을 합친다면, 파라곤 대공으로서는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테르테미안은 미리 오토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사태를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만약 그대로만 된다면, 황위에 오르는 것은 테르테미안 자신이 될 터.

물론 오토가 그를 배신하고 제국을 차지할 게 염려되긴 했다.

그러나 테르테미안에게는 오토와 손잡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우선 오토 드 스쿠데리아의 힘을 통해 누님과 파라곤부터 제거한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다.’

적당한 때가 되면, 테르테미안은 오토와 갈라설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오토에게 아라드 제국을 통째로 빼앗길 수도 있었기에, 의리를 끝까지 지킬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전군에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하고 방어태세를 갖춰라. 동맹 세력에 빠르게 연락해 지원군을 요청하라.”

“예! 대공 전하!”

그렇게 테르테미안은 로웨나군의 공세에 맞서 한껏 웅크린 채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계획상 오토가 연합군을 이끌고 수도를 점령한 뒤 남하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 * *

파라곤 역시 급변하는 사태에 발맞춰 즉시 군대를 일으켰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나를 확실히 밀어주고 있구나.’

파라곤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오토가 자신의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전포고도 없이 군대를 일으키고 무작정 테르테미안의 영토로 쳐들어간 로웨나.

그리고 그에 맞서 방어태세에 돌입한 테르테미안.

그 두 사람에 비해서 파라곤에게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로웨나 대공으로 하여금 테르테미안 대공을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되겠소?’

‘대공 전하께서는 느긋하게 움직이셔도 됩니다.’

‘음?’

‘로웨나 대공과 테르테미안 대공이 싸우는 사이 대공 전하께서는 주변 세력들을 규합해 동맹군을 결성하십시오.’

‘……!’

‘그런 뒤 로웨나 대공과 함께 테르테미안 대공의 진영을 무너뜨리시면 됩니다.’

‘그럼 그다음은…….’

‘제가 수도를 점령하자마자 연합군을 이끌고 로웨나 대공을 공격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대공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실 것입니다.’

‘알겠소. 내 그리 하리다.’

‘여유 있게 움직이시되, 지나치게 느긋하시면 안 됩니다. 싸움이 길어지면 내전이 끝난 뒤 제국을 통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걱정 마시오. 세월아 네월아 하지는 않을 테니.’

파라곤은 오토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자신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하고, 동맹을 맺은 세력의 군주들에게 지원군을 요청하라.”

“예, 대공 전하.”

그렇게 파라곤은 자신의 영토인 아라드 제국의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세력들을 끌어 모아 연합군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급하게 전쟁을 일으킨 로웨나와 테르테미안과는 다르게, 충분히 연합군을 결성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형님이 무너지고 나면 남은 건 오직 누님뿐이다. 최대한 형님의 세력과 누님의 세력을 흡수해서 오토 드 스쿠데리아를 찍어 눌러야 한다.’

파라곤은 그런 생각으로 내전에 대비했다.

누구와 손을 잡든 결국 그의 목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가 되어 절대왕정을 이룩하는 것이었기에, 오토와 같은 인물은 위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 * *

한편, 황제는 오히려 느긋하기만 했다.

“허어!”

황제는 로웨나의 갑작스러운 거병 소식에 허탈해하면서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내 그리 일렀거늘! 어찌 황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형제간에 골육상잔의 비극을 일으킨단 말인가!”

황제의 탄식에는 깊은 회한이 서려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여태 형제들을 놔둔 건 황제가 단순히 멍청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거한 선황(先皇)의 제위 당시 숙청이 있었고, 그 때문에 모든 황족들이 몰살당한 뒤였다.

황가 자체가 워낙에 손이 귀한 집안인지라, 형제들마저 숙청해 버리면 자칫 잘못했다간 대가 끊길 수도 있었다.

현 황제에게 오랜 세월 후사가 없는 이유 또한 손이 워낙에 귀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황제는 차마 형제들을 숙청하지 못하고, 사이좋게 지내길 바랐다.

하지만 이제 그런 꿈만 같은 통치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웨나가 군대를 일으켜 테르테미안의 영토를 향해 진격한 이상, 황제로서도 더는 형제들에 대한 자비를 베풀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어떤 허락도 없이 독단적으로 제국군을 움직였다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아라드 제국군을 사병(私兵)화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감히…… 감히……!!!”

황제가 분노해 소리쳤다.

“짐의 아량을 이렇듯 원수로 갚다니!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아무리 짐의 누이라 한들 살려두지 않으리라!”

“마, 망극하옵니다!”

“경들은 들어라!”

황제가 그야말로 서릿발 같은, 실로 오래간만에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지금 즉시 역적 로웨나에게 모든 군권을 내려놓고 항복할 것을 명령하라!”

“예, 폐하!”

“만약 짐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로웨나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에 가담한 모두를 말살시키리라!”

제국의 대소신료들은 황제의 살벌한 선언에 흠칫 몸을 떨었다.

비록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황제라고는 하나, 그 또한 황가의 피가 흐르는 자.

그 핏줄이 어디 가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황제는 전략 병기인 트리톤을 무려 5,000기나 보유하고 있었다.

황제의 통제에 따르는 아라드 제국군만 해도 그 규모나 전투력이 무시무시한데, 거기에 더해 트리톤 5,000기까지 더해진다면 그 군사력은 단연코 대륙 최강이었다.

로웨나, 테르테미안, 파라곤이 동시에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온다고 해도 황제를 상대로는 감히 대적이 불가능할 정도의 전력이었던 것이다.

* * *

아라드 내전이 서막이 올랐지만, 정작 그 흑막인 오토는 마칸 왕국에서 작전을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한 세계 최강대국에 내전이 벌어졌지만, 오토의 마음은 전혀 다급하지 않았다.

왜?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었고, 그것을 조금 빨리 앞당긴 것에 불과했으니까.

오히려 앞당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만약 팽팽한 긴장감이 오래 지속되었다면, 로웨나·테르테미안·파라곤이 주변의 군주들을 규합해서 더욱 큰 세력을 일굴 시간적 여유를 벌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듯 기습적으로 내전을 일으켰으니, 오히려 전쟁의 규모가 크게 축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규모가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없을 테지만, 지금 당장은 세계대전이 아닌 그저 황자들 간에 벌어진 권력다툼이자 내전에 불과한 것.

그렇다는 말은, 이 내전을 빨리 종식시키면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는단 뜻이었다.

“이걸 가지고 가서 카심 경에게 건네주세요.”

“예, 전하.”

오토는 마검사를 시켜 대지의 군화를 카심에게 가져다줄 것을 명령했다.

오토와 카미유가 자리를 비운 이상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카심이 맡게 될 터.

오토는 카심이 대지의 군화를 사용해 연합군을 이끌고 빠르게 움직여 주길 바랐던 것이다.

‘잘츠부르크 가문은 나서지 않을 거다. 입장이 곤란하니까.’

지안카를로가 아무리 역성혁명을 허락했다고 한들, 반란에 가담할 리 없었다.

오토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잘츠부르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아라드 제국에 충성하며 대륙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해 온 가문.

그런 잘츠부르크 가문의 명예를 역적의 오명으로 더럽힐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 가문은 철저한 방관자가 되어야 했다.

‘아라드 제국을 찬탈하는 건 신흥강국의 국왕이 할 일이지, 오랜 세월 충성해 온 잘츠부르크 가문이 아냐.’

물론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명예는 지켜줘야만 하는 것.

어차피 이번 일에 잘츠부르크 가문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이미 이오타 왕국과 그 외 연합군의 힘만으로도 아라드 제국의 수도를 함락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으니까.

“이 서신들을 지금 즉시 보내세요.”

“예, 전하.”

오토는 자신의 뜻과 계획이 담긴 서신을 관련 인물들에게 전달하도록 명령하고는, 알렉스 국왕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헉! 헉헉헉!”

알렉스 국왕이 헐레벌떡 달려와 오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오토가 이곳 마칸 왕국에 머무는 동안 알렉스 국왕은 5분, 아니 1분 대기조였다.

화장실에 있다가도 오토가 부르면 볼일을 중간에서 끊으면서까지 달려와야만 했다.

늦으면 늦었다는 이유로 거의 몇 시간 동안이나 갈굼을 받아야 했는데, 그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오토는 사람을 갈굴 때면 했던 소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 단순하지만 무시무시한 갈굼에 당하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지금부터 잘 들어.”

“경청하겠습니다.”

알렉스 국왕이 양피지에 깃펜까지 꺼내 들고 오토의 말을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1주일 후에 여기 이곳으로 아가르타들을 보내.”

“거긴…….”

알렉스 국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토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대륙 남부에 자리한 신성 아즈란 성국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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