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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92화 (393/401)

#제392화

공간 도약을 이용해 아라드 제국의 수도 코린트로 이동한 오토 일행은, 즉시 연합군에 합류했다.

때마침 연합군의 총공격이 이루어지려는 시점이었기에, 오토의 합류는 매우 시기적절했다.

아무리 카심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연합군의 수장은 누가 뭐래도 오토.

연합군을 이끌고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한 불패의 지휘관이 직접 지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오오!”

“오토 전하께서 오셨다!”

“크으! 드디어 오셨군!”

오토는 아군 진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다.

오토에 대한 연합군 장병들의 신뢰는 단순히 믿음을 넘어 신앙에 가까웠다.

그것은 그간 오토가 보여 준 군사적 능력과, 그 업적이 워낙에 뛰어났기에 절대적인 믿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생했어요, 카심 경.”

“아닙니다.”

오토를 대신해 총사령관 직책을 맡고 있던 카심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전하의 군대를 이끌고 진격해 왔을 뿐입니다.”

“에이, 그래도 고생하셨죠. 여기까지 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하하하.”

“황제는?”

“첩보에 따르면 아직 황궁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수도를 어떻게든 사수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멍청한 판단이긴 한데,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네요. 후후후.”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가 수도를 버리고 내빼면 연합군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황제만 확보한다면 모든 명분을 틀어쥘 수 있는 데다가 혈통을 제어하기도 쉬우니, 연합군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어디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겠지만.”

“역시 전하이십니다.”

카심은 진심으로 오토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토의 말마따나, 지금 황제는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도망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수도를 버리고 달아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당장 아라드 제국이 4등분으로 나뉘어 내전에 들어갔는데, 도대체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지금 황제는 자신의 형제들, 로웨나는 물론 테르테미안과 파라곤조차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드넓은 대제국 어디에도 황제를 위한 곳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도망칠 곳이 있다고 해도 오토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오토는 황궁에서부터 수도 코린트를 빠져나가는 13개의 비밀통로를 모두 알고 있었고, 그 길목에 미리 기사들을 배치시켜 놓았다.

게다가 황제의 곁에는 잘츠부르크 가문과 연줄이 있는 기사들이 다수 첩자로 활동하고 있을뿐더러, 무시무시한 암살자인 핫산이 24시간 감시 중이기도 했다.

사실상 황제가 수도 코린트를 무사히 빠져나갈 확률은 0퍼센트에 수렴했던 것이다.

“우리 군은 어떻죠?”

“예……?”

“장병들이 이번 전쟁에는 의욕적일 것 같지 않아서 물어본 겁니다.”

“아아!”

카심은 그제야 오토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오토의 지적은 정확했다.

현재 연합군에게는 명분이 없었다.

또한, 싸워야 할 동기부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어째서 아라드 제국을 침공했으며, 또한 수도 코린트를 공격하는 걸 납득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기껏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해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또다시 전쟁이라니 연합군 장병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만도 했다.

그리고 그건 군심(軍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명분 없는 전쟁.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전쟁.

그런 전쟁에 나선 장병들이 의욕적으로 잘 싸울 리 없었던 것이다.

‘역시 전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헤아리고 계시는구나.’

카심은 다시 한번 오토의 지혜로움에 크게 감탄하면서, 귀를 쫑긋거리며 경청할 준비를 했다.

그 역시 이제는 어엿한 한 사람의 군주.

카심은 툰드리아의 왕으로서, 북부제국의 서부 총독까지 겸할 예정이었다.

즉, 오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은 명언이자 가르침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제 공격 예정이죠?”

“내일 아침입니다.”

“알겠습니다.”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연설을 좀 해야겠네요.”

“예……?”

“우리 장병들에게 동기부여를 좀 해 줘야죠.”

“아……!”

“그럼, 내일 아침까지 좀 쉬죠. 저도 좀 피곤하네요.”

“예, 전하. 푹 쉬소서.”

오토는 카심을 뒤로하고 자신의 막사, 그러니까 총사령관의 막사에서 휴식을 취했다.

“……피곤하네.”

오토는 야전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사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번 모험은 오토에게 있어 큰 부담이었다.

이제 갓 후유증에서 회복하려던 참인데 샴발라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더니 피로감이 가히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오토는 샤워를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한 뒤 군복을 입었다.

또한, 멋진 코트까지 걸쳤다.

아라드 제국의 수도 코린트를 함락시키기에 앞서 장병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연설할 예정이었으므로, 연합군 총사령관다운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거울을 보며 머리칼을 쓸어 넘기던 도중.

스륵, 스르륵.

머리칼을 쓸어 넘기던 오토의 손이 마치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얼마 안 남은 건가.”

오토가 씁쓸하다는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혼잣말했다.

카미유에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오토는 전부터 자신의 몸이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졌다 선명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점점 심해진다.’

오토는 처음으로 이 현상을 인지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 증상은 마신 라미레스를 쓰러뜨리고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

그렇다는 말은, 이 증상이야말로 오토가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세계의 정해진 역사를 너무나도 많이 바꿔 버린 것.

그리고 전 우주의 비밀이 담긴 허공법계에 자주 접속한 것.

섭리를 벗어난 행동을 너무나도 많이 한 탓에 일종의 저주 같은 걸 받은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몸이 희미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며, 존재 자체가 이 세계에서 사라질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날 리 없었다.

“하아…….”

오토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이 세계에서 사라질 터.

그런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

오토 드 스쿠데리아에 빙의된 후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던가?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고, 나중에 가서는 이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싸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소중한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사랑하는 약혼녀까지 생겼다.

오토의 소원은 아라드 제국의 내전을 막고, 세계대전의 불씨를 완전히 꺼뜨린 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평화로운 세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러나 이렇듯 존재가 사라지는 저주를 받았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넘어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오토의 숨이 가빠졌다.

기껏 이룩해 놓은 평화를 누르지도 못한 채 소중한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끔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또한, 두려웠다.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본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까?

아니면 존재 자체가 영원히 사라져서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릴까?

미지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 올 때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 지경이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

실마리를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허공법계에 접속을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선을 넘었는지 더는 접속이 되지 않았다.

이 증상을 해결할 마지막 동아줄마저 사라진 것이다.

결국, 오토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남은 시간이 조금 더 길기만을, 1분 1초라도 소중한 사람들 곁에 더 머물 수 있기를, 사라질 땐 사라지더라도 이 세계의 평화를 완전히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 세계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물해 주고 떠난다는 게 오토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물론 모든 대업을 완수한 뒤에도 시간이 남는다면, 마지막 그 순간까지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하아, 하아, 하아…….”

오토의 호흡은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전하?”

때마침 카미유가 오토의 막사를 들렀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아, 별거 아냐. 후유증이 도져서 그래. 죽어라 뛰고 그랬더니 좀 힘드네.”

“차라리 카심 경에게 맡기고 좀 쉬시는 건…….”

“그럴 정도까진 아니고.”

오토가 애써 씨익 웃어 보였다.

‘들켜선 안 돼.’

오토는 카미유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오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연히 떠날 생각이었다.

처음 오토 드 스쿠데리아에 빙의됐을 때처럼…….

“다들 기다리고 있나?”

“예, 전하.”

“가자.”

오토가 당당하고 힘찬 발걸음을 연기하며 막사를 나섰다.

* * *

막사를 나선 오토는 연합군 전 장병들을 모아 놓고 연설에 나섰다.

아라드 제국의 수도 코린트 함락에 앞서 명분을 세우고, 장병들에게 동기부여도 해 주기 위해서였다.

“전 병력은 들어라.”

오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연합군의 검이 아라드 제국으로 향한 이유는…….”

오토는 연합군 장병들에게 아라드 제국, 정확히는 황제가 어떠한 마음을 먹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또한, 황제의 무능으로 인해 제국의 내전이 발생했으며 그 때문에 세계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게 밝혔다.

지금 아라드 제국의 내전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세계대전이 벌어져 북부제국의 침공을 저지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그게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다.”

오토가 눈을 빛내며 힘주어 말했다.

“우리 군은 대륙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며, 북부제국과의 전쟁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전우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오토가 그렇게 말한 뒤 전 잔병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정 전쟁이 싫은 자는 빠져도 좋다. 그 어떤 조건이나 불이익 없이 집으로 보내줄 것이다. 다만, 목숨 바쳐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자. 북부제국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전우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자는 남아라. 남아서, 싸워라. 내가 너희들을 승리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자 연합군 장병들이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한 마디씩 입을 열었다.

“싸우겠습니다!”

“저도 남아서 싸울 겁니다!”

“총사령관 각하를 믿습니다!”

“당연히 싸울 것입니다!”

잔잔하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올랐다.

오토의 연설은 효과만점이었다.

명분을 세웠고, 동기를 부여했다.

그랬더니 연합군 장병들의 투지가 다시 활활 불타올랐다.

마치 저 북부제국을 상대로 대륙을 지켜낼 때처럼 말이다.

“좋다!”

오토가 힘껏 소리쳤다.

“가자! 나와 함께 가서 싸우자! 오늘 우린 대제국 아라드의 수도 코린트를 함락시킬 것이니!”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연합군 장병들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그 함성만으로도 아라드 제국의 수도 코린트의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펄럭!

오토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단상에서 내려갔다.

“전군! 앞으로― 가!!!”

척! 척! 척! 척!

이윽고 연합군 장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제국 아라드의 수도 코린트를 향해서.

* * *

연합군이 코린트를 함락시키는 건 불과 한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리 침투해서 전투를 치르고 있던 5,000기의 트리톤들이 방어선으로 집중되고, 뒤이어 연합군의 총공세가 이루어지자 성벽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

대륙 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의 수도가 함락당한 것이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함락이었다.

척! 척! 척! 척!

연합군은 코린트를 함락시키자마자 곧장 황궁으로 진격했다.

몇 시간의 공성전 끝에 황궁마저도 점령한 연합군은, 어전마저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황제는 끝끝내 수도 코린트 사수를 고집하다가, 상황의 여의치 않자 비밀통로를 이용해 탈출을 감행하던 중 연합군 소속 기사들에게 체포되어 어전으로 압송되었다.

그렇게 황제는 자신이 앉던 옥좌가 아닌 어전 정중앙에 강제로 무릎 꿇려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총사령관 각하께서 드십니다.”

이윽고 오토가 어전으로 들어섰다.

펄럭!

저벅저벅!

연합군의 총사령관답게, 오토는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황제의 앞에 서 그를 오연히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코딱지만 한 시골 영지의 영주에 불과하던 오토가 어느덧 세계 최강대국인 아라드 제국의 황제를 내려다보는 위치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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