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레벨 악덕영주가 되었다-397화 (398/401)

#제397화

“전하를 뵙습니다.”

암살자 핫산은 실로 오래간만에 오토를 알현했다.

그간 황제를 24시간 호위하느라 오토와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부름을 받고 한달음에 전장으로 달려온 그였다.

“그간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핫산이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 저를 믿고 맡겨주신 임무인데, 고생이랄 것까지 있겠습니까. 하하하.”

핫산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사실 황제를 호위―사실 감시에 가까웠지만―하는 임무는 매우 지루하고 지겨웠다.

거의 2년 가까이 황제의 곁을 지키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했던 걸 떠올리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황제의 곁에 있던 핫산의 임무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핫산이 황제를 몇 차례나 살려놓은 덕분에 대륙의 세력 구도가 연합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그만큼 오토가 핫산을 신뢰했단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핫산이 뿌듯해할 수밖에.

“근질근질했지?”

“예?”

“지루했을 거 아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지루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터.

“이제 안 지루하게 해 줄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호위무사 같은 게 아니잖아. 암살자지.”

“……!”

“그간 웅크리고 있느라 고생했어. 이제부터 바빠질 거야.”

“바빠질 거란 말씀은…….”

핫산의 표정에 희열이 떠올랐다.

오토의 말마따나, 그는 호위무사가 아닌 암살자.

임무만 주어진다면, 누구든 암살해낼 자신이 있었다.

전설의 교관 스푸너로부터 재능 개화의 기연을 얻은 뒤로, 핫산의 암살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향상된 상태.

물론 그간 황제의 곁에 있느라 실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지만…….

“임무를 줄게.”

오토가 핫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뭐든 맡겨만 주십시오.”

핫산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누구든 죽여 드리겠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의 지루한 임무 끝에 드디어 암살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왔으니, 핫산으로서는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대상은 특정하지 않을 테니까, 어디 마음껏 날뛰어 봐.”

“예……?”

“파라곤과 손잡은 세력의 군주들이라면 누구든 상관없어.”

“……!”

“가능한 다 죽여.”

오토의 명령은 냉혹했다.

예외 없이 다 죽이란 명령은 어지간해서는 내리지 않는 오토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은 이런 게 필요할 때지.’

오토는 공포로서 파라곤과 손잡은 세력의 군주들을 압박하고자 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파라곤과 손잡으면 언제든 사신(死神)이 방문할 수 있다는 공포를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대신 너무 무리하진 말고. 최고의 암살자를 잃고 싶진 않으니까.”

“하하하하…….”

“그리고 파라곤 곁에는 얼씬도 하지 마. 성공 확률도 지극히 낮을뿐더러, 그는 암살로 죽어서는 안 돼.”

“예……?”

“파라곤의 최후는 보란 듯 널리 알려야 돼.”

오토가 미소를 지었다.

“파라곤은 우리 연합군과의 대규모 전면전에서 전사하거나 체포당해야 돼. 암살로 죽으면 곤란해져. 파라곤이 죽는다 한들 구심점이 될 새로운 우두머리가 나타날 테니까.”

“아.”

“그러니까 파라곤만 빼고 나머지 군주들은 닥치는 대로 암살해도 돼. 필요한 지원은 뭐든 해줄게.”

“예, 전하.”

핫산이 오토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명령,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핫산은 오토에게 예를 갖춘 후 마검사들과 함께 와이번을 타고 동쪽으로 날아갔다.

“너무 위험한 임무 아닙니까?”

카미유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군주들을 암살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핫산은 가능해.”

오토가 단호히 말했다.

‘S급 군주가 아니라면 누구든 가능하지.’

게임 영지전쟁에서 핫산이란 암살자가 갖는 전략적 가치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여태 그 능력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핫산은 원한다면 어지간한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황천길로 보내버리는 게 가능한 죽음의 천사였다.

게임 영지전쟁을 플레이할 때도 적진에 핫산이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아군 주요 인물이 변사체로 발견될지 모를 정도로, 게이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지금껏 황제 호위 임무 때문에 핫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없었을 뿐.

“장담컨대, 파라곤에 협력한 군주들은 이제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될 거야. 후후후.”

오토가 적들이 느낄 공포를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카미유는 오토가 특유의 악마 같은 미소를 짓자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토가 저러한 미소를 지을 때면 적들이 어떠한 처지에 놓이는지 그간 수도 없이 보았기에 절로 동정심이 들었던 것이다.

* * *

파라곤의 세력은 다가오는 연합군의 진격에 맞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대규모 전면전을 준비했다.

지형적으로 유리한 여러 개의 전략적 요충지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트리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모든 대비책을 세웠다.

또한, 연합군이 진격해오는 순간 사방팔방에서 포위·섬멸할 수 있도록 병력을 넓게 펼쳐 놓기까지 했다.

그건 파라곤이 가진 큰 장점이자 유리한 점이었다.

워낙에 동맹이 많다 보니 병력을 넓게 펼쳐서 언제 어느 때고 연합군을 포위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오냐, 들어와라.”

파라곤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다가오고 있는 오토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제 발로 사지로 들어와 준다니, 지옥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마.”

파라곤은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연합군의 진격은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지나치게 정직하게 움직이는 탓에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온다면 사방팔방에서 포위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물론 트리톤이라는 전략병기를 무려 5,000대나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연합군의 이동 경로는 도저히 불패의 지휘관이 지휘하는 군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미련했다.

다소 행군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첫 번째 대규모 교전에서 연합군이 대패할 확률이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 잘난 트리톤을 믿고 있나 보군. 천하의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이렇게 정직한 전술을 구사하다니. 그 자만심이 네놈의 명줄을 옥죌 것이다.’

파라곤은 오토가 트리톤을 믿고 지나치게 자만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연합군이 다가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서 기이한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라?”

파라곤은 갑작스러운 보고에 제 귀를 의심했다.

“간밤에 셋이나 죽어?”

“예, 대공 전하.”

“그, 그게 말이나 되나?”

파라곤은 도저히 보고의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급히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고작 하룻밤 사이에 동맹국의 군주 세 명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셋 다 아침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연합군의 소행이 분명했다.

“이 무슨…… 허어.”

파라곤은 놀라기는 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전쟁을 치름에 있어 암살이란 흔하게 발생하는 공격의 일종.

당장 파라곤의 세력만 하더라도 연합군의 주요 인물을 암살하거나, 혹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상당수의 첩보원들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암살 대상이 특정 세력의 군주쯤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기본적으로, 군주들에 대한 호위는 그야말로 철통같기 마련.

요직에 앉은 고위급 인물을 암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군주쯤 되는 중요 인물이라면 그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지기 마련.

그런데 군주가 세 명이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연합군의 암살 능력이 가히 무시무시하단 증거였다.

“……역시 오토 드 스쿠데리아라는 건가. 거기까지 내다보고 암살자를 심어 두다니.”

파라곤은 오토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암살자들을 양성하고, 적대 세력에 심어 놓았다고 오해했다.

군주를 암살하는 것은 짧으면 몇 달, 길게는 몇 년 단위까지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전쟁이 터졌다고 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적대 세력의 군주를 암살해 버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어찌어찌 한두 명 정도는 성공한다 해도 하룻밤 사이에 세 명을 암살하려면 어마어마한 준비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했던 것이다.

“혹시 다른 암살자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군주들에게 연락해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하라.”

“예, 대공 전하.”

파라곤은 자신의 호위를 강화함은 물론 동맹 세력의 군주들에게도 암살에 주의할 것을 경고해 주었다.

‘하룻밤에 셋이면 어마어마한 성과인 건 사실이지만, 이미 사건이 알려진 이상 더는 큰 성과를 내기 힘들 것이다.’

파라곤은 동맹국의 군주들이 암살당한 게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음 날까지는.

* * *

다음 날 오후.

“좋군.”

파라곤은 아군 방어선을 시찰하고 흡족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워낙에 대비가 잘 되어 있어서, 그 무시무시한 전략병기인 트리톤들이 들이닥친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대, 대공 전하.”

그때.

“간밤에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옵니다!”

“사건……?”

“동맹국의 군주 두 명이 또다시 변사체로 발견되는…….”

“뭐, 뭐라?”

파라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제는 셋.

오늘은 둘.

고작 이틀 사이에 무려 다섯 명의 군주가 황천길로 가버린 것이다.

“그, 그게 사실인가! 정말 군주 둘이 죽었다고?”

“그러하옵니다.”

“범인은? 암살자는 잡혔는가?”

“그것이…….”

보고를 올리는 기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

“심지어 근위기사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의문이라 하옵니다.”

“그, 그게 말이 되나? 근위기사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암살을 당할 수 있다는 게?”

“자세한 것은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합니다.”

“이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틀 만에 무려 다섯 명의 군주가 죽었다?

전시가 아니었다면 전 대륙이 뒤집히고도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다음 날도.

연인 군주들이 죽어 나가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계속되었다.

적게는 한 명.

많게는 하룻밤에 무려 세 명의 군주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연쇄살인, 아니 연쇄암살사건이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암살이 아니라, 연합군의 수장 오토 드 스쿠데리아가 사신(死神)과 계약해 적대 세력의 군주들의 목숨을 거두어가고 있다고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연쇄암살사건이 계속되자 파라곤과 손을 잡았던 군주들이 하나둘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파라곤과 손잡았다는 이유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간담이 서늘해서 더는 동맹에 가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연합군에서 발표한 성명은, 파라곤과 손잡은 군주들에게 커다란 압박이 되었다.

성명의 내용은 지극히 간단명료했다.

파라곤과 손잡는 자, 사신의 방문을 받으리라.

- 연합군 총사령관 오토 드 스쿠데리아.

이는 파라곤과 손잡은 군주들에 대한 암살작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바였고, 앞으로도 그 연쇄암살이 계속될 것이라는 강한 압박이자 경고였다.

그런 연합군의 성명은 엄청나게 효과적이었다.

“대, 대공 전하. 동맹을 파기하겠단 내용의 외교 서신이 여러 통 도착했습니다.”

“뭐라?”

“연합군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이나, 더는 대공 전하와의 동맹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개 같은!!!”

파라곤은 불 같이 분노했다.

“이 겁쟁이들 같으니! 한 나라의 군주라는 것들이 그깟 암살이 두려워서 몸을 사려! 두고 보자! 내 황위에 오른다면 그 겁쟁이들부터 싹 쓸어버릴 것이야!”

물론 당사자들 입장에서, 겁쟁이란 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연합군이 무시무시한 암살 역량을 보여 준 이상 위협은 단순 협박이 아닌 현실이었다.

파라곤과 손잡은 군주들은 늘 죽음이 곁을 맴도는 듯한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괜히 이번 기회에 영토를 확장하고 국력을 키워 보려다가 개죽음을 당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파라곤은 불과 2주일 사이에 동맹의 절반을 잃는 어마어마한 전력 손실을 겪어야만 했다.

동맹국들이 군주가 암살당하거나, 혹은 암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동맹을 일방적으로 끊고 한 걸음 물러선 덕분에 전력의 반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심지어 제대로 된 대규모 전면전을 치른 것도 아니고, 고작 암살 위협 때문이라니.

비전투 손실로서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손실로서, 이 세계 전쟁사에 길이길이 기록될 역사적이며 치욕적인 피해였다.

그러는 사이.

척! 척! 척! 척!

쿵! 쿵! 쿵! 쿵!

거북이처럼 느리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움직일 것처럼 더딘 행군 속도를 보이던 연합군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웅크리고 있던 호랑이가 사냥감을 향해 힘껏 내달리듯, 연합군은 동맹 파기로 인해 파라곤 세력의 전력이 반토막 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빌어먹을.”

파라곤은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전력의 반이 날아갔다 한들, 여전히 전술적으로 유리한 건 파라곤의 세력이었다.

‘한 번만 잘 막아내면 된다. 내게는 여러 군주들의 성물이 있다. 권능의 힘을 이용해 한 번만 승리한다면, 동맹을 파기한 놈들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파라곤은 암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과 함께하기로 한 군주들과 함께 연합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 *

한편, 오토는 연합군을 이끌고 파라곤군의 방어선으로 향했다.

그런 오토의 지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오토는 연합군을 사지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파라곤과 그의 동맹들이 친 방어선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지리적으로도 유리했기에 전술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역에 자리했다.

그런 위험한 지역으로 병력을 끌고 들어간다는 것은, 정석적인 전략·전술에서는 금기시되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이제 갓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한 햇병아리 기사나 막 소위 계급장을 단 초임 장교조차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전략병기 트리톤을 앞세운다고 한들 아군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오토는 멈추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평소 오토의 지휘 스타일대로라면, 아군 피해는 최소화하면서도 대승을 일궈내는 변칙적이고 기상천외한 전술을 구사해야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우직하게 연합군을 이끌고 위험지역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작정하고 연합군을 전멸시키려는 사람처럼, 오토의 지휘는 우격다짐에 막무가내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합군 수뇌부들은 누구도 오토의 지휘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간 오토가 이룩한 그 위대하고도 믿지 못할 업적과, 승리의 역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오토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위험지역으로 병력을 이끌고 몰아넣을 리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것은 오토가 신뢰를 넘어 신앙의 대상과 같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믿음을 얻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오토를 마냥 믿고 따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티가 잘 나지 않아서 그렇지, 연합군 내에는 유능한 지휘관들이 많았다.

그런 만큼 오토에 대한 신뢰를 떠나 이성과 논리에 입각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지휘관들도 여럿 있었다.

다만 그들조차 감히 오토의 병력 운용에 대해서 토를 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상대는 차기 제국의 황제가 될 남자이자 여태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며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불패의 지휘관.

그런 인물의 전략·전술에 반론을 제기한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 없이는 꿈도 꾸지 못할 행동이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용기를 낸 햇병아리가 있었다.

“초, 총사령관 각하!”

어느 이름 모를 소위가 오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이제 갓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초임장교로 보였다.

아직 얼굴에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걸 보면.

소위는 감히 오토의 앞을 가로막은 것 때문인지 몸을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감히.”

“이게 무슨 무례인가.”

마검사들이 소위를 끌어내려 하던 그때.

“귀관은 누구지?”

오토가 소위의 이름을 물었다.

“소, 소위! 패! 튼!”

“패튼이라.”

오토가 그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듯 되뇌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패튼 소위. 감히 본 총사령관의 앞길을 가로막은 이유가 뭐냐. 나름 큰 용기를 냈을 텐데.”

“그, 그것이…… 그것이…….”

“귀관은 이오타 왕국의 장교다. 상대가 누가 됐든 장교로서의 품위와 위엄을 지켜라.”

“죄, 죄송합니다!”

“용기를 내서 나선 이유는.”

“위, 위험…….”

“……?”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패튼이 그 누구도 용기 내어 말하지 못했던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감히 오토의 전략·전술을 반박한 것이다.

“위험하기 때문이라. 왜 그렇게 생각하나.”

“초, 총사령관 각하의…… 국왕 전하의 전술은…….”

뒤이어 패튼의 입에서 오토의 병력 운용의 단점과 문제점들이 줄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 저런!”

“어딜 감히!”

몇몇 마검사들과 기사들은 그런 패튼의 발언에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오토는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웃음꽃을 피우며 기뻐했다.

“패튼 소위.”

“소, 소위 패! 튼!”

“귀관의 발언에는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예……?”

패튼 소위는 오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불패의 지휘관인 오토가 뻔히 사지임을 알면서도 적진에 아군 병력을 몰아놓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패튼 소위.”

“소위 패! 튼!”

“귀관의 의견대로, 지금 우리 군의 움직임은 비효율적일뿐더러 지극히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토가 눈을 빛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계략이나 변칙적인 전술 없이 오직 힘 대 힘으로 맞부딪히는 대규모 전면전을 통한 승리다. 왜 그런지 아나?”

“그,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보여 줘야 되기 때문이다.”

“……!”

“나는 이번 전투에서 우리 군의 군사력을 전 대륙에 증명하고자 한다. 전술적으로 불리한 지역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이룩할 것이다. 그러면 전 대륙이 알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이 그 어떤 세력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군대라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평화가 아닌 압도적으로 강한 힘.

그것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힘의 논리!

이번 전투를 통해 연합군의 군사력을 전 대륙에 각인시켜 그 어떤 세력도 감히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다는 게 오토의 계획이었다.

힘을 보여 줌으로써 전쟁을 억제, 세계대전의 불씨를 꺼 버리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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