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8화
“하, 하지만…….”
패튼은 오토의 의도를 이해했고, 또한 동의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큰 뜻이 담겨 있다고 한들, 이러한 병력 운용은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군사력을 보여 줌으로써 전쟁을 억제하고자 한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으나,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아군 피해를 감수한다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귀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토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패튼에게 말했다.
“내게는 우리 군을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대승으로 이끌 권능이 있다.”
“……!”
“패튼 소위,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마라. 귀관의 충성 어린 간언을 흘려들을 정도로 본 총사령관이 어리석지는 않으니.”
“아……!”
“어렵게 내 앞을 가로막은 그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지.”
오토가 살짝 목례로 패튼 소위를 칭찬했다.
확실히, 그는 칭찬받아 마땅한 젊은 인재였다.
누구도 감히 두려움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건만, 정작 말단 소위 주제에 감히 국왕이자 총사령관의 앞을 가로막다니.
‘미래가 밝다.’
오토는 내심 흡족했다.
이오타 왕국의 젊은 장교들 중에서 패튼 소위와 같은 인재가 나왔다는 게 너무나도 기뻤다.
‘그래, 내가 없어도 이오타는 잘 돌아갈 거다. 저런 인재들이 있으니.’
든든했다.
불패의 지휘관?
전지전능한 권능을 가진 군주?
물론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본래 세상이란 절대자 하나의 의지에 의해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
절대자에게 의존하는 세상이 과연 정상일까?
거대한 힘과 의지에 의해 좌지우지 제어되는 세상이 과연 옳을까?
오토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옳게 된 세상이란, 절대자가 없이도 평화롭게 잘 굴러가야 하는 것.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결국, 사람이었다.
검과 마법, 그리고 여러 권능은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일 뿐.
세상은 사람들의 의지가 서로 부딪히고, 섞이고,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다는 것을…….
“카미유.”
“예, 전하.”
오토가 카미유에게 속삭였다.
“저 자식, 쓸 만해 보이니까 눈여겨봐 뒀다가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데려다가 키워 봐.”
“예……?”
“ㅈ나 굴리라고.”
“……!”
“저런 인재는 자고로 굴려 줘야 재능이 만개하지. 쓸 만한 노예를 하나 얻었군. 후후후.”
“…….”
“살짝 얼빵한 것 같긴 해도 저 정도 용기에 강단 있고, 전략·전술적으로 통찰력 있는 놈이 흔하지는 않잖아. 후후후.”
카미유는 악덕상사, 아니 악덕국왕 같은 소리나 지껄이는 오토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오토는 정말이지 악덕국왕이었다.
가만 보면, 어떻게 하면 아랫사람들을 효율적으로 빡세게 굴릴지 온종일 고민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번 전투에서 전사하는 게 나을지도.’
카미유는 속으로 패튼 소위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한번 오토에게 찍…… 이 아니라.
눈에 든 이상 앞으로 평탄(?)한 삶을 살기는 글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악덕국왕은 쓸만해 보이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는 하지만, 그만큼 지독하게 굴려서 본전(?)을 뽑아내는 데 도가 튼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 * *
사소한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연합군은 이내 곧 다시 행군에 나섰다.
척! 척! 척! 척!
쿵! 쿵! 쿵! 쿵!
그렇게 거침없이 나아가는 연합군.
“오냐, 오너라.”
파라곤은 저 멀리 다가오는 연합군의 대규모 병력을 바라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연합군이 이곳 방어선에 가까이 접근하는 그 순간 지옥이 펼쳐지리라.
파라곤과 동맹국들은 연합군이 위험지역으로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진격해 오는 연합군은 얼마 가지 않아 파라곤과 그의 동맹국들이 파 놓은 함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들어온다면…….
쿵쾅쿵쾅쿵쾅!!!
두두두두두두!!!
연합군의 트리톤들과 기병들이 방어선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 그때.
‘지금!’
파라곤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신호탄, 신호탄을 쏘아 올려라!”
“예! 대공 전하!”
파라곤의 진영 안에서 수십 여 개의 신호탄이 솟구쳐 올라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윽고 넓게 포진해 있던 동맹국들의 군대가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며 연합군의 전, 후, 좌, 우를 포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으!!!
동맹국들의 군대 곳곳에서 상서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권능의 발현이었다.
파라곤은 물론 그와 손잡은 동맹국들의 군주들이 각자의 성물을 이용해 권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그러시겠지.”
오토는 연합군이 순식간에 포위된 것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위?
예상했다.
여러 군주들이 각자 가진 성물의 힘을 이용해 대항할 것도 오토의 계산 아래 있었다.
그렇기에 오토는 절체절명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평온하게 다가올 적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우우우웅!
운석들이 연합군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쩍, 저어어억!
난데없이 거대한 장벽이 솟아나 연합군의 진영을 흐트러뜨려 놓았다.
스륵, 스르륵!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군대가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으으으으으으으!
노란색 독가스가 밀려왔다.
펑! 펑펑! 펑!
거대한 공성포탑도 불을 뿜었다.
화르르르르르르!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라 연합군을 덮쳐 왔다.
그 외에도 온갖 종류의 권능들이 발현되며, 연합군을 압박했다.
“……!”
“……!”
“……!”
연합군 장병들은 그런 적들의 공격에 크게 당황했다.
단일 전투에서 이렇듯 수십여 가지의 권능들이 한꺼번에 발현된 적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요하지 마라.”
오토의 음성이 연합군 장병들을 아울렀다.
“적들의 공격은 우리 군에 그 어떠한 위해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나를 믿어라. 내가 우리 군을 보호할 것이다.”
그런 오토의 음성에 연합군 장병들의 두려움이 사그라졌다.
오토의 말은 절대적인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마법과도 같아서, 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왜?
그렇게 될 테니까.
그 무엇이든 오토가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미 수차례 증명되었는데, 불신이 끼어들 틈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름답네.”
오토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운석들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살면서 떨어지는 운석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하지만 마냥 운석 낙하의 아름다운을 감상하기에는 그 뒤에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끔찍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스윽.
오토가 품속에서 아라드 제국 황제의 보관을 꺼내 머리 위에 썼다.
스으으으으으!
그런 군림의 보관에는 네 가지의 보석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색 사파이어인 태풍의 핵.
붉은 루비인 시산혈해.
에메랄드인 천지개벽.
그리고 보라색 자수정인 강철심장.
그 네 개의 보석으로 이루어진 성물들이 밝게 빛남과 동시에 군림의 보관 역시도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초월 등급의 성물이 완성되었다.
절대군림.
모든 성물들에 대한 지배력과 통제력을 행사하는, 이 세상 모든 권능 위에 군림하는 진정한 전능의 힘이 비로소 오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절대군림을 가진 오토의 모습은, 마치 태양을 머리 위에 쓴 신처럼 보였다.
누구도 오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전능의 힘을 손에 쥔 오토는 그 자체로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었기에, 인간의 눈으로는 쳐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성물들이여. 형태를 이룬 고대의 힘이여.”
오토가 일대에 자리한 모든 성물들에게 ‘명령’ 했다.
스으으으으으!
스으으으으으!
스으으으으으!
그러자 각 세력의 군주들이 지니고 있던 성물들이 오토의 부름에 응답했다.
마치 오토를 떠받드는 것처럼.
“내가 명하노니, 나의 적들을 징벌함으로써 충성을 보여라.”
그런 오토의 명령에 기적이 일어났다.
쾅! 쾅! 쾅쾅쾅! 쾅쾅! 쾅쾅쾅! 쾅!
떨어져 내리던 운석들이 방향을 비틀어 적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퍼엉! 퍼엉!
연합군 진영을 향해 다가오던 공성포탑이 뒤로 되돌아가 파라곤의 방어선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쩍, 쩌어어억!
돌로 이루어진 장벽들이 연합군을 공격하던 각 세력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시뻘건 화염이 돌연 방향을 바꾸더니, 파라곤의 장병들을 향해 지옥의 열기를 내뿜었다.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독가스 역시 연합군이 아닌 적대 세력을 뒤덮으며 대량살상을 일으켰다.
그렇게 연합군을 위협하던 온갖 종류의 기이한 현상들, 즉각 세력의 군주들이 지니고 있던 성물의 권능이 파라곤군을 향해 쏟아졌다.
그게 초월 등급의 성물인 절대군림의 진정한 권능이었다.
모든 성물들이 주인인 군주들의 명을 거스르고, 오토를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 * *
절대군림을 사용한 오토의 활약으로, 전투의 판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쾅쾅! 쾅! 콰아앙! 콰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르르르르!
화르르르르르!
퍼엉! 펑!
스으으으으으으으으!
함정을 파 놓고 연합군을 기다리던 파라곤군과 그의 동맹국들은, 역으로 되돌아온 성물들의 권능에 의해 처참히 유린당해야만 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전장 곳곳에서 파라곤군과 그의 동맹국 장병들의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마, 말도 안 돼! 이 무슨……!”
파라곤은 절망했다.
전략적,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연합군을 사지로 끌어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동맹국들이 연합군이라는 미끼에 걸려 빨려 들어간 셈이 되어버렸다.
“아아…… 아아아……!!!”
파라곤은 털썩 주저앉은 채 연신 탄식하며 오열했다.
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연합군 트리톤들이 질주하는 소리와 기병들의 발굽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뒤이어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아진 연합군 장병들의 거세고 힘찬 함성도 들려왔다.
파라곤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파라곤 자신의 군대뿐 아니라 동맹국들의 군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몰살당해 궤멸하기 직전이었다.
연합군에 맞서 대륙을 양분하던 초거대 세력이, 제대로 된 전투를 해 보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뒤는 없었다.
이 지경까지 온 이상 반전의 기회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아아……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파라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을 목에 가져다 대었다.
“대, 대공 전하!”
“전하!”
그의 기사들이 말려 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스릉!
서늘한 검명(劍鳴)과 함께 파라곤의 목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주륵, 주르르륵…….
이윽고 피가 콸콸 쏟아져 내리며 파라곤이 무너져 내렸다.
더는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렇게 아라드 제국을 분열시켰던 주역 중 하나인 황자 파라곤은 먼저 간 형제들을 뒤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그리고…….
펄럭!
파라곤군 진영의 심장부에 하얀색 백기가 내걸렸다.
백기가 내걸린 그 순간.
“적들이 항복했다!”
“백기, 백기가 내걸렸다!”
“이겼다, 이겼어!”
연합군 진영 곳곳에서 승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외침은 이내 곧 연합군 전체에게로 퍼져 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센 함성이 우레와 같이 터져 나와 전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 연합군의 함성에 적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았다.
격렬하게, 한순간에 확 타올랐던 전투가 잠잠해졌다.
“연합군! 만세!”
“만세!”
“이오타 왕국! 만세!”
“만세!”
“국왕 전하! 만세!”
“만세!”
오토는 모든 이들의, 만인의 경배를 받았다.
위대한 업적이었다.
역사상 이렇듯 대륙의 패권을 단기간에, 깔끔하게, 또한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고 차지한 왕조는 유례가 없었다.
앞으로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에 걸쳐서 이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오토는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이제 됐어.”
오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해냈어, 드디어…….”
* * *
오토는 눈은 전장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오토는 이 세계, 전 대륙을 보았다.
눈앞에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태평성대.
모두가 꿈꾸는 그런 행복한 시대가 도래했다.
단언컨대, 최소한 100년 동안은 큰 전쟁이 대륙을 휩쓸 일은 없으리라.
연합군이, 오토가 세운 새로운 왕조가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을 앞세워 대륙에 군림하고 있는 한 누구도 감히 평화를 깨뜨릴 엄두도 내지 못할 터였다.
‘엘리제.’
사명을, 대업을 완수했음을 자각하자 문득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보고 싶다.’
안도감이 들자 쉬고 싶단 욕구가 일었고, 사랑하는 엘리제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래, 이제 보러 가는 거야.’
오토는 대강 전장 정리가 끝나자마자 엘리제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엘리제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1분 1초라도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비록 가슴이 미어지고 마음이 아파 작별인사를 할 용기가 나지는 않겠지만…….
“전하.”
카미유가 오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오토의 주변에서 그를 호위하고 있던 마검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연합군 수뇌부들 역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성웅(聖雄)에게 경배를 올렸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무릎은 그만 꿇고. 수고했어, 형.”
오토가 카미유를 향해 미소 지었다.
“듣는 귀가 많습니다.”
카미유가 웃으며 오토가 내민 손을 맞잡으려던 그때.
스르륵.
카미유의 손이 오토의 손을 지나쳤다.
“……!”
카미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이에 오토의 얼굴도 시퍼렇게 질렸다.
“저, 전하! 손이…… 손이…….”
손뿐만이 아니었다.
오토의 몸 전체가 점점 더 희미해졌다.
그런 오토의 모습은 마치 사라지는 유령과 같았다.
또한, 오토의 몸은 더는 선명해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희미해졌다가도 다시 선명해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더는 오토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대업을 이룩했건만, 정작 자신은 새로운 시대를 누리지도 못한 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아…….”
오토가 길게 탄식했다.
“전하, 전하!”
“……미안해.”
“……!”
“함께해서…… 즐거웠고…… 행복했어, 형.”
오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
“어딜 내빼려고 그러십니까!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카미유가 오토를 붙잡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오토는 더는 만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엘리제에게…… 전해 줘.”
오토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카미유에게 말했다.
“정말…… 사랑한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보고 싶을 거라고.”
“이런 개 같은! 그따위 개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전하, 전하!”
“조금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토 이 망할 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미유가 절규했지만, 오토의 사라짐을 막을 순 없었다.
“……갈게. 나 보고 싶다고 너무 슬퍼하진 말고.”
오토는 카미유를 향해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다.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남겨진 이들에게 평화의 시대를 선물하고 홀연히 떠난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한 적 없었던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