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스승님. 제자가 미우셨습니까?2022.03.03.
제자가 황제로 즉위한 영광된 날. 그가 스승인 내게 내린 건 독이었다. 처음에는 조금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문무백관들이 제자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고, 제자는 찬란한 옥좌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조용하고 잔혹했던 경쟁에서 살아남은 그의 수많은 형제자매들은 무시하던 열셋째가 승리를 거머쥐는 모습을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아야 했다. 보위에 오른 그는 더이상 무시 받고 천대받던 궁녀 출신의 서출이 아니었다. 이제 그를 서출이라 무시할 이들은, 자신과 가문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옥좌에 오른 그는 날 향해 미소를 지었고, 사람들은 작게 웅성거렸다. 나는 덩달아 희미하게 웃고서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연회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자, 눈치 빠른 이들은 내게 찾아와 아부했다.
“이제 요 대인은 날아오를 일만 남았군요.”
“폐하의 유일한 스승이시고 폐하께선 스승을 공경하는 분 아닙니까.”
“그럼요. 폐하께선 요 대인에게 늘 잘하셨지요.”
“요 대인의 앞날이 우리 중 가장 환합니다. 부럽군요.”
역사를 보면, 황제의 스승들은 거의 나이가 아주 많아서 국사란 명함을 달아도 그걸 휘두를 기력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제자와 나는 좀 경우가 달랐다. 우리는 둘 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게 몰려드는 대신들 대다수보다도 나이가 적었으니, 대신들이 내게 아부를 할 만도 했다. 제자가 나를 부른 건 그렇게 한참 모두의 칭송을 들으며 연회를 즐기는 도중이었다.
“요 대인. 폐하께서 요 대인을 따로 보자 하십니다.”
제자는 측근 태감을 보내 날 불렀고, 나는 그를 따라갔다. 측근 태감은 연회장에서 멀지 않은 빈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이상한 곳이었다. 다른 가구는 아무것도 없고 탁자 하나만이 있었다. 그 탁자 위에는 하얀 그릇이 있었고, 짙은 갈색의 약 같은 게 담겨 있었다. 황제가 된 내 제자는 그 탁자 앞에 서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이런 곳으로 왜 날 부른 건가, 생각하면서도 공손하게 묻자 황제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약그릇을 들어 내게 건넸다.
“드시지요, 스승님. 제자가 스승님을 위해 따로 준비한 약입니다.”
그 외에 다른 설명은 없었다. 왜 불렀는지, 난데없이 약은 왜 주는 건지. 하지만 그 약사발을 보는 순간. 나는 대번에 꺼림칙한 기운을 느꼈다. 제자가 황위에 오르기까지 흘러간 피가 몇이던가. 어제는 멀쩡하던 집안이 다음날 풍비박산 나 있던 경우는 몇이던가. 그때마다 제자를 비난한 내가, 이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보약이나 영약이라면 이런 데 따로 준비해 두었다가 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약그릇을 받아드는 대신 제자를 쳐다보았다.
“이건…….”
독약입니까? 나는 그 말을 뱉지 못하고 뒷말을 흐렸다. 하지만 제자는 알아들었나 보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독약입니다.”
그 말에 등골이 당기며 뒤돌아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치솟았다. 실제로 나는 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는 달아날 수 없다. 절대로. 이 궁궐 안은 그의 손아귀나 다름없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단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제자가 사약을 권하는 사람 같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얼른 드시지요, 스승님. 그래도 유일한 국사신데. 가시는 길에 체면치레는 해야 하시지 않습니까. 달아나다 끌려오기라도 하면 그게 무슨 추태입니까.”
그래도 내가 약을 받아들지 않자, 제자는 직접 내 곁으로 몇 걸음 다가와서는 코앞에 약을 가져다주었다. 죽음이 담긴 쓴 냄새가 먼저 코끝을 넘어왔다.
“우리 스승님은 손이 많이 가는군요. 제자가 이것도 먹여 드려야 합니까?”
“……폐하.”
“얼른 드시지요.”
“폐, 폐하.”
내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나는 약그릇을 받아 들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보다 머리 세 개는 더 큰 제자는, 내가 약을 순순히 먹지 않으면 강제로 입에 붓기라도 할 태세였다. 표정은 다정했으나 온기 하나 없이 서늘한 눈가에서 그의 의지가 보였다. 그 표정을 보는데, 가슴에서 왈칵 억울한 마음이 솟아 물었다.
“왜 절 죽이시려는 겁니까?”
제자가 되물었다.
“왜일 것 같습니까?”
“소신이…… 미령해서 그렇습니까? 젊은 국사라, 폐하의 통치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그러십니까?”
나는 늘 제자의 잔혹하고 냉정한 결단을 비난하는 쪽이었다. 황자일 때 그는 내 잔소리를 억지로 참아주었다. 하지만 이젠 황제가 되었으니 참을 필요 없다 여기는 걸까? 제자는 내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드시지요. 약을 드시고 나면, 저승길 가시는 데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드리겠습니다.”
“폐하…….”
“길동무는 못 해 드려도, 제자 된 몸으로 스승님 영면할 길은 봐 드려야지 않겠습니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가 내 죽음을 결정한 이상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추태를 부리며 죽거나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결국, 나는 떨리는 손으로 독약을 한 모금 한 모금 꿀꺽꿀꺽 마셨다. 독은 생긴 것과 달리 단맛이 났다. 사약을 다 마시고 그릇을 내리며 보자, 제자가 빙그레 웃고서 말해주었다.
“스승님은 쓴 걸 싫어하셔서 일부러 설탕을 많이 부었습니다.”
거 참 고마운 일이네요. 독약을 마셨는데도 내 간은 크지 않아서 이 말을 뱉지 못하겠다. 독약이 얼마나 독한지, 독을 마신 지 몇 호흡 쉬기도 전에 속이 들끓더니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갑갑한 게 목 안에 차오는 듯하더니 결국 입에서도 피가 터져나왔다. 코와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데,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그 상태로 울면서 제자를 보고 있자니,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아닌가. 착각인가.
“고통은 짧을 겁니다.”
제자는 그런 나를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자도 먹어봐서 압니다.”
그러고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뱉으며, 나와 눈을 맞추고 내 입가에서 나온 피를 내 뺨에 문질렀다. 울려고 우는 게 아닌데. 계속 눈물이 나왔다. 제자가 황위 쟁탈전에 참여한 후로, 나는 자의 없이 덩달아 위기에 빠졌다. 제자를 공격하기 위해 그의 정쟁 상대들은 유일한 스승인 나를 지독하게도 괴롭혀댔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다 헤치고 나서 제자에게 받는 게 독이라니. 너무 억울했다. 내가 제자를 좋아하지 않은 건 맞다. 어쩌면 다정한 스승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강제로 그와 한배를 타기 전까지 제자와 선을 그으려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를 배신 한 것도 아니잖아? 강제로 그와 한배를 타버렸지만, 그가 비범하단 걸 알게 된 후로는 울면서 그가 탄 배를 같이 저었다고!
“왜. 왜 절 죽이십니까?”
이걸 모르면 저승길에 가다가도 억울해 돌아나올 것 같아서, 나는 목 안이 피로 들끓는데도 물었다. 말을 뱉자마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눈앞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누군가 내 몸을 받쳤다. 약간 시야가 돌아와서 보니, 나는 제자의 몸에 기대어 누워 있었다.
제자는 내 머리카락을, 아마도 완전히 엉망이 되었을 머리카락을 넘기면서 속삭였다.
“약속대로 알려드리지요, 스승님. 스승님, 저는 이전에도 여러 번 같은 삶을 산 적이 있습니다.”
뭐?
“이상한 게 뭔지 아십니까? 그때마다 스승님이 절 죽이셨습니다. 항상요. 제가 스승님께 드린 이 독은, 스승님이 이전 삶들에서 제게 먹인 독입니다.”
“말도 안 되는…….”
“믿기 힘들면 안 믿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분명 저는 여러 번 죽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로 회귀해 같은 삶을 살고 있지요.”
말도 안 되는 말인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제자가 미래라도 아는 사람처럼 모든 역경과 고난을 잘 피해가던 게 떠오른다. 당시에 그의 적들도 ‘13황자가 혹시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고 기막혀하긴 했다. 다시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래도 억울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의 지난번 삶에 내가 어쨌든, 지금이 나는 평범한 스승 아니었던가.
“신이 미우십니까?”
“저도 궁금했습니다, 스승님. 제자가 미우셨습니까?”
“!”
머리 위로 짧은 한숨이 떨어졌다.
“스승님께선 제 입에 강제로 약그릇을 물리셨지요. 제겐 스승님뿐이라고, 이러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매달렸지만 끝끝내 절 죽이셨습니다. 아직도 궁금합니다. 스승님. 제자가 그리 미우셨습니까?”
* * * 마지막 말을 스승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스승의 움직임이 멎은 걸 확인한 화려는 피에 얼룩진 스승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결국, 전 끝까지 이 대답을 듣지 못하겠군요.”
그는 안고 있던 시체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가슴팍에 피가 튀어 대례복이 엉망이 되었으나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긴. 이젠 필요 없는 답입니다. 잘 가시지요, 스승님. 너무 억울해하진 마세요. 똑같이 갚아드리려면 앞으로 마흔아홉 번 더 남았습니다.”
화려가 직접 문을 열자, 만일을 대비해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그림자들이 양옆으로 시립했다.
“국사께선…….”
“시체를 치워라.”
“예.”
일말의 정도 남기지 않고 지시한 화려는 연회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원수에게 복수하게 되겠구나.”
화려는 긴 회랑을 피 묻은 대례복을 입고 고요하게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가 걸어가는 걸음걸음을 따라 붉은 대례복의 긴 천이 피처럼 바닥을 기어갔다. 그림자들은 내내 승리만 거머쥔 황제에게 대체 어떤 원수가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서도 조용히 뒤를 따랐다. 화려는 회귀 전 일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를 죽인 건 매번 스승이었으나, 스승이 모든 일의 배후는 아니었다. 스승의 배후는 매번 달랐다. 어떤 적에게 가든, 그 적과 손잡고 그를 죽이러 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매번.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스승의 배후는 5황녀였다. 스승이 ‘천덕꾸러기 13황자’ 대신 따르고 싶어 했던 그 잘나신 5황녀 말이다. 화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진작에 죽여야 했으나, 그는 5황녀를 가장 마지막에 죽이기 위해 일부러 살려두고 있었다.
‘누님은 곱게 죽지 못할 겁니다.’
그때. 즐겁게 걸어가는 그를, 급히 달려온 그림자가 붙잡고서 말했다.
“폐하. 국사 말입니다.”
화려는 멈춰서서 미간을 찌푸리고 뒤돌아보았다.
“살아나기라도 했느냐.”
“아닙니다. 국사의 옷을 갈아입히려다 알아버렸는데, 그게…….”
그림자가 웬일로 당황해서 주저하자, 화려의 눈가가 서늘해졌다. 황제 옆에 선 측근 태감이 빨리 말하라고 눈짓하자, 그림자가 얼른 보고했다.
“국사가 여인이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림자와 달리 화려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51번의 삶을 살아왔고, 50번을 죽었다. 수많은 일이 있었다. 스승이 남장한 여인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시체가 사내인지 여인인지 무슨 소용이냐.”
스승이 여인이 된다고 해서, 회귀 전 그를 죽인 일이 없던 일이 되진 않는데. 그림자는 화려가 심드렁하자, 인사를 올리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화려는 다시 돌아서서 회랑을 걸어가, 5황녀를 가둬 놓은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빼어날 정도로 아름다운 범 같은 여인이,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세간에서는 13황자 화려와 5황녀 서려를 두고 ‘화음양옥’이라 불렀다. 화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자와 황녀를 칭송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랐다. 5황녀 서려는 황후가 낳은 첫 아이였고, 적장녀로서 온 나라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화려는 9급 가장 말단 궁녀를 어머니로 둔 서출로, 궁녀가 화려를 출산하자마자 사망하는 바람에 평생 ‘가장 신분 낮은 어머니’를 둔 서출이라 무시받았다. 하지만 승리는 그 서출 13황자가 가지게 되었구나. 화려의 입꼬리가 만족스레 올라갔다. 그 순간. 화려는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소리……?’
이 소리는 그가 지난 삶들에서 죽어가는 순간마다 들은 소리였다. 그가 매번 회귀해 깨어나기 직전 들은 종소리. 아무 먼 아득한 곳에서, 저승의 어느 성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종소리 말이다.
“누가 종을 치는 게냐.”
화려는 차갑게 물었으나, 그림자들은 “예?”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내 침묵하던 5황녀 서려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태연하던 화려의 눈에 처음으로 당황한 빛이 어렸다.
‘설마!’
* * *
“설마 일부러 그랬어?”
“…….”
“언니! 내가 묻잖아!”
“…….”
“야! 요요화! 내 말 듣고 있냐고!”
버럭 외치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동생인 린화가 서서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그 애를 쳐다보다가,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자는?”
대례복 입은 제자는 어디 가고 린화가 여기 있어? 제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독약이 있던 그 빈방 궁궐도 아니었다. 여기는 그냥 우리 집 마당이었다. 당황해서 린화를 보는데, 그러고 보니 린화의 나이가…… 어려졌네? 황당해서 쳐다보고 있자니, 린화가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제자? 그 멍청이 13황자? 그것도 지금 뒷배라고 나한테 들이미는 거야?”
멍청이 13황자? 거슬리는 형제자매들을 모두 죽이고 보위에 오른 무서운 황제가 아니라 멍청이 13황자? 멍청이 13황자는 그가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던 시절에나 듣던 별명인데? 나는 멍하게 린화를 보다가, 죽어가는 내게 제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가 지난 삶에서 내내 죽었고, 죽을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 깨어났단 이야기. 그래. 분명 죽은 후에 회귀했다고 했어. 설마! 설마 그게…… 이건가?
‘회귀가 진짜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