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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저놈도 회귀하다니! (1/159)

2화. 저놈도 회귀하다니!2022.03.07.

1654964161065.jpg“언니!”

린화가 천둥처럼 고함지르는 소리에 나는 혼란에서 벗어났다.

1654964161065.jpg“언니, 대답 좀 해. 일부러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저 성질머리가 과거로 회귀한 데서 오는 충격을 반 정도 깎아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반쪽짜리 혼란이 가득했으나, 나는 일단 과거에 늘 하던 대로 눈을 부라리며 대꾸했다.

16549641610662.jpg“무시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말 좀 조심해. 어머니가 날 언니라 부르지 말랬잖아.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진짜로 걱정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린화가 이렇게 바락바락 고함을 질러대도, 내 남장은 죽을 때까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원래 이 사실을 아는 가족들과 황제와 황후 정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이 시절의 나는 늘 린화에게 이 일로 잔소리를 해댔으니, 이번에도 잔소리하는 게 자연스럽겠지. 린화는 팔짱을 끼고서 흥 코웃음을 쳤다.

1654964161065.jpg“들킬 테면 들키라지. 무슨 상관이야? 걸리면 언니가 곤란하지 내가 곤란해?”

약간이라도 점잖아진 린화에게 익숙해졌다가 싹수없던 시절 린화를 보니 꿀밤을 때려주고 싶다. 린화의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빤히 노려보다가 나는 얼른 시선을 피해버렸다. 회귀하자마자 하는 게 동생과 싸우는 일이라니. 안 될 일이지.

1654964161065.jpg“어쨌든 경고하는데. 언니, 내가 선안 공자랑 있을 때 자꾸 끼어들지 좀 마. 알았어?”

오랜만에 보는 린화는 얄미웠지만, 그래도 방금 린화가 한 말을 통해서 내가 몇 살로 회귀한 건지는 알게 되었다. 린화가 내 친구인 선안에게 반해서 졸졸 쫓아다니던 시기가 있는데. 딱 그때인가 보다. 보자. 그러니까 그 시기가…… 13황자가 내 제자가 되고 나서 반년 정도 후이구나. 내가 스물한 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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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리처럼 꽥꽥대는 린화를 쫓아낸 뒤. 나는 내 방에 돌아와 이 시기 나와 13황자 사이를 떠올려 보았다. 나는 스무 살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면서 또래와 대신들 사이에서 약간 화제가 되었다. 당시 여행과 이국적인 문물에 푹 빠진 나는 외교부 쪽으로 빠지고 싶어 했지. 하지만 황제는 뜬금없이 나를 13황자의 스승으로 올렸다. 나보다 고작 네 살 어린 13황자 말이다. 처음 그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모른다. 그게 황후가 손을 쓴 결과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남들이 멍청이 취급하는 13황자의 싹수를 제일 먼저 알아본 황후가, 서출인 13황자를 모욕할 겸, 미리 싹을 밟아둘 겸 ‘뒷배도 세력도 경험도 없는’ 나를 일부러 13황자의 스승으로 붙인 것이다. 아예 엉터리인 스승을 붙이는 건 너무 괴롭히는 티가 나니까, 어쨌든 젊은 나이에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해서 적당히 명성이 있는 나를 붙인 거지. 말은 ‘학식이 뛰어난 데다 황자와 나이가 비슷하니, 남들과는 다른 좋은 스승이 되어줄 것’이란 듣기 좋은 핑계를 댔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그 일은 나와 13황자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13황자에게 있어선 내 존재 자체가 자기를 모욕하는 수단이었고, 내게 있어서 13황자는 내 발목을 잡는 족쇄이자 가시덤불이었다. 13황자의 스승이란 이유로 여러 가지 사건에 엮이면서, 나는 13황자를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13황자는 이전 생에 내가 여러 번 그를 죽였다고 했나?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 이런저런 감정 때문에 더욱 악화된 결과일 것이다.

16549641610662.jpg‘그 기억은 내게 없지만.’

손안에서 옥 주사위를 꺼내 굴리다가, 나는 그걸 책상에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죽인다’고 하니까 그가 내게 독을 먹일 때의 원한이 새삼 떠오르면서 속이 끓었다. 그는 내게 복수를 한 거라지만, 그를 죽인 기억이 없는 내게는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복수? XX, 지난 삶에서 난 13황자가 황위 쟁탈전에 참여하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선택권도 없었다. 13황자의 하나뿐인 스승이다 보니, 끌려가듯 덩달아 암투에 참전하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서 승리하자마자 지지난 삶들의 복수라며 죽여버리다니! 독이 온몸에 번져가던 그 감각을 기억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나는 마음을 좋게 고쳐먹었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 그 일을 떠올리면서 화내고 피로해할 필요 없어. 나도 똑같이 갚아주면 돼. 지지난번 삶에 내가 그를 죽였고, 그래서 지난번 삶에 그가 날 죽였다면, 이번 삶에는 내가 또 그를 죽이면 되지. 나는 코웃음을 치고서 주사위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이번 삶의 목표가 세워졌다. 복수. 그래. 13황자에게 복수할 거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나는 지난 삶의 큼직한 사건들을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보를 이용하자. 지난 삶에선 그가 미래를 알고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해나갔으니, 이번 삶에선 내가 그처럼…….

16549641610662.jpg‘아니. 잠시만.’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도로 책상에 돌아와 앉았다. 제기랄. 방금 아주 중요한 게 생각나서.

16549641610662.jpg‘나만 회귀한 거야, 아니면 제자도 같이 회귀한 거야?’

나만 회귀한 거라면 복수할 수 있다. 미래의 정보를 사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13황자도 회귀한 거라면 좀 곤란해진다. 그는 본인 표현에 따르면 수없이 많이 회귀했다고 한다. 당연히 미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게다가 천덕꾸러기 신세라지만, 어쨌든 신분도 나보다 높지 않던가. 지금은 묻혀 있지만 13황자의 무공 솜씨나 머리 굴리는 솜씨는 경악스러울 수준이지. 등골이 오싹하며 팔에 소름이 돋았다. 복수는 일단 미뤄두자. 13황자가 같이 회귀했는지, 나 혼자 회귀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 * * 확인해보니 다음 날이 마침 그의 수업을 하는 날이었기에, 나는 아침 일찍 세수하고 의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다음 곧장 궁궐로 갔다. 입구에서 신분 패를 보여준 다음, 나는 동쪽에 있는 현안궁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하지만 반쯤 걸어갔다가, 나는 아차 싶어서 방향을 바꿨다. 바보같이! 이 시기의 13황자는 월무궁에서 지내고 있지. 현안궁은 13황자가 황제가 되기 전 마지막에 머물렀던 궁전이니 지금은 다른 사람의 소유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황제가 된 13황자와 지금의 13황자의 처지가 대조되면서 저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황제가 머무는 양영궁에서 가장 먼 월무궁에 살던 13황자가 제힘으로 점점 궁전의 중심에 다가갔던 거지……. 날 죽이지만 않았다면 정말 대단한 황자라고 순수하게 찬탄이 나왔을 텐데. 아쉽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월무궁 앞에 도착했다. 월무궁 입구에는 다른 궁전과 달리 시위가 하나도 서 있지 않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왔다고 알릴 필요 없이 곧장 문지방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16549641610696.jpg‘제자도 회귀한 게 맞다면 이 꼴을 보고 속 좀 쓰렸겠어.’

인기척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풀투성이 마당을 지나간 후에야 나타났다.

16549641640066.jpg“요 대인. 오셨군요.”

제자의 궁녀인 기양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세작 노릇을 하다가 걸려서 죽지.

16549641610696.jpg‘미래에 죽을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이상하네. 내 제자도 처음 회귀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16549641640066.jpg“대인?”

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기양이 얼굴을 붉히고서 날 불렀다. 남장을 하지 않은 나도 빼어난 얼굴이지만, 남장한 나는 내가 거울을 보면서 반할 만큼 잘생겼는데, 아마 이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것일 거다. 하지만 조심해야지. 남장한 몸은 인기가 많아도 곤란하다. 날 마음에 둔 귀한 집 아가씨가 자기 가문을 통해 혼담을 넣어오면 큰일이거든. 이 때문에 지난 삶에서 나는 일부러 호색한처럼 굴었다. 혼담을 강요할 만한 가문이라면 다들 ‘저딴 놈은 내 딸과 혼인시킬 수 없다!’라고 여기도록 말이다. 이번 생에도 그래야겠지?

16549641610696.jpg“이런. 실례했소, 기 소저. 소저를 보니 정신이 멍해져서. 볼 때마다 소저는 눈부시군.”

16549641640066.jpg“대인은 늘 농이십니다.”

16549641610696.jpg“소저가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귀양은 작게 웃고서 제자가 머무는 방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16549641640066.jpg“13황자님, 요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네고서, 나는 이전에 매일같이 드나들던 그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두꺼운 휘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서자, 책상 앞에 막 일어난 제자의 모습이 보였다. 죽기 전에 본 그 늠름하고 의젓한 모습이 아니라, 아직 열일곱 살의 풋풋한 모습이 드러난 수려한 얼굴이었다.

16549641640144.jpg“스승님.”

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었다. 여느 때 늘 그랬듯, 제자는 나를 보자 다정하게 인사했다.

16549641640144.jpg“일찍 오셨군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위풍당당하게 온 마음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저절로 손끝이 떨렸다. 그가 내게 독이 든 사발을 건네던 모습이 반복해 떠올랐다.

16549641610696.jpg‘안 돼. 벌써 무서워하면 어떡해? 제자가 회귀했는지 아닌지부터 확인해야지. 같이 회귀했다면…… 더 조심해야 해. 제자는 내가 회귀한 걸 몰라야 한다.’

나는 뒷짐 지는 척 손을 뒤로 보내고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16549641610696.jpg“날이 좋아서.”

16549641640144.jpg“네. 좋은 날이네요.”

그의 목소리가 죽기 직전 소곤거리던 목소리 그대로인 게 소름 끼친다. 죽어갈 때의 그 두려운 마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입술까지 떨릴 것 같아서 나는 얼른 앞으로 걸어갔다. 스승은 제자보다 높은 사람이지만 그 제자가 황족인 관계로, 수업을 할 때 우리는 똑같은 크기의 책상 두 개를 마주 보게 놓고 수업했다. 나는 내 책상 앞으로 가서 일부러 서랍을 살피는 척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감추었다. 그 상태로 책상을 뒤적거리면서 가까스로 호흡을 골랐다. 멍청하게 굴지 마. 똑 부러지게 굴어. 요요화. 아직 13황자가 순수한 열일곱 살 황자일지, 여러 번 회귀한 능구렁이일지 모르잖아?

16549641610696.jpg‘전자이길 바라자.’

속으로 빌고 있자니, 맞은편에서 나무 끄는 소리가 났다. 곁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데도 그 소리에 소름이 쭉 돋았다. 나는 서랍에서 아무거나 꺼내 책상 위에 올린 다음, 최대한 의연히 웃으며 맞은편을 보았다. 나무 끄는 소리는 제자가 의자를 빼내면서 난 소리였다. 제자는 날 향해 미소 짓고서 의자에 앉았고, 나 역시 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나니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막상 마주 보고 앉긴 했는데. 이 시기에 내가 무슨 수업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한들 매일매일의 일과를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런데…… 나야 그렇다 치고. 제자는 왜 저러지? 제자도 꼭 나처럼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책을 펼치지 않는다. 그게 의아해서 멀뚱히 바라보기를 한참. 제자가 날 보더니, 고개를 기웃하며 물었다.

16549641640144.jpg“오늘 수업은 어디입니까, 스승님?”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 자식도 같이 회귀했구나! 나만 회귀한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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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림없었다. 내가 갑자기 과거로 회귀해서 어디부터 수업할 차례인지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저 자식도 어디부터 배워야 하는지 까먹은 거다. 여러 번 회귀했다니 나보다는 과거에 대해 많이 알겠지만, 그래도 수업 진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진 못할 테니까. 그걸 깨닫는 즉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복수? 그가 날 죽인 복수를 한다고? 절대로 불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미래를 알면 뭐 하나. 상대는 나보다 더 많이 아는데. 심지어 복수심조차 한 번 살해당한 나보단 여러 번 살해당한 그가 더 클 텐데.

16549641640144.jpg“스승님?”

흔들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으려니, 제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부른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16549641610696.jpg“오늘 수업은…… 전에 배운 곳부터입니다.”

친절하게 웃던 제자의 표정에 처음으로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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