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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그만 좀 만나고 싶은데요 (5/159)

6화. 그만 좀 만나고 싶은데요2022.03.21.

16549642387478.jpg“괜찮습니다. 까지거나 한 게 아니니까요.”

직접 상처를 본 건 아니지만 분명 그렇겠지. 붉은 자국 정도일 거고, 심해 봐야 여기에서 멍이 드는 정도일 거다. 나는 이번엔 두 손으로 내 목을 가렸다.

16549642387478.jpg“혼자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전, 아니, 제자님.”

16549642387492.jpg“멍을 빨리 빼는 데 뛰어난 연고가 있습니다. 발라 드리지요.”

16549642387478.jpg“괜찮습니다.”

연고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라고!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서 뒤로 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그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짜로 지었던 13황자의 벚꽃 같은 미소도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그 미소는 다시 피어올랐지만, 한순간 드러난 그의 진짜 표정은 이미 보아버린 후였다. 제자는 한겨울 얼음 호수 같은 눈으로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16549642387492.jpg“연고를 바르려면 목에 손이 닿아야 하지요. 혹시 스승님. 제자의 손이 닿는 게 싫으십니까?”

16549642387478.jpg“그게 아니라-.”

16549642387492.jpg“그리 보입니다.”

최대한 제자에게 잘 보여서 사이를 좋게 하려 했는데. 회귀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삐걱대는 건지 모르겠다.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러다가 또 제자에게 죽는 거 아닐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제자 앞에서 상의를 벗고 목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당장 미움을 사는 게 낫지. 어차피 제자는 지금은 날 미워하고 있을 거고. 이 시기의 나는 제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좀 선을 긋고 있었고. 그래. 당시의 나는 제자에게 선을 긋고 있었어. 그러니 지금도 선을 긋자. 제자에게 잘 보이는 건 조금 뒤로 미루자고. 제자의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긴 하지만 그가 날 죽이는 시점은 몇 년 뒤잖아?

16549642387478.jpg“스, 스승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16549642387492.jpg“명령입니다.”

그가 내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여준 한마디 때문에. 입술을 꾹 다물고서 원망을 담아 바라보자, 그제야 제자의 입꼬리가 덜 가식적으로 올라갔다. 내가 분노한 모습이 마음에 드나 보다. 문득 전생에도 제자가 저런 식으로 자주 웃었단 게 떠올랐다. 그땐 그 미소가 그냥 습관이라 여겼는데. ……날 비웃을 때마다 나오던 미소였을까. * * * 그의 명령에 따라 나는 근처에 있는 방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들어가서도 쉽게 자리에 앉지 못하고 문가에서 서성여야 했다.

16549642387492.jpg“제자가 스승님을 어찌할까 봐 염려라도 되십니까? 같은 사내끼리 뭘 그리 염려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런 나를 향해 제자가 뒤늦게 온화한 척 웃으며 농담했으나, 그 말은 오히려 내 심장을 더욱 조이게 만들었다. 바람둥이처럼 굴고 다니지만 나는 사내가 아니니까. 그러나 이건 내 사정일 뿐이었다.

16549642387492.jpg“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딱 한 명 데려온 시위에게 명령한 제자가 눈짓하자 시위는 “네.” 하고 대답하고서 대번에 문을 닫았다. 제자는 여전히 문가에 선 내게 다가오라 손을 뻗었다.

16549642387478.jpg“전하…….”

16549642387492.jpg“오시지요 스승님.”

버텨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주춤주춤 다가갔다. 그러고서도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제자는 끌어당겨 의자에 앉혔다. 강제로 의자에 앉는데 눈앞에 캄캄해졌다. 약을 발라야 하니 상의를 벗어보라 하겠지. 한 겹 상의를 벗는다고 바로 여자인 티가 나진 않겠지만, 그 안쪽 내의까지 벗으라 하면 어쩌지? 그러면 정말로 티가 나는데? 막막한 기분에 눈앞이 까매졌다. 나는 두 손을 꼭 맞잡고서 그가 연고를 꺼내 뚜껑을 여는 모습을 공포에 젖어 바라보았다.

16549642387492.jpg“옷깃을 내리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연고를 손가락에 찍어 뜬 제자는 이렇게 명령했다.

16549642387478.jpg“네?”

놀라 쳐다보자 그가 재차 지시했다.

16549642387492.jpg“옷깃을 내려야 상처가 보일 거 아닙니까.”

16549642387478.jpg“아…… 옷, 옷을 벗는 게 아니라요? 내리기만 하면 되나요?”

내가 바보처럼 묻자 제자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16549642387492.jpg“벗고 싶으면 벗으셔도 됩니다.”

16549642387478.jpg“아, 아니, 그게 아니라.”

멍청이! 그냥 순순히 옷깃을 내리면 될 걸 뭐하러 이런 말을 한 거야? 나는 내 입이 더 한심한 말을 뱉기 전에, 얼른 옷깃을 내려 목을 보였다. 그 위로 연고를 찍은 제자의 손가락이 올라왔다. 혹시 연고를 바르다가 충동적으로 내 목을 꺾는 건 아닌가, 겁이 났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연고를 바르는 그의 손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그가 내게 품은 증오심을 떠올린다면 기이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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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42387478.jpg“전하.”

16549642387492.jpg“아프십니까.”

16549642387478.jpg“아니요. 그게 아니라…… 전하. 소소한 질문 하나만 해도 될지요?”

16549642387492.jpg“하십시오.”

16549642387478.jpg“혹시 맛있는 건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드십니까?”

내 주둥이에게 제발 닥치라고 해야겠다.

16549642387492.jpg“그걸 왜 물어보십니까? 왼쪽으로 고개 돌리시고요.”

왜 물어보겠습니까? 날 증오하는 제자님께서 이렇게 약을 살살 조심해서 발라주고 있으니 이상해서 그러지. 하지만 더 말하지 않는 게 나을 듯해서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제자는 내가 조용해지자 자신도 더 말하지 않았다. 조심조심 내 목 상처를 따라 손을 움직일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껏 긴장한 채 몸이 반응하지 않도록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것뿐이었다. 마침내 제자가 연고를 다 발랐는지 손가락을 거두어들였을 때. 긴장이 풀리면서 저절로 어깨가 축 아래로 내려갔다. 연고 뚜껑이 닫히며 나는 소리가 지금 내 마음 소리와 비슷하지 싶다. 나는 옷깃을 위로 올리며 제자를 보았다.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이미 돌아가 있었다. 화난 얼굴도 자극받은 얼굴도 아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내게 발라준 연고를 건네며 말했다.

16549642387492.jpg“수시로 바르세요. 그러면 멍이 빨리 빠질 겁니다.”

연고를 받고서 슬그머니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가 내게 무어라 말을 더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연고를 발라준 것으로 모든 볼일이 끝났다는 듯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평소의 완벽한 자태로 돌아온 제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온순하게 웃으며 말했다.

16549642387492.jpg“그러면 제자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승님. 즐겁게 놀다 가시지요.”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맙다고 해야겠지? 그는 아직 내게 이를 드러내지 않았고, 나는 회귀하지 않은 설정이니까? 전생의 나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제자를 못마땅해했지만, 그래도 도움을 받고서 무시하진 않았을 거다.

16549642387478.jpg“전하께서도…… 즐겁게 놀다 가세요.”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돌풍이 다녀간 느낌이야. 혼자 남게 되자마자 온몸에 진이 쭉 빠졌다. 나는 의자에 다시 앉고서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제자에게 잘 보여서 원한을 좀 줄이려 했는데. 어째 거꾸로 되는 거 같아. 더 빠르게 충돌한 거 같은데? 도주 시기를 더 앞당겨야 하는 거 아닐까? * * * 마음이 어수선해서 바로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조금 쉬다가, 나는 뒤늦게 벽에 걸린 거울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옷깃을 내리고서 목을 확인하자 왜 제자가 질겁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선안 이 새끼. 생각보다 아귀힘이 셌는지 목에 멍이 벌써 시퍼렇게 나 있던 것이다. 혀를 차고서 옷깃을 올려 멍이 보이지 않게 한 다음, 나는 연고를 잘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서 선안과 약속한 장소로 걸어가고 있자니, 선안이 문가에 서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급히 뛰어왔다.

16549642446821.jpg“어딜 갔던 건가?”

16549642387478.jpg“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대체 어딜 갔던 거야? 멋대로 데려와 놓고선 혼자 가버리고!”

16549642446821.jpg“사촌 형님을 본 거 같아서.”

16549642387478.jpg“사촌 형님?”

사촌 형님을 보았단 이유로 나를 내팽개치고 혼자 사라졌다고? 사촌 형님 좀 같이 보면 뭐가 어때서? 이해할 수 없는 해명에 나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신경 쓸 거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친 선안이 돌아서며 말했다.

16549642446821.jpg“이쪽으로 오기나 해. 할아버님과 약속을 잡아뒀는데 막상 와보니 네가 없어서 당황했다고.”

16549642387478.jpg“할아버님?”

16549642446821.jpg“내 외조부 말이야.”

나는 얼결에 선안을 따라가다가 뒤늦게 깜짝 놀라 작게 속삭였다.

16549642387478.jpg“갑자기 할아버님과 약속이라니? 무슨 소리야?”

유씨 가문은 음지에서 위험하고 수상한 일을 한다. 선안의 외조부는 그 유씨 가문의 수장이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16549642446821.jpg“은신처 구하고 싶다면서?”

16549642387478.jpg“은신처를 구하는 데 할아버님까지 뵈어야 해?”

16549642446821.jpg“그럼 은신처란 게 뭐 노점상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건 줄 알았나?”

그건…… 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다. 하지만 설마 여기서 갑자기 유씨 가문의 가주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지라,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긴장해서 삐걱삐걱 걸어가자, 선안은 힐긋 나를 보더니 혀를 찼다.

16549642446821.jpg“내가 술김에 자네한테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이러는지 모르겠군.”

16549642387478.jpg“할아버님이 무섭단 이야기를 했네.”

선안은 한숨을 내쉬고서 내 등을 툭 가볍게 쳤다.

16549642446821.jpg“잊어버리고, 긴장 풀고 따라오게. 자넨 그냥 손주 친구로서 할아버님을 만나는 거니까. 그렇게 긴장하고 걸어가면 더 이상해.”

그렇게 말한다 한들 긴장이 갑자기 사그라들 리는 없었다. 하필 이 전에 제자를 만나 한바탕 감정이 휘몰아친 후라 더욱 그랬다. 아무리 달래어도 내가 계속 초조하게 쳐다보자, 선안은 고개를 젓고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16549642446821.jpg“여기야.”

선안은 붉은 주렴을 바닥까지 드리운 문 앞에 도착해서야 멈추어 서서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문 너머를 향해서도 큰 소리로 말했다.

16549642446821.jpg“할아버님, 저예요.”

안에서 들어오란 허락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선안은 주렴을 옆으로 치우며 내게 들어가라 고갯짓했다.

16549642387478.jpg“가도 돼?”

입모양으로 묻자 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돌아가 버리면 그게 더 이상하다. 게다가 나는 꼭 은신처를 구해야 했다. 유씨 가문 가주가 아무리 무서운 사람이어도 내게 가장 위험한 이는 제자인 13황자였다.

16549642387478.jpg‘긴장하지 말자, 요요화. 나는 한 번 죽기까지 한 몸이라고.’

결국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을 걸어가자 벽에 붙은 넓고 긴 의자와 거기에 꼿꼿하게 앉은 노인이 보였다. 연배가 우리 조부와 비슷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저 노인이 유 가주일까? 회귀 전에 선안에게 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몹시 긴장했는데. 의외로 실물을 보니 선안과 많이 닮아서 생각만큼 두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옆에는…….

16549642387478.jpg‘내 제자잖아!’

내 목에 연고를 발라주고 떠났던 13황자가 있었다. 또. 가까스로 한 심호흡이 소용없게 되었다. 침착하게 앞을 살피던 것도 잊고 나는 제자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선안이 옆으로 다가와 내 등을 툭 치지 않았더라면 아예 입을 쩍 벌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추태를 보이기 전에 선안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16549642446821.jpg“이 친구가 요요화예요, 할아버님.”

그러고서 선안은 “응?” 하고 의아해하는 소리를 내더니, 13황자 쪽을 쳐다보며 유 가주에게 물었다.

16549642446821.jpg“저 사람은 누구예요, 할아버님?”

선안이 유 가주와 약속을 잡을 땐 13황자가 옆에 없었나 보다. 그때 13황자는 나랑 있었으니 당연하겠지만. 젠장. 그래도 그렇지, 제자가 만나야 한단 사람이 하필 선안의 외조부일 줄이야! 속으로 혀를 차다가, 나는 뒤늦게 심장이 철렁했다. 잠시만. 잠시만. 잠시만. 지금 내가 여기 온 거, 은신처 때문이잖아? 내가 은신처를 구하려는 건 제자가 알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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