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아니 갑자기 애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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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아니 갑자기 애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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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아니 갑자기 애라니요
2022.06.09.

선안의 측근 남종인 돈이는 내 질문에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도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여인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사내아이를 안고 찾아와서는 그 아이가 우리 도련님의 아이라지 뭡니까. 우리 도련님의 정인이었는데, 도련님께서 황녀와 혼인하게 되었다며 자기를 버렸답니다. 자기도 도련님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다 여기려 하였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찾아왔대요. 자기가 키우는 것보단 이런 대갓집 서출로라도 크는 게 더 나을 거라며 받아 달라 울고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잖아! 선안은 그런 쪽으로 한 번도 나선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요. 제가 늘 우리 도련님과 함께 다니는데, 아시다시피 공자님, 우리 도련님은 숙맥이시잖습니까. 바람둥이는 공자님이시지 우리 도련님은 아무것도,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이놈이 입을 잘못 놀렸습니다.”
나는 손을 저었다.

“되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일도 아니고.”

“송구합니다 공자님. 소인이 지금 너무 흥분했습니다.”
나도 흥분된다. 나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선씨 가문 어르신들은? 그 말을 믿나?”

“셋째 마님과 셋째 나리는 당연히 안 믿으시지요. 하지만 가주님과 둘째 나리 부부는 무작정 우리 도련님을 탓하시고, 염치가 없고 몸도 가벼운 데다 비정하기까지 하다면서 크게 혼내셨습니다. 지금 우리 도련님은 창고에 갇혀 있습니다!”
돈이는 말하면서 계속 울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다시 물었다.

“아니, 그냥 일방적인 주장일 뿐인데 낯선 사람 말을 바로 믿는다고?”
돈이는 입술을 꿈틀거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외쳤다.

“그 여인이 안고 온 아이가 우리 도련님을 쏙 빼닮았거든요!”

“아니, 아기들 얼굴이 거기서 거기지!”

“그럴까요?”
사실 나는 아기들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뭐라 하겠는가.
나는 일단 겉옷을 가져와 걸치며 나섰다.

“같이 가보자.”
* * *
우리는 그 길로 곧장 선안의 가문으로 갔다.
문지기가 바로 길을 열어주어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의 분위기가 확실히 이전에 왔을 때와는 달랐다. 혼담이 오가면서 밝고 떠들썩해진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져 있었다.
내가 돈이와 걸어가자, 하인과 하녀들은 우리를 연신 힐긋거리며 소곤거렸다.

“저쪽입니다, 공자님.”
나는 돈이를 따라 선안이 갇힌 창고로 갔다. 하지만 창고 앞에서 덩치 큰 하인들에게 가로막혔다.

“누구십니까? 이 안으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돈이는 얼른 나서서 외쳤다.

“이분은 요씨 가문의 소가주시자 황자 전하의 이국사시다! 너희가 뭔데 우리 공자님을 막는 거냐!”
돈이의 말에 하인들은 흠칫해서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13황자가 황자들 중에서는 낮은 취급을 받는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황자는 황자였다. 여기에 돈이가 13이란 숫자까지 빼버리자, 하인들은 당황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하인들이 이름에 눌려 비켜주기 전. 누군가 다가오며 차갑게 말했다.

“관리란 자가 허명으로 순박한 백성들을 겁박하면 되겠습니까.”
돌아보니 처음 혼담 이야기가 오갈 때 차가운 얼굴로 걸어가던 여기 소가주였다.
선안의 종형. 이름이 선현이었지.
눈이 마주치자 선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공손한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 가복들을 함부로 협박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국사.”

“안이가 여기 갇혀 있다 해서 왔는데요.”
선현은 내가 알기로 재부의 사태직(4급 관리)에 올라 있지.
대과에 급제해 권화학을 나와 바로 태자화(4급, 5급, 6급 관리를 합쳐서 부르는 말)부터 시작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가복들이 황자 이야기에 바로 기가 죽은 것과 달리, 나를 보는 선현의 시선에는 좀 무시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회귀 전, 마지막에 독살 당하긴 했지만 13황자가 바닥에서부터 옥좌를 차지하는 길을 옆에서 반강제로 같이 걸었다.
선현이 아무리 정예 인재이고 승진 가도에 오른 인물이라 해도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안이를 보러 왔습니다.”
선현은 내 말에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며 친절한 척 말했다.

“유감이지만 이국사. 이건 우리 집안일이어서요. 남의 가문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건 큰 실례입니다.”

“집안일이기도 하지만 나랏일이기도 합니다. 아직 일이 확실한 것도 아닌데, 사람을 바로 창고에 가두어 두면 뭘 어찌 해결한단 겁니까.”
내 말에 선현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좋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권했다.

“하면 따라오시지요. 안이를 내보내 줄 순 없습니다. 안이가 아이를 안고 찾아온 여인에게 해코지를 하면 안 되니까요.”

“안이는 그런 친구가 아닙니다.”

“저도 지금껏 그런 줄 알았지요. 하지만 오늘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역시 속내를 알 수 없다고요. 이리 오시지요. 그 여인이 안고 온 아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며 왜 저희가 바로 안이를 가두었는지 알 겁니다.”
아이를 보긴 해야 할 듯해서 나는 일부러 돈이에게 들으란 듯 말했다.

“돈아. 아이를 보고 이쪽으로 곧장 올 테니 너는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
혹시라도 내가 안 보는 사이. 선현의 가복들이 돈이를 어디 다른 데 가둬두기라도 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돈이를 데리고 가자니 그사이 안이를 또 다른 데 옮길까 봐 염려되고.

“예. 꼭 여기 있겠습니다. 제가 다른 데 가면 절대로 제 뜻이 아닐 겁니다!”
영리한 돈이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서 외쳤다.
나는 선현을 따라 걸어갔다.
안채 쪽으로 가자 하인들의 수가 확 줄어들고 여종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러다 혹시 규방까지 데려갈 건가 싶어서 긴장해 있자니, 다행히 선현은 거기까진 가지 않고 안채에 들어가기 직전에 붙은 어느 작은 집채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작은 방 안에 한 여인이 침상에 기대어 앉은 게 보였다. 여인의 곁에는 이 집안 어멈이 아기를 안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우리가 들자 어멈과 누워 있던 여인은 모두 다 몸을 일으키며 인사했다. 선현은 계속 편하게 있으라 손짓하고서 어멈에게 지시했다.

“아이를 데려와 이국사께 보여라.”
어멈은 나를 힐긋거리면서도 바로 아이를 안고 와 내게 내밀었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아기를 보았다. 아기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닮았단 거야?

“!”
그러나 아기는 진짜로 선안을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그냥 작은 선안 수준인데?
내가 순간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선현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
* * *
그날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아주 난처해진 건 확실했다. 나 역시 이 일에서 비껴가기 어려울 것이다. 선안을 9황녀와 이어준 건 내가 아니던가.
물론 나는 9황녀가 선안을 볼 수 있게 했을 뿐이지만 그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9황녀가 대과도 치르지 않은 선안을 궁중에서 보았을 리가 없으니까.

‘폐하가 날 죽이려 할지도 몰라.’
나는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침상 위에서 굴러다녔다.
나도 나지만 선안도 이 일로 잘못되면 크게 경을 칠지도 몰랐다. 선안의 가문에서는 보아하니 선안을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고.
황제와 황후가 이 일을 덮고 혼담을 진행할 가능성은…… 없겠지.
혼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아이가 있는 사내와의 혼인이라니. 그들은 귀한 9황녀를 절대로 선안과 혼인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9황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선안을 벌주려 하겠지.
등골이 다 오싹해져서, 나는 새벽에 밖으로 나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뜰을 서성였다.
회귀 전. 린화와 선안의 혼인이 진행될 때도 무언가 일이 터져서 혼담이 어그러졌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는 나는 모른다. 당시 혼담은 명확히 웃어른들이 진행한 일이었기에 내게는 그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으니까.
혹시 그 일이 이런 일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이 정도 일이라면 선안이 내게 이야기해 주었을 텐데?
게다가 혼담이 깨지고 난 후. 선안은 갑자기 먼 곳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고 거기에서 연락이 끊어졌다.
찾으려 해보았지만, 선안이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선씨 가문에서 대신 말해주었을 뿐이다.

‘이상해.’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그가 혼인하려 할 때마다 혼담이 어그러졌어.
게다가 회귀 전에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것도 그래. 당시에는 린화와 혼담이 오가다 엎어졌으니 그가 날 보기 미안해서 연락을 끊은 줄 알았는데. 그것도 너무 이상하게 끊이긴 했다.
내가 아는 선안이라면 최소한 이유라도 얘기하고 연락을 끊었을 테니.
게다가 선안이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결국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들은 게 아니었다.

‘선안이 암살자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다 했지.’
선안은 13황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정숙’에 그야말로 부합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회귀 전에는 있지도 않던 아이가 난데없이 나타났어. 예전에는 암습을 받은 적도 있고.
게다가 선현……… 일이 터지자마자 바로 선안을 가두고 날 만나지도 못하게 해. 자기 가문을 위해서라도 이 일을 잘 해결하려 애써야 할 텐데. 무작정 선안 탓을 하기로 정한 것처럼.
이상해.

‘혹시 누군가 선안이 9황녀와 혼인하지 못하게 하려고?’
* * *
결국, 그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입궐했다. 월무궁으로 가는 길에 또 황제가 날 불러낼 게 뻔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월무궁에 도달하기 전. 나는 또 송 태감과 만났다.

“요 대인. 폐하께서 요 대인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송 태감을 따라가 또다시 독대하게 된 황제는 전에 못다 한 분노를 토해내겠다는 듯 이글이글한 눈으로 날 노려보다 물었다.

“짐이 아주 언짢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국사.”

“예, 폐하.”

“선안에게 아이가 있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릅니다.”

“아이를 보았다지?”
내가 아이를 보고 온 걸 황제가 어떻게 알지?

‘선현? 아니면 선씨 가주? 선안의 중부?’
어느 쪽이든 선씨 가문에서 냉큼 이 일을 황제에게 고해바친 사람이 있단 뜻이다.
일이 심각해지면 이 일로 선안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상관없다고 여길 정도로 그를 증오하는 이가!

“예.”
일단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황제는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이가 어떻더냐.”

“선안과 닮긴 했습니다.”
선현이든 누구든 선씨 가문에서 이미 입을 놀렸다면 이 부분은 숨길 수 없었다. 어쩌면 황제가 직접 얼굴을 확인할지도 모르니, 거짓을 고했다가는 오히려 덤터기를 쓰게 된다.
이에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자마자, 또다시 무언가 날아왔다.

‘또 문진인가?’
나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그걸 그냥 머리로 받아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머리 통증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게다가 머리에서 돌 깨지는 소리가 났다.

잠시 정신이 깜빡 나간 것 같아서 눈을 깜빡거리다 보니,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벼루가 굴러다니고 있고 거기서 쏟아진 먹물에 피가 섞여 있었다.
X발. 저 황제가 결국 벼루를 던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