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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이 제자가 미쳤나요 (39/159)


40화. 이 제자가 미쳤나요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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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화는 이미 눈이 돌아갔다. 걔 머릿속에서 이미 나는 자기 사랑을 망쳐버린 원수다.

걔는 내가 자기 사랑을 망쳤으니 나도 자기 사랑을 망치는 게 공평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논리가 완벽하다고 믿고 있으니 내가 설득한 여지가 없다.

결국, 나는 린화와 말다툼하길 멈추고 저녁 무렵 부모님이 식사할 시간에 맞추어 찾아갔다.

어쨌든 부모님은 우리의 보호자였고 린화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자 우리 집안의 최종 결정권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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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니?”

내가 13황자를 사모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탓일까.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손을 잡아끌며 걱정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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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요.”

한 그릇을 다 먹었지만 나는 살짝 거짓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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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없어서 많이 먹을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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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 전하 때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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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는 최대한 힘없이 말하고서 가엾어 보이도록 온 얼굴에 힘을 주고 부모님을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는 눈길을 피했고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더 빼고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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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이 혼담을 거절해주세요. 정혼자가 있다고 하면 폐하께서도 더 밀어붙이지 못하시잖아요. 폐하께서는 제가 남장한 여인이란 걸 아시지요. 그래서 저는 정혼자 핑계는 댈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린화는 사정이 다르잖아요.”

하지만 어째 반응들이 영 좋지 못했다. 아버지는 계속 내 눈길을 피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을 뿐 그러겠단 말을 하지 않았다.

설마? 아까 두 분이 이야기해본다고 나와 린화를 내보내더니. 혼담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결정 내린 건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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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나는 울먹이는 척하며 부모님을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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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답이 없으세요?”

그러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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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화는 이미 선안 일로 절망했잖니. 그런데 여기서 또 사모하는 사람을 잃게 한단 말이냐.”

나는 기가 막혀서 가엾은 척하는 것도 잊고 바로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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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버지. 린화가 13황자 전하 싫어하는 건 우리 모두 알잖아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린화는 선안 일만 나오면 절 죽이려 했어요. 지금도 갑자기 선안의 혼담이 취소된다면 평판이건 뭐건 당장 혼담을 넣어달라 할 애라고요. 그런데 왜 알면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듯 눈길을 보냈다. 이미 두 분 사이에서는 얘기가 확실하게 된 걸까. 어머니는 그 눈길을 보자 손수건을 내려 꽉 쥐고서 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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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선안을 다른 여인과 맺어주려는 걸 보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사실 일이 마무리된 후에야 알았으니 말리고 말고 할 수도 없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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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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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 때 린화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이번에 널 위해 가짜 정혼자를 만들어서까지 폐하께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면 린화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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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요. 어머니가 그러셨잖아요. 린화 때는 일이 마무리된 후에나 알았다고요. 하지만 지금은 이전에 알았고 충분히 막을 능력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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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먼저 린화가 선안을 연모하는 걸 알면서 굳이 9황녀 전하와 맺어주었잖니.”

말문이 막혀서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나는 린화가 선안과 혼담이 오가더라도 깨지게 되어 있단 것과 이후 린화가 혼인하는 상대가 린화와 금실 좋은 부부가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선안을 9황녀와 이어주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식구들 눈에는 내가 동생을 생각하지 않고 비정한 짓거리를 한 거로만 보이는 게 틀림없었다. 부모님은 이 점 때문에 이번에는 린화를 편들기로 한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고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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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속상할 건 안다. 그렇지만 넌 앞서서 고의적으로 린화와 선안의 사이를 갈랐어. 그런데 지금 와서 우리가 널 위해 린화의 이름을 판다면 린화의 기분이 어떻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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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에게 앞서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선안은 린화와 혼인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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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이 린화가 싫다 해도 무슨 소용이냐. 어차피 혼사는 부모들이 나설 일인데. 우리는 선씨 가문에 혼담을 넣을 생각이었다. 선씨 가문에서 거절했다면 린화도 싫어도 인정했을 거야. 고집이 세지만 숙일 땐 숙이는 아이니까. 하지만 네가 나서서 혼담조차 넣어보지 못하고 일을 그르쳤으니 린화가 저렇게 억울해하는 게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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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랑 어머니가 생각하는 공평은 린화와 제가 모두 정인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린화가 정인을 잃었으니 저도 잃어야 한다고요? 린화가 제가 선안과 9황녀 전하를 맺어주려 한 이유는 말하지 않던가요? 9황녀 전하가 저와 혼인하고 싶어 했어요. 저라고 황녀전하의 중매를 서고 싶지 않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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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굳이 선안이 아니어도 될 일이었어. 네겐 또래 사내아이 친구들이 많으니까.”

아버지는 단호했다. 어머니 역시도 이 일은 내 잘못이라 여기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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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말했어야지. 우리 인맥을 다 동원해서라도 적당한 청년을 하나 못 찾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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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그 이야기를 했으면 아버지랑 어머니가 걱정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제 친구 중에 저만큼 가문이 좋으면서 외모가 훤칠하고 학문도 뛰어난 데다 책잡힐 행동거지가 없는 친구는 선안뿐입니다. 9황녀 전하와 황제 폐하, 황후마마 모두 만족할 만한 청년을 데려가야 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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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더라도 그런 일은 말을 하고 처리했어야지. 그 바람에 자매간에 의가 상하지 않았느냐.”

나와 린화 사이에 의가 어디 있다고! 자매간의 정은 회귀 전에도 린화가 시집간 후에야 싹텄는데!

나는 분노해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나와 린화가 친하게 지내길 바라는 어머니는 애원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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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13황자 전하와 혼인한다면 이 일로 너희 자매는 완전히 틀어질 거야. 세상에 어미와 아비를 제외하면 가까운 피붙이는 너희 둘뿐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진심으로 도울 수 있는 것도 너희 둘뿐이고. 세상에 반이 사내다. 선안도 13황자도 그 사내 중 한 명일 뿐이야. 하지만 너희 자매는 세상에 단둘뿐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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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왜 저러는지 안다. 부모님은 나를 남장시킨 걸 미안해하듯 린화에게도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시다.

예전에는 주로 내게만 미안해하셨다.

하지만 린화가 내가 다니는 학당에 자신도 가고 싶다고 우기는 걸 억지로 말리고, 그로 인해 린화가 몇 달을 앓아누운 후로는 거의 비슷한 정도로 미안해하신다.

린화의 학구열이나 출세에 대한 열망이 나보다 훨씬 높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눈엔 망아지 새끼 같은 동생이지만 부모님에게는 기적 같은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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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말씀 이해했습니다. 린화가 가지지 못한 건 저도 가질 수 없다, 제가 가지지 못한 건 린화도 가지지 못하게 막아라, 세상에 자매는 우리 둘뿐이니 둘이서 치열하게 경쟁해라, 이 말씀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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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화야!”

어머니가 놀라 내 이름을 외쳤고 아버지도 호통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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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말버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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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다른 자매만 편들어줄 때 나오는 자식의 말버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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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화!”

꾸중해도 입을 꾹 다물고서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고 버티자, 아버지는 이마를 짚고서 손을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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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나가라. 네가 먼저 린화를 자극해 놓고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여긴다니 우리가 무어라 하겠느냐. 그리고 린화도 너도 당분간 문안 인사 올 필요 없다. 둘 다 꼴도 보기 싫구나. 하나같이 저 혼자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들 같으니라고!”

본당 밖으로 나가 걸어가고 있자니 제 측근 시비를 데리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린화와 마주치게 되었다. 린화도 부모님의 결정이 궁금해서 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화난 내 표정을 마주치자 결과가 짐작이 간 듯 린화는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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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의 소중한 제자는 내 남편이 되려나 보네. 네가 이렇게 얼굴이 새빨개진 걸 보면 말이야. 그렇지?”

나는 빈정거리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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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너 좋은 부모님 둬서 좋겠다 린화야. 너희 부모님이 생각하는 공정은 네가 가지지 못한 건 나도 못 가지게 하는 건가 봐.”

그러고서 돌아서는 뒤통수로 린화의 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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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편애받고 큰 사람은 좋겠어. 고작 이런 일에 그렇게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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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편애? 누가 누구 얘길 하는 거야?”

린화는 코웃음을 치고서 돌아섰다. 제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기엔 데리고 있는 시비가 신경 쓰이나 보다.

나도 내내 신경을 쓴 탓인지 다시 벼루에 맞은 부위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더 쏘아붙이지 못하고 내 처소로 돌아가 침대에 엎어졌다.

* * *

침대에 눕긴 했으나 잠이 올 리가 없어서, 결국 나는 밤새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이 난관을 넘어갈 방도를 궁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은 뒤. 나는 평소보다 의관을 반듯하게 차려입고서 월무궁으로 갔다.

오늘도 문 닫아걸고 안 들여보내 주면 어쩌나 생각했으나, 다행히 이번에는 문은 열려 있었다.

우리가 수업하는 방 역시도 문이 열려 있었고, 방문을 열자 자기 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제자가 보였다.

힐긋 날 본 제자는 며칠 전 일이 없던 것처럼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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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머리 아픈 건 좀 괜찮으신지요?”

나는 대답 대신 제자 앞으로 다가가 최대한 가엾고 간절한 표정을 지어내며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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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제 동생과 혼인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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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는 어제 태감을 보내 우리 집에 혼담 이야기를 꺼냈다.

더 가까운 곳에 사는 13황자에게도 당연히 그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다. 혼담은 부모가 진행하는 거라지만 어쨌건 혼인할 당사자니까.

역시. 짐작한 대로 13황자도 이미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놀라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미소 지으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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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스승님과의 혼인을 거절할 수 없었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는 스승님 동생과의 혼담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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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와 제가 같이 말씀드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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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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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멍해졌다. 이 못된 제자 같으니라고. 나한텐 전에 혼인을 무르라고 화냈잖아.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왜 나한테는 그런 요구를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잃은 내게 제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날카로운 말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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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 스승님의 누이와 혼인해도 상관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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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요? 전하는 제 누이를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회귀 전 제자는 린화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들 전체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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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싫어하지도 않지요. 대부분 정략혼은 다 이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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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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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든 최소한 스승님만큼 가볍진 않을 겁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밤새 고민하고 고민한 마지막 수를 결국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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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하를 연모합니다.”

13황자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달래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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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답니다.”

‘고작 머리 써서 한다는 말이 그 정도 수준이냐’는 눈빛까지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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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내겠습니다. 차마 동생과 전하가 혼인한 모습을 보면서 못 삽니다.”

하지만 내 이어진 말에는 13황자도 조금 반응이 왔다. 그가 진심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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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다. 원래는 버틸 만큼 버티다가 도주하려고 했는데. 황제의 측근이 되고 나면 도주도 쉽지 않다. 황제의 측근이 된 나를 13황자가 좋게 봐줄 리도 없고.

그렇다면 버티다가 황제가 폐위될 때 같이 죽느니, 지금 떠나는 게 나았다. 기반 닦인 게 없어서 떠나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앞길이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걸 알면서 여기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지.

내 이런 각오가 눈에 보이기라도 한 걸까. 13황자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좀 모호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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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자가 좋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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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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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른 여인과 혼인하면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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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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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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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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