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예쁘단 거야 아니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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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예쁘단 거야 아니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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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예쁘단 거야 아니란 거야
2022.08.01.
“13황자 전하와 요 대인은 천생연분은 확실합니다.”
천생연분이지만 혼인하지 말라니. 말이 안 맞는데?
“하지만 두 분 사이에 얽힌 한과 고리가 너무 많습니다. 두 분이 무사히 혼인해 금실 좋은 부부가 되려면 사십구재를 치러야 합니다.”
웬 사십구재? 의아한 말에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13황자만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황제가 머리가 아픈지 무뚝뚝하게 묻자 사주 전문가는 다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너무 난해한 사주라 신도 이 이상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하오나 분명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십구재를 지내야 한다니. 누군가 죽어야 맺어질 사주기라도 한단 뜻이냐.”
“그게 아니라-.”
황후가 버럭 외쳤다.
“그런 불길한 소리를 꺼내다니!”
황후는 화낼 만하지.
나와 13황자를 혼인시켜야 대신들 사이에서 우리 평판을 뚝 떨어뜨려서 황위에서 패대기칠 수 있는데, 혼담이 물 건너가면 다 소용없는 일 아닌가. 혹시 황제가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저러는 거다.
덕택에 사주 전문가만 가엾게 되었다. 본 대로 말했을 뿐인 사주 전문가는 얼어버린 표정으로 황후와 황제를 간절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조,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전하와 요 대인은 천생연분이긴 합니다. 두 분은 만겁을 건너서라도 만나실 연분이니까요.”
만겁을 지나서 죽고 죽이는 사이란 뜻 같은데. 나는 힐긋 제자를 보았다. 제자는 이 중에서 가장 태연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더라…… 제자가 내 사주를 안다고 한번 말한 거 같은데. 그래서인가?
사주 전문가는 그래도 황제의 표정이 펴지지 않자 얼른 덧붙였다.
“사실 아주 좋은 연이라고 말은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는 연분은 없습니다, 폐하. 장점이 더 큰 연과 단점이 더 큰 연이 있는 거지요. 하지만 좋은 쪽으로만 골라 알려주는 거지요. 신이 이번에는 폐하와 황후마마 앞이라고 너무 입방정을 떨었습니다.”
* * *
사주 전문가가 그로부터 반 각가량 열심히 입을 움직인 덕에 사주를 교환하는 의식은 무사히 끝이 났다.
하지만 황제는 찝찝한 구석이 남았는지 애매한 여지를 두고 이번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좋은 연분이라고는 하지만 무조건 진행하기에는 꺼림칙한 부분도 있군. 어차피 지금 정혼 하더라도 3황자 일로 혼례가 다 밀려 있어서 열셋째까지 순서가 돌아오려면 몇 해는 지나야 할 거다. 요요화와 13황자는 스승과 제자 사이이니, 옆에 붙어 있다 보면 좋은 연인지 악연인지 알 수 있겠지. 몇 해 더 지켜보고 정혼을 할지 말지 정하도록 하지.”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황제의 측근이 되지도 않으면서 계속 여기에 머물 수 있고, 13황자에게 잘 보일 시간도 벌 수 있으니까.
13황자 역시도 나쁘지 않을 거다. 회귀 전 그는 황제가 될 때까지도 혼인하지 않았지. 그는 복수와 황위가 중요하지 혼인에는 별 관심이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과 황후에게는 마냥 좋은 일은 아닐 거다.
황후는 13황자를 나와 혼인시켜서 대신들의 성토 대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몇 해 뒤로 밀려나니 싫을 거고.
우리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대로, 혼인할지 말지 모르는 상태로 몇 해나 다른 정혼도 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하니 싫으실 거다.
하지만 황제는 이미 사주 전문가의 발언으로 마음을 확고하게 굳힌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황후마저도.
“예, 폐하.”
결국, 모두가 입을 모아 순순히 대답했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내게 제안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요 이국사는 짐과 차나 마시고 가지.”
“?”
왜 결론이…… 나와 황제가 차 마시는 걸로?
* * *
왜 황제와 내가 차를 마셔야 하는 건진 모르겠으나, 황제가 오라기에 따라갔더니 정말로 송 태감이 차를 내왔다.
뭐지. 정혼을 못 하게 된 걸 위로라도 해주려는 건가? 그럴 거 같진 않은데. 내가 13황자를 사모한다고 애원하는데도 린화와 13황자를 맺어주려고 한 황제 아닌가.
영 찝찝하지만 황제가 주는 차를 거부할 수는 없기에, 후후 불면서 공손히 마시고 있으려니 황제가 말문을 열었다.
“네 말이 맞더구나.”
“예?”
“그 딱따구리 말이다.”
아. 운월에서 보낸 족자!
황제가 자기가 쥔 찻잔을 탁자에 쾅 소리가 나게 내려두며 평소보다 험악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딱따구리? 아주 웃기지도 않더군. 격일사 덕택에 아주 제대로 웃음거리가 됐을 거다.”
“폐하, 왜 그러시는지요?”
사정을 다 알지만 모르는 척 묻자 황제는 찻잔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벼루 던지듯 또 내던지는 건 아니겠지.
“여기 와 있는 태월 외무관이 족자를 보더니 뜻을 알려주더군. 이국사 말이 맞았어. 알맹이를 지우고 모양을 변경한 지도라지.”
나는 얼른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어차피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잠깐 잘못 안 것뿐이지 않습니까, 폐하.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지요.”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회귀 전의 정보로 황제가 이미 그 딱따구리 이야기를 서신에 적어 운월로 보낸 걸 아니까.
역시나. 황제는 내 말에 더욱 분노한 표정을 짓고서 말없이 차를 연거푸 마셨다. 이미 딱따구리 이야기를 여기저기 했단 말을 하고 싶진 않은가 보다.
나도 황제를 괜히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차만 마셨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묘하게 집요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보니, 황제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 시선이 몹시도 부담스러워서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황제가 더욱 부담스러운 말을 꺼냈다.
“역시 이국사는 아까워.”
아니, 아까워하지 마세요!
“좋게 보아주셔서 황송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입니다.”
나는 얼른 겸양하면서 찻잔을 들어 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찻잔을 내릴 때까지도 황제는 계속 날 보고 있었다.
설마 또다시 측근이 되니 어쩌니 할까 봐 부담스러워서 쩔쩔매기를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나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서 바라보니, 황제는 여전히 날 보고 있었다. 아이고. 왜 자꾸 쳐다보는 거지? 쳐다볼 거면 말이라도 하던가!
“곁에 두고 싶구나.”
아니, 역시 하지 않는 거로! 그냥 쳐다보기만 하는 쪽으로!
“신은 그런 과중한 책임을 질 역량이 없습니다, 폐하.”
나는 다급히 황제의 과찬을 거부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래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요요화. 경은 정말로 인재이다. 아직 연륜과 학식이 부족하지만 연륜 있고 학식 있는 대신들은 이미 짐에게 많지. 짐은 그대처럼 의리 있고 발상이 막히지 않은 새로운 인재를 곁에 두고 싶구나. 하지만 새는 하늘을 날아다녀야 가장 아름답겠지.”
“하하…….”
내가 새야? 왜 갑자기 새야? 13황자 옆에 있는 게 하늘이야? 황제의 말 흐름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
* * *
요요화가 ‘왜 갑자기 날 새로 비유하시지?’라고 의아해하며 떠난 뒤. 황제가 내내 만지작거리던 찻잔은 이후 불려온 격일사 옆의 바닥에서 깨졌다.
“멍청한 놈!”
황제의 호통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그러나 격일사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서 물었다.
“무슨 영문인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폐하?”
“딱따구리? 족자의 그림이 딱따구리라고? 그 멍청한 발언을 믿고 짐이 운월에 어떤 서신을 보냈는지 아느냐? 그 딱따구리 이야기를 했다.”
격일사는 거기까지 듣고서도 황제가 왜 화가 났는지 알아차렸다. 딱따구리가 아니었구나!
“태월 사신이 그러더구나. 그 그림은 딱따구리가 아니라 형태를 뭉뚱그린 우리 화음의 지도라고!”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태월 사신이 운월 황제의 속내를 어찌 알겠사옵니까.”
“운월 황제가 태월에도 자주 그런 그림을 보낸다더라!”
“…….”
격일사가 침묵하자 황제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갓 관직에 오른 이국사만도 못해서야.”
“!”
* * *
황제가 왜 나를 새에 비유한 걸까, 고심하면서 측문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뜻밖에도 길목에 선 제자가 보였다.
왜 저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공손히 인사하고 지나가려 했으나, 제자는 내가 목적이었는지 나를 붙들고 말했다.
“스승님. 제자와 얘기 좀 하시지요.”
거부권은 처음부터 없겠지. 게다가 몇 번이나 그에게 사모한다고 말해 놓고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공들여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저는 좋지요.”
“…….”
좋다는 데도 눈살을 찌푸린 제자는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휙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따라오라는 건가 보다.
제자가 멈춰선 곳은 월무궁 안이었다. 왜 여기까지 데려온 거지? 오늘은 수업 날도 아니잖아? 그게 의아해서 쳐다보자 제자가 내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턱을 들어 올린 채 내 눈을 빤히 내려다보며 물었다.
“부황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별 얘기 안 했습니다. 한데 턱은…… 왜 드시나요?”
“스승님 눈동자를 보려고요.”
“예뻐서요……?”
“아니요.”
아니래.
“스승님은 거짓말할 때 눈에 티가 납니다. 그래서 보는 겁니다.”
뭐? 진짜야? 한 번도 그런 소리 들은 적 없는데? 제자는 사람을 심장 떨리게 하는 말을 뱉어 놓고서는, 내 눈을 계속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래서요. 부황과 나눈 별 얘기 아닌 얘기가 무엇인지요.”
절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회귀 전 정보를 사용하고 온 거 아니던가. 하지만 제자의 말처럼 내가 거짓말을 할 때 눈에 티가 난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 거짓말 이야기가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족자 이야기를 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폐하께서는 제가 폐하의 측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어째서요?”
“폐하 말씀으로는 제가 의리도 있고 안목도 좋다고 하십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제자가 생전 처음 듣는 소리란 표정을 짓는 바람에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뭐야. 어느 부분이 그렇게 못 미더운데?
“왜요. 저 정도면 의리도 있고 안목도 좋은 게 맞지요.”
“글쎄요.”
“뭐, 그럼 전하는 제가 의리도 없고 안목도 없다 생각하십니까?”
“예.”
뭐야?
“스승님이 가진 것 중에 쓸만한 건 딱 하나뿐입니다.”
“그게 무엇인데요.”
“눈이요.”
“안목이요?”
“안구 말입니다.”
무슨 소리야? 의아해서 쳐다보고 있자니, 제자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 상태로 제자는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턱을 놓고서 가볍게 미소 지었다.
“스승님의 입은 언제나 거짓만을 담지요. 스승님의 심장은 아무에게나 뛰어대는 방정맞은 것입니다. 스승님은 마음까지 가벼우니 충신과는 거리가 머시지요. 스승님이 가진 것 중에 솔직하고 예쁜 건 눈동자뿐입니다.”
“아깐 눈도 안 예쁘다고 하셨는데요.”
놀라서 묻자 제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일그러지는지 알 수 없어서 쳐다보자, 제자는 고개를 젓더니 돌아서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