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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너무 좋지 않아? (49/159)


49화. 너무 좋지 않아?
2022.08.18.



 


“요린화. 돌았어?”

내가 당황해서 묻자마자 어머니가 내 다리를 찰싹 두드렸다. 린화는 흥 코웃음을 치고서 빈 의자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어찌나 호탕하게 앉던지 장군이라 불러줘야 할 기세였다.


“그래, 이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도 물었다.


“무슨 소리냐고요?”

린화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는 투로 되묻고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에요. 저는 아버지와 언니, 아니 오라버니가 모두 관직에 나가 있는데다 미혼이고 정혼자 없는 성인이잖아요. 폐하께서 후궁을 뽑으신다면 당연히 후보에 들어가요. 후보에 들어가니 후궁 선발에 참가하는 건 당연한 거죠.”

어머니는 듣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 철없는 것아, 후궁이 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기나 해?”

린화는 눈살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고생이라니요? 궁궐에서 궁녀들에게 시중받으며 편히 지내고 맛있는 거나 먹는 게 뭐가 고생인가요?”

어머니는 가슴을 퍽퍽 두드리다가 탁자를 펑펑 두드리며 외쳤다.


“후궁으로 들어가면 함부로 궁궐 밖에 나오지도 못해!”

“지금도 오라버니나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제가 뭐 여기저기 다니던가요? 명절이나 큰 행사 때나 조금 먼 곳에 가는 것뿐이잖아요. 후궁들도 그럴 때는 이동하곤 해요. 평소에 얼마나 멀리 다니며 산다고요. 제가 가끔 찾아가는 음식점보다 황궁 대화원이랑 후궁전 사이 거리가 더 멀어요.”

“후궁이 되면 어미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살 거다.”

“시집가도 마찬가지잖아요. 다른 집에서 살게 되면 명절 아니면 행사 아니면 가끔가다 뵐 텐데, 후궁이 되나 시집을 가나 똑같죠.”

어머니가 내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린화를 말로 이기기 힘드신가 보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와 린화의 싸움을 듣기만 하다가 슬쩍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내가 나서면 린화는 그 어떤 이유를 대도 더 반대로 가려 할걸요.’

린화가 턱을 치켜올렸다. 어머니가 밀리는 듯하고 나는 침묵하자, 보다 못한 아버지가 다시 나섰다.


“린화야. 아무래도 네가 이번 동초일에 황궁에 갔을 때 크게 오해를 한 모양이구나. 후궁들의 생활은 화려하다지만 껍데기뿐이다. 화려한 삶은 우리 가문의 재산으로도 충분히 영위할 수 있어. 가문에 힘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후궁이 되겠다면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넌 충분히 잘 지내고 있지 않니. 이미 충분히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지내는데 이보다 조금 더 화려하고 조금 더 좋은 음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조금 더 소용 있겠지요.”

“후궁의 삶은 살벌하단다. 그들은 너처럼 곱게 자라기만 한 순진한 규수가 아니야. 사내든 여인이든 궁궐에서 오래 지낼수록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계략을 쓰고 암계에 능하게 되지. 그런 이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겠느냐?”

“버티다 보면 저도 그들처럼 영리해지겠지요. 모두 저처럼 아무것도 모를 때 입궐해 살아남은 이들이니까요.”

“…….”

“제게는 힘 있는 가문과 강건한 부모님이 있는데 뭐가 무섭겠어요?”

쟤는 규방에서 입씨름만 연마했나.

아버지가 안 되겠는지 날 쳐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마디뿐이었다.


“쟤는 입궁해도 잘 살겠는데요?”

솔직한 감상인데 아버지는 버럭 호통쳤다.


“요요화!”

“농담이에요.”

나는 얼른 발뺌했다. 사실 진담이지만 굳이 여기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린화의 입담과 상관없이, 이 망아지의 입궐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왜냐. 훗날 내 제자가 황제를 폐위시키고 황제 자리에 오르니까.

그 과정에서 제자를 괴롭혔던 많은 황가의 사람들이 숙청당했다. 죽은 이도 있고 감옥에 갇힌 이도 있고 귀양 간 이도 있고 자택에 갇혀 살게 된 이도 있었다.

태월 장공주처럼 무난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도 있긴 했지만, 그 ‘무난한 결말’을 린화가 맞이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나도 네가 입궁하는 건 반대야, 요린화. 하지만 부모님과 이유는 달라. 난 네가 순진하거나 성질이 착해서 거기서 못 견딜 거라 생각하진 않아. 넌 충분히 성질머리가…… 알았어요. 착하다고 하면 되잖아요. 어머니가 너 착하단다 요린화. 하여튼 내가 반대하는 건 폐하 때문이야.”

궁궐 생활의 무서움과 부자유스러움에 대해 부모님이 이야기할 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린화가 웬일인지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뭐지? 황제한테 관심이 가나? 동초일에 황제를 유심히 보는 것 같더라니. 설마 황제 얼굴에 홀린 건가?

그런 일은 없긴 바란다. 차라리 입궁할 거면 야망에 차서 입궁하는 게 낫지. 사랑에 빠져 입궁하는 건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다 가시밭길을 가는 거니까.


“뭐야. 폐하가 왜. 왜 말을 하다 말아?”

“폐하는…… 우리 식구들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남편으로 두기 좋은 분은 아니야.”

린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반박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오라버니도 폐하를 뵌 건 몇 번 안 되잖아.”

“폐하를 뵌 게 네 번인데, 그중 한 번은 머리에 문진이 날아왔고 다른 한 번은 벼루가 날아왔어.”

“오라버니가 폐하를 화나게 했겠지.”

“다른 사람에게 들어보니 폐하는 화나면 뭘 던지시는 거 같더라. 요린화. 폐하가 너한테 화나서 코앞에서 찻잔이라도 던지면 어떡할래?”

“오라버니는 신하니까 던지신 거겠지. 나는 후궁으로 들어가는 거야. 폐하의 아내가 되는 거라고. 나한텐 그런 걸 던진 이유가 없어.”

“뭘 던지는 버릇을 떠나서도 폐하는 좋은 남편감이 아니야. 폐하는…… 여자가 너무 많아.”

“황제는 다 그래.”

“황제가 다 그런다고 해서 폐하가 좋은 남편감이 되는 건 아니잖아.”

“황제고 보통 이상 성품이고 그 얼굴이면 됐지 뭘 얼마나 더 대단해야 하는 거야?”

내 동생이 이렇게 현실과 타협을 잘하는 애였던가. 자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긍정적이었다고.

하지만 황제가 벼루를 던져도 좋고 여자를 좋아해도 좋다며 이렇게 나오고 있자니 뭐라고 더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린화의 눈빛이 점점 더 가라앉는 걸 보니, 내가 설득하면 설득할수록 더 입궐하고 싶어지나 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우선 자리를 떠났다.


“일단 좀 씻을게요.”

이후 내 거처로 돌아가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차를 마시면서 속을 좀 가라앉혔다.


“월강아. 린화가 돌아갔는지 살피고 와.”

“네, 도련님.”

이후 월강이를 본당에 보내 린화가 돌아갔는지 확인한 뒤, 돌아갔단 말을 듣고서야 다시 본당으로 가서 부모님에게 비장의 수를 넣었다.


“실은 제가 소문으로 듣기로 강권 난씨 가문에 균이란 청년이 린화랑 나이도 비슷하고 성실하고 영특하고 성품도 좋고 착하고 순한 데다가 가문 어른들도 성품이 어질어 시집가 지내기 아주 좋을 것 같다던대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난균이 대체 누군데 내가 이렇게 칭찬하는지 전혀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억울해라.’

난균은 회귀 전 린화의 남편으로, 내가 방금 난균에 대해 한 말은 회귀 전 아버지가 예비 사위를 자랑하면서 내게 퍼부은 말들이다. 그런데 난균에 대해 자랑을 퍼부은 아버지가 저런 표정을 하다니.


“그게 누구니?”

어머니가 대놓고 물었다. 나는 ‘아버지한테 여쭈어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누르고서 둘러댔다.


“건너 건너 소문으로 들은 청년이에요. 하지만 제가 직접 본 건 아니니까 아버지나 어머니가 찾아가서 어떤 청년인가 실제로 보세요. 그러고서 혼담을 넣을지 말지 결정하시면 되잖아요.”

부모님이 서로를 마주 쳐다보았다. 조금 흔들리는 눈치였다.

그렇겠지. 부모님은 린화가 입궁해서 화려한 가시밭길을 걸어가기보다는, 우리 가문의 목소리가 적당히 통할 만한 가문에 시집가서 평생 떵떵거리며 살길 바라실 테니까.

결국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았다. 너도 그런 쪽으론 소문이 밝지. 네가 동생과 매일 싸워대긴 해도 나쁜 혼담을 가져오진 않을 거라 생각하마. 아비가 한번 알아보마.”

“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제가 난균 이야기 꺼낸 건 린화한텐 절대로 말하지 마세요.”

“그러마.”

 

* * *



“아가씨. 아가씨.”

규방에 돌아온 린화가 목욕을 하고 긴 의자에 앉자, 측근 시비인 월미가 다가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부드럽게 문질러 말려주며 물었다.


“정말로 후궁이 되고 싶으세요?”

“그건 왜?”

“아가씨께서 후궁이 되시면 어릴 때부터 아가씨를 쭉 모셔온 저랑 월채랑 월우도 함께 입궁할 거잖아요. 그래서 궁금해서요.”

린화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일리가 있는 말이라 여겨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급하게 정혼자를 만들어서까지 후궁 선발을 피하고 싶지 않아. 나와 폐하 사이에 인연이 있다면 후궁으로 뽑히겠지. 뽑힐 수 있다면 후궁이 되고 싶어.”

월미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선안 도련님 때문에요……?”

선안과 혼인하지 못하게 된 린화가 포기조로 후궁이 되려는 건가,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반 정도는.”

린화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선안 오라버니와 혼인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후 미래를 생각해야지. 그렇다고 요씨 가문의 적녀인 내가 선안 오라버니 첩으로 들어갈 순 없잖아.”

“절대 안 되죠!”

“그러니까.”

린화는 월미에게 머리를 내맡긴 채 잠시 발끝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속삭였다.


“황궁에 갔을 때 우연히 폐하를 뵈었어. 겉으로 보기엔 나보다 열 살 정도밖에 안 많아 보이더라. 게다가 아주 잘생겼더라고. 목소리도 그윽하고.”

“폐하는 황태자 시절부터 외모로 유명하셨다잖아요.”

“그럴 만하더라고. 얼굴이 하늘에 피어난 달꽃 같았어.”

“하지만 외관상은 젊어도 아가씨보다 실제 나이가……”

“흥. 내 또래의 그저 그런 사내와 혼인하느니 나이 많은 절색의 미남과 혼인하는 게 나아. 게다가 그 절색의 미남은 최고 권력자이자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그런가요?”

린화는 팔짱을 끼고서 불만을 담아 창문 너머 언니의 거처를 노려보았다.


“이대로 있다가 얌전히 평범한 사내와 혼인해 봤자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겠어? 혼수로 재산이나 조금 떼어 받을 거고, 그걸 들고 우리 가문보다 못한 가문에 시집가서 무난하게 살아가겠지.”

“마님께서 가산의 반을 모두 아가씨 혼수로 주겠다 하셨잖아요?”

“가산의 반이라고 해도 진짜 반이겠어? 요씨 가문에 매인 재산이 있는데, 그걸 가문 사람들이 넘어가게 두고 보겠냐고.”

“아…….”

“게다가 월미야. 이상하지 않아? 나는 요씨 가문의 적녀인데 가문에서 아무 지위도 가지지 못해. 요요화가 관직에 올라 자기 이름과 가문을 떨칠 기회를 가질 동안 난 그저 조용하게 살아가기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내 가문에 힘을 발휘하고 싶어. 이 가문의 반은 내 몫이라고.”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걸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아. 후궁으로 들어가서 폐하의 총애를 얻고 권력을 얻을 거야. 폐하가 나와 국사를 논의하고 대신들이 내 아래로 숙이고 들어오게 만들겠어. 큰 자리를 노려볼 거야.”

“후궁 암투는 위험하대요, 아가씨.”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게다가 황후는 딸만 넷이야. 더 아이를 낳을 수도 없어. 하지만 1황자, 2황자는 군주 재목이 아니지. 학식이 뛰어나고 어질다는 3황자는 본인도 야망이 없고, 언제 죽을지 몰라 정혼도 못 하니 황제는 절대로 될 수 없어. 하지만 폐하는 젊고 건강하니 급사하지 않는 한 앞으로 삼십 년은 거뜬히 황위에 계시겠지. 후궁이 되어서 일이 년 내로 아들을 낳기만 하면 내 아이도 황위를 노려볼 수 있어.”

“아, 아가씨! 그런 말씀은 위험해요!”

월미가 사색이 되어 외쳤으나 린화는 느긋하게 웃었다.

월미는 거의 다 말린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겨주며 입을 다물었다. 무서워서 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린화는 맞은편 화장대에 놓인 거울을 빤히 바라보며, 황제가 자신을 보며 한 말을 떠올렸다.


 


‘나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어. 처음부터 나한테 관심이 있었단 뜻이야. 내가 후궁 선발에 나간다면 폐하는 분명 날 뽑을 거야. 그리고 날 총애하시겠지.’

린화의 눈이 번뜩이자 월미는 무섭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말했다.


“아이 성별이 마음대로 되진 않아요, 아가씨. 낳았는데 딸일 수도 있어요.”

“상관없어. 그렇더라도 폐하께서 보위에 있는 동안에 힘과 권력을 키울 수 있으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내 힘을 휘둘러 보고 싶어.”

“소가주님이랑 나리랑 마님 모두 반대하실 텐데요…….”

“걱정 없어. 내가 후궁이 되면 나와 요씨 가문은 한배를 탄 거나 다름없거든. 지금 반대해도 일단 후궁이 되기만 하면 부모님은 절대 무르지 못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니, 월미야?”

“아니요.”

린화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내가 후궁이 되면 요요화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어서 걜 손끝으로 부릴 수 있단 뜻이야. 너무 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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