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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덜 익은 과실 (105/159)


105화. 덜 익은 과실
2023.03.02.



 


“반역죄 증좌라니!”

반역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회귀 전에도 어머니 친정이 반역죄로 처벌받은 적은 없었다.


“정확히는 구씨 가문에서 나온 건 아니랍니다.”

깜짝이야.


“그럼?”

“마님의 둘째 올케, 그러니까 소가주님의 외숙모님 친정에 일이 터진 거지요. 그분의 오라비가 역심을 품었단 증좌가 발견되어서 그분이 끌려가셨답니다.”

수길 어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길 어멈은 어머니가 시집오면서 데려온 사람이었다. 즉, 여기 오기 전에는 먼저 구씨 가문에 있었던 사람이다. 당연히 수길 어멈도 구씨 가문에서 일이 생기면 덩달아 착잡할 터였다.


“그런데다 소가주님의 둘째 외숙부님은 이번에 문제가 된 그 손위처남과 아주 가깝게 지냈답니다. 자칫하면 불똥이 튀기 딱 좋은 위치지요. 그 때문에 지금 구씨 가문에서도 날카롭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나 봐요.”

관계가 없을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13황자에게서 나던 피 냄새가 떠오른다. 아니겠지?


“소가주님, 괜찮으세요?”

“옆방에 가 있을 테니 청정차 한 잔만 타다 줄래? 어차피 지금은 안에 들어가도 의원에게 방해만 될 거잖아.”

“예, 얼른 들어가 계세요.”

어머니가 있는 방의 옆방으로 들어가 탁자에 앉으면서 나는 회귀 전 기억과 내가 아는 여기저기 가계도를 샅샅이 뒤졌다.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없었던 거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까스로 실마리가 나왔다. 둘째 외숙모는 원비의 사촌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문제가 생겼다는 외숙모의 친정 오라비 역시 원비의 사촌이겠지. 그리고 회귀 전 원비의 친정이 반역죄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


‘시기가 너무 빨라.’

하지만 회귀 전에 원비의 친정이 반역죄에 연루되었긴 해도 그 건은 7황자가 사건을 친 다음에야 터졌다.

이 때문에 원비는 7황자를 가문 힘으로 보호할 수 없었고 결국 원비와 7황자 모두 우르르 무너졌지.


“소가주님. 이걸 좀 드세요.”

수길 어멈이 안으로 들어와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차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복도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갔다 와서 마실게.”

나는 수길 어멈에게 사과하고서 얼른 옆방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방 안에는 어머니가 침상에 앉아 있고 의원이 의료 도구가 든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떤가?”

다급히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며 묻자 의원이 상자 뚜껑을 닫고 일어나며 대답했다.


“놀라서 호흡을 과하게 하신 모양입니다. 지금은 진정되셨으니 처방해드린 약을 사흘 정도 마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수고했네.”

눈짓하자 수길 어멈이 돈을 꺼내 의원에게 내밀었다.

의원과 수길 어멈이 나가자마자 나는 얼른 침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이마를 손으로 짚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무…… 너무 걱정되는구나. 지금 올케 기분이 어떨지……. 게다가 오라버니는…….”

흐느끼던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물었다.


“어쩌지 요화야?”

“외숙모는 시집와서 구 씨 족보에 올라왔잖아요. 그쪽에서 큰일이 생기더라도 외숙모까지 처벌받진 않을 거예요.”

“네 둘째 외삼촌은 손위처남과 가깝게 지냈어. 반역죄에 같이 연루되지 않을까?”

“그럴 리가요. 친분이 있단 이유로 처벌받진 않아요. 조금…… 조사는 받을 수 있겠지만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벌을 받진 않을 테니 염려 마세요.”

“네 외숙모가 괜찮을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로서는 계속 어머니의 등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회귀 전에도 구씨 가문이 반역죄로 얽히진 않았으니 외숙모나 외삼촌에게까지 큰 불똥이 튀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좀 당혹스럽긴 하다. 이 일은 회귀 전 기준으로 삼 년이나 사 년쯤 후에나 있어야 했다.

게다가 당시 일이 터졌을 때 사건의 주축인 건 외숙모의 친정, 그러니까 원비의 사촌 쪽이 아니었다. 원비의 남동생이었다. 그래서 원비가 그 일로 치명타를 입었지.

그쪽이 주축이었기에 어머니 역시도 쓰러질 정도로 놀라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문제가 된 게 원비의 사촌이라니.


“그 문제 된 물건을 가지고 있던 건 외숙모 오라버니뿐인가요?”

“무슨 말이니?”

“그 오라버니가 자기 사촌이랑 같이 뭐 문제 될 일을 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역시 이상해. 원비 남동생이 겪을 풍파가 왜 원비 사촌에게서 터진 걸까.


‘제자가 한 짓인가? 하지만 제자가 했다 해도 이상해. 원비 사촌에게 문제가 생긴 정도로는 원비를 쳐내기엔 부족할 텐데. 왜 이걸 안 묵히고 지금 터트렸지?’

 

* * *



“좀 더 익힌 후에 터트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운귀가 화려의 찻잔에 차가운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

화려가 거두어들인 수하들은 그들이 자주 만나는 구상루 꼭대기 층에 함께 모여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화려는 하얀 찻잔에 차오르는 연한 초록색 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차피 7황자와 원비를 쳐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이 하나는 미리 사용해도 괜찮다.”

청양은 동그란 부채를 쉬지 않고 움직이며 운귀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그 건을 터트려봤자 원비에겐 아무 해도 없을 텐데요, 전하. 원비 오라비가 일을 쳐도 원비는 요령껏 방어할 사람이잖습니까. 그런데 사촌이 일을 쳤으니 원비는 그쪽과 선을 그어버리면 될 뿐입니다.”

화려의 측근들 모두 화려가 왜 기껏 잡은 정보를 이렇게 빨리 풀어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원비의 사촌과 동복 오라비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서로 잘 돕고 지냈다. 몇 년 뒤쯤이면 원비의 사촌은 원비의 오라비까지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지도 몰랐다.


“지금 터트려봤자 손해 보는 사람은 그 집안사람들뿐이겠군요.”

유동백이 혼자 차를 우아하게 홀짝이며 말했다.


“그렇지.”

화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동백은 그 옆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요 이국사의 외숙모가 그 집안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요 이국사에겐 해가 가지 않을까요?”

그냥 들으면 질문이었으나 얼핏 들으면 떠보는 말투였다.


“해를 크게 입지는 않겠지.”

화려는 입꼬리를 올리고서 창밖에서 시선을 뗐다.


“스승님 외가에 손해는 조금 갈 테지만. 그것도 신경 쓰일 정도에서 그칠 거다.”

그의 모습은 스승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13황자의 측근들은 말을 멈추고 서로를 힐긋거렸다. 원래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13황자였지만 스승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들은 스승의 가문이 손해를 입을 거라면서 웃는 13황자의 속내가 전혀 이해 가지 않았다.

* * *



“괜찮으시겠어요?”

사흘 뒤. 약을 먹지 않아도 되자 어머니는 바로 짐을 꾸리셨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네 외숙모는 안 괜찮을 거야. 가서 좀 챙겨야 해.”

“꼭 어머니가 가셔야 해요?”

“올케네는 분가해서 살고 있잖니. 올케도 정신이 없을 거고 네 외숙부는 외숙부대로 정신이 없을 텐데 가서 도울 게 있나 봐야지. 그 집은 아이들도 아직 어리잖니.”

어머니는 온갖 약재와 팔 만한 물건을 바리바리 챙겨서 마차에 실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네 어머니가 안 갔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는 내게만 작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땐데 혹시라도 갔다가 괜히 불똥이 튈까 염려되는구나.”

“괜찮을 거예요.”

“그러길 바라야지.”

짐을 다 싣자 어머니는 아버지 앞으로 다가와서 침착하게 말했다.


“우선은 사나흘 정도만 있다 올 거예요. 분위기를 보고, 내가 있는 게 더 정신 사나울 것 같으면 좀 더 빨리 돌아올게요.”

아버지는 표정을 관리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일은 하지 않도록 해요.”

“가족들을 보고 올 뿐인걸요.”

어머니와 수길 어멈이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가 고삐를 흔들었다.

마차가 천천히 대문 밖으로 빠져나가자 첫째 숙부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 할 시기에 바로 달려가다니. 형수님은 우리 가문보다 친정이 더 중요한가 봅니다.”

아버지가 눈을 흘기는데도 첫째 숙부는 거침없이 말했다.


“문제 될 거 같으면 지금이라도 빨리빨리 갈라서는 게 낫습니다, 형님.”

“그걸 말이라고 하나!”

둘이 또 한바탕 싸울 기미라서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괜찮을까요?”

내내 조용히 따라다니던 시비 월섬이 처소 근처에 가서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반역한 가문은 구족을 멸한다거나, 그런 말도 있잖아요. 혹시라도…….”

“실제로 그렇게까지 처벌하는 일은 없으니 안심해. 그게 가능하지도 않고.”

명문세가나 황실은 다 몇 다리를 건너면 친인척이었다. 옆으로 가면 다른 나라 왕실과도 얽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족을 멸했다간 살아남는 사람이 오히려 적을 터였다.

월섬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문을 열어주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 * *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하루 휴가를 청했기에 나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월무궁으로 갔다. 어쩌다 보니 제자의 생일 이후 나흘이 지나서야 그를 만나는 것이었다.

월무궁으로 들어가는 걸음은 몹시 무거웠다. 이번 사건에 13황자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꺼림칙한 구석은 있으니까.


“어머니는 좀 어떻습니까, 스승님?”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제자는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 내가 생일날 준 노란 꽃장식이 달린 비녀가 귀엽게 흔들거렸다.


“잘 어울리지요?”

내가 비녀를 쳐다보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비녀 끝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네요…….”

자리로 가서 앉자 제자는 서책을 펼치며 물었다.


“어머니 때문에 표정이 어두우신가요?”

“네. 좀 걱정돼서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내 서책을 꺼냈다. 지금 제자를 쳐다보면 지나치게 분석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서 일부로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책을 다 펼쳤는데도 제자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를 보아야 했다. 아무런 말이 없던 제자는 뜻밖에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스승님.”

눈이 마주치자 그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곁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말했다.


“어머님은 빨리 쾌차할 테니 염려 마시지요.”

월무궁으로 오며 들으니 궁인들은 모두 원비의 사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비의 사촌이 가지고 있었다던 ‘반역죄 증좌’가 무엇일까에 대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반역죄는 듣기만 해도 무서운 죄였다. 거기에 7황자의 친모인 원비 이름이 같이 얽히니 모두 그쪽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잡혀간 사람의 누이가 내 외숙모라는 데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자 역시 내 어머니가 아팠단 이야기만 신경 쓸 뿐 어머니가 그 일과 조금 관련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뭐. 직계 가족이 아니니 보통은 그렇겠지만…….


“스승님?”

제자가 조심스럽게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리며 불렀다.


“안색이 안 좋습니다. 어의를 부를까요?”

외숙모 이야기를 제자에게 하면 제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살짝 제자를 떠보면 그가 이 일과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실은 전하.”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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