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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시집오시면 좋을 텐데요 (106/159)


106화. 시집오시면 좋을 텐데요
2023.03.06.



 


“원비마마의 사촌이 무슨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가 체포되었다고 하잖아요. 들으셨어요?”

제자는 미세하게 웃었다.


“들었지요.”

“전하는 어찌 된 이야기인지 아세요?”

“글쎄요. 제자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아 잘 모르겠군요.”

거짓말쟁이. 제자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하고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데 그 얘기는 왜 물으시는지요? 스승님은 관심이 있는 모양입니다.”

“반역에 관련된 이야기잖아요. 단순히 정치 이야기만은 아니지요.”

“그런가요?”

“그리고 원비마마의 사촌이 제 외숙모의 오라버니여서요.”

“그렇군요.”

제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란 표정이었다.


“그러면 조금 염려되시겠습니다. 하지만 외숙모의 오라버니라면 스승님과 가까운 친척은 아닐 텐데요? 마음을 놓으시지요.”

……표정만 보아서는 쟤가 꿍꿍이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저야 그렇지요. 하지만 어머니한텐 올케 집안일이니까요. 사돈댁 일이고요.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듯했어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스승님의 어머니는 그 일 때문에 아팠나 봅니다.”

“네. 지금은 좀 괜찮아져서 친정에 가셨어요.”

제자는 서책을 펼치고는 산책하러 가자고 조르는 잘생긴 사냥개처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집안사에는 관심이 없으니 얼른 수업이나 하자는 표정이었다.


“별로 관심이 안 가시나 보네요.”

“스승님의 여동생이 반역죄에 연루되면 관심이 갔을 거랍니다. 하지만 스승님 외숙모의 오라비는 너무 거리가 멀군요.”

……저 새X랑은 정말 관련 없는 일인가? 회귀 전엔 제자가 휘두른 정보가 맞지만, 지금은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휘두른 정보인가? 그래서 굳이 이 시기에 터진 건가?

아니면 제자가 터뜨린 건 맞지만 터뜨리고 보니 내 먼 인척일 뿐이라 별 관심이 안 가는 건가?


“맞아요.”

나는 어쨌든 수긍하고서 수업을 시작했다.


“몇 쪽을 펼까요?”

“270쪽이요.”

“한데요 스승님.”

그런데 제자는 자기가 먼저 관심 없단 신호를 보내 놓고서는 막상 내가 책을 펼치자 갑자기 불렀다.

내가 쳐다보자 제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시기가 이런데 스승님 어머니가 친정에 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네?”

“이럴 때 문제 된 곳에 갔다가 혹시 억울한 일을 당하진 않을지…….”

뭐야. 저주야? 제자는 내가 입을 벌리고 멍하게 쳐다보자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럴 일은 없겠지요. 부황은 공정한 분이시니까요.”

“그럼요.”

“그래도 이런 상황에 바로 친정으로 가다니. 스승님의 어머니는 스승님보다 친정 식구들이 더 중한가 봅니다.”

나는 책장을 넘기다가 다시 제자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네?”

“동생에게도 밀리시더니…… 스승님. 밥은 잘 드시고 다니시지요?”

제자의 마지막 질문은 마치 내가 요씨 가문에서 천덕꾸러기가 아닌가 의심하는 투였다.


“당연하지요!”

기가 막혀서 바로 대답하자 제자는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얼른 책을 폈다.

뭐야…… 쟤 말을 왜 저렇게 기분 나쁘게 해?

* * *

외숙부와 외숙모를 살피러 간 어머니는 의외로 이틀 뒤에 돌아왔다. 게다가 혼자 돌아오신 것도 아니었다. 한가득 선물과 약재를 실어 갔던 마차는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내 외사촌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오라버니, 안녕. 아. 오라버니 아니라고 했지. 언니 안녕?”

“언니…….”

“요화 누나, 잘 지냈어?”

“형이라 불렀는데 누나라 하려니 이상하다. 옷은 왜 계속 남장이야?”

나는 두서없이 인사를 건네는 외사촌들을 보다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니, 짐은 그쪽으로 가져가거라. 그래.”

어머니는 하인에게 지시를 하고서 내게로 다가오더니, 외사촌 중 하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설명했다.


“외삼촌네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조사 때문에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계속 불려가는 상황이어서 데려왔어. 당분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낼 거야. 네가 잘 챙겨주어라, 요화야.”

어머니는 안쓰럽다는 듯 외사촌의 어깨를 두드리고서 수길 어멈에게로 갔다.

나는 당황해서 바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숙부가 데려온 사촌들이 다 모여 있는데 여기에 외사촌들까지 합류한다고?


“갑자기 와서 미안해 언니.”

외사촌 중 하나인 구우용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팔을 잡고 사과했다.


“아니. 괜찮아. 빈방도 많은걸.”

당혹스럽지만 이 애들에게 항의할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을 뿐이다.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하고서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수길 어멈과 함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어멈이 이쪽으로 다가와서 외사촌들에게 말했다.


“아가씨들, 도련님들. 이쪽으로 오세요. 우선 방에 짐부터 푼 다음에 쉬든가 놀든가 하는 게 좋겠어요. 많이 피곤하시지요?”

사촌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고서 어멈을 따라 이동했다.

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빠지게 있다가 시비인 월섬을 쳐다보았다.


“이래도 괜찮나?”

월섬은 내 질문에 쩔쩔매며 말했다.


“제게 물어보셔도 전 몰라요 소가주님.”

 

* * *

갑자기 어머니가 사촌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좀 놀라긴 했지만 나는 이후로는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사촌들은 손님용 전각에서 지낼 거였고 손님용 전각은 내 방과 뚝 떨어져 있었다.

숙부들이 데려온 사촌들도 얼굴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외사촌들도 그쪽에서 지내게 된다면 내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었다.


“소가주님, 소가주님.”

그런데 아침에 월섬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깨웠다.


“왜 그래?”

“창밖을 좀 보세요.”

월섬은 급하게 깨운 것치고는 목소리가 아주 작았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침상 끝으로 기어가서 창문에 내려놓은 발을 슬쩍 걷어 올렸다.

그러자 마당에서 바쁘게 짐을 옮기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외사촌 네 명과 그들을 따라온 시비, 유모, 사내종 등이었다.


“저게 뭐야?”

내가 놀라서 묻자 월섬은 내 귀에 대고서 속삭였다.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제 늦은 밤에 손님용 전각에서 싸움이 있었단 이야기는 들었어요. 요씨 도련님, 아가씨들이랑 구씨 도련님, 아가씨들이 싸우는 통에 시비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거든요.”

내 외사촌 형제들이랑 사촌 형제들이 싸웠다고? 그런데 왜 저 아이들이 여기로 온 거지?

멍하게 있자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월섬은 얼른 문가로 다가가 문을 열어 보았다.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은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는 잘 들려왔다.


“여기 요화 아가씨가 계신가요? 저는 요화 아가씨 외사촌 도련님과 아가씨들과 함께 온 유모입니다.”

“아가씨는 주무세요. 왜 그러세요? 아가씨는 더 주무셔야 하니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얘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월섬은 내가 놀랐을 거라고 여기는지 일부러 시간을 벌려 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란인가요?”

“요 나리의 조카분들과 마님의 조카분들이 싸우게 되어서요. 마님께서 도련님들은 린화 아가씨가 쓰던 전각으로 가고, 아가씨들은 요화 아가씨 전각에서 지내라고 하셨답니다.”

나는 머리가 아파서 이마를 짚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린화가 쓰던 전각이야 비어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내가 지내는 전각도 사촌들이랑 같이 쓰라고?


“우리 아가씨는 관료라 퇴궐해서도 늘 공부하세요. 입궐도 빨리 하시구요. 그런데 여기서 같이 지내신다고요?”

월섬은 내 속내를 대변하듯 딱딱하게 물었다.


“미안해요, 소저. 하지만 우리 아가씨들은 아주 조용하니 크게 방해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아가씨들을 좀 가엾게 여겨주세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급하게 집에서 떠나야 했답니다. 다들 부모님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세요.”

유모가 떠나자 월섬이 문을 닫고서 내게로 다가왔다.


“들으셨어요, 소가주님?”

“응.”

“괜찮을까요? 사정은 딱하지만…… 이미 손님용 전각에서 한 차례 싸웠을 정도면 조용히 지내는 분들은 아닐 것 같은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착한 애들은 맞아.”

하지만 내내 남장하고 지낸 터라 사촌 자매들과 어울린 건 린화였지 내가 아니었다. 아예 모르고 지낸 건 아니지만 같은 전각에서 머무른 적은 없는지라 같이 지내기 괜찮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일단 지켜보자.”

 

* * *

하지만 나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아서 일찍 씻고 의복을 갈아입었다. 그러고서 식사를 하려는데 누군가 문을 또 두드렸다.

월섬이 문을 열자 이번에는 외사촌인 구우용이 직접 서 있었다. 둘째 외숙부의 서녀인 구수희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니?”

당황스럽지만 웃으면서 묻자 구우용은 얼른 달려와서는 내 옷자락을 잡고 물었다.


“언니. 언니랑 같이 밥 먹어도 돼?”

“어…… 상관은 없긴 한데.”

“그럼 같이 먹어. 혼자 있으려니 무서워.”

식사를 마치고 문안에 가려는데 구우용은 이번에도 다급히 따라오며 물었다.


“언니. 나도 같이 가. 나도 고모랑 고모부께 인사드리고 싶어.”

“어…… 그래.”

“기다려야 해. 잠시만. 빨리 올게.”

구우용은 몇 번이나 당부하고서 옆방으로 달려가더니 정말로 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머니가 왜 가엾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은 태도였다.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린화만큼 밝은 아이였는데. 주눅 들어서 눈치를 보는 모습이 확실히 가여웠다.


“가는 김에 수희도 데려가는 게 낫지 않아?”

하지만 두 명이 내 방 옆에 있는데 하나만 데려가기가 뭐해서 묻자 구우용은 시무룩해서 대답했다.


“걔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

아무래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아이가 구수희인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우용이만 데리고서 내당으로 갔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아이들을 입양 하자니요!”

하지만 내당 앞에 가자마자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될 게 뭐가 있나요!”

이어서 어머니가 고함치는 소리가 나자 구우용은 놀라서 내 팔을 잡고 몸을 뒤로 뺐다.


“우용이를 데려가라.”

나는 따라온 우용이의 유모에게 말하고서 방 안으로 혼자 들어갔다.

아버지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고 나를 돌아보았다.


“요화냐.”

“밖으로 소리가 다 들려요.”

아버지는 내 말에 민망한 듯 콧등을 문지르고서 의자에 앉았다.

어머니는 손수건을 움켜잡고서 아버지를 노려보다가 머리를 저었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묻자마자 아버지는 기다렸던 것처럼 바로 말했다.


“네 어머니가 네 외숙부 부부가 반역죄에 연루되면 아이들까지 위험해지니 아이 넷 중 여아 하나와 남아 하나는 우리가 입양하면 안 되는지 묻는구나. 네 동생으로 말이다!”

어머니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외쳤다.


“말이 입양이지 데려와 기르자는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그 애들은 다 계례를 마쳤으니 말썽을 부릴 일도 없어요. 가산을 물려줄 것도 아니고, 일이 잘 풀리면 다들 자기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그 애들은 아무 죄도 없이 죽거나 노비가 돼요. 그래도 괜찮아요? 당신 조카라면 당신이 지금 이렇게 나오겠어요?”

아버지 역시 어머니에게 바로 반박했다.


“일이 잘 풀리면 아무 문제 없지요. 하지만 일이 안 풀리면요? 그 아이들을 우리 족보에 올렸다가 불똥이 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습니까?”

“다 큰 딸이 시집가도 친정에 일이 생기면 처벌받지 않아요. 미혼인 아이들을 다른 가문에 입양 보내는 거니 당연히 불똥이 튀지 않을 거예요.”

“린화는 입궁해 후궁이 되었고 요화도 황자비가 될 몸이에요. 우리는 반역이니 뭐니 하는 일에 아예 얽히지 않아야 한단 말입니다!”

“안 얽혀 있잖아요! 게다가 나는 지금 당신 동생 셋과 그 식솔들까지 모두 다 보살펴 챙기고 있어요. 당신 동생이 우리 요화에게 시비를 걸어도 좋게좋게 넘기고 있다고요! 내가 당신에게 쓴소리 한 번 하던가요?”

“그건 다르지요! 내 조카들은 반역죄에 연루되지 않았잖아요!”

“내 조카들을 내보내려면 당신 조카들과 동생들도 내보내야 할 거예요!”

 


* * *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이마를 감싸고 있다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제자가 곁으로 다가오더니 내 이마 반쪽에 자기 손을 얹었다.


“열은 안 나는데요.”

어제부터 부모님이 입양을 하니 마니, 네 조카 내 조카 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자지도 못했더니 수업 도중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송구합니다.”

나는 얼른 사죄하고서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잠을 떨쳐냈다.


“이제 괜찮아요.”

하지만 제자는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 팔목을 가볍게 문지르며 한탄했다.


“아직도 집안일 때문에 머리가 아프신가 봅니다. 스승님이 힘들어하시니 이 제자도 가슴이 아프네요.”

빈말도 참.


“차라리 빨리 스승님이 제게 시집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시끄러운 곳에서 떨어질 수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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