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꼬리 잡는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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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꼬리 잡는 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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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꼬리 잡는 스승과 제자
2023.03.13.
어린아이들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에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다 컸지만 나도 곤혹스럽다. 아니 뭐 이런 걸 물어보시는 거지?
숙부와 사촌들이 모두 내 쪽을 쳐다보았다. 한쪽을 편드는 순간 다른 한쪽에겐 완전히 대역죄인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먼저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한쪽을 편드는 대신 일부러 느린 어조로 물었다.
“물어보거라.”
내가 어머니를 보며 물었기 때문에 대답도 어머니가 했다. 어머니는 내가 편들기 위해 자신을 보는 건지 편을 안 들려고 보는 건지 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입양 문제는 왜 갑자기 꺼내신 거예요?”
“네 외숙부 집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 이야기 하는 걸 들었거든. 예전에 반역죄 때문에 일가가 몰살당했는데, 시집간 딸이랑 입양 보낸 자식들은 무사했대.”
“아. 그렇군요.”
“이게 중요하니?”
어머니가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아버지를 편들 준비를 한다고 여기게 된 듯했다.
“아주 중요한 건 아닌데요. 어머니,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시집간 딸’ 입장이 지금은 외숙모인 거잖아요?”
“!”
“그럼 이미 외숙모네 집은 반역죄에 엮일 일이 없단 거 아닐까요?”
아버지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지!”
어머니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 지금 아버지를 편드는 거니?”
몹시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거기에 대한 진짜 답은 ‘아니오’다. 반대로 아버지가 숙부네 아이들로 이랬어도 같은 이야기를 했을 테니까.
“아버지를 편드는 게 아니에요, 어머니. 나중에 외숙부네가 정말 위험해지면 도와야지요. 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단 거예요.”
“안전하게 가는 게 뭐가 나쁘다고!”
“그렇죠. 하지만 아이들 처지에서 봐도 좀 그렇잖아요. 넷 중 둘을 입양하자고 하셨는데, 누구를 입양할지는 생각해 두셨어요?”
“아직.”
“그럼 어머니. 누구를 입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세요? 어머니 말처럼 진짜로 위험한 상황이 되면 우리가 입양한 아이 둘만 사는 거고 나머지 둘은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누구를 살릴 거예요?”
“!”
어머니의 눈이 커다래졌다. 조카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해 둔 아이가 있더라도 조카들 앞에서 그 말을 꺼내긴 힘들 것이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넷 중 둘만 구하는 것도 이상해요. 정말로 긴급하면 넷 모두 입양해야지요.”
대화를 듣던 첫째 숙부가 눈치 없이 끼어들어 외쳤다.
“그래. 형수님, 둘만 입양하자고 하는 것도 사실은 넷 모두 입양할 만큼 사태가 심각하진 않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닐 거예요.”
숙부가 우리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 건 싫었기에 나는 얼른 끼어들어 반박했다.
그리고 첫째 숙부가 더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어머니에게 말했다.
“우리가 둘을 골라 입양하면 아이들 사이에 의도 상할 거예요, 어머니. 걱정스러운 건 알겠지만 좀 더 지켜봐요.”
어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네 아버지가 널 아주 잘 키웠구나.”
나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잔소리했다.
“아버지도 너무하셨어요. 어머니는 ‘숙부들’ 일로 계속 힘드셨잖아요. 숙부들 때문에 집에 언관도 다녀갔고요. 그런 상황에서 일이 터졌으니 어머니는 당연히 조급하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죠. 그런데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하시면 어떡해요?”
“네 어머니가 널 아주 잘 키웠구나.”
싸우기는 둘이 싸워 놓고서 왜 날 두고 빈정거리는지 모르겠다.
“두 분이 절 잘 키워 주셔서 다행이네요.”
하지만 제자에게 내내 받는 게 비꼼이었다. 나는 흥분하지 않고 대답한 다음 그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잘하셨어요.”
수길 어멈은 문간 뒤에 서 있다가 나를 쫓아오며 말했다.
“수길댁이 어머니한테 말 좀 잘해줘.”
“그럼요. 마님은 제가 잘 달래드릴게요.”
수길 어멈이 문 안쪽을 살피며 말하고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내 방으로 가려다가 급히 수길 어멈을 붙들었다.
“잠시만. 수길댁. 뭐 하나만 물어볼게.”
나는 수길 어멈을 잡고서 싸움판이 벌어진 곳에서 좀 떨어진 장소까지 걸어갔다.
“왜 그러세요?”
수길 어멈은 따라오긴 했지만 영 의아한 듯했다.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단단히 확인한 다음에야 물었다.
“수길 어멈은 어머니를 따라갔다 왔잖아. 외숙부댁에.”
“그랬지요.”
“어머니가 외숙부댁에서 입양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혹시 누가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아?”
수길 어멈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대답했다.
“다들 그 화제로 이야기를 해서…… 하지만 제일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거기서 일하는 어느 어멈이었습니다.”
“누군데?”
“소인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요.”
수길 어멈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면 옛날부터 그 집에 있던 사람은 아니란 거겠네.
그래도 주기적으로 어머니는 외숙부들 집에 방문했고, 그때마다 수길 어멈이 동행했으니 말이다.
‘의심스러워.’
“왜 그러세요, 소가주님?”
“걸리는 게 있어서.”
“그 어멈이 혹시 문제 있는 사람이라 여기시나요? 하지만 평범한 아낙이었는걸요? 얼마나 살림을 잘하던지 모릅니다.”
“알았어. 그럼 수길댁은 우리 어머니 좀 잘 부탁해.”
수길 어멈이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걸 보다가 나는 내 처소로 돌아가는 대신 집 밖으로 나갔다.
내가 찾아간 건 외숙부 집이었다.
외숙부 집안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뉘십니까?”
대문 앞에 선 문지기에게 우리 집 패를 보여주자 문지기는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외숙부나 외숙모를 찾는 대신 바로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 앞마당 평상에 찬모와 시비, 어멈 등이 걸터앉아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그러다 내가 불쑥 나타나자 그들 중 누군가 놀라며 일어섰다.
“도령은 뉘신 데 여길 오십니까?”
일어선 어멈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우리 나리 누이동생네 애기씨야.”
내 얼굴을 아는 어멈이 깔깔 웃으며 말하자 낯선 어멈은 그제야 제자리에 앉았다.
“아이고 난 웬 훤칠한 사내가 갑자기 나타나기에 이게 무슨 횡재인가 했소.”
낯선 어멈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주위 어멈들이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중 낯선 얼굴은 저 어멈뿐이었는데, 그녀는 수길 어멈의 말처럼 평범하고 사람 좋은 아낙으로 보였다.
“애기씨, 무슨 일로 오셨어요?”
본가에 있다가 외삼촌을 따라 분가했다는 어멈이 앞치마에 손을 닦고 일어나며 물었다.
“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뭐든 물어보셔요. 우리 도련님이랑 아가씨들은 잘 계시고요?”
“응. 잘 있어. 저기 있잖아. 어머니가 입양 이야기를 꺼내시던데.”
나는 말을 일부러 또박또박하면서 낯선 어멈을 살폈다.
낯선 어멈은 떠들던 걸 멈추고 이쪽으로 귀를 향하고 있었다.
“혹시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구야? 어머니가 여기서 그 얘기를 들었다 하셨거든.”
“아 그게…….”
어멈이 대답해주려는데 낯선 어멈이 벌떡 일어나더니 바구니를 챙기고 횡설수설하며 어딘가로 가버렸다.
‘역시 수상해.’
저렇게 넉살 좋은 사람이 그냥 이런 질문 하나에 자리를 피한다고?
“어디 가요?”
시비가 물었지만 그 낯선 어멈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만.”
나는 부엌 안으로 들어가 그녀 뒤를 쫓아갔다. 낯선 어멈은 부엌 뒷문으로 빠져나가 좁은 골목길을 뛰듯이 걷고 있었다.
“잠시만!”
내가 뒤에서 외치자 그녀는 아예 더 뛰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내어서 얼른 낯선 어멈을 따라잡았다.
“아이고!”
내가 그녀가 허리에 매어둔 앞치마 끈을 붙잡자 낯선 어멈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아이고 내 심장이야!”
“왜 도망가나?”
끈을 놓으며 묻자 낯선 어멈은 심장 부근에 손을 올리고 헐떡이다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누가 도망쳤다고요!”
“그럼 다행이네. 물어볼 게 있어서 왔거든.”
낯선 어멈은 다시 달아나려 했으나 내가 앞치마 끈을 다시 붙잡자 결국 뒤로 돌아왔다.
“뭘 물어보려고 이리 사람을 핍박합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이제부터 할게. 저기, 어머니가 외사촌들 입양 문제를 꺼내서 내가 많이 놀랐네. 범죄자 자식들은 함부로 입양하면 안 되거든.”
나는 이 어멈에게 법에 대해 잘 아는 친인척이 없기를 바라며 멋대로 둘러댔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일을 여기 어멈에게 들었다고 하길래 찾아온 거네. 어머니를 설득해서 범죄자 자식들을 빼돌리려고 시도한 거잖아? 누가 그런 대범한 짓을 했는지 봐두러 왔네.”
내가 말을 멈추자 어멈이 덜덜 떨다가 물었다.
“봐, 봐서 뭐 하려고요?”
“일이 꼬이면 신고하려고.”
어멈이 비틀거렸다. 다행히 내 말을 믿는 듯했다.
“나 아니에요!”
어멈은 대번에 실토했다.
“그냥 누가 그랬습니다. 나리 형제자매가 왔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 겁니다.”
“그냥 한 거 아니지? 뭐 돈 같은 거 받은 거 아닌가?”
“아이고!”
돈까지 오고 갔다니 더욱 수상하네.
“그럼 누구한테 돈을 받았는지 알려주게. 그래야 어멈이 아니라 그 사람을 신고하지.”
“나도 모릅니다. 그냥 까만 옷에 까만 삿갓 쓰고 왔는걸요.”
“그런 수상쩍은 사람의 돈을 받았다고?”
“아 잠깐 얼굴이야 보여줬지요. 하지만 그냥 무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얼굴이 아니에요. 위협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나는 두려워하는 어멈에게 ‘다행히 일이 잘 풀려가고 있으니 신고할 일이 없긴 할 거다’고 말한 뒤 그 자리를 떠났다.
입양 제안을 했단 이유로 처벌하는 법은 없다. 당연히 저 어멈이 그걸로 처벌받을 일도 없다.
나는 골목길을 서성이다가 근처 찻집에 들어가 차를 시켰다.
‘……제자가 수상해.’
증거는 없다. 하지만 회귀 전 이 사건을 쥐고 있던 건 제자였다. 당연히 그 녀석이 제일 수상했다. 그 일이 터지고 나자 갑자기 구미호처럼 살랑거리던 것도 의심스럽고.
‘하지만 제자가 한 일이라고 해도 대체 목적이 뭐지?’
우리 어머니가 조카를 양자로 들이는 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라고?
‘어쨌든 못 믿을 인간이야.’
하지만 항의할 수도 없었다. 제자는 지금은 그냥 우리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정도로 끝냈다.
하지만 제자의 솜씨면 외가를 시끄러운 수준이 아니라 진짜 반역죄에 얽히게 조작할 수도 있었다.
“차 나왔습니다.”
차를 마시면서도 나는 계속 제자에 대해 생각하다가 회귀 전, 제자가 터트린 그 반역 증좌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보았다.
황제들에 대한 정보가 기록된 예언서라고 들었다. 그 책이 만들어진 시점을 시작으로 미래 황제들에 관해 적은 책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누가 황제가 될지 적중률이 높다 보니 화음의 황제들은 누가 그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반역으로 처리했다.
원비 가문도 그 책 때문에 반역죄에 연루되었다가 나중에 7황자가 죽고 원비가 냉궁에 간 다음에야 ‘책 예언이 틀렸단 증좌들’을 제출하고 황제의 진노를 가라앉혔다.
그 증좌를 가져온 게 원비 가문의 서출 남매였는데, 원비 가문이 죄를 씻어냈을 때는 적출들은 이미 다 죽거나 노비로 팔려 간 후였기에 결국 가문은 그 서출 남매의 손에 떨어졌다.
하지만 원비의 오라비가 투옥되었을 때 이미 그 증좌 존재에 대해 알리면서 ‘어디 어디에 있다’고까지 말했다.
심지어 그 증좌를 어디서 구했는지까지 줄줄이 이야기했다. 서출 남매가 나서기 전까지 그가 말하는 곳 어디에서도 증좌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처형당했지만.
어쨌든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 남매가 일부러 증좌를 숨겨두고 있다가 적출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내놓은 거라고 의심했다.
‘당시에 13황자는 그 증좌 존재에 대해 몰랐어. 그렇다면 내가 그 증좌를 가져와야겠다. 그게 있으면 황제의 분노도 가라앉을 거고, 어머니도 지금처럼 불안해하지 않겠지. 부모님도 다시 화해하게 될 거야.’
나는 남은 차를 한입에 털어놓고서 찻집 밖으로 나가 말을 빌렸다.
회귀 전에는 제자가 그 증좌에 대해 몰랐다. 하지만 회귀 전 기억이 있으니 제자가 지금은 그 증좌에 대해 알고 가져오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자가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가져와야 해.
* * *
“수석현 금누촌에 가면 작은 책방이 하나 있을 거다.”
“예, 전하.”
“그곳에 있는 서적을 모두 구매해라. 그리고 혹시 그곳에 스승님이 오지 않나 살피거라.”
주군이 또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
청양은 화려의 지시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