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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성질머리도 수리할 수 있나요 (136/159)


136화. 성질머리도 수리할 수 있나요
2023.06.19.



 


“아니, 그쪽으로 옮기면 안 되지! 옆으로! 옆으로!”

“뭐 하는 건가! 그 옆이 아니라니까!”

신년일 휴가를 끝내고 궁전에 돌아와 보니 교비의 거처인 백부궁 옆이 소란스러웠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팔을 걷어붙인 인부들이 커다란 목재를 이리저리 쌓으면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건물을 수리하는 것 같은데.

월무궁에 도착해 제자에게 물어보니, 제자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투로 설명해주었다.


“셋째 형님을 건너뛸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넷째 누님 혼례 준비를 시작하는 겁니다.”

“아. 그래서 교비 마마 거처 옆을 수리하고 있었군요.”

“혼례를 치르면 넷째 누님은 거기서 지낼 겁니다.”

제자는 설명하다가 괜히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왜요?”

“스승님은 저와 혼인하여도 여기서 지내게 되실 겁니다. 월무궁은 어차피 제자 혼자 쓰니까요.”

“아직 소신과 전하 혼례는 멀었는걸요.”

“이삼 년은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갑니다.”

그렇지.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간다. 회귀하고서 충격받은 게 엊그제 일 같은데. 별거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 신년일이 지나갔다.

그런데 나와 제자 사이는 그리 발전이 없는 듯하고…… 원치 않는 황제 폐하 총애만 받게 되고…….


“스승님. 수업하시지요.”

 

* * *

수업이 끝난 뒤 평소처럼 대문 밖으로 나오려는데, 며칠 전 제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 혼례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리하려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는 말 말이다.

나는 뒷걸음질 쳐서 정원 중앙으로 갔다.


“와.”

일 년 가까지 새로 다니면서 익숙해져 몰랐는데. 정신을 바짝 자리고 다시 보니까 월무궁은 진짜 엉망이구나. 꼭 제자의 마음 씀씀이처럼 황폐하네.


“수리하려고 보시는지요?”

마침 제자도 서재 밖으로 나오다가 날 발견했는지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수리하려고 보긴 보는데요…… 너무 엉망이에요 전하.”

“스승님이 손 보면 좋아지겠지요.”

“송구하지만 전하. 저도 집 안을 가꾸는 데는 영 재주가 없어요. 린화는 배웠지만 저는 학문만 익혔거든요.”

“그냥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형식이 좋겠다 정도로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스승님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수리하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좋긴 할 텐데. 저절로 시선이 궁인들이 기거하는 거처로 돌아갔다.

내가 제자랑 정혼 하게 되면서 반짝 열심히 일하던 제자의 태감들은 별일 없다 싶자 다시 땡땡이를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여기 궁인을 만난 게 보름 전이던가.


“하지만 전하 태감이나 궁녀들은 제대로 일을 안 하잖아요. 뭐 뭐 고치라고 시작하면 해둘까요?”

“하기야 하겠지요.”

그럴 리가.


“전하. 한번 궁인들을 혼내고 말을 잘 들으라 명령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자가 뜻이 있어서 놓아두는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자는 나를 힐긋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덧붙였다.


“스승님이 시집오기 전에는 괜찮아질 테니 염려 놓으시지요.”

제자가 왜 굳이 궁인들을 풀어두는지 아는 안다. 몰래 세력을 키워야 하니 궁인들이 열심히 일하면 숨기기 귀찮아서 저러는 거다.

게다가 궁인들을 방치해두면 그들을 회유할 사람이 생기게 된다. 회귀 전에도 제자는 궁인들이 배신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회유한 사람과 궁인들을 한 번에 쳐냈다.


“제게 말해주시면 제자가 알아서 준비해두겠습니다. 염려 놓으시지요.”

내가 영 떨떠름해 보이는지 제자가 한 번 더 말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구멍 난 지붕을 쳐다보고 있자니 영…….

* * *

제자는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지만 제자에게 믿을 구석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제자가 외출한 사이 제자 방을 제외한 월무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당장 전각을 보수하고 수리하는 데 필요한 물품들을 대충 적어넣었다. 이름을 모르면 ‘어디 어디에 쓰는 용도’라고 적었다.

아무리 달아날 거라지만 그래도 혼례를 올리고 몇 달은 여기서 머물게 될 건데. 구멍이 숭숭 뚫린 방에서 지낼 수는 없지.

제자 방은 구멍이 없지만 제자 방에서 지내는 건 더 안 될 일이고!

그렇게 해서 완성한 물건 목록을 들고서 나는 직접 내무부로 갔다. 물건을 구해서 창고에 쌓아두면 궁인들이 느린 속도로라도 수리할 수 있겠지.


“요 이국사님……?”

내무부 안으로 들어가자 태감 하나가 나를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맞네.”

내가 수긍하자 태감은 펄쩍 뛰더니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고 요 대인! 요 대인이 여기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평소 대인을 여기서 뵐 일이 없으니 깜짝 놀랐습니다.”

“이 물건들을 구하고 싶어서. 금액은 어, 월무궁에서 빼면 될 거네.”

“하하…….”

내가 목록을 꺼내 내밀자 태감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 웃는 소리가 아주 가식적인 것이 무척 곤란해 보였다.


“왜 그러나?”

“요 대인. 월무궁에 배정된 돈은 거의 없습니다.”

“없다고? 어디 썼는데?”

“그야 소신도 모르지요.”

“…….”

궁인들이 빼돌렸거나 내무부 태감들이 빼돌렸거나 아니면 후궁이나 황후 아랫사람이 빼돌렸거나. 하여튼 범인으로 짐작되는 이들이 아주 많은 상황이네.

월무궁 궁인들은 일하지 않기로 유명하고 제자 역시 굳이 자기 궁전 일에 신경 쓰지 않으니 다들 월무궁에 배정된 돈을 이리저리 빼서 썼나 보다.

황후는 제자를 싫어하니 돈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확인하지 않았을 테고.


“장부를 보여줄 수 있나?”

“송구합니다, 대인. 대인이 월무궁의 주인이 되시면 얼마든 가능하시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정혼녀 신분이니 그러긴 힘듭니다.”

“그런가.”

근처의 태감과 궁녀들이 이쪽을 힐긋거린다. 어쩔 수 없나.


“그럼 이 물건들을 구한 다음 금액은 월무궁에 청구하게. 내가 사비로 계산하지.”

“예. 그러겠습니다.”

태감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가 내민 종이를 가져갔다.


“여기 써오신 물건들을 드리면 되는 거지요?”

“맞아. 월무궁으로 바로 옮겨주게.”

“양월청은 세 개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괜찮네.”

그런데 태감이 종이를 들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그 양월청은 나도 필요한데.”

근처에서 나를 계속 힐긋거리던 궁녀 한 명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누군가 싶어 쳐다보니 어디서 만난 듯한 궁녀였다. 누구더라.


“1황자비께서도 양월청을 찾으십니까?”

태감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세 개 다 필요하네.”

태감이 쩔쩔매면서 나와 1황자비 궁녀를 번갈아 보았다. 굳이 이런 일로 싸울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나는 일부러 먼저 나섰다.


“그럼 이 궁녀에게 주게. 나는 급한 게 아니니까.”

이미 1황자비는 나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더 틀어질 필요는 없겠지.


“감사합니다, 대인. 참 마음이 너그러우시네요.”

다행히 궁녀도 내가 시비 걸리는 걸 피하자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태감이 봉투를 건네자 궁녀는 그걸 들고 쏙 내무부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나도 태감들이 물건을 잘 챙기는 걸 확인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월무궁에 제대로 가져다 두는지 보고 가야겠지?’

그러고서 월무궁으로 걸어갈 때였다. 1황자비 궁녀가 길목 부근에 서 있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러 기다렸나?’

미소가 좀 찝찝하긴 하지만 좋게 해석하려는 순간. 궁녀는 들고 있던 양월청 봉투를 바닥으로 엎어 버렸다. 봉투에서 쏟아진 양월청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흩어져 흙과 뒤섞였다.


‘미쳤나?’

뭐 하나 싶어서 쳐다보자 궁녀가 다시 한번 방긋 웃더니 휙 돌아서서 걸어갔다.

와…… 저거 지금 일부러 내가 양보해준 물건을 버리고 간 거야?

그 모습에 잠깐 욱하는 기분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생각해보니 1황자 부부는 훗날에 제자 손에 좋지 못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던가. 윗선이 그런데 그 밑의 궁인들이 무사할 수가 없었다.

그걸 생각하자 저 궁녀 목숨도 어차피 몇 년 안 남았단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싹 가라앉았다.

그래…… 열심히 살겠다는데 그냥 그러라고 하자.

* * *

13황자와 요요화 때문에 1황자비는 자식을 빼앗기고 늘 슬프게 지냈다.

이에 궁녀는 일부러 요요화에게 시비를 걸었다. 거기에 요요화가 화를 낸다면 바로 1황자비와 엮어서 그녀가 1황자비를 모욕하기 위해 자신을 괴롭혔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요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 비굴하게 굴었다. 아쉽지만 거기에 만족했던 궁녀는 요요화가 이후 몹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선을 보내는 걸 발견했다. 그건 궁녀가 받아본 시선 중 제일 기분 나쁜 시선이었다.

화가 난 궁녀는 1황자비에게 돌아가자마자 이 일을 털어놓았다.


“제가 1황자비 전하의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대놓고 비웃었습니다. 정말 못된 사람이에요. 소황자님이 자기 때문에 그 꼴을 당했는데도 안타까워하는 기색조차 없어요.”

1황자비는 궁녀의 말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다. 요요화는 먼저 나서서 시비를 거는 성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13황자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리고 13황자는 자신의 정혼녀인 요요화를 몹시 좋아하는 것 같았다.

* * *

월무궁에 가서 대기하고 있으려니 태감들이 내가 달라고 한 물건들을 하나둘 상자에 넣어서 찾아왔다.

줄지어 온 태감들은 월무궁 정원에 상자를 내려놓고서 떠났다. 다들 시키니 일은 하지만 건성이다. 창고까지 가져다주지도 않네.

그들에게 나는 어쨌든 소가주 자리에서 쫓겨날 사람이니 저러겠지.

동생이 황제의 총애를 얻는다지만 아직 귀인이고 어심은 늘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니 굳이 잘 보일 필요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신경 쓰는 대신 나는 상자를 하나씩 직접 창고로 날랐다.

월무궁에 속한 태감들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자들에게는 기대도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그렇게 땀을 흘려가면서 끙끙거리며 옮기기를 한참. 반 정도 옮기고서 다시 돌아왔는데 그 자리에 제자가 뒷짐을 지고서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 전하. 언제 오셨어요?”

별 의미 없이 물어보는데, 뜻밖에도 제자가 화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전하?”

왜 화났지? 혹시 내가 멋대로 물건 주문해서 화났나? 아니겠지? 월무궁 꾸미라고 한 건 자기잖아.

당황해서 쳐다보는데 제자는 내 손을 잡아 올렸다. 풍성한 소매가 아래로 주륵 내려가면서 손바닥과 손목이 드러났다.


“전하! 우리 아직 혼인 안 했어요!”

놀란 척 소리치자 제자가 음산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전하가 궁전…… 꾸미라고…….”

“내가 어디 꾸미고 싶은지 찾아내라 했지 직접 수리하라 하였습니까. 사람이 몇인데 스승님이 이걸 하고 계십니까.”

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왜 이렇게 화난 표정인 거지?


“화내지 마세요 전하.”

“스승님은 제가 손이 이렇게 까져가며 일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와. 까졌네.”

제자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더니 갑자기 인상을 확 구겼다.


“그게 답니까?”

“네.”

“정말 그게 다라고요?”

“어…… 어의를 불러드려야지요.”

“하.”

제자는 헛웃음을 뱉더니 내 손을 놓아주었다.

나는 얼른 손을 내리고서 거기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지금 제가 손잡았다고 손 터신 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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