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화려가 좋아하는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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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화려가 좋아하는 화려
2023.08.14.
“정말로 너무합니다! 제가 천륜을 끊으려 한다니요!”
원비는 흐느끼면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그만 울게.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이지 않나.”
황후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서 위로하는 말을 건넸으나, 원비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왜 또 저 난리야. 린화는 뚱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같은 궁전을 쓰고 있다지만 두 사람은 전혀 사이좋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없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마마. 제가 1소황자를 기르게 된 건 황후 마마와 황제 폐하께서 그리하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신들은 이런 이야기나 해대다니…….”
원비는 말끝을 흐리면서 교비 쪽을 쳐다보았다. 교비는 가만히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자신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듣는 태도였다.
원비는 교비의 그런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1황자의 지지자들이 왜 갑자기 그녀를 비방하고 나섰겠는가. 다 위에서 시켰으니 그런 것이다. 그런데 1황자의 친모인 그녀가 모르는 일이라는 듯 굴고 있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럴 바엔 1소황자를 기르지 않겠습니다, 마마. 폐하께도 그리 말씀드리겠어요. 그러면 폐하가 제 부모나 저보다 더 좋은 양육자를 찾아주시겠지요.”
원비가 굳이 1황자 부부 이야기를 꺼내 들자 그제야 교비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교비는 말을 섞는 대신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문안을 끝내고 자기 거처로 돌아온 원비는 아들과 다과를 먹으면서도 계속 그 이야기를 했다. 7황자는 후궁들과 달리 확실하게 반응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한 겁니다. 어머니께서는 시간과 공을 들여서 그 애를 보살피는데도 욕을 듣고 계시잖아요.”
곁에 서 있던 상궁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1황자 부부가 소황자의 머리에 이상한 사상을 심어준단 이유로 마마께서 소황자를 맡게 된 거잖아요. 그럼 당연히 1황자 부부를 만나게 하면 안 되지요. 만났을 때 또 그런 사상을 심을지 어찌 아냐고요.”
7황자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보탰다.
“어머니, 그리고 이전부터 생각한 건데요. 1소황자가 첫째 형님 친자는 맞는 겁니까?”
들끓던 분위기는 그 한마디에 찬물을 부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일시에 방 안에 모인 모든 이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유려!”
가까스로 숨을 뱉은 원비는 날카롭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7황자는 불만스레 입술을 꾹 닫았다가 반발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태어났을 때랑 지금 얼굴도 많이 다르고, 병약하던 자식이 갑자기 건강해진 것도 이상합니다. 첫째 형님 아들치고는 머리도 영리하고요.”
“유려. 입 조심해라. 감히 그런 소리는 입 밖에 내서도 안 된다. 알았느냐?”
원비의 싸늘한 당부에 7황자는 다시 입을 다물었으나 표정에서 불만이 사그라들진 않았다.
* * *
화가 난 7황자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소매를 떨치면서 자신의 거처인 소혜전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소혜전과 본전 사이의 회랑을 지나가고 있자니 멀지 않은 곳에서 ‘우엥’ 하고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상을 구기고서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1소황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마구 울어대고 있었다.
“싫어! 사탕을 다오! 이런 건 다 맛이 없어! 내가 소냐! 왜 맨날 풀만 주는 거야!”
곁에는 나이 어린 궁녀가 쩔쩔매면서 1소황자를 달래고 있었다.
“소황자님, 우선 식사는 하셔야지요. 사탕은 좀 더 크거든 드세요. 소황자님은 아직 어리셔서 그런 걸 먹으면 이가 상해요.”
“어머니는 내게 사탕을 주셨다! 그래도 내 이는 멀쩡했어! 이를 잘 닦으면 괜찮아. 내가 너희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원비는 내가 사탕 먹는 게 아까우니 그러는 거잖아!”
원비? 1소황자가 자기 어머니를 함부로 부르자 7황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성큼성큼 그쪽으로 다가갔다.
“전하.”
7황자를 발견한 궁녀가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7황자는 1소황자 앞에 서서 무섭게 삿대질했다.
“배은망덕한 쓰레기는 내버려 두어라! 굶어 죽으라고 해! 먹기 싫으면 아무것도 먹지 마라! 네가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건강하기 싫다면 굶어 죽어버려!”
1소황자는 무시무시한 7황자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고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전, 전하.”
궁녀가 놀라서 불렀으나 7황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자기 거처로 가버렸다. 7황자가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1소황자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한테 가고 싶어. 어머니한테 돌려보내 줘. 날 괴롭힐 거면 왜 날 데려온 거란 말이냐. 어머니랑 아버지랑 할머니한테 돌려보내 달라고.”
“소황자님…… 일단 들어가세요. 네?”
“너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가 조금만 크면 너희 모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원비도 7황자도 너도, 이 궁전에서 일하는 모두 다 처형시켜 버릴 거라고!”
궁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다른 궁녀나 태감들은 그 모습을 보았지만 조금도 도와주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교비와 1황자 부부는 원비와 7황자와는 가깝지도 않았고 한 편도 아니었다.
고귀하게 자란 아이는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해서 다루기 쉽지도 않았다. 주인인 원비가 1소황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다른 이들도 굳이 나서서 챙기지 않았다.
“저리 가!”
1소황자가 옆에 놓인 돌을 집어 던지자 궁녀는 머리에 돌을 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버렸다.
1소황자는 혼자 구석에 웅크리고서 계속 훌쩍거렸다.
린화는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혀를 찼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땐 누구보다도 사랑스럽던 아이가 구박을 받으면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하지만 거기까지 뿐. 린화는 자기를 싫어하는 1황자 부부를 위해 그 이상 나설 생각이 없었기에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아이를 내버려두고 있는 그때. 한 태감이 우는 소황자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소황자님. 소황자님. 제가 여기서 달아나는 걸 도와드릴까요?”
훌쩍이던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말이냐?”
* * *
다음날. 나는 제자에게 너무 복수하고 싶어서 끙끙 앓았다. 하지만 정석적으로 복수할 방도가 없단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굴려야 했다.
열심히 생각한 끝에 나는 제자에게 장터에서 파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유리 등롱을 선물해주었다. 평상시 들고 다니는 용도가 아니라 축제 때나 걸어두는 용도의 등롱이었다.
제자는 도도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내가 등롱을 가지고 들어가자 고개를 휙 돌리고서 눈썹을 찡그렸다.
“뭐 하십니까.”
“전하 드리려고요.”
등롱을 그의 책상에 내려놓자 제자의 한쪽 눈썹이 삐딱하게 위로 올라갔다. 그는 그 표정 그대로 등롱을 살피더니, 등롱 여기저기에 달린 초롱초롱한 줄 장식을 뒤적거렸다.
“이걸 제자에게 왜 주시는지요?”
“전하가 밤길을 너무 무서워하셔서요. 앞으론 그걸 들고 다니세요, 전하. 그러며 덜 외로우실 거예요.”
안 외롭겠지. 들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어당길 테니까! 나는 양옆으로 벌어지려는 입을 억지로 끌어 내리고서 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서 힐긋 앞을 보니 유리 등롱에 햇빛이 반사되어 제자의 얼굴에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나는 이번에도 가까스로 참아 내고서 서책을 펼쳤다.
“이제 수업하겠습니다, 전하.”
그러고서 책을 읽으려는데 제자가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너무 까불었나. 당황해서 입을 다물고 올려다보는데, 뜻밖에도 코앞에 다가온 제자가 평소보다 더욱 다정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제자를 생각해주시는 건 스승님뿐이군요.”
“예?”
내가 원한 건 제자가 부글부글 속이 끓는단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아니면 싸늘하게 비웃으면서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나는 통쾌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겉으로만 저럴 뿐 속으로는 화났다는 걸 아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좋아하지?
‘좋아하는 척하나? 날 역으로 약 올리려고?’
그러나 제자의 입가에 올라온 입꼬리는 오늘따라 유난스럽게도 부드러웠다. 게다가 시선 역시도 평소보다는 좀 누그러져 보였다.
“마음에 드세요?”
참지 못하고 솔직하게 물어보자 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듭니다.”
……이런 게 취향이었나? 하긴. 금사연석 의자도 꽤 번쩍번쩍하긴 하지.
그 생각을 하자 제자에게 소소한 복수를 할 생각에 좋아졌던 기분이 반대로 고꾸라졌다. 제자가 좋아하면 나는 좋지 않은데.
“다행이네요.”
그래도 억지로 웃고 있자니, 제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지 않고, 유리 등롱을 들고 방 안을 왔다 갔다 돌아다니면서 물었다.
“잘 어울리는지요?”
“전하도 곱고 등롱도 고우니 잘 어울리기야 하지요.”
제자의 입매에 미소가 더욱 커졌다. 그는 나를 잠시 빤히 보더니 유리 등롱을 눈에 잘 보이는 선반 위에 올려두고 그 안에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이자 유리 등롱은 더욱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렸다.
제자는 등롱을 개 쓰다듬듯 한 번 쓸고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제야 서책을 펼쳤다.
“수업하지요.”
……복수를 시도한 건 나인데. 왜 내가 한 대 맞은 기분인지 모르겠네. 일부러 나 엿 먹으라고 좋아하는 척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로 좋아하는 거야?
“스승님. 좋은 선물을 주셨으니 제자도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네!”
“모레쯤에 전각을 보수할 사람들이 올 겁니다. 그날은 수업이 없지만 꼭 오도록 하세요. 스승님이 원하는 대로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
아무리 생각해도 제자가 나한테 엿을 먹이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간단 말이야…….
회귀 전 기억을 뒤적여 보았으나 제자가 저 정도로 활짝 웃은 적은…… 있었나? 없었던 거 같다.
그럼 정말로 내가 공교롭게 제자의 취향을 딱 적중한 걸까? 제자는 자기 이름이랑 취향이 일맥상통하나?
“요 대인.”
그런데 생각에 잠겨 월무궁 밖으로 이어지는 길을 쭉 걸어가고 있자니, 모퉁이에서 황제의 측근 태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송 태감이 늘 서 있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요 대인.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어서 가시지요.”
예언을 적은 서책 때문이겠지. 거부할 수 없는지라 나는 순순히 그를 뒤 따라갔다.
“요 대인. 한 시진 반 전쯤, 1소황자가 선한궁을 탈출해서 1황자비께 달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 태감이 뜻밖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원래 송 태감은 입이 무거워서 내 칭찬이나 황제 칭찬 정도만 하지, 다른 일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데.
“정말인가요?”
소식도 놀랍고 송 태감의 태도도 놀라워서 되묻자, 송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덧붙였다.
“1소황자의 상태가 꽤 좋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폐하께서 원비를 불러서 지금 크게 혼내고 계시지요.”
“지금, 지금요?”
나는 당황해서 교완궁 방향을 살짝 가리켰다.
“지금 제가 가는 곳에 원비 마마가 먼저 와 계신다고요?”
“예.”
그런데 나를 왜 불러?!
원비가 혼나는 장소에 갈 생각을 하자마자 다리가 무거워졌다. 나는 삐걱삐걱 억지로 걸어갔다.
하지만 다행히 도착해보니 원비는 이미 다 혼나고 돌아간 뒤였다. 다행이지 않은 건…….
“요요화. 오면서 1소황자 이야기는 들었겠지. 이 일에 대해 예지몽을 꾼 적은 없느냐.”
황제가 곤란한 질문을 했단 점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 일에 관해 아냐고? 알긴 알지. 이 일로 7황자가 죽게 된다. 그런데 내가…… 이 얘기를 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