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인왕산 살인사건 (1/85)


1. 인왕산 살인사건
2022.01.1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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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쿵……-

두……쿵……-

두쿵……-

두쿵-

땅 밑에서 일정한 속도로 들려오는 음산한 소음은, 마치 심장 박동 같았다.

도시 전체가 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울리는 소리가 스멀스멀 불길한 어둠을 만들어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농도 짙은 어둠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덮쳐왔다.

숨을, 쉴 수가…….

“허억!”

제하는 눈을 떴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응시했다.

깨끗한 흰색의 낯선 천장.

“대체…….”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화학약품 냄새로 이곳이 어딘지 짐작했다.

“병원……? 내가 왜……?”

병원이라는 걸 자각하자, 온몸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큭!”

가슴에 손을 올리자 단단하게 감긴 붕대가 느껴졌다.

통증은 가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가슴이라고 하니,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도 심장이 떠오른다.

‘심장과 관련된 꿈을 꾼 것 같은데…….’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기분 나쁜 꿈이었다는 느낌은 남아 있었다.

불길한 어둠이 꿈에서부터 따라와, 제하의 심장 부근에 똬리를 틀었다.

제하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고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왜 병원에……? 이 아픔은 또 뭐고? 언제 다친 거야?’

기억나는 게 없었다.

누군가 머릿속에 손을 집어넣어 뇌를 엉망진창으로 주물러놓은 것만 같았다.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자,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것 같은 두통이 찾아왔다.

“으윽……!”

몸을 움츠리고 한참을 끙끙거린 후에야 끔찍한 두통이 사라졌다.

‘대체 내 머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제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집에서 나오다가 마주친 수상쩍은 남자였다.

.
.

“네 부모님이 어떻게, 그리고 왜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니?”

알고 싶었다.

보육원 선생님과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제하가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뭔가 미심쩍은 기억은 어렴풋이 있었지만, 아무리 졸라도 말해주지 않으니 언젠가는 혼자서라도 알아내겠다고 각오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릴 때의 일이다.

성인이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게 된 제하는, 부모님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먹고사는 문제.

신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러 특혜를 받기는 해도, 먹고살려면 돈이 필요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에,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진실까지 파헤치는 건 사치였다.

사치스러운 각오는 잊히고, 아침 일찍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기억은 희미했다. 부모님이 어쩌면 날 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움은 원망으로 바뀌고 슬픔은 이내 덤덤해져 갔다. 그렇게 먹고사는 데 익숙해져, 먹고사는 것 말고는 모든 게 희미해질 때, 마침 그 남자가 찾아온 것이다.

만약 그 남자가 조금만 더 어릴 때, 그러니까 아직 보육원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각오를 다질 때 찾아왔더라면, 그 달콤한 미끼를 냅다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하는 이제 “삼촌이 사탕 사줄게.”라는 말에 의심 없이 따라가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사내를 향해 정중하게 대꾸했다.

“옘병.”

친절하게 중지까지 들어서 보여준 후, 성큼성큼 걸어가는 제하의 뒤를 사내가 따라왔다.

“이봐. 네 부모가 왜 끔찍하게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어떤 식으로 어떻게 죽어갔는지, 얼마나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는지, 알고 싶지 않냐고!”

사내의 말투는 의도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제하 부모님의 죽음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님의 죽음을 잊고 사는 제하에게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허이구. 그러셨어요. 무서워 죽겠네.”

“인왕산, 거기에 네 부모님에 관한 비밀이 있지.”

‘인, 왕, 산.’

제하는 등을 돌린 채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등산은 별로.”

“제하.”

들려온 이름에, 우뚝 멈춰 섰다.

휙 돌아서 사내를 노려보자,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어때, 내가 네 이름까지 아니까 관심 좀 생기나?”

“뭐, 내 이름을 아는 방법이야 많지. 그렇게 대단한 개인정보도 아니라서. 그런데 말이야, 이 잘생기고 젊은 청년의 집이랑 이름까지 알아냈다는 건…… 당신, 혹시 스토커? 변태?”

사내가 콧등을 찡그렸다.

왜일까?

그 순간, 제하는 사내가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을 상대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위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사내가 금방이라도 맹수로 변해,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을 것만 같은 공포가 찾아왔다.

“네 어미가 무녀였다는 건 기억나나?”

사내가 성큼 다가왔다.

제하는 버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네가 네 부모와 인왕산 범바위 근처에서 살았다는 것도 잊었나?”

인왕산 범바위.

기억난다.

범바위 앞에 책상다리로 앉아, 제하를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불러주던, 굵고 낮은 음성.

제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커다란 손.

그 다정한 손길.

‘아버지…….’

커다란 품에 안겨 범바위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옅은 미소를 띤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마주친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애정이 가득 담겨 있어서, 행복하다고, 좋다고, 그리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도망쳐!”

아버지의 외침.

-“제하야!”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 잊었던 십수 년의 세월이 찰나처럼 지나가며 뚜렷한 음성이 머리를 내리쳤다.

이걸 왜 잊고 있었을까?

제하의 눈동자가 술렁이는 걸 눈치챈 사내가 또 한 걸음 다가왔다.

이번에 제하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사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마침 날이 좋네. 인왕산 범바위에 가봐. 거기서 네 부모의 진실을 알게 될 테니.”

사내가 몸을 돌렸다.

“이봐, 당신!”

가까스로 정신 차린 제하가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사내는 이미 모습을 감춘 후였다.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속도였지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밀려드는 부모님과의 추억이 제하를 혼란에 밀어 넣었다.

그 비명은 뭐였을까?

어머니는 왜 그리도 절박하게 날 부른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제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음력 1월 16일.]

부모님의 기일.

이런 날, 그 수상쩍은 사내가 찾아와 부모님의 죽음에 관해 언급한 게 우연일까?

‘아니, 그럴 리 없지.’

그래서 제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지 않고, 인왕산으로 향했다.

.
.

‘그래, 나는 인왕산에 갔어. 버스를 탔고, 내렸고, 인왕산을 올려다본 것까지는 기억이 나. 그런데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야?’

그때 들어온 간호사가 깨어난 제하를 보고 놀라서 황급히 다가왔다.

“환자분, 깨어나셨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아픈 곳은 없으세요?”

“가슴이 좀…….”

“그러실 거예요. 가슴 쪽에 큰 상처를 입어서. 링거에 진통제 좀 넣어드릴게요.”

간호사는 링거를 조작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환자분, 3일 만에 깨어나신 거예요. 처음에 실려 오셨을 때는 상처가 너무 심하고 피도 많이 흘려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날로부터 3일이나 지났다니.

간호사가 나간 후, 인왕산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진통제 때문인지 몽롱해서 쉽지 않았다.

졸다가 깨기를 반복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제하 씨. 깨어나셨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잠시 대화 가능하십니까?”

한 남성이 제하를 찾아왔다.

안경을 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서 의문을 담아 쳐다봤더니, 남자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신시 경찰청 강력계 형사 김수훈입니다.”

제하는 명함을 받아서 확인했다. 경찰의 명함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정장을 입은 수훈은 형사라기보다는 검사처럼 보였다.

“인왕산의 사건에 관해 몇 가지 질문드릴 것이 있습니다.”

“인왕산…….”

제하야말로 인왕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묻고 싶었다.

제하는 끄응, 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음력 1월 16일, 인왕산에 간 이유가 뭡니까?”

“일이 좀 있어서…….”

“그 일이 뭔지 묻고 있습니다.”

어째 분위기가 묘하다. 마치 제하가 무슨 짓이라도 저질렀다는 듯 강압적인 말투였다.

제하는 미간을 좁히고 수훈을 노려봤다.

“내가 그런 개인적인 사정까지 말해야 할 이유가 있어요?”

“있으니 찾아온 겁니다, 제하 씨.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인왕산에 간 이유가 뭡니까?”

“말하기 싫은데요. 묵비권,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수훈의 눈빛이 차게 가라앉았다.

“보통 범죄자들이 그 묵비권이라는 걸 잘 사용하죠.”

“어라, 묵비권 운운했다고 범죄자 취급하는 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시민이 자기 권리 좀 찾았다고, 경찰이 사람을 막 범죄자로 몰아가도 돼요?”

수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하 씨가 갑작스럽게 아르바이트를 무단결근하고 인왕산에 올라간 음력 1월 16일. 그날 오후에, 인왕산 곳곳에서 24명이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들려오는 말이 정확한 의미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끔찍? 시신?

그런 단어는 뉴스에서나 들었다.

제하는 무심코 제 가슴 위의 상처에 손을 얹었다.

욱신, 욱신, 진통제의 효과가 떨어진 건지, 상처 부위가 다시 쑤시기 시작했다.

수훈이 서류봉투에서 꺼낸 사진을 제하의 앞에 늘어놨다.

한 장, 한 장, 펼쳐지는 잔혹한 광경에, 제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뜯겨나간 팔, 찢긴 몸통, 가슴이나 배에 길게 그어진 깊은 상처…….

이토록 참혹한 시신을, 제하는 본 적이…….

‘있나?’

찌잉, 하고 뇌가 울렸다.

붉게 퍼지는 선혈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비명.

-“제하야!”

어머니의 마지막 비명은 마치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한데, 그 광경은 뿌옇기만 했다.

“제하 씨.”

어머니의 비명에 섞여, 수훈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수훈을 응시했다.

“어때요? 이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할 생각이 들었습니까?”

+++

제하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부모님 기일이라서……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어릴 적 살았던 인왕산에 오른 것뿐이에요.”

집 앞에 찾아온 수상쩍은 사내에 관해 말해줘 봐야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인왕산을 오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수훈은 일단 돌아가겠지만, 조만간 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제하는 침대에 누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수훈이 보여준 사진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마치 영화처럼 선명하게 흘러갔다.

‘그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닐 거야.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여?’

희생자들의 상처는 칼이나 도끼 따위의 흉기로 생긴 게 아니었다.

‘맹수 같은 게 한 짓이 아닐까? 호랑이나 곰 같은 거…….’

하지만 대도시인 신시 안에 있는 인왕산에 맹수가 살고 있을 리 없다.

‘하, 씨, 진짜. 제대로 생각나는 건 하나도 없고. 미치겠네.’

신시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왕산 학살 사건.

그것은 앞으로 신시에서 벌어질 일의 시발점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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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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