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상고시대의 검
(7/85)
7. 상고시대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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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상고시대의 검
2022.02.2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제하의 떨떠름한 반응에, 하루가 속이 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 여자 말고. 방금 전에…… 그거, 다시 못 보느냐?”
“좀 지나면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긴 한데…….”
“그래, 그럼 기다리자.”
그래서 기다렸다.
제하와 하루는 마주 보고 앉아, 둘 사이에 있는 휴대폰을 말없이 응시했다.
“저기…… 이러고 있는 거 좀 어색하지 않아?”
“쉿.”
“아니, 대화 좀 한다고 해서 그 뉴스 재방송을 못 보는 건 아니거든?”
“아가야, 너는 참으로 쉴 새 없이 나불거리는구나.”
“……야, 내가 언제……!”
“쉿.”
하루의 단호한 태도에 제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두고 봐, 내가 먼저 말하나 봐라.
제하는 입술을 오므리고 엉덩이를 움찔거리고 손가락을 꼬물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뭘 가져야 하는 건데?”
“나도 확신할 수는 없구나. 하지만…… 뭔가가…….”
하루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혼란스러운 듯했다.
“일단 한 번 더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하루의 채근에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한 후에야 재방송을 볼 수 있었다.
대낮에 5구에 있는 박물관이 습격당해, 관람객 6명과 박물관 직원 7명이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요새는 범 때문에 죽어도 뉴스거리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피해자가 많다 보니 뉴스에 나온 듯했다.
자료 화면은 사건 전에 교양 방송에 나왔던 것으로, 박물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 장면이었다.
“여기!”
하루의 외침에 제하는 얼른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옛 시대의 유물인 무기와 방어구들을 비추고 있었다.
하루의 검지가 화면 끝부분에 닿았다.
그곳에는 투박한 모양의 검이 있었다.
“이걸 얻어야 해.”
“이걸…… 왜?”
“모르겠어. 하지만 이걸 반드시 얻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어.”
제하는 하루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루가 가리킨 검은 무척이나 오래돼서,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검보다는 차라리 지금 갖고 있는, 금이 간 검이 더 튼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제하는 하루를 믿었다.
지난 석 달간 하루의 가르침을 받아서 호흡법을 익히고 전투 기술을 연습하자,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루와 함께 있기에 저절로 강해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성장했다.
하루가 저 검을 얻으라고 한다면, 그래야만 하는 거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얻어야 할까?
저 넓은 박물관에서 순식간에 여러 명이 죽었다면, 박물관을 습격한 범은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라는 의미다.
어쩌면 그 범들이 아직 저 박물관 근처에서 다른 희생자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검은 시의 소유였다.
그런 걸 몰래 가져와도 괜찮은 걸까?
몰래 꺼내려고 하면 경보 같은 게 작동하지 않을까?
“어서 가자, 제하.”
남의 속도 모르고 하루가 채근했다.
“좀 있어 봐. 저거, 진짜로 필요한 거 맞아? 저거 훔치다가 걸리면, 우리는 범죄자가 돼.”
“저건 우리 것이다.”
“뭐? 우리가, 아니, 네가 갖고 싶어 한다고 해서 다 우리 것인 게 아니야.”
“하지만 저건 우리 것이다.”
“하루 너는 인간의 규칙과 규율을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지금 그것이 문제더냐?”
하루가 제하의 말을 끊었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범이 나타났다. 지금 설치는 범들은 그리 강한 놈들도 아니지. 아마 범들이 제 힘을 온전히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완전히 열려서, 범의 힘이 온전해지면?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냐?”
범들의 힘이 온전하지 않다고?
오싹-
찬 기운이 제하의 척추를 타고 흘렀다.
범들은 지금도 숨이 막힐 정도로 강했다. 인간보다 훨씬 적은 수의 범들이 신시를 한 군데, 한 군데 궤멸시켜나가고 있었다.
“제하, 너는 지금 온 힘을 다해서 하급 범 한 마리를 간신히 상대할 뿐이다. 범 사냥꾼이라 칭하는 자들도 범 한 마리에 여러 명이 달라붙지. 지금껏 인간들이 잡은 범 중에, 중급 이상의 범이 있을 것 같으냐?”
“중급…… 그럼 상급도 있다는 소리야?”
“네가 만난 후포, 그리고 놈의 측근들이 상급이지.”
“왜…… 그런 얘기를 이제야 해?”
“그건…….”
하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기억이 온전치가 않다. 분명한 건…….”
하루의 눈동자가 휴대폰 안에 있는 검은색 검을 향했다.
“저 검을 보는 순간, 기억의 일부가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저 검은 우리가, 아니, 네가 가져야 한다.”
+++
제하는 검은 점퍼를 입고 검은 모자를 꾹 눌러쓴 후, 마스크를 올렸다. 박물관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을 테니, 모습을 들키지 않게 해야만 했다.
하루 역시 제하가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검은 점퍼와 모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오랏줄 좀 안 보이게 해봐.”
“걱정이 많구나. 걱정이 많은 사내는 큰일을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 난 큰일 할 생각 없으니까 오랏줄 좀 안 보이게 해.”
하루가 점퍼 아래로 보이는 오랏줄을 쓰다듬자, 오랏줄이 짧아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굳이 이런 옷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 불편하구나.”
“네 그 팔랑거리는 옷보다는 편할걸.”
“내 옷이 얼마나 편한데. 너도 입어보면 알 게다. 통풍도 잘되고…….”
“아, 됐고. 저기를 들어가고 나면 소리 안 내게 조심해. 웬만하면 잡히지 않게 해보자고.”
“너나 잘해라.”
제하는 하루를 한 번 노려봐준 후, 허리를 굽히고 조용히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섰다.
한편, 은밀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무리가 있었다.
박물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범을 잡으러 나온, 호랑나비 팀이었다.
“요새 같은 시기에도 도둑놈이 있구만.”
성진이 중얼거렸다.
“요새 같은 시기니까 도둑놈이 더 많지. 겉으로는 범 사냥꾼이랍시고 무기 조달해서 강도짓에, 도둑질까지 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별…….”
성진은 자신이 범 사냥꾼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최우선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그 결과 사람들까지 돕는다. 사람들은 성진이 범 사냥꾼, 그것도 호랑나비 팀이라는 걸 알고 나면 경외심이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PC방에서 게임만 하던 시절에는 결코 받지 못했던 눈빛.
힘이 없는 사람들이야 범의 등장에 두려워서 떨지만, 힘이 있는 성진은 지금 이 혼란스러운 시대가 좋았다. 범에게 고마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한테 이런 힘이 있을 줄은 우리 부모님도 몰랐겠지. 형 새끼는 말할 것도 없고.’
범이 등장하면서 범을 사냥하기에 적합한 힘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도 개화했다. 범 등장 이후, 성진은 자신이 조금씩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놈은…….’
제하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덩치만 클 뿐이었는데,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동일 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해졌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성장한 거지? 그놈은 우리랑 다른가?’
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요행이었겠지. 나도 방심하고 있었고…….’
“혀, 형님!”
동료의 외침에, 성진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박물관 입구 오른쪽 끄트머리에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안개는 유독 짙고 범위가 넓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한 놈이 아니야.”
적어도 4마리.
지금 이곳에 있는 호랑나비 팀은 4명.
4명이서 범 4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도망치면?’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범들은 표적을 놓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저놈들은 지금 우리를 보고 이쪽으로 오는 중일 것이다.
성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문득 아까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 두 명이 떠올랐다.
성진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번졌다.
‘미끼가 있으면 싸움은 수월해지지.’
+++
지키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박물관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박물관을 포기하려는 듯했다.
인간이 없으면 범도 습격하지 않는다.
남은 유물을 관리하겠다고 경비병력을 늘렸다가, 그들마저 모두 범에게 당하면 비난을 면치 못할 거란 판단일 것이다.
“사람이 없으니 좋구나. 둘러보면서 좋은 물건이 있으면 더 챙기자꾸나.”
하루는 백화점에라도 온 것처럼 말했다.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는 말이 있어.”
“호오. 그러냐.”
“내가 널 만나서 이렇게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네.”
“범죄자라니……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그 검은 우리 것이다.”
“하아.”
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컴컴한 박물관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2층의 통로를 따라 쭉 걸어가다가, [상고시대]라고 쓰인 팻말을 발견했다.
그 검이 진열되어 있던 게, 바로 여기였다.
제하는 기억을 더듬어 진열장 사이를 걷다가, 그 검을 발견했다.
진열장 위쪽 벽에 걸려 있는 장검.
검 손잡이부터 검집, 검날까지 새까만 검.
그 검 아래에는 [상고시대의 검]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야, 하루. 이거…….”
옆을 돌아봤더니, 하루가 없었다.
하루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벽에 걸린 뭔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뭘 저리 보나 싶어서 보니 활이었다.
‘자기가 오자고 해놓고…….’
“야, 이리 와서……!”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전보다 훨씬 예민해진 제하의 감각에, 무언가 섬뜩한 것이 걸렸다. 소름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갔다. 팔뚝에 솜털이 빳빳하게 서 있었다.
최근 제하가 이런 기분을 느낄 때는 단 하나뿐이었다.
하루도 제하가 느끼는 것을 느낀 듯, 허리의 오랏줄에 손을 대며 전시관 입구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범이 나타났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