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또 다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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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또 다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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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또 다른 만남
2022.04.0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해영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검지를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범 사냥꾼!’
해영은 안도했다.
남자가 날카롭게 벼린 단도를 들어, 범의 목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됐다!’
목을 찌르려던 범 사냥꾼 지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범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준 덕에, 쉽게 범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빠른 축배였다.
“커억!”
어느새 돌아선 범이, 지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범의 손톱이 지수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았어? 한심한 놈. 이런 단도로는 내 피부에 상처 하나도 내기 힘들다고.”
“크으으윽!”
범에게 찔린 옆구리가 타는 듯 아팠다.
하지만 지수는 어떻게든 범에게 작은 상처라도 입히기 위해 손을 들었다.
아이들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지켜야만 한다.
퍼억-!
하지만 지수가 간신히 들어 올린 손으로 범을 찌르기 전, 범이 지수를 벽으로 집어 던졌다.
등이 벽에 부딪쳐, 지수는 쿨럭, 피를 토해냈다.
극명한 힘의 격차에 지수는 절망했다.
“으하아아아앙!”
아이들은 여전히 울어대고 있었다. 아이들의 앞을 막고 있는 해영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제발, 누구라도 도우러 와주기를.
저 어린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지켜주기를.
지수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통증 속에서도 간신히 기도했다.
“하아. 벌레 같은 것들.”
범이 피에 젖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아이들을 돌아봤다.
“아가들아.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말, 못 들어봤냐? 엉? 싹 다 나한테 죽고 싶어? 조용히 해라, 응?”
범의 협박에 아이들은 울음을 멈춰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히끅히끅 이어지는 흐느낌에, 범이 히죽 웃었다.
“어느 놈이 제일 크게 우나? 누구 먼저 잡아먹을까아? 곶감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이.”
범은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생긴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아이들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다시 한번 “와아아앙!”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즐거운 듯 가늘어졌던 범의 눈이 히번득 빛났다.
“크아아아아앙! 시끄럽다고! 싹 다 죽여버린다!”
“이, 이쪽을 봐……!”
지수가 옆에 있던 장난감을 들어서 범에게 던졌다.
하지만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던진 장난감은 범에게 닿지도 못했다.
“그, 그 애들은…… 놔둬……. 제발…… 제발…….”
지수의 간절한 중얼거림이 통한 걸까?
범이 지수 쪽을 보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이 애들을 살려줬으면 좋겠냐?”
“그, 그래…… 나, 나를 죽여. 차라리…… 나를…….”
“흐음. 그것도 뭐, 나쁘지는 않지만…….”
지수가 안도한 것도 잠시.
퍼억-!
범이 팔을 휘둘러, 아이들 앞을 막고 있는 해영을 후려쳤다.
해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멀리 날아가 떨어졌다.
“으윽…….”
다행히 죽진 않았는지, 해영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선생님이 맞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지수는 흐느꼈다.
범 사냥꾼이랍시고 무기를 들었으면서, 저 어린아이들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 세계는 끝났어…….’
지수와 함께 유치원 근처의 경비를 서던 경비원 10명이 다 죽었다. 범 사냥꾼 두 명도 죽었을 것이다.
‘다 끝난 거야.’
고작 범 3마리가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과연 누가 저렇게 강한 범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원래는 요것들을 살려서 데려가려고 했는데, 네놈이 마음에 들었다.”
범은 멋대로 떠들고 있었다.
“네놈 앞에서 한 명, 한 명 죽어가는 걸 보여주지.”
지수는 범이 그 말대로 하리라는 걸 알았다.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어서 두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네놈의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죽여줄게. 아, 하지만 넌 그걸 못 보겠다.”
스아악-!
“넌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거거든. 아, 이미 죽었네.”
환청일 거라고, 지수는 생각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슴 깊이 원하는 소망이 거짓 음성을 들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저기, 괜찮아요?”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에 눈을 뜨니, 붉은 기가 도는 금발에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허리를 굽히고 지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까지 지수를 고통스럽게 한 범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살아 있는 거 맞죠?”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아직 바깥이 위험해서 가봐야 하거든요. 조심해요.”
그는 휙 돌아서서 나가려다가, 아직도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괜찮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보자. 곧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갈 수 있잖아.”
“흐아아앙! 엄마아아! 아빠아아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는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애들은 역시 어려워.”
단숨에 범을 죽인 그는,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자각도 없는 듯했다.
교실을 나가려는 그에게, 지수가 물었다.
“저기…… 이름이……?”
그가 뒤를 흘긋 보며 말했다.
“제하.”
지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하라는 이름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저 남자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제하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쫓던 지수가 눈을 돌리자, 지수와 같은 표정으로 문을 응시하는 해영이 보였다.
지수와 눈이 마주친 해영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비틀거리며 아이들을 향해 기어갔다.
“괜찮아, 얘들아. 이제 곧 끝날 거야.”
+++
제하가 밖으로 나갔을 때, 상황은 끝나 있었다.
제하처럼 빠르지 않은 도건을 위해, 하루를 남겨두고 들어왔던 터였다. 그런데 왜인지 하루는 없고, 도건이 낯선 인물과 함께 서 있었다.
제하는 환도를 휙휙 휘둘러 피를 털어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낯선 인물은 약간 긴 듯한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미끈하게 생긴 남자였다.
“오, 끝났어?”
도건이 제하를 향해 손을 들자, 낯선 인물이 제하를 돌아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하는 도건을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 보는데도 굉장히 오래 알아 온 것처럼 친근한 느낌.
“누구……?”
제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도건이 갑자기 제하에게 팔짱을 끼더니 낯선 인물과 좀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저 녀석, 이름이 주안이라고 한다는데…… 어마어마한 녀석이야. 엄청 강해.”
도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하다고?”
“그래. 꼭 너처럼 움직여.”
“나처럼 움직인다면…….”
“범 같아. 빠르고 강해.”
제하는 주안 쪽을 흘긋 쳐다봤다. 주안은 희생자들의 눈을 감겨주고 있었다.
“어쩌다가 여기에 낀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제하 일행이 샛별 유치원을 도울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
몇 시간 전, 제하와 하루는 4구를 돌아보다가 또 도건과 마주쳤다.
폐허가 된 4구를 의미 없이 돌아보던 도건이 말했다.
-“놈들이 이미 밟아버리고 간 곳에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할까? 오히려 아직 괜찮은 곳을 살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제하도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차였다.
-“응. 범들은 구시가지 1구부터 순서대로 습격하고 있어. 어쩌면 앞으로 습격할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근방을 서성이고 있을지도 몰라.”
구시가지는 5구까지 당했다. 6구를 지나 7구로 왔을 때, 심상찮은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샛별 유치원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하루는 어디에 갔어?”
“여기 있던 세 마리가 전부가 아니었더라고. 다른 데서 상황을 지켜보던 범이 있었어. 여기 상황이 안 좋아지니까 도망치는 걸, 하루가 뒤따라 갔고.”
“하루 혼자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루는 오랏줄을 던지는 것 외에는 쓸 만한 공격기가 없었다.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하루가 범과 싸우게 되면, 위험에 처할 것이다.
“내가 따라가려고 했는데, 걱정 말거라, 아가야. 날 뭘로 보는 거냐, 라던데?”
“……어쩔 생각이지?”
“걔는 진짜 속을 알 수가 없더라.”
도건과 제하가 속닥거리며 대화하는 동안, 희생자들의 눈을 전부 감겨준 주안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제하가 주안에게 말했다.
“우리를 도와줬다면서?”
“다 돕고 사는 거지. 나도 범한테는 안 좋은 감정이 있어서.”
주안은 이 처참한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음성을 지니고 있었다.
“저기, 이 형이 그러는데 너 엄청 강하다더라.”
주안이 싱긋 웃었다.
“응, 그렇게 됐어.”
어째서인지, 주안의 미소가 슬퍼 보였다.

“혹시 따로 팀이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 팀에 들어오지 않을래?”
“나, 너네 팀 아니다.”
제하의 말에 도건이 말했다.
제하와 도건은 요새 자주 만나서, 거의 팀처럼 활동하고 있었지만, 도건은 끝까지 같은 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 형 말고. 하루랑 나. 우리 팀을 말한 거거든.”
투닥거리는 제하와 도건에게, 주안은 그리운 듯한 시선을 던지다가 말했다.
“나는 딱히 범 사냥을 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렇게 강한데?”
“응. 그저…… 범 하나를 찾고 있어. 그 범을 죽이고 나면 사냥도 그만둘 거야.”
아쉽지만 위험한 사냥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건이 물었다.
“어떤 범인데?”
“불티라는 놈이야.”
도건의 눈이 커지는 걸 보지 못한 듯, 주안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여기 목에 문신이 있고, 눈 아래에 흉터가 있거든. 혹시 그런 범을 보게 된다면…….”
“연락 줄게.”
도건의 말에, 주안이 빙긋 웃었다.
“연락도 연락인데, 싸울 생각은 하지 마. 그 범, 정말 강하거든. 그 범은 범 무리의 부대장 격이야.”
“너, 범에 대해 잘 아나 보다?”
“응, 그렇게 됐어.”
이번에도 주안의 미소는 슬퍼 보였다.
“나도 그놈을 찾고 있거든. 그렇게 강한 놈이면 같이 잡자고.”
도건이 휴대폰을 내밀자, 주안이 자신의 번호를 눌러줬다.
“꼭 그놈이 아니더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연락해. 도와줄게.”
“너, 좋은 녀석이구나.”
도건이 서글서글하게 말하며 주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여간, 붙임성 좋은 형이라고, 제하는 생각했다.
주안이 돌아서려 할 때, 하루가 돌아왔다.
“아직 있었구나. 마침 잘되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