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기묘한 생물 (18/85)


18. 기묘한 생물
2022.05.1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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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하가 달려가려는데, 세인이 제하의 손목을 잡았다.

“어, 어디 가?”

“방금…… 뭔가를 봤어.”

“뭘 봤는데? 범이야? 범이 나타났어? 어서 날 지켜!”

세인이 겁에 질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방금…….”

제하 역시 두리번거리며 ‘그것’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예민해진 청각에도 그것이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미 도망친 것 같다.

“되게 이상하게 생긴 걸 봤어. 쥐처럼 생겼는데, 몸통은 거미 같고…… 그리고 날개가 있었어. 잠자리 날개 같은 거.”

“뭐야, 그게……?”

“몰라. 그런 게 있었어. 넌 못 봤어?”

“못 봤지.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세인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도건과 주안, 환도 다가왔다.

그들에게도 방금 본 이상한 생명체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제하야. 긴장한 건 알겠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

라는 소리만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초조한 듯 활을 꽉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던 환이 말했다.

“얼른 가자. 여기가 뭐든, 지금 우리는 할 일이 있잖아.”

환은 이곳에 생존자들이 갇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모두 그럴 가능성이 작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환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지는 않았다.

“다들 이리로 와봐라.”

기분 나쁜 기계음 사이로, 하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루가 있는 곳으로 가자, 비상구 계단이 있었다.

하루가 비상구 위쪽의 천장을 가리켰다.

“보아라.”

기계에서 뻗어 나온 관들이 비상구 너머로 이어지고 있었다.

“문은 잠겨 있다.”

하루의 말에 제하가 검을 뽑으려는데, 세인이 더 빨랐다.

허벅지에서 단도 하나를 꺼내 촤르륵 돌린 세인이, 문틈에 단검을 찔러넣더니 세로로 힘껏 그었다.

스걱-

쇠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들 “오오.” 하며 감탄 어린 눈으로 세인을 돌아봤다.

세인은 누구보다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단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와, 이게 되네?”

중얼거린 세인은 뒤늦게 자신을 향한 시선을 눈치채고는 씩 웃었다.

“아니, 그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잘했다.”

도건이 세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모두 제하의 뒤를 따라 비상구를 나갔기에, 그들은 세인이 약간의 쑥스러움과 민망함과 뿌듯한 감동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

성진은 부하들과 함께 A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18구에서 20구까지 통행이 제한되었지만, 범 사냥꾼, 그것도 호랑나비에 속한 성진 팀을 막는 군인들은 없었다.

A 백화점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아마도 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나마 땅값이 비싼 지역이라서, 백화점을 방문한 손님들의 옷차림도 고급스러운 편이었다.

성진과 부하들은 움직이기 편한 스포츠웨어 같은 걸 입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총을 한두 자루씩 들고 있는 그들은, 누가 봐도 범 사냥꾼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성진은 이런 대우가 마음에 들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서 생전 무시만 당했는데,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공부 잘해서 의사가 되는 것보다, 범 사냥 재능을 발견해서 범을 잡는 게 훨씬 대우받았다.

“이런 데 뭐가 있다는 걸까요, 대장?”

뒤따라오던 팀원 한 명이 물었다.

성진이야말로 궁금했다.

대체 그놈들이 왜 이 백화점 지하에 숨어든 걸까?

아까 경태의 보고로는, 제하 일행이 전부 이 백화점의 지하로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형님, 여기 좀 이상한 것들이…….”

-“경태야. 일단 그놈들 따라잡고, 틈 봐서 공격해라. 나도 금방 거기로 내려갈 테니까.”

경태가 무어라 말하려는 걸 끊은 이유는, 괜히 얼른 와서 도와달라고 채근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성진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경태가 제하 일행의 힘을 쫙 빼놓은 후 멋지게 등장할 계획이었다.

+++

기분 나쁜 관은 지하 3층으로 이어졌다.

지하 3층은 지하 2층과 달리, 평범한 지하 주차장처럼 보였다.

다만 주차된 자동차가 하나도 없었고, 마치 공사라도 하는 듯 여기저기 건축자재가 널려 있었다.

“건축자재는 위장용인 것 같고…….”

도건이 중얼거리며, 비상구 문 맞은편을 가리켰다.

“저기가 놈들의 본부인 것 같은데.”

넓은 주차장의 반 정도가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벽이 아닌, 만든 지 오래되지 않은 벽처럼 보였다.

그 중앙에는 철문이 하나 있고,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하 일행은 비상구 문을 나가지 않고, 반만 연 채로 바깥의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어떡할까?”

도건의 질문에, 세인이 얼른 대꾸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여기에 뭔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서 알려야지. 이 백화점 지하에 수상한 게 있다고.”

“아니.”

환이 비상구 문을 벌컥 열었다.

“나는 지금 가.”

“야! 미쳤어?”

세인이 두 손으로 환의 팔뚝을 꽉 잡았다.

“이거 놔.”

“못 놔. 만약 저기가 진짜로 범의 본부면, 우리끼리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 해. 밖에 나가서 도와줄 사람들을 구해서 돌아오는 게 나아.”

“만약 저기 내 동생이 갇혀 있으면…… 구해야 해. 지금도 늦었어. 만약 도와줄 사람을 찾다가 더 늦으면?”

“그러다가 네가 뒈지면 아무 소용도 없잖아.”

“상관없어.”

환이 세인을 뿌리쳤다.

“나는 확인해야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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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같이 가자.”

도건도 환에게 동참하듯 허리를 폈다.

주안이 어떻게 하냐는 듯 제하를 돌아봤다.

제하는 환과 도건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세인의 말도 옳다고 여겼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고작 여섯 명뿐.

이 인원으로 범의 본부에 쳐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하루야.”

하루가 고개를 끄덕하더니, 오랏줄을 던졌다.

오랏줄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환과 도건을 향해 날아가, 그들의 팔을 하나씩 꽁꽁 묶었다.

오랏줄 끝을 잡고 있던 하루가 끌어당기자, 환과 도건은 버티지 못하고 끌려오다가 털썩 넘어졌다.

그런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하루가 말했다.

“이놈들아. 너희는 지금 두 놈이서 내 힘 하나도 못 이긴다.”

“상관없어.”

환이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나는 내 동생을…….”

절컹-!

환의 목소리를 끊고, 철문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하 일행은 숨을 멈추고, 그쪽을 돌아봤다.

범 두 마리가 나오고 있었다.

불티라는 범은 아니었다.

둘 다 범의 귀가 달려 있었는데, 한 놈은 노란색, 한 놈은 회색에 검은 줄무늬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피부도 귀의 털과 비슷한 색깔이었다.

“미친 새끼라니까, 아주.”

회색 범이 킬킬거렸다.

“눈빛이 요상한 놈이다 싶긴 했는데, 진짜로 자후를 먹어치울 줄이야. 그놈이 범인지, 우리가 범인지 모르겠네.”

“자후는 인간 놈들 지키겠답시고 굶어 죽었는데, 그걸 뜯어먹다니……. 소름 끼치는 놈이야.”

“그냥 내버려둬도 되나? 위험한 놈 같은데 죽여버렸어야 하는 거 아냐?”

“놔둬도 죽을걸. 일단 불티 님한테는 보고해뒀으니까, 불티 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불티, 라는 이름이 나오자, 도건과 주안이 무기를 세게 움켜쥐었다.

범들은 비상구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제하 일행은 서로 눈빛을 나눴다.

세인이 제하를 향해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날 지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구나.

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검 손잡이를 쥐고 하루를 돌아봤다.

하루가 오랏줄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제하와 주안이 범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범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오랏줄이 범 두 마리의 발목을 묶었고, 제하의 검이 회색 범의 옆구리를 깊이 베었다.

주안의 창이 노란 범의 복부를 관통했다.

주안은 범을 꿰뚫은 채로 창을 들어 올렸다.

“크허어어어엉!”

노란 범이 괴성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길어진 손톱이 제하의 머리를 썰어내려는 듯 날아왔다.

제하는 간발의 차로 머리를 숙여 손톱을 피했다. 피하지 못한 머리카락 몇 올이, 손톱에 잘려 떨어졌다.

노란 범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으로 주안의 창 자루를 쥐었다. 주먹에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줬지만, 어째서인지 주안의 창은 부러지지 않았다.

“구역질 나는 인간 놈…….”

노란 범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주안의 목을 조르기 위해 두 손을 뻗었다.

그때.

쌔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화살이 노란 범의 미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주안이 돌아보자, 두 번째 활시위를 당기는 환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오는 내내, 동생 걱정으로 흥분한 상태였던 환은,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냉정을 되찾았다.

그의 눈동자는 정확하게 표적을 찾아냈고, 그의 뇌는 그 표적을 맞히기 위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한지 예측했다.

쌕-!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이번에도 정확하게 노란 범의 이마에 꽂혔다.

첫 화살을 맞고도 날뛰던 범은, 두 번째 화살을 버티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주안은 제하를 돕기 위해 돌아봤지만, 제하 쪽의 상황도 이미 끝난 후였다.

제하가 상대하던 범은, 세인의 단검에 난도질당해서 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죽여버릴 거야. 범 새끼들.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 너희 같은 건, 전부 다…….”

세인은 회색 범의 배 위에 올라타, 이미 죽은 회색 범의 심장을 계속해서 단검으로 찔러대고 있었다. 내내 공포에 질려서 “날 지켜.”라고 말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주안이 놀라서 제하를 쳐다보자, 제하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후방을 살피던 도건이 휘적휘적 걸어와서 세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세인이 경기하듯 놀라며 단검을 쥐고 돌아봤다.

도건이 씩 웃었다.

“나까지 죽이게?”

“어……? 아…….”

세인은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피에 젖은 자신의 손을 내려보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나는…….”

“너, 잘 싸우더라. 빠르고, 정확했어.”

도건의 칭찬에 세인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뭐. 별로.”

“잘했어. 그런데 무서우니까 피 좀 닦자.”

도건이 세인의 얼굴에 튄 피를 손바닥으로 쓱 닦아주었다.

도건이 피를 닦아주는 동안 순순히 얼굴을 맡기고 있던 세인이 일어나며 말했다.

“나, 이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세인의 눈동자는 철문을 향해 있었다.

“어쩔 거야? 우리, 저기 들어갈 거야?”

“이렇게 소란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도 안 나와보는 걸 보면, 범이 드글드글한 것 같진 않은데…….”

도건이 제하를 돌아봤다.

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보자.”

그들은 망설임 없이 철문을 열었고.

지옥을 보았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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