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 살고 싶었다. (19/85)


19. 살고 싶었다.
2022.05.2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양쪽으로 늘어선 철창 안마다,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미 죽어서 썩어가는 시신도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희망도, 의지도 잃어버려서 탁해진 눈동자.

제하 일행이 문을 열었는데도, 그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옥도였다.

철퍽-

안으로 한 걸음 내디딘 제하는, 바닥이 검붉은 액체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입구 맞은편 끝의 의자에 묶인 남자의 몸에서, 비슷한 색깔의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남자에게서 시작된 피는 바닥을 흠뻑 적시고, 배수구로 흘러내려 갔다.

“우욱…….”

세인이 구역질하는 소리에, 제하는 정신을 차렸다.

“어서 구하자. 범들이 오기 전에.”

제하 일행은 빠르게 움직였다.

철벅- 철벅-

움직일 때마다 튀는 피가 신경 쓰였다.

아니, 슬펐다.

의자에 묶인 남자는 차게 식은 후였다.

조금만 더 빨리 들어왔더라면, 구할 수 있었을까?

제하와 세인이 철창의 자물쇠를 베어내면, 하루와 도건, 환과 주안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냈다.

“다들 정신 차려요! 어서 빠져나가야지.”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어서요! 서둘러요!”

제하 일행의 외침에, 사람들의 눈에 하나둘씩 빛이 돌아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 지옥에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자신들은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굶주림과 고문으로 지쳐 있었기에, 서둘러 도망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서로 부축하고 격려하며, 이 지옥을 빠져나가기 위해 애썼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먼저 살겠다고 옆 사람을 밀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하 일행은 그런 사람까지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열어야 할 철창은 너무 많았고, 아직 갇힌 사람도 많이 남아 있었다.

“버, 범 사냥꾼이다!”

“도와줘요. 살려주세요!”

그때, 입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마침 자물쇠를 검으로 잘라낸 제하가 뒤를 돌아보자, 경악에 찬 경태가 눈에 들어왔다.

경태와 경태의 팀원들은, 예기치 못한 참상에 당황한 듯 굳어 있었다.

“거기! 그러고 있을 때가 아냐.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줘!”

제하의 외침에, 경태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자신의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하는 경태 일행이 반가웠다.

평소에는 사사건건 신경을 건드리는 호랑나비의 일원이지만, 지금은 도움의 손길 하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경태 팀의 도움을 받자, 철창을 여는 속도가 빨라졌다.

마지막 철창에 다다랐을 때, 제하 일행은 할 말을 잃고 움직임을 멈췄다.

“저거…… 설마 범을 먹은 거야?”

세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철창 안에는 정말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 갇힌 사람은 단 두 명.

하나는 범이고, 하나는 인간이었다.

노란색에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범은 뜯어먹혔고, 갈색 머리칼을 가진 인간은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었다.

“살아 있긴 한 건가?”

도건이 철창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할 때였다.

“마, 막혔어!”

생존자들과 함께 나갔던 경태가 되돌아왔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막혔어.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고!”

경태의 설명에 따르면, 지하 1층과 지하 4층으로 가는 문이 단단하게 막혀 있다고 했다.

도건이 물었다.

“총으로 쏘면?”

“그런 상황이 아냐. 아예 콘크리트를 부어서 막았다고.”

아무래도 이 끔찍한 공간을 만들어낸 누군가는, 지하 2층과 지하 3층에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비상구 계단을 막아버린 모양이었다.

이곳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지하수로를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여기까지 온 길로…….”

거기까지 말한 제하가 입을 다물었다.

온몸의 솜털이 비쭉 서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16583929035864.jpg

 
+++

인간을 잡아 오기 위해 6구로 나갔던 불티는, 자후가 인간에게 잡아먹혔다는 연락을 받고 본부로 돌아왔다.

잘 잠그고 다니는 비상구의 문이 열려 있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비상구를 나가서 제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자신의 동족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크르르르르르-

불티의 목에서 잔혹한 맹수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불티와 함께 있던 세 명의 범들도 송곳니를 드러냈다.

범들의 손톱이 땅에 닿을 만큼 길어지고, 은은한 살기가 검은 안개에 물들었다.

“크허어어엉!”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 지하를 울렸다.

저 안에 있는 놈들에게도 들리겠지만, 상관없었다. 불티는 혼자서도 저 안에 있는 놈들을 싸그리 다 죽일 수 있었다.

불티는 범 사냥꾼 수십 명이 힘을 합쳐도 죽일 수 없는, 상급 범이었다.

+++

신시에서 가장 높고 가장 경이롭고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최상층에, 그는 서 있었다.

깨끗한 창문 너머로 화려한 신시의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알았다.

이 높은 곳에서 보면 저토록 화려해 보이지만, 저 안에 들어가면 곳곳이 썩어 있다는걸.

그 썩은 내 나는 부패가 전염병처럼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는걸.

하지만 저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어딘가 썩어가고 있다는 건 어렴풋이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을 알게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다 죽을 테니까.”

그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후후, 웃었다.

“버러지들.”

인간이 개미 무리를 밟고 지나가면, 개미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무엇이 자신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보는 인간들 또한 그랬다.

범들도 인간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범들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를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벌레들.”

그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지난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만년, 2만 년…… 아니, 어쩌면 수십만 년 전일지도.

시간의 길이 같은 건 잊었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때에 벌어진, 그 일이 중요할 뿐.

-“푸핫. 이게 뭔데? 이거, 진짜로 살아 있는 거 맞아?”

-“뭘 할 줄 알아? 그냥 식충이 아냐?”

-“이야, 먹기는 잘도 먹네. 야, 야. 이것도 먹어봐.”

-“저거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 좀 봐. 살짝 찼는데 굴러가네.”

그때의 모멸감은, 여전히 그의 가슴 깊은 곳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때의 결심 또한 모멸감과 함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수만 년의 증오와 함께 이어져 온 그의 계획은, 차근차근 성공의 계단을 밟아가고 있었다.

파르락-

검고 작은 것이 창문에 와서 부딪쳤다.

창문을 살짝 열어주자, 거미 다리에 쥐 얼굴을 한 그것이 포르르 날아와 그의 어깨에 앉았다.

인간들은 ‘그것’을 끔찍하게 여기겠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그것’이 사랑스러웠다.

검지로 그것을 어루만지며, 그것의 보고를 들었다.

그는 A 백화점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A 백화점은 계획의 일부였지만, 들킨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 누구도 그 참상이 그의 계획이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할 테니.

그의 붉은 입술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그는 접힌 부채로 입가를 톡톡 두드리며, 즐거운 듯 말했다.

“자아. 누가 누가 이길까?”

+++

범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피를 얼릴 것 같은 소리였다.

생존자들도, 경태 팀도 공포에 질려서 얼어붙었다.

제하는 검을 쥐며, 유독 겁이 많은 세인 쪽을 돌아봤다.

믿음직스럽게도, 세인은 이미 양손에 단도를 하나씩 쥐고, 문을 향해 형형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하의 시선을 느낀 듯 눈을 마주치더니, 입 모양으로 말했다.

‘날 지켜.’

제하는 피식 웃으며 검을 사선으로 들어 올리고 언제든 앞으로 뛰어나갈 준비를 하며 외쳤다.

“다들 안으로 들어와요!”

제하의 우렁찬 외침에, 사람들이 공포에서 풀려났다.

그들은 좀 전까지만 해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철창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아우성쳤다.

그러나.

“크허어어엉!”

범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끝쪽에 있던 사람들 다섯 명이 동시에 날아갔다.

퍽-! 퍼벅-!

그들은 뭐 하나 해볼 새도 없이 벽으로 던져져서 생을 마감했다.

경태 팀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장인 경태는 총을 들었지만, 팀원들은 사람들을 밀치고 자기들이 먼저 철창 안으로 도망치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크허어어엉!”

또다시 범의 울음.

퍼억-! 퍽-!

또다시 날아간 사람들.

‘왜지?’

제하는 당황했다.

범의 울음과 기척은 있는데, 범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검은 안개를 몰고 다니는 범이 있다는 것도, 범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도 알지만, 이렇게까지 범의 자취를 찾기 힘든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검은 안개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쯧.”

그때, 도건이 혀를 차더니, 바닥의 그림자를 향해 총을 겨눴다.

타앙-!

총알이 바닥을 뚫었다.

부서진 돌 조각과 함께 피가 튀었다.

“크아아악!”

그리고 범의 비명.

놀랍게도 그림자 속에서, 잿빛 범이 튀어나왔다.

제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잿빛 범을 향해 달려들었다.

빛나는 궤적의 끝이 확실하게 잿빛 범의 가슴에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사라졌다.

그리고 제하가 있었던 자리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아아아악!”

세인의 비명.

돌아본 제하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분명 제하의 앞에 있던 잿빛 범이, 어느새 뒤쪽으로 돌아가서 세인의 목을 잡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제하야.”

하루가 속삭였다.

“저것은 중급 이상이구나.”

+++

세인은 범의 손아귀에 잡히는 순간, 공포로 몸이 굳었다.

몇 주 전, 거리를 걷다가 만난 범에게 통째로 삼켜졌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까 범 한 마리를 잡으면서 극복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잿빛 범이 입을 벌리자, 새까만 목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난 죽을 거야.’

이번에는 전처럼 운이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끝이야.’

살고 싶었다.

부모님이 원치 않는 아이였어도.

그런 부모님 마음에 들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했지만 칭찬 한번 못 들었어도.

형은 실패한 의대에 보기 좋게 합격했는데, 돌아온 건 냉랭한 반응뿐이었어도.

그리하여 그 집에 내 자리가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어도.

그래도.

‘살고 싶은데…….’

살아가고 싶었다.

살아서 언젠가는 내 자리를 찾아내고 싶었다.

작은 일 하나만 잘해도 칭찬을 받고, 무엇 하나 잘하지 못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그런 자리를 발견하고 싶었다.

범의 송곳니가 예리하게 빛났다.

세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로…… 살고 싶었는데…….’

16583929035868.jpg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