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 범을 먹는 자 (20/85)


20. 범을 먹는 자
2022.05.2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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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꿰뚫리는 소리에, 세인은 번쩍 눈을 떴다.

어느새 공중으로 몸을 띄운 주안이, 창을 세로로 세워서 잿빛 범의 정수리를 뚫어버린 것이다.

세인의 목을 움켜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범의 노란 눈동자가 뒤로 휙 넘어가는 것과 동시에, 세인은 바닥에 떨어졌다.

“컥…… 쿨럭…….”

새된 기침을 하는 세인의 등을, 주안이 툭툭 두드렸다.

“무기 잡아, 세인아.”

“어…… 응.”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세인은 바닥에 떨어뜨렸던 단도를 찾아 쥐고 주위를 둘러봤다.

제하는 싸우고 있었다. 정말로 잘 싸우고 있었다.

“범은 그림자에 숨어 있대.”

주안이 나직하게 말했다. 주안의 음성은 이런 상황에서도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쟤는 그걸 어떻게 찾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빨라?”

제하는 마치 범처럼 빨랐다.

그림자를 찍고, 거기서 범이 튀어나오면 베었다.

상처 입은 범이 멈칫하면, 도건이나 환이 총과 활을 쐈다.

“찾는 게 아니라, 그림자라는 그림자는 다 찔러보는 것 같아.”

“하…… 말도 안 돼.”

주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말이 돼.”

“응?”

“나도…….”

주안이 세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왼쪽 철창까지 간 주안이 그곳에 늘어진 그림자를 찔렀다.

“크악!”

범이 튀어나오자, 주안은 창을 뒤로 빼냈다가 범의 복부를 향해 찔러넣었다.

하지만 늦었다. 범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 모든 것이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졌다.

어느새 다시 돌아온 주안이 말했다.

“저렇게 움직일 수 있거든.”

“어떻게……?”

“그러게. 그렇게 됐어.”

주안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세인의 팔을 잡아당겼다.

세인의 근처에 늘어진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범의 손톱이, 세인이 서 있던 자리를 가로로 그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저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내 허리가 잘렸을 거야.’

하지만 아까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세인의 곁에는 주안이 있었다.

세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에 말했다.

“이제부터 움직이기 전에 말해줘. 네가 찔러서 범이 튀어나오면, 내가 목을 따버릴게.”

+++

불티는 믿을 수 없었다.

불티와 함께 온 범들은 중급 중에서도 강한 범들이었다.

그런 범들이 고작해야 인간 여섯 명을 아직까지도 처리하지 못했다.

심지어 놈들은 불티에게도 상처를 입혔다.

물론 그 정도 상처는 금방 아물었지만.

하지만 놀라워해주는 건 여기까지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불티의 울부짖음은 동료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이 근처에 있는 부하들은, 전부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어쩌면 이 본부를 잃게 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그 기묘한 인간 놈이라면, 이런 건물쯤 몇 개라도 내어줄 수 있을 테니까.

+++

“꺄아아아악!”

“버, 범이다……!”

“으아악! 살려줘요! 살려줘!”

평화롭던 A 백화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갑자기 뭉게구름처럼 검은 안개가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아까 백화점에 왔던 범 사냥꾼 무리, 성진 팀을 기억했다.

성진 팀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으아아악! 저, 저길 봐!”

범이 지하로 달려가다가 성가셔서 휘두른 팔에, 사람 두 명이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절규가 터져 나왔다.

당황한 건 성진 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범과 싸울 예정이 없었던 데다가, 지금 이 안에 밀려들어 온 범은 척 보기에도 열 마리가 넘었다.

‘저걸 다 어떻게 상대해?’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것 같다.

“이, 이거 놔!”

성진은 매달리는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고, 도망치듯 백화점을 벗어났다.

+++

“범이 몰려올 게다.”

하루가 말했다.

“허억. 허억. 허억. 그래…… 역시…….”

제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불티를 노려봤다.

자꾸만 그림자에 숨는 범들을 상대하기 위해, 제하는 무식한 방법을 사용했다.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그림자라는 그림자를 다 찔러댄 것이다.

그게 성공해서 불티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지만, 제하 쪽도 피해가 컸다.

체력 고갈과 상처.

좀 전에 당한 허벅지의 상처에서 피가 멎질 않았다.

제하의 동료들 역시 제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티의 부하들 두 놈을 전부 죽였다는 것과 불티 역시 왼팔이 잘렸다는 것.

“인간 놈이 갸륵하구나.”

불티가 콧등을 찡그리며, 왼팔을 가져다가 잘린 부위에 댔다.

“나는 갸륵한 인간을 싫어하지 않지.”

“그래? 허억. 허억. 그럼 살려줄래?”

제하가 심상하게 던진 말에, 불티가 콧등을 찡그렸다.

“증오하거든.”

불티와 제하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하는 벌써 붙으려고 하는 불티의 왼팔을, 다시 한번 공격했다. 그리고 불티는 제하의 옆구리를 노렸다.

제하는 그 공격이 치명상이 되리라는 걸 예상하고, 검의 방향을 바꿨다.

채앵-!

검과 손톱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둘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물러났다.

“눈알 굴리지 마라.”

제하가 동료들 쪽을 돌아보려는데, 불티가 말했다.

“빼서 먹어버리고 싶어지거든.”

“하아. 하아. 아, 그래? 내 눈알은 꽤 맛있을 거야. 시력이…… 하아. 좋은 편이거든.”

“많이 지친 것 같군.”

“별로.”

불티가 히죽 웃으며 잠깐 천장을 올려다봤다.

“내 부하들이 오고 있다.”

“아, 내 부하들도. 한 천 명 정도 되는데.”

“귀엽지 않은 녀석.”

불티도, 제하도 농지거리를 나누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둘 다 일대일로 겨뤄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불티는 부하들이 도착하기를, 제하는 동료들이 체력을 회복하기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타앙-!

철창 안쪽에서 기회만 엿보던 경태의 팀원 한 명이 총을 쐈다.

제하는 그 총구가 자신을 향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피하지 못했다.

총알이 제하의 복부를 뚫었다.

불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끝이다!”

불티가 제하를 향해 달려들었고,

“제하야!”

도건과 하루가 쓰러지는 제하를 받아들었다.

그 와중에도 제하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면 다 죽어. 날 놓고 피해야지.’

하지만 하루는 제하를 대신해서 죽기라도 하겠다는 듯, 제하의 몸 위를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불티의 손톱 끝이 하루의 등까지 향하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늘어져 보였다.

제하가 간신히 하루를 밀어내기 위해 손을 움직였을 때.

“크허어어어어엉!”

불티의 것보다 거대한 울림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불티조차 당황해서 손톱을 거두고 펄쩍 물러날 정도의 울음소리였다.

“크허어어엉!”

범의 절규는 뒤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아까 자후라는 범이 죽어 있던 철창.

-“자후는 인간 놈들 지키겠답시고 굶어 죽었는데.”

문득 아까 범들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희망을 품었다.

자후라는 범이 완전히 죽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를 도와줄지도.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멈췄다.

불티의 입술이 벌어졌다.

“네놈은…… 뭐냐?”

제하는 불티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티는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제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했다.

그곳에 서 있는 건 자후라는 범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불길한 검은 안개를 뿜어내는, 인간이었다.

자후를 잡아먹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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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의 눈이 황금빛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두 눈동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빛났다.

“크르르르르르…….”

그의 목에서 낮은 울음이 흘러나왔다.

타앗-!

그는 가볍게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공중으로 도약한 그는, 마치 나는 것처럼 움직였다.

‘날아? 아니, 저건 공기를 밟는 거야.’

순식간에 불티에게 도달한 그가, 불티의 목을 움켜쥐었다.

불티의 눈에 짜증과 공포, 그리고 흥미가 섞인 빛이 떠올랐다.

“범을 먹고 범이 된 건가? 인간이 범을 먹으면 범이 되기도 하나?”

그는 불티의 질문에 답해주는 대신, 길어진 손톱을 불티의 배에 찔러넣었다.

“큭……!”

불티가 피를 토해냈다.

“성가신 놈.”

불티가 그를 끌어안듯 두 팔을 둘러, 그의 등에 손톱을 박아넣었다.

날카로운 손톱 여러 개가 깊이 찌르고 들어갔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불티를 더 높이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던졌다.

퍼억-!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와 함께, 불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심한 상처를 입고도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던 불티가, 처음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바닥에 던져지면서 내장이 완전히 망가진 듯했다.

“쿨럭…….”

불티는 한 번 더 피를 토하더니, 황금빛 눈동자의 사내를 한 번 노려보고는 휙 몸을 돌렸다.

그는 불티의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털썩-

마치 모든 힘을 소진한 것처럼, 무너져내렸다.

“우리도 도망쳐야 해. 쟤는 어쩔까?”

도건이 배를 움켜쥐고 제하에게 물었다.

도건 역시 배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데려가자…….”

주안도 세인을 부축하고 다가왔다.

말이 좋아서 부축이지, 둘 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환은 죽을 것 같은 낯빛을 하고도, 생존자들에게 동생에 대해 묻고 있었다.

여느 중년 여자가,

“그 애라면…… 이틀 전에…….”

라고 울먹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틀.

조금만 더 서둘렀어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제하는 환이 절규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환은 그러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돌아왔다.

“가자.”

환의 음성은 마치 사막의 바람처럼 건조했다.

제하도 하루의 부축을 받아서 몸을 일으켰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

풀썩-

한 걸음 떼기도 전에 정신을 잃은 제하를, 하루는 어렵지 않게 번쩍 안아 들었다.

뚜욱- 뚜욱-

하루의 걸음마다, 제하의 피가 떨어졌다.

“저, 저기…… 저기…… 나, 나는…….”

경태의 목소리에 돌아본 사람은, 도건뿐이었다.

경태는 아무리 명령을 받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제하를 죽이려 한 자신의 팀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과하려고 했는데, 도건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내 눈에 보이지 말자. 사람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넣고 싶진 않거든.”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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