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22/85)


22.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2022.06.1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호수는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가늘게 흘러나오는 제하의 목소리에,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얘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전부 그 후포라는 놈 탓이지. 얘도 피해자야. 부모도 죽었다잖아.’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았다.

호수에게는 누구라도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두 달이야.”

두 달 전, 범에게 납치당했다. 어떻게 생긴 범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두 달간, 내가 무슨 짓을 당한 줄 알아?”

범들은 인간을 그냥 죽이지 않았다. 인간이 장난감이라도 된다는 듯 매일 고문하며 낄낄거렸다. 차라리 일찌감치 죽어버린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죽지도 않더라고.”

호수는 자신의 체력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잡혀 온 사람들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가는데도 호수는 죽지 않았다. 아무리 피를 흘려도, 맞아도,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나중에는 그놈들이 밥을 안 주는 거야.”

자후라는 범과 함께 갇혔다.

자후는 인간을 먹지 않았고, 범들은 자후에게 인간을 먹이고 싶어 했다.

“자후한테 선택하라더라. 날 먹을지, 그대로 굶어 뒈질지.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게 뭔지 아시는 분?”

범들은 호수에게도 선택하라고 했다.

“자후를 먹든지, 굶어 뒈지든지. 나보고 알아서 하래. 내가 자후를 먹겠다고 달려들면, 자후가 빡쳐서 날 죽이고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음식이 끊긴 이후, 호수는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끊임없는 고문으로 피를 흘리고, 통증을 참느라 힘을 쓰는데, 뱃속에 들어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범을 잡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참았다. 잡아먹어서라도 살고 싶지만, 견뎠다.

“자후, 그 멍청한 범은 굶어 뒈졌어.”

자후는 죽기 전, 호수에게 말했다.

-“인간. 날 먹고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

호수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은데, 먹기 싫었다.

배고프다고 범을 먹는 순간, 자신도 똑같은 짐승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호수가 끝까지 먹지 않으리라는 걸 예감한 듯, 자후는 자기 살덩어리를 뜯어내서 억지로 호수의 입에 밀어 넣었다.

-“먹어라, 인간. 개죽음을 당해서는 안 돼. 나가서 이 이상한 장소에 대해 알려. 여긴 정상이 아니야.”

긴 굶주림 끝에 먹는 고기는 맛있고, 피는 달콤했다.

호수는 짐승처럼 범을 먹었다.

아니, 그 순간 호수는 그저 짐승이었다.

이성은 한 조각도 남지 않은, 그저 생존에 목숨을 건 짐승.

“그리고 난 그놈을 뜯어먹고 살아남았지. 날 구하려고 한 그놈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먹었다고. 그래서, 봐.”

짐승이 됐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호수도 확실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저 기묘한 기억이 흘러들어와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던 것만 기억난다.

눈을 떴더니, 병원이었고 제하라는 남자가 결계의 봉인을 깨뜨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괴물이 됐잖아.”

눈물이 흘렀다. 떨어진 눈물이 제하의 뺨을 흐르던 눈물과 섞였다.

“괴물이, 됐다고.”

사실은 알았다.

제하의 탓이 아니다.

“나는.”

이건 그저 아주 슬프고 잔혹한 불행일 뿐.

이 신시를 살아가는 모두가 경험했고, 경험하고, 또한 경험하게 될, 그런 불행일 뿐.

“괴물이 됐어…… 으윽…….”

호수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호수는 제하의 멱살을 잡은 자신의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제하의 가슴은 호수의 눈물로 젖었고, 호수의 머리칼은 제하의 눈물로 젖었다.

고통스런 슬픔에 젖은 밤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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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 들어간 후포는 아무렇게나 뽑아 든 그림책을 보며 히죽 웃었다.

해학적으로 알록달록하게 그린 호랑이 그림 아래에, 그리운 추억을 자아내는 글이 쓰여 있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언제였던가.

손님 오는 날 밖에 나갔던 불티와 마로가 떡 한 광주리를 가지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것이 무어냐 물으니, 불티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아니, 전 그냥 그 여자가 뭘 머리에 이고 있기에 뭐냐고 물었는데, 떡이라더라고요. 그래서 농담 삼아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고 했더니, 이걸 다 주지 뭡니까.”

그때만 해도 불티는 인간을 잔혹하게 해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범이 그랬다.

오래전, 그 싸움에서 패배한 이후 도망쳐 들어간 그림자의 세계.

시간이 흐름을 잊은 그곳에서, 범들은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긴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결계의 힘이 약해진 걸 깨닫고 밖으로 나갔을 때, 세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곰’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몇 해가 더 지난 후였다.

인간들은 곰도, 범도 잊었다.

범들에게 그 싸움은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데, 인간들에게는 몇만 년 전, 기억도 나지 않는 시대의 일이었다.

구전으로조차 전해지지 않는 싸움.

범들은 허무와 절망을 동시에 느꼈으나,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그림자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인간을 잡아먹으면 그림자 세계에서 모래처럼 흩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도, 필요 이상으로 인간을 죽이지는 않았다.

인간들은 기억도 못 하는 과거의 일이다.

후포의 방침에 불만을 품은 범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들 언젠가 봉인이 완전히 풀릴 날을 위해, 곰의 후손을 향한 분노를 억눌렀다.

만약 봉인이 풀려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인간들 모두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백 년이 흘러도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

멈춰 있는 범과 달리, 인간들은 나날이 발전해갔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결계는 차라리 저주였다.

자신들과 달리 점점 자유롭고 부강해지는 인간들의 모습에, 범들은 갇혀만 있을 때보다 더한 절망을 품었다.

그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크기로 부풀어, 증오가 되었다.

-“그 덩치만 큰 멍청이들은 저렇게 사는데, 우리는 왜!”

인간이 준 떡을 기쁘게 받아왔던 불티와 마로는, 누구보다도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들이 손님 오는 날마다 밖에 나가 인간들을 도륙하는 걸, 후포는 막지 않았다.

범들은 그래도 된다.

곰들은 배신했고, 그들의 후손은 조상의 과오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유롭고 편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후포 또한 가증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인간들은 곰의 힘을 잃었다.”

음력 1월 16일이 끝나는 순간, 봉인의 힘에 끌려 돌아와 분개해하는 범들에게, 후포는 말했다.

-“인간들은 개미 새끼처럼 많아졌지만,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전부 짓밟아버릴 수 있지.”

고대의 힘을 잃은 인간들을 상대하는 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기회가 올 거다. 그때까지만 참아라.”

그때가 오면 인간을 도륙하리라.

배신자 곰의 혈통을 이 땅에서 지워버리리라.

봉인이 풀려 신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을 때만 해도, 후포는 이 땅의 인간을 전부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봉인이 깨지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다른 것들도 풀려난 듯, 인간 중에도 고대의 힘을 조금씩 되찾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범 사냥꾼이 되었다.

범 사냥꾼은 의외로 강하고 또 의외로 수가 많아서, 범들은 예상만큼 수월하게 신시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후포는 이 땅에서 인간을 모두 지워버릴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방침을 바꿨다.

전부 없앨 수 없다면, 없어지는 게 나을 만한 놈들만 골라서 제거하면 된다.

우선 귀찮은 범 사냥꾼들. 그리고 살아서 좋을 게 없는, 드센 범죄자 놈들.

이곳에 유약한 놈들만 남겨 놓으면, 나중에 지배하기도 편해지리라.

탁-

그림책에 시선을 둔 채 상념에 잠겨 있는데, 무언가가 다리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숙이자, 어린 여자아이가 깜짝 놀란 눈으로 후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5, 6살쯤 된 아이일까?

아이는 후포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잘 모르겠다는 듯, 겁도 없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후포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런 아이를 보자 장난기가 발동해, 후포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후포가 들고 있는 그림책을 보고는 “아!” 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옆으로 매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려서 뭔가를 꺼내 후포에게 내밀었다.

가방 안에 한참 들어 있어서 약간 눌린 빵이었다.

후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이건 떡이 아닌데. 잡아먹어야…….”

“이봐요, 애한테 뭐 하는 거예요?”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아이가 반갑게 부르며, 후포를 스쳐 지나갔다.

“요새 같은 때, 그렇게 애한테 말 걸고 그러면 신고당해도 싼 거 몰라요? 다 큰 어른이 여자애한테…….”

뒤에서 빽빽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래, 저것도 제거해두는 게 좋겠군. 저렇게 시끄럽고 드센 건, 이 세상에 없는 편이 나아.’

후포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선생님이라는 인간이 말을 멈췄다.

아이와 달리, 그는 살기 띤 후포의 눈동자가 인간과 다르다는 걸 곧바로 알아봤다.

게다가 짜증이 난 후포의 송곳니가 그도 모르는 새에 입술 밖까지 비쭉 튀어나와 있었다.

“흐…… 하아…….”

그는 비명도 못 지를 만큼 겁에 질렸으면서도, 품에 안은 아이를 놓지 않았다.

“선생니이임.”

선생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아이가 칭얼거리며 후포를 돌아봤다.

그 순간, 후포는 아까 아이가 내밀었던 빵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보처럼 인간에게 떡 한 광주리를 받아왔을 때의 불티와 마로도.

왜 이런 때에 그런 광경이 떠오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슴에 공허한 바람이 불었다.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던 송곳니가 스르륵 사라졌다.

후포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착하게 살아라. 착한 아이는 안 잡아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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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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