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 너를 증오한다. (24/85)


24. 너를 증오한다.
2022.06.2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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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소화가 안 되네. 저번에 통째로 삼킨 놈이 잘못됐나?”

-“멍청아, 그렇게 급하게 먹는 버릇 고치랬지?”

-“그래서 요새는 꼭꼭 씹어서 삼킨다고.”

범은 세인을 삼킨 후로 소화를 못 시키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시체들이 떨어진 지도 꽤 지났는데, 시체들은 쌓여갈 뿐 소화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범이 체해서 소화액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 다시 위장이 기능을 시작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곳에서, 범의 위액에 녹아내릴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담담히 앉아 있었어.”

울부짖었다.

살려달라고 애원도 해보고, 욕도 해보고, 뛰어다니고, 미친놈처럼 발광도 해보았다.

그러나 세인을 삼킨 범은 그 어떤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뱃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뭔가 보였어.”

이러다가 진짜로 미치겠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어둠만 존재하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영상이 나타났다.

범과 곰. 그리고 피할 수 없었던 전쟁.

“그걸 보는 순간.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중2병 같을 것 같은데…… 음. 뭔가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지더라고. 굉장히 강대한 힘.”

세인은 자기가 오른손을 들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얼른 손을 아래로 내렸다.

“흑염룡, 뭐 그런 건 아니고. 하여간 뭔가가 흘러들어왔고, 그 순간에 날 삼킨 범이 막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

고요했던 공간이 뒤흔들렸다.

“그리고 폭발했지.”

파아앙-!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범의 위가 폭발했다.

당연히 세인을 삼켰던 범도 무사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살펴볼 겨를 같은 건 없었다.

세인은 그저 도망쳤다.

범의 피를 온몸에 묻힌 채, 가족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달렸다.

어머니는 비록 형의 손만 잡아서 끌어당겼지만, 아버지는 세인을 도우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무서운 상황에서 의지할 곳은 가족뿐이었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저……!”

문을 열고 들어간 세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부모님과 형은 무사했다.

하지만 무사하지 못했던 세인이 살아 돌아오자, 겁에 질린 눈으로 세인을 쳐다봤다.

세인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듯, 범의 수하가 된 것은 아닌지 두렵다는 듯.

걱정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는 그들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세인은 폭발했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죽을 뻔하다가 살아 돌아온 자식인데, 왜 그딴 눈으로 보느냐고! 당신들이 날 낳았으면서, 왜 그렇게 보느냔 말이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갈 곳이 없었다.

범의 뱃속에 있는 내내 무섭고 고독했다.

그런데 왜일까?

가족이 있는 집에서, 세인은 더 농도 깊은 두려움과 고독을 느꼈다.

도망치듯 방에 들어간 세인이 침대에 주저앉아 흐느끼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말했다.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하마터면 욕설을 할 뻔했다.

-“나는, 우리는 그저…… 조금, 너를…… 네가 무서워서……. 세인아, 너는 기억 못 하니?”

그러면서 엄마는 어릴 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아기가 자라 ‘엄마, 아빠’라는 말을 간신히 할 무렵, 세인은 여느 아기들처럼 ‘엄마, 아빠’를 말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

-“너는 마치 모르는 남자 같았어. 너는…… 너는, 그때부터 범에 대해 얘기했어.”

태어난 지 간신히 1년을 넘긴 아기는, 성인 남성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고 한다.

범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위험한 놈들이니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이 땅에서 범들을 없애야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소름이 끼칠 만하네.’라고, 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로 이 세상에 범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엄마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고,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와 세인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침대에 앉아 있는 세인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엄마.

세인이 무슨 짓을 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거리에서 미안하다며 우는 엄마를 보고 나서야, 세인은 깨달았다.

집에는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이곳에 있어 봐야 가족들을 두렵게 만들고, 자신은 더더욱 깊은 고독에 휘말려들 뿐이라는 것을.

“밖에 나와서 보니까, 내가 이런 걸 들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네 말은……. 범한테 잡아먹혔고, 왠지 흑염룡 같은 힘이 샘솟았고, 그 힘 덕에 범의 위장이 폭발해서 빠져나왔는데, 그걸 들고 있었다, 그 말이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인의 이야기를 듣던 도건이, 요점을 정리했다.

“응, 비슷해.”

“그렇다면 전리품 같은 거네.”

제하도 죄책감 가득했던 눈동자에 호기심을 띠고 범 눈썹을 살펴봤다.

세인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냥 평범한 전리품은 아니고…… 이거, 뭔가 보여.”

세인은 그것을 눈썹에 대면 사람의 전생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세인의 예상대로,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오직 하루만이 진지하게 범 눈썹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원래 늘 진지한 표정인 데다가 약간 맛이 간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은 녀석이었다.

하루의 믿음이 세인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전생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진짜야, 도건. 안 믿기면 너희도 한번 봐봐.”

세인이 범 눈썹을 내밀자, 도건이 낚아채듯 가져가 자기 눈썹 위에 댔다.

세인은 숨까지 멈추고, 도건이 놀라워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도건의 눈이 커졌다.

“오…… 오오오오, 보인다.”

“그렇지?”

“세인이 너는, 전생에 공주님이었구나.”

팟-!

세인이 신경질적으로 도건의 손에서 범 눈썹을 빼앗고, 그를 노려봤다.

“내 말 안 믿지?”

“믿고 자시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제하, 너도 한번 해봐.”

제하가 손을 내밀었지만, 세인은 범 눈썹을 건네주지 않았다.

“됐어. 어차피 장난만 칠 거잖아. 나는 너희가 무기상한테 사기당할 뻔했을 때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너희는 내 말 믿어주지도 않고…….”

“네 전생은 뭐냐?”

하루가 투덜거리는 세인의 말을 끊었다.

“……몰라.”

“말해봐라, 아가야. 네 전생을 알아야겠다.”

“지금 이게 전생을 보여준다는 것도 안 믿는데, 내 전생을 말하면 더 안 믿을걸. 날 미친놈으로만 보겠지.”

세인이 범 눈썹을 꽉 쥐고 중얼거리자, 하루가 도건을 노려봤다.

“너 때문에 이 아이가 삐쳤잖느냐! 사과해라!”

세인이 얼굴을 붉혔다.

“아, 삐친 거 아니라고. 그리고 아이, 아이, 거리지 좀 마. 나보다 더 애 같은 게.”

“나는 수천, 수만, 수억 년을 살았다.”

세인은 ‘이게 미쳤나?’라는 눈빛으로 하루를 쳐다봤지만, 하루의 표정은 담담했다.

역시 하루는 머리가 약간 이상한 게 분명하다.

하루와 가장 오래 같이 있었다는 제하를 돌아보며,

‘얘, 괜찮은 거야?’

라는 눈빛을 보내자, 제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걘 원래 좀…… 바보, 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네 전생이 뭔데?”

“어차피 내 말 믿지도 않잖아.”

“생각해보면 말이야.”

주안이 끼어들었다.

“지금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이 작년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일들이었어. 작년의 우리였다면, 범이라는 게 나타나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사람들 중에 묘하게 강한 힘을 가진, 범 사냥꾼 같은 사람들이 생기리라는 걸 믿었을까?”

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범을 뜯어먹고, 사람도 범 같은 괴물이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

“그래, 내 아버지가 범이라고 해도 안 믿었을걸.”

제하가 호수의 말에 동의하며 세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말해봐. 네 전생은 뭔데?”

세인은 이제 고집부리는 건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똑같은 전생을 가진 7명.

“한 남자가 있어. 그런데 인간이 아니야. 뭔가…… 좀 달라. 귀도 그렇고, 눈동자나 몸통도 그렇고…….”

“범 같은 거야?”

주안이 물었다.

“비슷한데…… 범보다는…… 곰? 좀 섞인 느낌?”

“곰?”

“응. 곰. 그 남자는 곰이랑 좀 더 비슷해. 그 세상에는 곰족과 범족이 있고, 또 다른 종족들이 있어. 하지만 가장 많은 건, 곰족과 범족이지. 그 남자는 아무래도 곰족과 범족의 혼혈인 것 같아.”

세인의 설명을 들으며, 하루가 미간을 좁혔다.

세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그 남자야. 곰과 범이 섞인 그 남자. 이제부터 그 남자를 ‘나’라고 할게. 나는 어떤 범이랑 엄청 친한 사이야. 피부색이 좀 어둡고 날렵하게 생긴 범인데, 흑범인 것 같거든. 그 흑범은 나를 이렇게 불러.”

“…….”

“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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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배애애애애!”

후포가 벌떡 일어났다.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온 후에야, 자신이 악몽을 꿨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이후, 매일 밤 꾸는 악몽.

증오를 버리고 싶어도, 이 악몽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그를 미워하리라는 걸 알았다.

“빌어먹을 잡종 새끼…….”

모두가 그를 잡종이라 했어도, 후포는 그를 좋아했다.

그는 정직하고 듬직한 데다가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한 구석도 있었다.

“그래, 정직…… 정직한 놈인 줄 알았지. 바보처럼 순진한 게 내 쪽이었을 줄이야…….”

타배를 믿었다.

범족도 곰족도 그를 잡종이라며 멸시했지만, 후포는 타배에게서 강한 힘과 의지를 느꼈다.

그와 함께라면 이 땅을 부강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주군. 잡종과는 어울려서 좋을 게 없습니다.”

부하들은 신시의 수호자인 후포가 타배와 어울리는 걸 마뜩잖게 여겼다.

-“옛날부터 잡종들은 뒤통수치기로 유명했잖아요. 게다가 그놈은 곰 피가 더 강하게 흐르는지, 곰들이랑 잘 지내고 싶어 하더라고요.”

-“맞아요, 주군. 요새 그놈들이 뒤에서 뭔가 수군수군거리는 게, 영 불길해요.”

범과 곰은 친구이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다.

내가 더 강하네, 네가 더 약하네, 그런 치기 어린 장난과 결투를 벌이는, 딱 그 정도의 라이벌.

그랬던 곰과 범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는 걸, 후포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후포는 타배를 믿었다.

신시를 사랑하는 타배가, 신시의 수호자인 후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믿음이었다.

타배는 신시를 너무 사랑했고, 사람 마음에 ‘절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타배…….”

후포는 타배가 신시를 전부 갖기 위해, 범들을 그렇게 학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네놈을 믿었는데……!”

아직도 눈을 감으면, 이 신시를 평화롭게 만들자고 말하던 타배의 선량한 미소가 눈에 선했다.

-“후포, 자네는 수호자의 자격이 없어.”

그 싸움 끝에서, 패배한 후포의 목에 새까만 검을 겨누고, 타배는 냉랭하게 말했다.

다정하게 빛나던 타배의 눈동자에 차가운 적의가 담긴 것을, 후포는 그때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배의 뒤에서 곰들은 범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 순간, 신시 중심부에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후포와 범들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커다란 폭음에 타배가 잠시 뒤를 돌아본 틈을 타서, 후포는 범들과 함께 달아났다.

인왕산 범바위 뒤.

평소에도 기가 묘하게 흐르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공간을 찢고, 그 안의 세계에 몸을 숨겼다.

잠시 힘을 비축한 후, 다시 돌아가 복수할 계획이었다.

곰들이 범바위에 결계를 만들어 봉인할 줄은, 그리하여 그 지독한 그림자의 세계에서 긴긴 시간을 버텨야 할 줄은, 그때만 해도 몰랐다.

“지독한 놈들…….”

아무리 신시를 갖고 싶었다 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 죄도 없는 범들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한 시간을 겪게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후포는 타배를, 곰을, 그리고 그의 후손인 인간들을 증오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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