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 떨어진 명예 (26/85)


26. 떨어진 명예
2022.07.0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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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랑 비슷한 또래인데……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죽었을 거예요.”

범에게 납치당했던 사람들을 구해준 무리가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모두 7명으로 그중 한 명은 그곳에 갇혀 있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는데,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증언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정말로 강한 것 같은 범이 들어왔는데……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데…… 같은 범 사냥꾼이 그 사람들한테 총을 쐈어요. 총을 쏜 범 사냥꾼 손목에는 문신이 있었어요. 나비 문신.”

나비 문신을 가진 범 사냥꾼.

호랑나비.

이제 ‘군’이라고 불리게 된 호랑나비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런 와중에 호랑나비 군 소속의 사냥꾼이 사람들을 구하러 간 다른 사냥꾼을 쏘았다는 증언에, 기자들조차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그걸 목격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다른 생존자들도 나서서 그때 벌어진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날 올라온 뉴스 동영상 아래에 증언의 진실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 댓글 중에 추천수가 유독 많은 댓글이 하나 있었다.

[저거 거짓말 아님. 나 그날 A 백화점에 있었는데, 호랑나비 봄. 사인이나 받을까 했는데 범들이 갑자기 나타났고, 사람들이 막 도와달라고 하는데 호랑나비들이 다 도망침. 나중에 범이 엄청 크게 우는 소리 들리고 백화점이 막 흔들렸는데…… 그 지진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을 듯.]

그 댓글에도 댓글이 달렸다.

[저도 거기 있었어요.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애라도 살려달라면서 막 붙잡는데 발로 차고 가버리는 거 보고 심장 떨어질 뻔. 애는 막 울고.]

[와, 그 사람들이 호랑나비였음? 나도 봄. 미친. 제일 먼저 도망치던데?]

[호랑나비 진짜 쪽팔리겠네. 지들이 범들 없는 세상을 만들어줄 거라고 하더니.]

[원래 나비는 날아다님. 그래서 날아간 것뿐임. 호랑나비가 날아서 튀었다고 해도 죄는 없음.]

[그런데 그날 지진이 났다고? 지진 없었는데.]

[A 백화점 근처에만 지진이 있었나 보지.]

[지진이 그렇게 A 백화점 근처에만 나고 그럴 수가 있나?]

[지진이고 뭐고 호랑나비는 박멸해야 하는 수준 아님?]

호랑나비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안 좋은 평가가 가끔 나오기는 해도 좋은 평가가 더 많은 시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잘한 범 사냥꾼 팀들을 전부 호랑나비 군에 편입시켜서 관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펼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호랑나비의 팀원들이 벌인 만행이 알려지자, 마른 풀에 불을 붙인 듯 여론이 들끓었다.

호랑나비가 너무 커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다른 범 사냥꾼 팀들은 이때다 싶어서 호랑나비를 물어뜯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넷 방송 BJ를 고용해, 그날의 생존자와 A 백화점에 있던 목격자들을 불러놓고,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게 했다.

사람들은 호랑나비를 욕하고, 그날 사람들을 구하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7인을 궁금해했다.

“대장, 5팀 팀원이 반 이상 빠져나갔습니다.”

모니터를 노려보는 동철에게, 부하가 조심스레 말했다.

부릅뜬 동철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호랑나비의 평가가 떨어지면서, 팀원들이 하나둘 호랑나비를 그만두기 시작했다.

10개가 넘던 팀이 이제는 5개 수준으로 줄었다.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었던 동철에게, 호랑나비 군은 그 발판이 되어줄 터였다.

이제 딱 한 걸음 남았다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호랑나비 군을 신시 공식 범 사냥꾼 집단으로 인정만 해준다면, 의원, 더 나아가 이살 그룹의 환웅과도 어깨를 견주는 자리에 설 자신이 있었다.

오랜 염원이 이뤄지기까지 딱 한 걸음 남았었는데.

지금 벌어진 상황은 일보후퇴 정도가 아니라, 뒤로 만 보는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장. 어떡할까요?”

동철의 대답이 없자, 부하가 다시 한번 물었다.

모니터를 뚫을 듯 응시하던 눈동자가 부하에게로 향하자, 부하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동철의 콧등이 실룩거렸다.

“성진이, 이 새끼. 어디 있어?”

+++

성진은 집을 놔두고 2구의 어느 저택에 숨어 있었다.

몇 차례나 범의 습격을 받았던 2구는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거주자들은 집보다 목숨이 소중했기에, 집을 버리고 2구를 떠났다.

노숙자들조차 찾지 않는 곳이기에, 숨어 있기에 이보다 적당한 곳이 없었다.

‘동철이 형님은 날 죽이겠지.’

이런 신세가 될 줄은 몰랐다.

A 백화점에 범들이 들이닥칠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조리 죽을 줄 알았다.

살아남지 못하면 증언도 하지 못한다.

어차피 몰살할 테니, 그들 앞에서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씨X. 우리가 아무리 사냥꾼이라도, 그 많은 범 새끼들을 상대하는 게 가능하기나 하냐고.’

설령 정의감에 불타서 그곳에 남았더라도, 그 많은 범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범 사냥꾼이라고 해서 천하무적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A 백화점에는 피해자가 거의 없었다.

증언에 따르면, 범이 우짖는 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리자, 갑자기 범들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두리번거리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한다.

대단한 범이 인간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왜? 범이라면 응당 인간을 잡아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거기서 싹 다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날 집에 돌아온 성진은, A 백화점의 생존자가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사무실에 가지 않고 동향을 살피자, 아니나 다를까 A 백화점에서 벌어진 일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집에 숨어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성진은 그 뉴스가 나오자마자, 이곳 2구로 도망쳤다.

“그 멍청한 새끼는 죽이려면 제대로 죽여야지, 그걸 못 죽여?”

원망은 경태 팀에게로 향했다.

“이건 전부 그 새끼들 때문이야.”

생존자들은 ‘범의 울음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고 했지만, 성진은 그 일이 제하 일행과 관련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생존자들은 제하 일행의 외모를 묘사하며,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해준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이제 호랑나비가 아닌, 이름 모를 7인에게 열광하고, 그들이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

동철이 걱정하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씨X. 난 진짜로 죽을 거야.”

동철은 일을 그르친 성진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경태도 무사하지는 않으리라.

성진은 두 손으로 머리를 거머쥐었다.

“하, 진짜 어떡하지?”

동철이 살아 있는 한, 신시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동철은 발이 넓었다.

게다가 호랑나비의 명성이 아무리 떨어진다 해도, 아직 바닥까지 떨어진 건 아니다.

동철은 어떻게든 호랑나비의 명성을 끌어올릴 거고, 여전히 동철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이들이 그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제하, 그 새끼네 팀에 붙을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하 일행에게 한 짓이 있으니, 제하가 받아줄 리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성진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제하 일행이 이보다 더 인기가 많아지기 전에.

“그놈의 목을 잘라서 동철 형님에게 바치면…….”

정상참작을 해주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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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이 있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더라.”

“뭐야, 그게? 지금 농담할 분위기 아니거든.”

“진짜야. 우리 조카가 저번에 서점에서 범을 만났대. 그런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했대.”

“네 조카, 6살 아냐?”

“맞아.”

“원래 그 나이 때 애들은 거짓말 많이 한다더라.”

“야, 내 조카가 거짓말쟁이라는 거야, 지금?”

티격태격하며 걸어가는 소영과 성준의 뒤를 따라가며, 정미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쟤들은 무섭지도 않나?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범이 하는 짓을 잊었어? 사람을 막 찢어서 먹는대. 그런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했다고? 거기다 네 조카가 범을 만나고도 살아남았다고?”

“진짜래도. 조카네 선생님도 봤대. 진짜 무시무시했는데, 살려줬다더라. 착한 아이는 안 잡아먹으니까 착하게 살라면서.”

“그럼 넌 잡아먹히겠네.”

“야, 너도 마찬가지거든.”

정미는 소영과 성준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게 신경 쓰였다.

그들은 지금 1구에 와 있었다.

제일 처음으로 범들의 습격을 당하기 시작한 1구는, 낮인데도 밤처럼 어둑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정미는 1구에 친구가 살아서 몇 번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왔던 곳과 같은 곳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그곳은, 짐승도 찾지 않는 듯 고요했다.

“저기, 얘들아.”

정미가 작게 불렀지만, 소리 높여 네가 더 못됐네, 어쩌네 하는 친구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저기, 얘들아.”

참다못한 정미가 둘의 어깨에 손을 얹자.

“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친구들이 비명을 질렀다.

정미도 깜짝 놀라서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자, 소영이 정미의 팔을 아프지 않게 때리며 말했다.

“야, 네가 놀라게 해놓고 왜 네가 소리를 질러?”

“아, 진짜 깜짝 놀랐네.”

친구들의 말에 정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나는 너희가 범이라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줄 알았잖아.”

“어휴, 여기서는 그렇게 조용히 다가와서 건드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그런 거치고는 너무 큰 소리로 떠들던데.”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려던 소영은 정미의 말이 옳다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목소리, 그렇게 컸어?”

대답은 그들의 뒤에서 들려왔다.

“그래, 꼬맹이들. 너무 크던데?”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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