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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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영웅
2022.07.2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회색 범은 훌쩍 뛰어 그것을 피했다.
팟-!
정미의 바로 앞에 그것이 꽂힌 후에야, 날아온 것이 화살이라는 걸 깨달았다.
회색 범의 목 뒤에도 화살이 꽂혀 있었다.
회색 범이 신경질적으로 화살을 빼냈다. 화살촉에 살점이 붙어서 떨어져 나왔다.
“어디냐!”
회색 범이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어디냐아아아아!”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였다.
쌔애애애액-!
그 소리를 가르고 날아온 화살을, 회색 범은 피하지 못했다.
회색 범의 허벅지에 화살이 꽂혔고, 회색 범은 절규했다.
“크아아아아, 커럽!”
하지만 절규조차 끝내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알이 회색 범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회색 범은 휘청거리다가 결국 허물어졌다.
한쪽 무릎을 꿇은 회색 범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목을 손으로 쥐고 증오스러운 눈으로 어딘가를 노려봤다.
그건 다른 범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어디지?”
“사냥꾼 놈들인가?”
사냥꾼.
노란 범과 줄무늬 범이 주고받는 소리를 들으며, 정미는 안심했다.
살았다.
사냥꾼들이 온다.
이 순간만큼은 요새 평가가 바닥에 떨어진 호랑나비여도 감사했다.
누구든 우리를 구해만 준다면, 평생 존경하며 은혜를 갚을 자신이 있었다.
“나와아아아! 이 비겁한 새끼들! 나오라고!”
타앙-!
아주 멀리서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 날아온 총알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노란 범이 손으로 총알을 잡은 것이다.
노란 범은 성가신 듯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파리 같은 새끼들.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건 무서우냐? 얼른 나와라! 사지를 갈가리 찢어줄 테니!”
하지만 상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화살을 쏘거나 총을 쏠 뿐이었다.
범들은 짜증 난 듯 파리채 휘두르듯 손을 휘둘러 총알과 화살을 잡거나 쳐냈지만, 몇 방은 제대로 막지 못했다.
노란 범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휙 뒤를 돌아 소녀들을 보더니, 정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미를 인질로 잡아서, 사냥꾼들의 공격을 멈추게 할 생각이었다.
범의 긴 손톱이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정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범의 손은 정미의 목에 닿지 않았다.
스걱-!
뭔가 예리한 것이 베어내는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으아아아악!”
범의 비명이 들려왔다.
정미의 목을 잡으려 했던 노란 범의 손이 정미 옆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꺄아아악!”
그제야 정미의 목이 트인 듯 비명이 터져 나왔고.
“아아악!”
“흐아아아아!”
성준와 소영도 소리를 지르며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도망치려 애썼다.
그러던 학생들의 눈에, 그 남자가 들어왔다.
주머니가 많은 테크웨어를 입은,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을 가진 덩치 큰 남자.
그는 칠흑처럼 새까만 검을 들고, 학생들과 범들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 사람이다!’
그를 보는 순간, 정미는 생각했다.
‘그 사람인 거야.’
왜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A 백화점에서 사람들을 구한 후 조용히 사라진 7인 중 한 명이라는걸.
어둠 같은 절망에 빠져 있던 정미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
‘살 수 있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그가 있으면 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
손목 잘린 노란 범이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외쳤다.
노란 범의 동료인 줄무늬 범은 주안을 상대하고 있었고, 심각한 부상을 당한 회색 범은 세인과 얼마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회색 범을 죽인 세인이 양손에 든 단검을 들어, 노란 범의 등에 찔러넣으려 했지만 제하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쳇.”
세인이 투덜거리며 단도를 내렸다.
싸움의 승패는 쉽게 정해졌다.
1구에 있는 범 세 명은 전부 하급 범이었고, 착호에게 하급 범 세 명은 큰 싸움거리도 되지 못했다.
동료들이 모두 당했다는 걸 깨달은 노란 범이 하나 남은 팔로 제하에게 달려들었지만, 날카로운 손톱은 제하의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서걱-!
제하가 성가신 듯 검을 휘둘러, 긴 손톱을 베어낸 것이다.
범의 손톱은 평범한 손톱이 아니었다.
아무리 하급 범이라도 무쇠처럼 강도 높은 손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손톱을 검 한 번으로 베어내다니.
노란 범은 제하가 평범한 인간도, 평범한 범 사냥꾼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넌 뭐냐?”
“후포는 어디 있지?”
“후포? 하! 인간 놈이 후포 님에 대해 어떻게 알지?”
“그런 것까지는 알 거 없고, 후포는 어디 있지?”
노란 범이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노란 범은 ‘나쁜 인간’만 죽인다는 후포의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마로를 따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포를 배신할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범들에게 후포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을 보호해 여기까지 이끌어온 은인이자, 영원한 수호자였다.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으냐. 그나저나 너, 어디서 본 얼굴이다 싶었는데…… 인왕산의 그 꼬맹이로구나.”
제하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걸 보며, 노란 범은 ‘이거다!’ 싶었다.
“네 아비에 대해 알고 싶지 않으냐? 네 아비와는…….”
서걱-!
노란 범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제하는 일검으로 노란 범의 목을 잘라냈다.
툭 떨어진 노란 범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그를 내려다보며, 제하는 말했다.
“그런 건 됐어. 내 기억이면 충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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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호를 만들고 나서, 이것으로 열 마리째의 범을 죽였는데, 아직 후포에 대해 알아낸 게 없었다.
범들은 충성심이 대단한지, 그 무슨 짓을 해도 후포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뭐 들은 거 있어?”
멀리서 지원해주던 도건이 달려왔다.
제하는 고개를 저었다.
“환이는?”
“호수랑 하루 쪽으로 가본다고 갔어. 하급 범들이었네.”
“응, 다행이지.”
“후포에 대해서는 뭐래?”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
“의외야. 후포가 그렇게까지 범들의 신뢰를 받다니.”
“그러게.”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범들은 날뛰는 와중에, 범 사냥꾼들의 분위기도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호랑나비의 명성이 떨어지자, 범 사냥꾼 팀들은 범 사냥보다 자기들 팀의 위치를 끌어올리는 데 혈안이 되었다.
호랑나비가 앉아 있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희생자들은 계속 나오는데, 범 사냥꾼들은 범을 잡는 것보다 호랑나비와 같은 권력을 잡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설상가상으로 범들의 대장인 후포의 거취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저기요…….”
심각한 분위기를 깨고, 한 톤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뒤돌아보자, 아까 범들에게 죽을 뻔한 세 학생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서 있었다.
교복을 입은 세 학생은 음침한 1구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도, 방금 전에 죽을 뻔한 사람들 같지 않았다.
학생들은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제하 일행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그분들이시죠?”
“그분들이요?”
“그…… A 백화점이요. A 백화점의 영웅.”
학생의 말에 제하는 얼굴을 붉혔다.
요새 사람들이 제하 일행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제하 일행을 찾는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A 백화점의 영웅’이라는 표현이 민망하기도 하고, “저희가 그들입니다.”라고 나서기도 마뜩잖아서, 모르는 척하고 있던 터였다.
“아, 예에.”
제하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학생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발을 동동 굴렀다.
“꺄아! 그럴 줄 알았어.”
“웬일이야. 그분들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와, 형님들. 진짜 멋있어요. 우와, 진짜 잘생기셨다!”
“완전 팬이에요. 진짜 멋져요. 사람들을 목숨 걸고 구했는데 나서지도 않고.”
“꼭 만나고 싶었어요! 손 한 번만 잡아주세요.”
제하는 이런 대우를 받는 게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행을 돌아봤는데, 이런 상황이 처음인 건 도건과 세인, 주안도 마찬가지인지라 다들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뭐야, 오빠. 얼굴 빨개졌어요. 진짜 귀엽다.”
“막, 막, 영웅이라고 해서 진짜 엄청 되게 무시무시할 줄 알았거든요. 엄청 막 크고요. 그, 조폭 같은 느낌이요.”
“맞아. 호랑나비 동철이란 사람도 완전 조폭 같잖아요. 그럴 줄 알았는데, 오빠는 덩치 커도 멋있어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귀여워요!”
“오빠, 저는 소영이에요. 기억해주세요.”
“뭐야, 치사해. 저는 정미예요.”
“저는 성준입니다, 형님. 제 이름, 기억해주세요.”
난리 났다.
제하는 가장 믿음직한 도건을 향해 눈빛으로 물었다.
‘형, 어떡하지?’
도건은 듬직하게 눈빛으로 대답했다.
‘도망쳐.’
이런 상황에 대한 답을 모르는 건 도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도망치고 싶지만, 범들이 복수하러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생들만 남겨두고 갈 수는 없었다.
“왜 여기에 온 거예요? 여기, 위험한 거 몰라요?”
다행히 주안이 어른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아, 저희가요. 무기를 구하러 왔거든요.”
“무기?”
“네. 총을 싸게 판다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러 왔는데…… 아, 맞다! 표리!”
학생들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에, 착호도 그들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찌그러진 자동차 옆에, 한 남자가 구겨진 듯 쓰러져 있었다.
그 남자의 모습에 착호는 깜짝 놀랐다.
인간도, 범도 아닌 기괴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사람 외모에 가장 예민할 나이의 소녀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남자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표리! 표리, 죽었어요? 일어나봐요. 범들, 우리가 이겼어요.”
학생들의 손길은 거침없었고, 제하는 저러다가 진짜로 ‘표리’라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제하가 부르자, 학생들이 표리를 흔드는 걸 뚝 멈추고 제하를 돌아봤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눈빛에, 제하는 긴장했다.
“일단, 여긴 위험하거든요. 범들이 또 나타날지도 몰라요.”
그제야 학생들은 이곳이 어딘지, 조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은 듯 창백해졌다.
“저기, 이 사람이요. 우리를 구해주려고 했거든요. 그러다가 범한테 당했어요. 그러니까 꼭 좀 살려주세요.”
“알겠어요. 우리가 잘 챙길 테니까, 얼른 여기를 떠나요. 돌아보지 말고 안전한 곳까지 달려가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미라는 소녀가 떠나기 전, 제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 오빠들도 팀이에요?”
“네.”
“이름이 뭐예요?”
제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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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