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 살려주세요. (29/85)


29. 살려주세요.
2022.07.3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아아아악!”

낯선 목소리에, 그들은 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그들이 아우성을 치며 도망치려는데, 날 듯이 훌쩍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상대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 좀 깩깩거려!”

상대의 외침에, 그들은 소리 지르는 걸 멈추고 상대를 응시했다.

겁에 질린 그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상대는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낡아서 누더기처럼 보이는 망토를 두르고, 후드를 깊이 뒤집어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피부색이 이상할 정도로 녹색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기묘하게 뒤틀린 손가락은 너무 길었다.

‘역시 무기 같은 걸 구하러 오는 게 아니었어…….’

정미는 울고 싶었다.

며칠 전, A 백화점 사건이 크게 터져서 호랑나비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지고 있을 때.

소영이 말했다.

-“우리, 무기 사러 가자. 무기를 싸게 파는 사람을 찾았어.”

-“웬 무기?”

-“이제 우리도 우리 한 몸 지킬 힘이 있어야 해. 범 사냥꾼만 믿을 수는 없어. 호랑나비 봐봐. 범들이 왔는데 자기들끼리 살겠다고 도망쳤다잖아.”

그때는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이 있어서 두려움을 몰랐다.

소영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대단한 호랑나비가 범들이 무서워 사람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쳤다는 건, 아무 힘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미의 부모 역시 며칠 전부터 무기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던 터였다.

-“사냥꾼들이 파는 무기는 진짜로 비싸대. 우리가 그런 걸 살 수 있을까?”

-“어차피 사냥꾼들 무기는 우리가 써봐야 제대로 쓰지도 못해. 평범한 총 하나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여차할 때 쏘면 되니까.”

총이라니.

하지만 그런 세상이었다.

제 한 몸 지키기 위해서, 집에 총 한 자루는 놔둬야 하는 세상.

-“요새는 사냥꾼들도 총 구하기 힘들다던데…….”

-“그러니까, 그 총을 판다는 사람을 찾았다니까? 그것도 엄청 저렴하게.”

엄청 저렴하다고 해도 100만 원이 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동안 모아둔 세뱃돈이며 용돈이 있었다.

거기다 부모님에게 참고서를 산다고 하고 돈을 좀 더 받으면 만들 수 있는 금액이었다.

어차피 부모님도 무기 구하는 걸 고민했으니, 무기를 구해서 가면 혼내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기상은 무기를 구하려면 1구로 오라고 했다.

아직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열혈 고등학생들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1구가 폐허가 되었다고는 해도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3명이 함께 가는 거라서 모험을 떠나는 기분까지 들었다.

자신들이 어리석었다는 걸, 눈앞의 남자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입술이 비죽 올라가자, 그 안에 자리 잡은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범이야. 범인 거야. 우리는 범한테 속은 거야.’

들은 것과 달리 체구가 작기는 하지만, 범인 게 분명하다고, 정미는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도망칠 생각도 못 한 채 바들바들 떨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소영이 말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어흑…… 살려…… 흐흑……. 저희 집은 자식이 저 하나뿐이란 말이에요. 흑……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저, 저도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상대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뭘 잘못했다는 거지?”

“그냥…… 전부 다요. 여기 온 것도…… 흑. 어흑…… 죄송해요.”

“흐응. 너희들, 나한테 총 사러 온 애들 아니었냐?”

총.

그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단어가 나오는 바람에, 학생들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가 후드를 뒤로 젖히자,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후드 아래에 감춰져 있던 얼굴은 너무 이상했다.

범처럼도, 인간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인간인데, 인간이 되다가 만 괴물처럼 보였다.

일그러진 두상과 한쪽이 더 큰 눈, 낮고 울퉁불퉁한 코와 뒤집힌 듯 올라간 입술.

성준의 입이 경악한 듯 벌어지는 걸 보며, 그가 씩 웃었다.

“괴물 같냐?”

학생들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상냥한 꼬맹이들이로구만.”

그가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총 사러 온 거, 맞지?”

무섭게 생기기는 했지만,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요새는 인간들은 그렇게 뭐든 똑같이 하는 게 유행인가?”

“이…… 인간이 아니에요?”

소영은 이제 그에게 질문을 할 만큼 용기를 되찾았다.

“글쎄. 표리지.”

“네?”

“내 이름. 표리라고.”

“아. 저, 저는 소영이에요. 얘는 성준이고, 얘는 정미고요.”

“흐응. 그래서, 구하는 건? 총 세 자루?”

“네.”

“비쌀 텐데.”

“저희, 도, 돈 많아요.”

표리가 휙 돌아서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자, 그가 돌아보며 말했다.

“뭐해? 따라와.”

“어, 어딜요?”

“총 보러 안 가?”

“아…….”

학생들은 서로 눈을 맞췄다.

저 남자를 믿고 따라가도 좋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

“원래 사기꾼 중에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댔어. 사기꾼들이 더 착하게 생겼다잖아.”

“하지만 저 사람은 착하게 생기지는 않았잖아.”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는 중에도, 표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난 총이 필요해. 내 가족은 내가 지킬 거야. 너희는 알아서 해.”

소영이 먼저 마음을 굳히고 남자를 따라 걸어갔다.

성준와 정미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소영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걸은 지 얼마나 됐을까.

앞서 걷던 표리가 갑자기 휙 돌아보더니,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표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학생들은 얼어붙어서 비명을 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표리의 뒤틀린 손가락이 학생들을 향해 쭉 뻗어왔다.

표리는 학생들의 팔과 멱살을 잡아서 확 끌어당겨, 자기 뒤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역시 믿는 게 아니었어…….’

정미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도망쳐!”

표리가 외쳤다.

그제야 학생들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던 3명의 남자를 발견했다.

쫑긋 선 귀와 뾰족한 송곳니.

범이었다.

“으아…… 흐아…….”

범들이 풍기는 기운은 표리와 완전히 달랐다.

표리를 범이라고 의심한 게 미안할 정도로, 범들은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

가장 앞서서 달려오던 회색 범이 땅을 박차올랐다.

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의 도약력으로 몸을 띄운 범이, 마치 공기를 발로 차는 듯 방향을 바꿔 표리를 향해 떨어져 내려왔다.

표리가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내자, 그 손에 총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타앙-!

탕-!

날카로운 파열음이 조용한 1구의 공기를 갈랐다.

탕-!

탕-!

처절하게 쏘는 총알을, 범은 단 한 방도 맞지 않았다.

회색 범이 마치 공중제비를 도는 듯 표리의 총알을 피하는 동안, 노란 범이 표리에게 어깨를 부딪쳐왔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표리의 작고 마른 몸이 멀리 날아갔다.

콰앙-!

날아간 표리가 주차된 자동차에 부딪혀 떨어졌지만, 학생들은 표리의 상태를 확인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아무 무기도 없이 남겨진 세 명의 학생을 향해, 세 명의 범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범이 한 명이어도 상대할 생각도 못 할 텐데 세 명이나 되었다.

학생들은 범들과 싸울 의지조차 없었다.

범들도 그걸 아는지 여유롭게 다가오며 자기들끼리 수다도 떨었다.

“나는 남자애로 해야겠어.”

“저 머리 묶은 애가 더 통통하고 맛있겠는데.”

“뭔 소리야. 피부가 하얀 것들이 맛있다고.”

“맛보다는 양이지.”

“그러다가 체한다. 저번에 어떤 멍청한 놈이 인간을 통째로 삼켰다가 체해서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거 몰라?”

“아, 그러고 보니, 그놈은 어떻게 됐어?”

“글쎄. 요새 안 보이네.”

“체해서 굶어 뒈졌나?”

킬킬 웃으며 다가오는 범들을 보며, 학생들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소리를 냈다가 눈에 띄어서 가장 먼저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범의 눈빛은 정말로 잔악하고 강렬해서, 표리한테 했을 때처럼 살려달라고 빌 수도 없었다.

그제야 학생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았다.

총 한 자루 가졌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실제로 표리는 총을 두 자루나 가졌고, 심지어 학생들보다 빠르게 움직였는데도, 범들에게 총알 한 방 먹여주지 못했다.

6월의 더운 바람에 피비린내가 섞였다.

학생들은 그 비린내가 범들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걸 깨달았다.

“흑…….”

소영이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범들의 눈동자가 소영에게 향하자, 소영이 겁에 질려 딸꾹질을 했다.

회색 범이 히죽 웃었다.

“우냐? 왜? 무서워서?”

“사, 살려……. 아…… 살려…….”

“살려줘?”

소영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회색 범이 자기 동료들을 돌아봤다.

“얘가 살려달라는데, 어떡할까?”

“그럼 살려서 통째로 먹어버려. 네 뱃속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 되지.”

“오, 정답.”

회색 범이 소영을 향해 손을 뻗는 그 순간이, 정미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졌다.

정미는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뱃속에 통째로 들어가느니,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는 게 낫겠다.

‘아니면…….’

그 사람들이 와줬으면.

19구의 생존자들을 구했다는 사람들.

사람들을 구한 후 이름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그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와준다면 정말로…….

“커헉!”

회색 범이 갑자기 내지르는 소리에, 정미는 상상에서 벗어났다.

회색 범은 소영의 목을 잡으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다가, 천천히 자신의 목 뒤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쌔애애액-!

무언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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