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 포수 (2) (32/85)


32. 포수 (2)
2022.08.2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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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은 멍하게 범 사냥꾼을 올려다봤다.

범 사냥꾼은 이제 17살인 재원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였다.

떡 벌어진 어깨, 탄탄해 보이는 가슴,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 같은 험상궂은 외모.

다른 때라면 만나고 싶지 않을 타입이지만, 범을 잡기 위해 달려와 준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포수’를 누르는 순간, 달려온 그의 모습을 보며 안도했던 것이 몇 분 전의 일이었다.

“뭐하냐? 얼른 내놔.”

범 사냥꾼이 건들거리며 말했다.

재원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뭐, 뭘…… 달라고요?”

“하, 이 새끼. 말했잖아. 학생 할인해서 200만 원에 해주겠다고. 감사하게 여겨. 딴 놈들은 나보다 많이 받고, 어리다고 해서 할인을 해주지도 않거든.”

“200만 원은…… 왜……?”

범 사냥꾼은 어깨가 움직일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가에 서리는 짜증에, 재원은 긴장했다.

“아가야. 뭐든 이용을 했으면 이용료를 내야지. 어릴 때부터 공짜 좋아하면 못 쓴다.”

“하, 하지만…… 포수는 무료 이용인데…….”

“아, 거야 앱 설치가 무료인 거고.”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하지만이. 잘 생각해봐라, 아가야. 앱을 개발하신 위대한 환웅 님이야 저 높고 안전한 곳에 앉아서 앱 배포만 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범이랑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

“…….”

“목숨 걸고 싸워달라고 부르면서 한 푼도 안 내겠다고? 우리가 네 따까리냐? 개인 경호원이야? 아, 개인 경호원도 돈 받고 해주는 거지. 봐봐, 누가 꽁으로 일을 해주냐고.”

“고, 공짜 아니잖아요.”

재원은 용기를 냈다.

200만 원이라니. 그렇게 큰돈은 없다.

“범 잡아서 이살에 가져다주면 돈 주잖아요.”

“하아. 그거 알아? 무기가 드럽게 비싸단 말이지. 우리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움직이려면 좋은 무기가 필요하니까, 어쩔 수가 없다는 거야.”

“하, 하지만…….”

“야, 뭐해? 아직도 돈 못 받았어?”

범 사냥꾼의 동료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그는 범의 머리를 잘라서 손에 쥐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든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며, 재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무서운 범이지만, 지금은 눈앞에 있는 범 사냥꾼들이 더 무서웠다.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가야. 나는 친절한 편인데, 저 친구는 그렇지가 않거든. 빡이 돌면 아무도 못 말려요. 너 같은 어린애가 우리 등쳐먹으려고 하는 꼴을 못 보는 놈이야.”

범 사냥꾼의 동료가 음산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범의 목을 자른 검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며, 재원이 얼른 말했다.

“드, 드릴게요. 드릴게요, 200만 원.”

“그래, 착한 청소년이라면 그래야지.”

“하, 하지만…… 저, 지금은 돈이 없어서요.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는데…….”

“그래, 그래. 아들 목숨을 살려줬는데 200만 원은 껌값이겠지. 하, 우리는 진짜 저렴하다니까.”

재원은 범 사냥꾼들을 데리고 집에 가는 수밖에 없었고, 저녁을 하던 재원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깡패 같은 범 사냥꾼들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200만 원을 내주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범 사냥꾼은,

“또 불러주쇼. 우리처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라고 말하며 떠났다.

정말로 그랬다.

+++

---

헐. 나 어제 범 만나서 포수 썼거든? 근데 범 사냥꾼이 돈 받아감. 300이나 받아감.
⌞300은 싼 거. 요새 보통 500이라더라.
⌞포수 무료 아니었음?
⌞포수는 무료임. 범 사냥꾼들이 무료가 아님.
⌞돈독 올랐네. 범 사냥꾼들, 범 잡으면 현상금 받잖아.
⌞꼭 좋은 걸 만들어놓으면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저희 할머니도 포수 썼다가 400만 원이나 냈대요. 처음에는 사기인 줄 알았는데, 요새 범 사냥꾼들이 거의 돈 받는다더라고요.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그 사람들도 목숨 걸고 싸우는 거고, 그 사람들 덕에 목숨 건진 건데. 목숨값 500만 원이면 싼 거지.
⌞아니, 그래도 500은 심하지. 우리 같은 소시민한테 500이 어디 있다고?
⌞범 사냥꾼들에 대한 대우가 너무 좋은 것 같음. 그 사람들 식당에 가면 할인도 엄청 해주던데.
⌞없이 살던 놈들이라 돈맛 좀 보니까 이성 잃은 듯.
⌞어떤 범 사냥꾼, 은퇴하면서 겁나게 좋은 집 샀던데.
⌞운 좋게 범 사냥꾼 능력을 얻은 거면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거 진짜 재수 없어.

---

환웅은 인터넷에서 ‘포수’에 대해 떠들어대는 글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찮은 놈들.”

‘포수’를 개발할 때부터,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는 걸 예상했다.

돈 몇 푼 때문에 신의를 버리고, 돈 몇 푼 때문에 상대를 질투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분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채.

옛날에도 그랬다.

“그래, 너희는 옛날에도 그랬지요.”

환웅은 그때를 떠올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는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도 참 재미있네요. 그렇지요?”

+++

“흐아. 가을은 언제 오나.”

도건이 옷을 펄럭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치렁치렁한 코트를 벗으면 좀 시원하지 않을까?”

주안의 말에 도건이 인상을 찌푸렸다.

“안 돼. 이건 내 동생들이 처음 번 돈을 모아서 사준 거라고. 이제 이건 나 자체와 같아. 벗는 순간, 난 죽는다.”

“아, 그래. 그런데 목욕하러 들어갈 땐 잘만 벗던데.”

도건은 주안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옆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리켰다.

“저거나 먹자.”

아이스크림 매장은 에어컨을 세게 틀어놔서 시원했다.

주안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갈 생각이었는데, 도건은 굳이 먹고 가자고 했다.

쌀쌀한 곳에서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니, 바깥의 무더위가 잊힐 정도로 서늘했다.

주안이 부르르 떨자, 도건이 말했다.

“이제 이 코트의 중요성을 알겠냐?”

“그거 알려주려고 굳이 여기서 먹고 가자고 한 거야?”

도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주안은 그렇게 웃는 도건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지?”

“음?”

“동생들, 생각 안 나?”

“나지. 매일 나. 길 걷다가도 나고, 화장실 갔다가도 나고, 잠을 자다가도 나고.”

도건이 자기 앞에 놓인 아이스크림 컵을 내려다봤다.

“이런 걸 먹을 때도 나고……. 여기 아이스크림이 좀 비싸잖아.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꿈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 돈 벌면 여기 아이스크림 먹는 거였거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했지.”

도건의 눈가에 쓸쓸한 슬픔이 스쳤다.

“내 동생 중의 한 명이, 재철이라는 녀석인데. 그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배 터지게 먹고 그러더라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러고 진짜로 죽을 줄이야…….”

“……미안해. 괜히 얘기 꺼내서.”

“아냐.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잖아. 나는 내가 죽더라도 그 녀석들이 잘살기를 바랐을 거거든. 그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믿고, 잘살아 보려고. 먹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도건의 말을 들으며, 주안은 생각했다.

‘나래야, 너도 그러니? 나 혼자 살아남아서 먹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내가 밉지는 않니? 너와 함께하기로 했던 것들을 혼자서 하는 내가 싫지 않니?’

슬픔에 젖은 주안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도건이 말했다.

“너, 부모님이랑은 이제 괜찮아졌냐?”

“……응, 뭐. 그렇지.”

“안 괜찮구나?”

주안이 범 사냥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말렸다.

언제나 순하게 부모님의 뜻을 따라온 주안은, 처음으로 반항했고 그 때문에 어머니는 많이 울었다.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래가 자신을 지키느라 죽었는데 나 혼자서만 편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나래를 죽게 만든, 이 상황을 끝낼 만한 무언가를.

“너희 부모님도 널 사랑하셔서 그런 걸 거야.”

“응, 그렇겠지.”

“살아 계실 때 잘해드려.”

“그래. 이 싸움이 끝나면.”

주안의 말에, 도건이 쓴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 싸움이 끝나기는 할까 싶다. 포수 앱 생기면서 사냥 양이 늘었는데, 범이 줄어들 기미를 안 보이잖아. 생각해보면, 인간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많은데, 범도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거 아닐까?”

“그러게. 게다가…… 포수 앱이 생긴 건 좋은데, 이걸 장난삼아서 누르는 사람들이 있는 게 문제야.”

“아, 맞아. 썩을 놈들. 저번에 알림 울려서 달려갔더니, 아무도 없더라고. 진짜 개빡쳤었는데.”

“누르는 사람 정보가 뜨면, 장난으로 누르는 일도 없을 텐데. 환웅은 거기까지 생각 못 했나?”

“그러게 말입니다.”

포수를 장난으로 누르는 사람이 생겨서, 범 사냥꾼들이 이에 대해 수정 요청을 보냈지만, 환웅은 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범 사냥꾼은 목숨 걸고 싸우는데 장난으로 포수를 누르는 일반 시민 때문에 화가 나고, 시민은 돈을 따로 받는 범 사냥꾼 때문에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포수 개발 전에는 없었던 미움이 싹트고 있다는 걸, 시민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도건과 주안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진동했다.

둘 다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더니, 포수의 알림이 들어오고 있었다.

“야, 이거 우리 대화 들은 것 같지 않냐?”

도건이 휴대전화를 흔들며 말하는 동안, 주안이 앱을 눌러 위치를 확인했다.

“이 건물 골목 안쪽이야.”

“만약 장난으로 누른 거면 찾아내서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지.”

도건과 주안은 가게를 빠져나와 지도에 표시된 곳을 향해 달렸다.

일반인이 아닌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알림을 울린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난으로 누른 것이 아니었다.

범이 있었다.

‘두 마리.’

주안은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상당히 강한 놈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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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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