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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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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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원하는 바다.
2022.08.2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포수 앱 때문에 범 사냥꾼 여럿이 몰려오면서 범 사냥률이 높아지자, 범들도 위기의식을 느낀 듯 여럿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놈 하나였어도……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주안은 긴장했다.
여자 범과 남자 범.
여자 쪽은 갈색이고, 남자 쪽은 흰색이었는데, 하얀 범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범의 힘을 완벽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도건은, 크게 긴장하지 않은 듯 총을 쏘았다.
쌔액-!
소음기를 부착했어도 소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구석에 몰린 인간 남자를 노려보던 범들이 휙 돌아섰다.
하얀 범이 뻗은 손이 날아오는 총알을 쉽게 잡았다.
범 사냥꾼용으로 개발한 총이다. 거기에 도건의 힘까지 실렸다.
평범한 총보다 빠르고 강하게 쏘아진 총알을, 저렇게 쉽게 잡다니.
그제야 도건도 긴장한 듯 자세를 다잡았다.
“사, 사, 살려주세요!”
범들 뒤에 있던 남자가 외쳤다.
‘살려주고는 싶은데…… 우리도 살 수 있을지…….’
주안은 저 하얀 범이 불티만큼이나 강한 상급 범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갈색 범은 중급 정도 될까?
중급 범도 버거울 상황인데, 상급 범까지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니.
주안의 눈동자가 슬쩍 굴러, 도건을 향했다가 다시 범들에게 고정되었다.
‘도건이라도 살려야 해. 도건이가 애들을 불러오게 하면…….’
“가라.”
그때, 하얀 범이 깜짝 놀랄 말을 했다.
“뭐?”
도건이 되묻자, 하얀 범이 천천히 손을 들어 도건과 주안의 뒤쪽을 가리켰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냥 가라. 살려줄 테니.”
범 사냥꾼을 그냥 보내주려는 범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저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그 남자도 살려줘.”
도건이 턱으로 범들 뒤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얀 범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이놈은 안 돼.”
“그럼 우리도 안 가.”
크르르르르-
하얀 범이 포효했다.
갈색 범이 날아올랐고, 하얀 범이 검은 안개에 휩싸였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갈색 범을 향해, 도건의 총알이 날아갔다.
갈색 범은 몸을 비틀어 피하며 내리꽂히듯 도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도건은 총신을 들어 갈색 범의 손톱을 막아냈다.
채앵-!
“좀 하는 꼬마구먼.”
갈색 범이 유쾌하게 말했다.
“너도 좀 하네.”
도건의 대응에, 갈색 범이 히죽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얀 범과 주안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긴 장창과 검은 안개 때문에, 갈색 범과 도건은 제대로 싸우기 힘들었다.
“딴 데 가서 싸울까? 저기에 휘말리면, 우리 둘 다 엿 될 것 같은데.”
갈색 범이 엄지로 검은 안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지.”
갈색 범이 먼저 날 듯이 달렸고, 도건이 그 뒤를 쫓았다.
도건은 갈색 범이 사람 많은 곳으로 이동할 줄 알았다.
그런 곳으로 가면, 도건은 사람들을 지키느라 제대로 싸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갈색 범이 멈춘 곳은, 사람이 아예 다니지 않는 폐가 근처였다.
“여기가 좋겠군.”
갈색 범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너는…… 지금까지 내가 상대해온 범들이랑 좀 다른데.”
갈색 범이 웃었다.
“지금까지 어떤 놈들을 상대했는데?”
“이름이 뭐지? 아, 나는 도건이야.”
“저런. 이름을 알면 정이 들어버리는데. 나는 하라.”
하라는 도건보다 키가 크고 머리가 짧지만, 몸이 호리호리하고 목소리가 가늘었다.
머리 위에 쫑긋 선 범의 귀가 갈색 털로 뒤덮여 있었다.
“옛날에는 대결할 때, 서로의 이름을 밝히고 하는 게 예의였다더라고.”
“아, 그럴 때도 있었지.”
하라가 그리운 듯 말했다.
역시 하라는 다른 범들이랑 뭔가 좀 다르다.
지금껏 상대해온 범들은 마치 살인귀 같았다. 인간을 죽이지 못해 안달 난 놈들.
하지만 하라는 범이 아닌,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범의 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어. 죽일 거다.”
도건의 말에 하라의 입술이 즐거운 듯 벌어졌다.
“원하는 바다.”
+++
하얀 범이 만들어낸 검은 안개가 주안의 시야를 덮었다.
주안은 눈을 감고, 범의 기척을 읽어냈다. 하지만 창을 함부로 휘두를 수가 없었다.
도건 때문이었다.
하얀 범 역시 근처에 있는 갈색 범을 신경 쓰는 듯, 움직임이 더딘 덕분에 하얀 범의 공격을 막을 수는 있었다.
‘여긴 너무 좁아. 도건이가 다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갈색 범과 도건의 기척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다른 데 가서 싸우려는 모양이다.
‘차라리 잘됐어.’
위험한 건 하얀 범이다.
갈색 범은 중급이니, 도건이 최선을 다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긴다면 혼자 돌아오지 않고 다른 일행을 불러오리라.
‘이 범은 나 혼자서는 못 이겨.’
주안은 창을 잡고, 하얀 범의 손톱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포수 앱으로 근처의 다른 범 사냥꾼들을 불러볼까 하다가 관뒀다.
희생자만 늘 뿐이다.
쌔액-! 샤아악-!
손톱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주안이 피하는 소리만 골목 안에 가득 찼다. 검은 안개가 자꾸 시야를 가려서, 범의 공격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웠다.
하얀 범의 위치를 알아낸 주안이 장창을 찔러넣었지만.
휘익-!
하얀 범은 이미 공기를 밟고 허공으로 올라선 후였다.
내리꽂히는 하얀 범을 피해, 주안은 몸을 굴렸다.
하얀 범은 예상한 듯, 주안이 굴러간 곳을 향해 몸을 틀었고, 주안은 두 손으로 장창을 가로로 들어 하얀 범의 손톱을 막았다.
퍼석-!
지금껏 범들과 싸우면서도 무사히 버텨온 장창의 손잡이에, 하얀 범의 손톱이 박혔다.
하얀 범이 콧등을 찡그렸다.
“인간들은 묘한 무기를 만들어내는군.”
대꾸할 여력은 없었다.
주안은 무릎을 굽혔다가, 두 발로 하얀 범의 복부를 걷어찼다.
예상치 못한 강한 힘에, 하얀 범이 뒤로 날아갔다.
그 틈을 타서 주안은 몸을 일으키고, 장창을 고쳐 쥐었다.
“인간 주제에 강하구나.”
하얀 범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주안도 놀라웠다.
저런 상급 범을 걷어찰 만한 힘이 있었다니.
나래가 남겨준 힘 덕분에 속도와 힘이 상승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한 힘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주안은 서서히 장창에 힘을 불어넣었다. 주안의 육체에서도 스멀스멀 어두운 기운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
그걸 본 하얀 범의 눈이 커졌다.
“너, 범이냐?”
주안은 대답 없이 검은 안개로 하얀 범의 시야를 가리고, 하얀 범을 향해 달려갔다.
힘을 실은 장창을 하얀 범의 가슴 쪽으로 찔러넣었다.
푸욱-!
박히는 느낌이 났다.
‘됐어!’
속으로 쾌재를 외친 것도 잠시.
부웅-!
창을 쥔 주안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큭!”
세게 떨어지는 바람에 격한 통증이 몰려왔다. 주안은 구역질을 참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주안의 눈에, 하얀 범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손바닥에 주안이 찌른 창이 꽂혀 있었다.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하얀 범이 손바닥으로 창을 막은 후, 그대로 창을 들어 올려 주안을 땅에 떨어뜨린 것이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처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하얀 범이 하는 행동을, 주안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저러지?’
하얀 범은 자기 손에 꽂힌 장창을 신기하다는 듯 응시하다가, 창끝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주안 쪽을 향해 킁킁거렸다.
‘아니, 저놈의 생각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하얀 범이 딴 데 정신이 팔렸을 때,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될까?’
주안의 몸에는 나래의 힘이 있었다.
‘될 거야.’
주안은 힘겹게 일어나서, 양손에 남은 힘을 집중시켰다.
몸 안에 흐르는 힘이 두 팔을 지나 손가락 끝으로 몰려가는 게 느껴졌다.
스으으으-
짧았던 손톱이 서서히 길어지는 그 순간.
하얀 범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주안을 노려보며 물었다.
“너, 나래냐?”
+++
졌다.
도건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중급 정도인 줄 알았던 하라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중급에도 급이 있나 보다.
‘하긴…… 나는 제하나 주안이처럼 신기한 힘을 갖지 못했지.’
하라는 도건을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 했다.
그녀의 손톱에 긁히고 치이고 찔렸다.
소중히 여기던 코트가 찢어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내가 너무 나댔어.’
생각해보면, 도건은 언제나 서포트하는 위치였지, 1대 1로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하급 범이라면 혼자서도 이겼겠지만, 중급 범은 달랐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며, 그림자를 통해 몸을 감추는 중급 범을 총 하나로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평소처럼 모습을 감추고 총을 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숨을 곳을 향해 달렸지만, 하라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심지어 하라는 내가 숨을 곳을 찾게 놔두기까지 했어.’
그래서 숨었지만, 하라는 쉽게 도건의 위치를 찾아냈다.
‘숨은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 있는 게 분명해.’
제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댄 결과가 이거다.
제하나 주안, 호수 같은 녀석들과 함께 싸우다 보니, 자신도 그만큼 강한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범을 먹든가, 혼혈이든가, 아니면 연인이 범이었든가…….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 나 진짜 별로다.’
그런 식으로 힘을 얻은 동료들이, 그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면서, 팔자 편하게 그런 식으로라도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저벅-
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손톱을 집어넣은 하라가 서 있었다.
범의 귀가 쫑긋하게 올라오는 건 싸울 때뿐인지, 전투태세를 벗어난 하라는 거의 인간처럼 보였다.
도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하라가 입을 열었다.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어. 죽일 거다.”
하라는 아까 도건이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도건은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지만, 패배한 싸움에서 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기면 하라를 죽일 생각이었어.’
그러니까 승리한 하라가 날 죽이는 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살려달라고 매달리면, 저세상에 가서 동생들을 볼 낯이 없다.
도건은 눈을 감았다.
“원하는 바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