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그것 (35/85)


35. 그것
2022.09.10.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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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증오와 복수라는 것이 그렇다.

한 번 시작되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불티와 마로는 이미 수많은 인간을 학살했고, 인제 와서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해도 제멋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 신시에 존재하는 인간을 모두 죽인다.

증오할 곰족의 후예인 인간에게 우리가 당한 일을 똑같이 갚아준다.

그 목적이 족쇄처럼 불티와 마로의 발목을 붙들었다.

“그래서 그만 싸우고 싶으냐?”

마로의 질문에 불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환웅은 환웅이고, 인간은 인간이지. 그저 궁금해서. 저놈이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허서가 우리를 찾아다닌다더라. 정확히 하자면 너를.”

“왜?”

“나래를 죽인 것 때문에.”

불티가 휙 고개를 돌렸다.

마로는 제 동생의 눈동자가 일렁,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의문뿐이 아니었다. 죄책감도 있었다.

불티는 친하게 지냈던 나래를 죽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흥. 인간을 돕는 것 따위, 살려둬서 뭘 한다고.”

불티는 퉁명스레 말했지만, 술렁거리는 그의 눈동자는 다른 마음을 드러냈다.

“어차피 나래가 지키려던 꼬맹이는 우리 손에 죽을 거야. 그 꼴을 보느니, 나래도 일찌감치 죽어버리는 편이 나았어.”

마로는 불티가 하는 말이 진심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은 건, 마로 또한 후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후. 그 외 마로와 불티가 죽인, 몇 명의 인간 친화적인 범들.

눈앞을 새까맣게 덮고 있던 증오가 어느 정도 가신 지금에 와서야, 그들이 오래전 전쟁에서 함께 싸웠고, 함께 살아남은 동료들이었단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가 모든 인간을 죽여버리기 전에, 일찌감치 죽어버리는 편이 나았겠지.”

마로가 불티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의 음성에도 진심은 담겨 있지 않았다.

둘의 노란 눈동자가 신단수에 고정되었다.

“제하, 그놈은 찾았고?”

불티의 질문에 마로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원래 살던 집은 계속 비어 있더라. 아무래도 동료가 생겨서 본부를 옮긴 것 같던데.”

“서둘러야 해. 얼른 부숴버리지 않으면, 그 검은 예전처럼 우리 동족을 학살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마로가 초조해하는 불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우리가 당한 건, 그 검을 든 게 타배, 그 잡종 새끼였기 때문이다.”

“하긴. 제하, 그놈이 인간 중에서는 좀 강하다 해도 타배 정도는 아니겠지.”

“그래. 게다가 지금은 우리 애들이 마음껏 날뛰고 있으니, 그놈도 싸우느라 힘 좀 빠질 거다. 그놈 동료들부터 하나하나 제거한 후에, 마지막으로 그놈을 죽여버리면 돼.”

+++

“안녕하세요. 놀이체험 TV의 영민.”

“용희입니다.”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인 영민과 용희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인사했다.

“지난 편에 예고한 대로, 저희는 지금 1구에 있는 B 중학교에 찾아왔습니다.”

“B 중학교가 폐교한 건, 올해 4월에 범 10마리가 동시에 학교를 습격한 사건 때문이라는 거, 다들 아시죠? 그 때문에 죽은 학생과 교사만 31명! 부상자는 뭐, 어마어마했죠.”

“그! 런! 데! 말입니다. 그 후로 B 중학교를 두고 으스스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사건에서 죽은 학생과 교사들의 영혼이 밤마다 교실에 나타나서 수업을 한다는 건데요.”

“그들은 너무 갑작스럽게 죽은지라,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어요. 늦은 밤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 놀이체험 TV에서 그 소문의 진상을 파헤치려고 합니다. 지금은 밤 9시 30분. 해도 지고 주변에 가로등도 다 불이 나가서 귀신이 나타나기 딱 좋은 시간인데요. 이제 한번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있던 윤재가 거기서 카메라를 껐다.

“어때? 잘 나올 것 같아?”

영민의 질문에 윤재가 말했다.

“뭐, 분위기는 그럴싸한데, 목소리 템포를 좀 죽이는 게 낫지 않겠냐? 우리 지금 공포 체험 중이잖아.”

“처음 시작이 늘어지면 다들 지루해한다고. 이제 들어가서부터 분위기 잡으면 돼.”

“그런데…… 진짜로 들어가게?”

용희가 불안한 눈으로 영민을 올려다봤다.

“당연하지. 그러려고 온 건데.”

“하지만…….”

용희의 시선이 폐교를 향했다.

어둠에 둘러싸인 중학교 건물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평범한 학교도 밤에 오면 무서운데, 폐교된 지 몇 달이 지난 학교인 데다가 주위의 가로등에는 더 이상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들고 있는 손전등 빛이 전부였다.

“정말 괜찮을까?”

“왜 그렇게 떨어? 너, 옛날에는 폐가 체험도 잘 다니고 했잖아.”

“그거야 귀신은 안 믿으니까. 하지만 범은 진짜로 있잖아. 범이 나타나면 어떡해?”

“범은 사람 있는 데만 나타나. 1구는 폐허가 된 지 오래인데, 범이 올 이유가 없지.”

“그래도……. 사람이 없으니까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을 수도 있잖아. 범도 잠은 잘 테니까.”

“용희 말이 맞아.”

윤재가 끼어들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범 사냥꾼이라도 몇 명 고용했어야 했어.”

“야, 야. 요새 범 사냥꾼 몸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아? 그냥 무슨 일 생겼을 때, 포수로 부르는 게 훨씬 나아.”

“어차피 포수로 불러도 요새는 돈 받는다더라.”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혀. 요새 우리 인방 구독자 수 떨어져서, 천만 원 넘게 주고 고용할 돈 없다고. 아, 씨. 이럴 거면 대체 왜 오케이한 거야? 처음부터 싫다고 하든가.”

영민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자, 용희와 윤재가 그의 눈치를 봤다.

“아, 알겠어. 하면 되잖아, 하면.”

윤재의 말에 영민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래, 하자고. 제대로 한 방 터뜨리자고. 용희, 넌 어쩔 거야? 안 할 거면, 그냥 지금 돌아가. 아, 차는 놔두고 가고.”

용희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폐교와 영민, 윤재, 그리고 저 멀리 주차해놓은 차를 돌아봤다.

여기서 차를 놔두고 돌아가려면, 차가 다니는 곳까지 혼자서 한참을 걸어야만 한다.

게다가 용희는 돈이 급한 상황이었다.

“할게. 하려고 온 거니까.”

“그래, 잘 생각했어. 들어가서 분위기 좀 잡아보자고.”

굳게 닫힌 철문은 강철 사슬과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어서, 담을 타고 넘어야 했다.

안으로 들어오자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더 짙어졌다.

이제 고작 9월인데도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들은 운동장에서도 멘트를 하나 더 딴 후,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문도 잠겨 있었지만, 깨진 창문이 여러 군데 있어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여기는 교무실인 듯합니다.”

영민이 교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사건 후로 갑자기 폐교한 터라, 그때의 물건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아, 이건 시험 문제지네요. 시험을 푼 흔적이 있는데요, 아마 중간고사 직후에 그런 일이 벌어졌나 봅니다.”

“여기는 커피 마시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이 컵 안에는 커피가 말라붙어 있는데…… 으으, 이거 보세요. 이 빵은 쥐가 파먹은 것 같죠?”

용희가 반쯤 남은 빵이 담긴 봉지를, 손가락 끝으로 들어 올려 카메라 가까이 내밀었다.

그들은 한참 교무실 분위기를 설명해준 후, 복도로 나갔다.

1층에 있는 양호실, 화장실을 차례로 돌아보며 공포 분위기를 한껏 조성한 그들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으앗! 저게 뭐야!”

카메라를 들고 있던 윤재가 비명을 질렀다.

카메라를 향해 서 있던 영민과 용희가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에는 어둠이 존재할 뿐이었다.

“뭐, 뭐야아? 왜 그래, 너? 무섭게…… 그런 장난치지 마.”

용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장난이 아니고…… 진짜로 뭔가가…….”

윤재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복도를 향해 있었다.

영민이 복도 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왜? 범이라도 봤냐?”

“범……은 아닌 것 같은데. 좀 작았거든. 강아지 크기 정도?”

“그럼 강아지나 고양이라도 들어와서 살고 있나 보지.”

“아냐,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뭔가 좀……. 아, 여기 찍혔겠다.”

윤재가 카메라에 저장된 영상을 뒤로 돌렸다.

영민과 용희가 가까이 다가와 영상을 확인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영민과 용희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고, 그들이 2층을 막 밟는 순간.

“으아아!”

“우와! 뭐야, 이거?”

그들의 뒤로 뭔가 지나갔다는 걸, 영민과 용희도 확인했다.

윤재의 말대로 강아지 정도의 크기인데,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영상 다시 돌려서 멈춰봐 봐.”

영민의 말에 윤재가 영상을 돌렸다가, 그것이 나타나자마자 중지 버튼을 눌렀다.

“헐…… 뭐야? 대박. 이거…… 토끼, 아니지?”

“이렇게 생긴 토끼가 어디 있어? 거기다…… 이것 봐봐, 눈이 하나야. 박쥐 같은 날개도 있고. 으, 징그러워.”

“뭐가 징그러워. 눈 하나인 것만 빼면 귀엽게 생겼구만. 개쩌네, 이거. 야, 이거 찍자.”

“영민이 너, 미쳤어? 이게 뭔 줄 알고?”

“왜? 쬐끄맣고 귀엽잖아. 우리가 새로운 생물을 발견한 거라고.”

영민은 이 발견이 자신들의 방송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한참을 떠들어댔다.

영민의 말을 들으며 영상을 보다 보니, 용희와 윤재의 눈에도 그 생물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영민의 말대로 이 생물을 제대로 찍으면 조회 수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질 것이다.

용희와 윤재는 눈을 맞추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가보자.”

“저쪽으로 간 거 맞지?”

세 사람은 손전등 빛에 의지해, 음산한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갔다.

“아! 저기 있다!”

손전등 빛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잡혔다.

토끼 귀를 가진 ‘그것’은 깡충깡충 뛰어서 1학년 5반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세 사람도 달려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교실 안으로 ‘그것’을 몰아넣었으니, 이제부터 카메라에 ‘세기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생물을 담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두운 교실 안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허억!”

“꺄아아아아아악!”

조용한 폐교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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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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