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 저게 뭐야? (36/85)


36. 저게 뭐야?
2022.09.1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영민은 헛숨을 삼키고, 용희는 비명을 질렀지만, 윤재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1학년 5반 교실, 교탁 앞에 무언가 서 있었다.

그것은 긴 뿔을 가졌고, 고릴라 같은 얼굴에 아래턱에서부터 코가 있는 곳까지 자란 두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있었다.

그것만이라도 놀라울 텐데, 하체가 마치 지네의 몸뚱이 같았다.

마디가 있는 긴 몸통, 여러 개의 다리.

“으…… 으아아아아아!”

영민이 제일 먼저 정신 차렸다.

그가 허우적거리며 도망치려 하자, 용희와 윤재도 정신 차리고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조금 전 따라온 것과 같은, 자그마한 생물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저리 비켜!”

영민이 그것을 걷어차려 할 때, 갑자기 그것이 입을 크게 벌렸다.

다음 순간, 작은 생물의 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진 입이 단숨에 영민의 하체를 물어뜯어 삼켰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생각이 갈 곳을 잃는다.

윤재와 용희는 크게 뜬 눈으로, 하반신이 사라진 친구를 내려다봤다.

하반신이 사라졌는데도 영민은 살기 위해 팔을 버둥거렸다.

“사, 살려줘…….”

“아…….”

용희는 물어보려 했다.

왜 그러고 있어? 네 다리는 어디 간 거야?

하지만 그걸 묻기 전, 뒤에서 다가온 고릴라와 지네가 섞인 ‘그것’의 뿔이 용희의 등을 꿰뚫었다.

극심한 통증에, 용희는 눈물을 흘리며 윤재를 돌아봤다.

윤재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토끼 귀를 가진 ‘그것’은 야무지게 영민을 먹어치웠다.

‘그것’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하나밖에 없는 ‘그것’의 눈이 윤재에게로 향했다.

용희는 고통 속에서, 윤재가 ‘그것’에게 통째로 삼켜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해온 두 친구가 죽었지만, 슬픔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용희 또한, 또 다른 ‘그것’에게 자근자근 씹히는 중이었으니까.

+++

인간의 비명과 무언가를 씹는 듯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멈추고도 한참 후.

허름한 망토를 걸친 사람이 비틀거리며 1학년 5반 교실에 들어갔다.

그곳에 인간이 찾아왔던 흔적은, 바닥에 떨어진 카메라 하나뿐.

망토를 입은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디가 기괴하게 꺾인 손가락에 카메라 스트립을 걸어서 들어 올린 그는, 카메라가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그것을 품에 넣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제하는 최근 하루가 걱정스러웠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제하의 서포트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신이 딴 데 팔린 것 같았다.

평소에는 쉬는 시간에 TV를 보며 제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요새는 TV를 봐도 딴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야, 너…….”

제하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려 할 때, 포수 알림이 울렸다.

하루의 상태가 좀 이상하기는 해도, 사냥 일마저 손을 놔버린 것은 아니라서, 알림이 울리자마자 하루는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냐?”

“사거리 너머 골목 끝이야.”

“어서 가자.”

그들은 본부 지하로 이어진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와서, 알림이 울린 곳으로 달려갔다.

사거리를 훌쩍 날 듯이 건너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불빛.

인기척은 없었다.

범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제하는 척살검을 꽉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누가 또 장난으로 포수를…….”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뒤!”

하루가 외치며 오랏줄을 던졌다.

타앗-!

상대는 오랏줄 끝을 쳐내고, 몸을 비틀며 총을 쏘았다.

쌔액-!

소음기가 부착된 총성과 함께, 총알이 제하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왔다.

예전이었다면 맞았겠지만, 최근 동체 시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제하는 쉽게 총알을 피했다.

상대는 연달아 총을 쏘았지만, 제하는 모두 피하며 상대를 향해 달려갔다.

실패했다는 걸 깨달은 상대가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제하의 속도를 이길 수 없었다.

제하는 놈의 목덜미를 잡아, 팽개치듯 벽에 밀어붙였다.

터억-!

등이 벽에 세게 부딪치자, 상대가 쿨럭, 기침을 토해냈다.

불빛 아래에 드러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제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식!”

잊을 수 없는 얼굴.

성진이었다.

성진이 제하를 보며 킬킬 웃었다.

“하여간 기묘한 놈이라니까? 어떻게 그렇게 범처럼 빠른 거지? 너, 사실은 범 아니냐?”

“왜 또 시비야? 설마 네놈이 포수를 사용한 거냐?”

“그럴 거면 어쩔 건데? 인간을 돕는 자랑스러운 착호이신데, 날 죽이려고? 난 죄 없는 소시민인데?”

“죄 없는 소시민은 무슨…… 너는 날 죽이려고 했어!”

“하지만 넌 안 죽었지.”

제하는 성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큭……!”

성진은 발버둥을 치면서도 겁에 질리지는 않았다. 제하가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제하는 성진을 죽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범과 혼혈이라는 사실이 제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범과 혼혈인 자신이 인간을 죽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 혼혈이 인간을 죽이는 게 훨씬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지금이야 제하가 혼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 없다 해도, 언젠가 사람들은 제하의 외모와 몸놀림을 보며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범의 힘을 갖게 된 주안이나, 범과 섞인 호수도 한 데 뭉뚱그려 평가될 것이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제하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신시가 예전처럼 평화로워지기를 바라. 그것 때문에 싸우는 거라고. 그런데 너는, 너희는 대체 왜 나를 가만 안 두는 거야?”

“네놈에게나 평화로웠겠지.”

멱살이 잡힌 채로, 성진은 제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했다.

“너에게나 평화로운 신시였겠지. 우리 같은 놈들에게 신시는 그렇게 평화롭지도, 살기 좋지도 않았거든.”

“그거야 너희가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너처럼 귀하게 큰 놈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하지?”

귀하게 커?

제하는 기가 막혔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성진에게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제하는 성진을 놔줬다.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하면, 그땐 가만 안 둬.”

“하이고, 무서워라.”

빈정거리는 성진을 뒤로하고, 제하는 하루와 함께 골목을 벗어났다.

쓸쓸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제하의 머리칼을 헝클였다.

바람에 섞인 제하의 한숨이 차갑게 흩어졌다.

+++

제하와 하루가 본부로 사용하는 저택에 들어갔을 때, 착호 일행 전부가 돌아와 있었다.

제하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호수가 물었다.

“사람이 죽었어?”

포수가 생겼어도, 희생자는 생겼다.

인간이 도망칠 틈도 없이 범이 공격해서 물어뜯으면, 아무리 근처에 범 사냥꾼이 있었더라도 구할 방법이 없다.

이미 죽은 사람의 시신을 옆에 두고, 범과 싸우는 수밖에.

제하는 고개를 저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포수가 어쩌면 함정을 파는 데 쓰일 수도 있겠어.”

제하는 아까 성진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런 새끼, 확 죽여버렸어야지!”

세인이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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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정말 그러고 싶더라. 다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대체 그놈들한테 뭘 어쨌다고?”

“우리가 요새 호랑나비보다 인기가 좋잖아.”

도건의 말에 제하가 헛웃음을 흘렸다.

“단지 그런 이유로 날 못 죽여서 안달이라고? 우리가 좀 더 많이 잡기는 해도, 호랑나비 역시 아직 건재하잖아. 백화점에서의 그 일도, 자기들이 도망쳐서 그런 평가를 받게 된 거고.”
“원래 못난 놈들이 남 탓하는 법이지.”

활을 손질하던 환이 말했다.

“그나저나 그런 문제가 있다면, 포수 알림에 일일이 가보는 것도 좀 걱정이네. 안 그래도 요새 장난으로 포수를 누르는 사람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잖아.”
“그러게. 진짜일 수도 있으니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

제하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범이나 인간이나 사람 진짜 골치 아프게 만드네. 이딴 신시 따위 확 망해버리라지.”

“그래놓고 알림 울리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면서.”

호수의 지적에 세인이 얼굴을 붉혔다.

“내가 언제? 난 그냥 볼일이 있어서 나간 거거든?”

“그 볼일이 범이랑 싸우는 거잖아.”

“당연히 싸워야지. 범 새끼들, 싹 다 죽여버릴 거야.”

“응, 동감이야.”

환이 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거 말인데. 우리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주안을 돌아봤다.

두 달 전, 8월에 허서와 마주친 후 주안은 범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동료들에게도 이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워서 망설이던 차였다.

하지만 계속 미룰 수 없는 문제이기에, 주안은 모두가 모인 이때 얘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방금 제하 사건도 그렇고, 우리가 백화점에서 싸울 때도 그렇고…… 우리의 적은 범이기도 하지만, 인간이기도 했잖아. 그것처럼 범도 우리의 적이지만, 아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호수의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범 중에도 인간에게 호의를 품은 범이 있고, 그런 범이라면 설득을 해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호수가 두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동료들의 반응이 안 좋을 줄은 알았지만, 말만 꺼냈을 뿐인데 이렇게 격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주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들어봐봐, 호수야. 사실 두 달 전에 허서라는 범과 싸우게 됐어. 상급 범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범이었고, 나는 졌어. 하지만 허서는 날 살려줬지.”

“그래서?”

“허서는 TV 보는 걸 좋아하나 봐. TV에서 본 배우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 같더라고. 게다가 내 여자친구, 나래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하기도 했어. 불티가 나래를 죽였다는 걸 전혀 모르더라고. 뭔가 범들 사이에서도 각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래서?”

호수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는 걸, 주안은 깨닫지 못했다.

“범도 인간이랑 똑같아. 좋은 범이 있고, 나쁜 범이 있는 거야.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걸 보면 즐거워하기도 하고. 그렇게…….”

“개소리 집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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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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