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 분열 (37/85)


37. 분열
2022.09.2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콰앙-!

호수의 주먹에 맞은 식탁이 반으로 쪼개졌다.

주안은 눈을 크게 뜨고 호수를 쳐다봤다.

증오에 찬 노란색 눈동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호수야…….”

“너는 네 애인이 범이었으니, 범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너는 내가 범에게 잡혀서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기나 해?”

“물론 네가 끔찍한 짓을 당한 건 알아. 하지만 그런 범은 일부고…….”

“내게는 전부야!”

터져 나오는 분노에, 주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호수 주위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호수는 살기를 감출 생각도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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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그때의 그 범이 전부라고! 범이랑 알콩달콩 연애질을 한 너랑 우리랑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호수야, 나는 네가 받은 고통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이 싸움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옳은지 의문이라서…….”

“아니, 너는 그냥 네 생각에 취해 있어. 네 연인에게 받은 힘 덕에 강해지기도 했고. 허서라는 범이 네 연인의 죽음에 슬퍼했다고? 그래서 널 살려줬다고? 아, 그래. 그래서 아주 마음이 편하고 좋았겠네. 네 연인의 힘이 남아 있는 한, 너는 범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주안은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얘는 범이 가족을 전부 죽였어! 얘 동생은 아직 어린애였는데, 그 애까지 고문하다가 죽였어! 내가 봤거든, 그걸. 너는 못 봤겠지만, 나는 거기서 얘 동생이 죽는 걸 봤거든!”

호수가 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환도 이미 호수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얘기였는지, 슬그머니 주안의 시선을 피했을 뿐, 놀란 기색은 없었다.

“얘는 범에게 삼켜졌다가 죽을 뻔했지. 얘가 처음에 범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기억 안 나냐?”

호수가 세인을 가리키며 말했고, 세인은 평소처럼 “무서워한 적 없거든.”이라는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을 뿐.

“얘는 범이 동생들을 전부 죽였어. 피는 통하지 않아도 친동생 같았던 녀석들을 다 죽여버린 거야.”

호수의 검지가 자신을 가리키자, 도건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호수의 눈은 제하와 하루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너희는, 그리고 또 너는? 범이랑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범이 좋은 녀석, 인간은 나쁜 녀석, 속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거겠지.”

“주안이 형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듣다 못한 제하가 끼어들자, 호수가 싸늘하게 웃었다.

“이것 봐. 자기 아버지가 범인 사람은, 범의 편을 들고 싶어 한다니까?”

그제야 주안은 호수가 그 고통으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만 웃으며 괜찮아진 척할 뿐, 호수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때의 공포와 고통은 여전했다.

그런 호수에게 ‘범도 괜찮은 녀석이 있어.’라는 뉘앙스의 말을 꺼낸 건 실수였다. 차근차근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저 이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는, 말이 통하는 범을 설득해서 공존의 길을 찾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어야 했는데.

“너희랑은 진짜 같이 못 해먹겠다.”

호수가 나가려 하기에, 주안이 달려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호수야. 미안해. 내가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거 놔!”

호수가 주안의 손을 뿌리쳤다.

“너랑 나는 정말 안 맞아. 나는 범을 싹 다 죽이고 싶거든. 내가 당했던 그 고통을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거든. 만약 네 연인이 눈앞에 있었다면, 그 여자도 내 손에 죽었을 거야.”

“…….”

“그러면 넌 어떨까? 연인의 편을 들까, 내 편을 들까?”

주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누구의 편을 들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 봐. 너랑 나는 정말 안 맞는다니까.”

호수가 손으로 주안의 가슴을 퍽 밀어낸 후, 그대로 본부를 나갔다.

세인과 환도 미안한 듯 주안을 돌아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호수의 뒤를 따라 나갔다.

“호수는 그저 너무 받아들이기가 힘든 거야. 쟤는 정말 오랫동안 고문을 받았잖아.”

도건이 주안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아. 내가 한번 따라가 볼게. 너무 걱정하지들 말고.”

도건이 나간 후, 늘 북적거리던 본부 안에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참 후, 주안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제하를 올려다봤다.

“미안.”

“뭐가?”

“나 때문에 너까지 호수에게 못 들을 소리를 들어서…….”

“에이, 아니야. 도건이 형 말대로 호수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걸 거야. 언젠가 호수도 형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오겠지.”

제하가 애써 쾌활하게 말했지만, 주안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섣불리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팀이 와해되고 말았다. 조금씩 쌓여가는 친밀한 무언가를, 성급하게 끊어버리고 말았다.

주안이 의자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쉬는 모습을, 하루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이렇게 서로 오해하고 분열되는 상황.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

호수는 어둠 속을 저벅저벅 걸어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채 걸었다.

집에 돌아갈 수는 없다. 가족들은 이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호수의 집은 착호의 본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호수는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준 그곳을 스스로 버리고 나왔다.

주안이나 제하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하의 황금빛 눈동자에 깜짝 놀랄 때마다, 자신도 그와 같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고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에 휩싸이곤 했다.

호수에게 노란색 눈동자의 의미는 친밀함이 아닌, 고문과 학살과 공포였다.

제하를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제하에게 못 할 짓이었다.

첫 대면 때, 호수가 제하의 잘못도 아닌 걸로 그렇게 몰아붙였음에도, 제하는 호수를 다정하고 친밀하게 대해왔으니까.

뒤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세인, 그리고 환.

그런 청각을 갖게 되었다.

예전에는 없었던 능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넘어선 능력을 갖게 된 호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수는 이런 능력이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 같아서.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어. 너희는 걔들이랑 아무 문제 없었잖아.”

호수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내가 이토록 변변찮은 음성을 가진 녀석이었나?

“아니, 뭐…… 나도 주안이 말 듣고서 울컥 화가 난 건 사실이기도 하고, 주안이가 범들이랑 공생을 원하는 거라면 같이 있기 좀 그렇기도 하고…….”

중얼거리는 듯한 세인의 대꾸를 이어, 환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절대 범을 용서할 수 없어. 범이랑 같이 사는 세상 따위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

환의 마음을, 호수는 절절히 이해했다.

이것은 착한 범, 나쁜 범의 문제가 아니다.

범의 존재가 그들의 일상을 깨뜨렸다.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많은 것을 앗아갔다.

범만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집에 있었겠지.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화목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정도로는 좋은 사이였고, 이렇다 할 문제가 없었다.

다른 가족들처럼 가끔 말다툼하기는 해도 금방 화해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을 수 있는 사이.

하지만 이제 호수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호수를 본 가족들이 겁에 질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나서야, 가족이 그리웠다.

만날 수 없게 되고 나서야, 그 당연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너희들, 갈 곳은 있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도건의 것이었다.

호수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세인과 환의 뒤로, 도건이 휘적휘적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세인과 환을 지나쳐 걸어온 도건이 호수의 앞에 서서 눈을 맞췄다.

“넌 제하랑 친하잖아.”

“친하지. 하지만 난 이제 누구누구랑 편 나누는 놀이를 할 나이는 아니라서. 게다가 내가 원래 좀, 뭐라고 해야 할까? 심성이 곱다고 해야 하나?”

호수는 도건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껄렁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깊고 진중한 눈동자가 조용히 빛났다.

“하여간 그래서, 불쌍한 것들을 그냥 놔두질 못해.”

“나는 불쌍하지 않아.”

“아니, 넌 불쌍해. 너도 알잖아. 돌아갈 곳도 없는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고 불쌍한 건지.”

“너……!”

호수가 도건의 멱살을 잡았지만, 도건의 눈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날을 세우고 적을 만들 거야? 이게 네가 네 불쌍함을 포장하는 방식이야?”

호수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일렁, 흔들리는 호수의 호박색 눈을 보며 도건이 말했다.

“전에 동생들이랑 같이 살던 곳이 있어. 좀 좁기는 해도 지낼 만할 거야.”

+++

동철은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성진을 보며 차게 웃었다.

“이 개새X. 죽으러 왔냐?”

성진은 동철의 앞으로 달려가자마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대장, 잘못했습니다.”

“잘못을 알아? 그런 새끼가 그 개 같은 짓을 벌여놓고 이제야 슬금슬금 기어들어 와? 내가 너 때문에 이 빌어먹을 여론을 바꾸느라 돈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알아?”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장, 제가 수습할 수 있습니다.”

“수습? 이 미친놈.”

동철이 껄껄 웃었지만, 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수습하고 싶으면 사람들 앞에서 다 네 탓이라고 용서를 빌고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그것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장, 그전에 제가 호랑나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딱 하나 더 있습니다.”

“하! 이 미친 새끼. 내가 왜 또 널 믿겠냐? 엉? 그냥 가라, 성진아. 우리 호랑나비가 요새 이름값이 많이 떨어져서, 너까지 시체로 발견됐다가는 여러모로 시끄러워질 것 같거든. 그래서 살려주는 거니까, 감사하게 여기고 내 눈앞에서 꺼져.”

하지만 성진은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대장. 제가 이미 실험도 해봤습니다. 이건 됩니다. 확실한 방법이에요.”

동철은 팔짱을 끼고 앉아서 성진을 내려다봤다.

성진은 약간 비열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머리가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굳이 제 발로 찾아와서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뭔데? 한번 들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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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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