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 후포 (38/85)


38. 후포
2022.10.0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갑자기 동철에게 불려 온 경태는, 성진 때문에 한 번 놀라고, 부른 이유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포수로…… 제하라는 놈이 나올 때까지 알림을 보내다가, 나오면 동시에 덮쳐서 죽이자고요?”

“그래. 우리가 누르는 건 아니야. 이미 내가 눌러서 불러내 봤거든. 아마 그놈이 나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또 나라고 의심하겠지.”

성진이 신이 나서 설명했다.

“일반인 중에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놈들이 널려 있어. 그런 놈들한테, 한동안 공짜로 뒤를 봐주겠다고 하면 덥석 하겠다고 할 거란 말이지.”

경태는 성진의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몇 달 전, 백화점 사건 때. 제하 일행은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하지만 위대한 호랑나비의 사냥꾼인 우리는 무얼 했나?

제하를 총으로 쐈다.

성진 팀은 도와달라는 사람을 내버려두고 도망쳤다.

지금 호랑나비를 향한 저평가는 전부 그들 자신의 탓이지, 제하 일행, 이제는 착호라 불리는 그들의 탓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꾸 그들을 죽이려 하는 걸까?

“대장.”

성진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경태는 동철을 돌아봤다.

“지금 착호를 건드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요새 범들 움직임이 좀 이상해요. 게다가 갑자기 실종되는 범 사냥꾼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우리 호랑나비 중에도 갑자기 연락이 끊긴 녀석이 몇 명 있거든요.”

경태는 동철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착호를 치는 것보다는 범을 사냥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철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뺨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고개가 돌아가고 난 후에야, 경태는 그것이 제 뺨에서 난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성진이 짜증 섞인 눈으로 경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형님……?”

“이 멍청한 새끼가!”

철썩-!

“대장께서 먹여주고!”

철썩-!

“키워주고, 재워주고!”

철썩-!

“팀장 자리에까지 앉혀줬더니!”

철썩-!

“제 주제를 모르고 기어올라?”

철썩-! 철썩-! 철썩-!

성진이 사정없이 경태의 따귀를 때렸지만, 동철은 팔짱을 낀 채 냉랭한 시선만 보내고 있었다.

그제야 경태는 동철도 성진과 같은 뜻이라는 걸 깨달았다.

경태의 입술이 터져 피가 날 때까지 때린 성진은,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 듯 경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제야 동철이 말했다.

“애를 너무 괴롭히지 마라.”

“죄송합니다, 대장. 이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훈수를 둬서 버릇 좀 고쳐줬습니다.”

“그래서, 경태야.”

동철이 다정하게 경태를 불렀다.

“안 할 거라고?”

+++

“제하.”


 
어둠 속에서 노란 눈을 빛내며, 후포는 제하의 이름을 읊조렸다.

“제하.”

제하의 아버지인 풍래는 한때 후포와 막역한 사이였다.

까마득히 오래전의 그 전쟁에서, 풍래는 잿빛 털을 휘날리며 후포와 함께 싸웠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풍래는 타배의 척살검에 여동생을 잃었다.

그랬던 그가 인간 여자, 그것도 결계를 지키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동족을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왕산에서 제하를 마주했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으나, 결국 끝까지 남은 것은 증오였다.

배신자의 핏줄.

또한, 제하는 타배와 같은 잡종이었다.

그리하여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었다.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너도, 나도 편했을 텐데.”

제하는 살아 있었고, 심지어 타배의 무기인 척살검까지 손에 넣었다.

척살검.

그 전쟁에서 타배는 척살검으로 범들을 사정없이 도륙했다.

한때 친구로 지냈던 범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베어 죽였다.

암흑처럼 새까만 척살검은, 마치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후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림자 세계에 갇혀 있느라 힘이 많이 사라졌다.

신시에 나온 후에도 인간을 많이 먹지 않아서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지금 척살검을 가진 상대와 싸웠을 때의 승패를, 후포는 가늠할 수 없었다.

“힘을 더 비축해야겠지.”

인간에게는 그들도 깨닫지 못하는 상고시대의 힘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범들은 인간을 먹으면, 그림자 세계에서 버틸 힘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허서는 지금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후포는 조심성 많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제하가 풍래의 힘을 많이 물려받았다면, 거기에 무녀였던 어머니의 힘도 많이 물려받았다면.

‘어쩌면 타배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범은 타배를 이길 수 없었다.

타배는 범의 힘도, 곰의 힘도 완성된 상태로 가지고 있었다.

타배를 떠올리자 명치가 쑤셔왔다.

증오, 분노, 그리고 아주 약간의 슬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타배는 왜 그렇게 우리 범들을 학살한 걸까?

그 자신도 범의 피를 타고났으면서.

타배가 어릴 때 잡종 취급을 했던 것 때문이라면, 너무하다.

타배를 잡종 취급한 건, 범들만이 아니었다. 곰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타배는 곰의 편에 섰고, 곰을 위해 싸웠다.

‘대체 왜?’

인제 와서 그 이유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향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곰의 후손을 모조리 죽이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신시에서 보내는 시간이 후포의 마음을 무디게 만들었다.

이건 다 허서 때문이다.

인간들이 만든 TV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허서가, 틈만 나면 후포에게 인간들에 대한 바보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마음이 허물어진 탓이다.

후포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타배에 관한 생각을 걷어내고 어둠 속을 응시했다.

‘나쁜 아이는 어디 있나?’

인간이 싫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다 잡아먹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야 짐승과 다를 게 없다.

잡아먹는 건 나쁜 놈들만, 착한 녀석들은 남겨뒀다가 나중에 신시를 지배했을 때 노예로 삼겠다는 모토를 버리지 않았다.

그건 척살검을 발견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후포는 눈을 감고, 바람결에 실려 오는 소리에 청각을 집중했다.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 누군가 싸우는 소리, 그리고…….

“이, 이 애만이라도 살려주세요. 이 애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부탁드려요. 이 애만은 살려주세요. 제발…….”

한 여인이 간절히 애원하는 소리.

‘저기구나!’

후포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내달렸다.

공기를 밟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서 도착한 곳은, 어느 주택가였다.

겉에서 보기에는 아늑하고 안전할 것 같은, 평범한 주택가.

“흐아아아앙!”

거기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아, 아이는…… 아이는 제발……!”

한 남자의 애원이 밤공기를 찢었다.

다른 주택에도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들 이 가족에게 닥친 불행이 자기들에게도 찾아올까 봐,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어린애 고기라는 걸 알려줘야지. 목을 똑 따서 먹여주면, 저놈들도 맛있게 먹을걸.”

들려오는 소리에, 후포는 우뚝 멈췄다.

후포는 전신주 위에 서서, 아래에 보이는 주택 마당을 내려다봤다.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남녀가 무릎을 꿇고 있고, 두 명의 범이 남녀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범이 아이의 머리를 잡아떼어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아이 부모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아이 아버지 쪽은 거의 까무러칠 것 같았지만, 아이 어머니는 무릎으로 기어가서 줄무늬 범의 다리에 매달렸다.

“살려, 살려주세요. 뭐든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애는 살려주세요.”

“엄마아아아아!”

아이가 울었다.

줄무늬 범이 히죽 웃으며 아이 엄마를 걷어찼다.

엄마가 날아가는 걸 보며, 아이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냈다.

후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게 대체……?’

줄무늬 범도, 그 옆에 있는 노란색 범도, 후포가 아는 중급 범들이었다.

후포보다는 마로를 잘 따르던 녀석들.

마로 쪽 범들이 후포의 방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고, 어른이고 가리지 않고 인간이라면 전부 잡아먹고 다닌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 분노와 증오를, 후포는 충분히 이해하니까.

후포의 방침은 따를 자만 따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저건 안 된다.

저런 식으로 가지고 놀다니.

저건 틀렸다.

잡아먹을 때는 고통 없이 단숨에 먹어치워야 한다. 그게 사냥감에 대한 배려이며, 매너이다.

‘못 봐주겠군.’

후포가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 새끼들!”

범 사냥꾼들이 등장했다.

아마도 아이 부모 중 누군가가 포수를 사용한 것이리라.

총을 쏴대며 등장한 범 사냥꾼들의 모습에, 후포는 탄식을 삼켰다.

저 사냥꾼들은 줄무늬 범과 노란 범을 상대할 실력이 되지 못했다.

후포의 예상대로, 후포가 도와줄 틈도 없이 범 사냥꾼 세 명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노란 범은 아이 부모가 보라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범 사냥꾼 한 명을 통째로 삼켰다.

“으…… 흐으으으…….”

아이를 위해 잘 버티던 아이 엄마도, 이제는 허물어졌다.

역시 저 녀석들은 그냥 놔둬서는 안 되겠다.

아래로 내려가려던 후포는,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노란색 범과 줄무늬 범 뒤로, 무언가 접근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 개의 곤충 다리를 가진, 여자였다.

분명 인간 여자 같은 몸뚱이를 갖고 있는데, 얼굴은 그저 새까만 달걀처럼 눈코입이 없었다.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생물.

상고시대부터 살아온 후포조차 처음 보는 생물.

기묘한 생물의 모습에, 후포의 근육이 굳었다. 그래서 대처가 늦었다.

거미 여자의 다리가 가로로 빠르게 움직였다.

범들의 허리가 반으로 갈렸다.

투욱-!

줄무늬 범이 들고 있던 아이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와 비슷하게 범들의 상체도 스르륵 허물어져 바닥을 굴렀다.

“끼이이. 끼에에에에.”

거미 여자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처덕처덕 걸어갔다.

창처럼 날카로운 다리가 범들의 사체를 꿰뚫고 지나가, 아이까지 꿰뚫으려는 그 순간.

쌔애액-!

후포가 몸을 날려, 아이를 끌어안고 굴렀다.

후포는 아이를 보듬어 안은 채, 눈앞에 있는 기괴하고도 강해 보이는 생물을 노려보며 외쳤다.

“이게 대체 뭐냐아아아!”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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