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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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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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우리 아버지
2022.10.0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거미 여자는 거미처럼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미보다 빨랐다.
8개의 다리는 제각각 생명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바람처럼 빠른 상급 범인 후포조차, 그 다리를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품에 안은 아이 때문에 더 그랬다.
아이를 안은 채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뒤에 있는 부모를 향해 아이를 던졌다.
“도망쳐라, 인간!”
후포가 이를 으득 갈며 손톱을 뽑아냈다.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후포의 전신을 감싸는 순간.
서걱-!
거미 다리가 후포의 복부를 깊게 베었다.
후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땅을 박차올라, 거미 여자의 얼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눈코입이 없는데도 징그러운 얼굴.
후포는 손을 뻗어, 거미 여자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힘을 발휘했다.
착시 최면.
상급 범 중에서도 일부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그러나 인왕산에서 제하에게 걸었던 그 기술이, 거미 여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키에에엑!”
거미 여자는 성가신 듯 몸을 털다가, 인간 몸뚱이 쪽의 두 손을 올려 후포의 복부 상처에 쑤셔 넣었다.
“크아아아악!”
아무리 상급 범이라도, 내장이 당하는데 무사할 수는 없었다.
뒤틀리는 고통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몸을 뒤로 빼내고 상처를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거미 여자는 움직였다.
달칵거리며 빠르게 달려온 거미 여자의 전신에서 하얀 막 같은 것이 뻗어 나왔다.
막이 아닌, 촘촘히 짜인 거미줄이었다.
후포는 손톱으로 거미줄을 베어내고 훌쩍 날아오르려다가 멈췄다.
인간들이 아직 도망치지 못한 채, 마당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택 대문이 거미 여자 반대쪽에 있다.
“제길!”
후포가 뛰어오르면, 거미 여자는 인간들을 공격할 것이다.
“내가 왜!”
인간을 도와야 하지?
그런 생각과 달리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후포는 날카로운 열 개의 손톱을 세우고 거미 여자를 향해 땅을 박찼다.
손톱이 거미 여자의 몸에 닿았지만, 몸을 꿰뚫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놀랍도록 단단한 피부가 후포의 손톱을 막은 것이다.
거미 다리 세 개가 후포의 손톱에 얽혀들었다. 후포가 손톱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남은 다리가 후포의 목과 가슴, 팔을 사정없이 찍어눌렀다.
“크헉!”
이미 복부에 심한 상처가 생겨서 피를 많이 흘린 마당에, 다른 곳까지 뚫리자 버티기 어려웠다.
후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죽다니.
얼마나 오랜 날을 기다려왔는데, 고작해야 인간 따위를 지키려다가 죽다니.
눈앞이 까맣게 흐려지고 있을 때였다.
“헉! 이게 뭐야?”
왜인지 귀에 익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후포는 정신을 놓았다.
+++
7구에서 포수 알림이 온 걸 확인하고 달려가던 제하 일행은, 자기들보다 먼저 달려가는 범 사냥꾼 무리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범 사냥꾼들은 먼저 잡은 신호를 빼앗기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포수 알림을 울려서 확인했더니, 아까 온 곳과 같은 곳에서 보낸 알림이었다.
이번에는 그곳을 향해 가려는 범 사냥꾼들이 없었다.
같은 곳에서 시간을 두고 두 번이나 신호가 온다는 건, 첫 번째로 도착한 범 사냥꾼들이 실패했다는 것.
그만큼 강한 범들이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하와 하루, 주안은 그곳을 향해 달렸다.
조용한 주택가인데, 딱 한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챙- 채앵-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키에에엑!”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울음소리.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구나 싶어서, 무기를 다잡고 담을 넘는 순간.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헉! 이게 뭐야?”
거미의 다리에 여자가 붙어 있는 것 같은 괴물이, 검은색 범을 사정없이 찢어발기고 있었다.
제하가 낸 소리를 들었는지, 거미 여자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미 여자의 새까만 얼굴을 본 제하 일행은 숨을 삼켰다.
“뭔지는 몰라도…….”
하루가 오랏줄을 던졌다.
“좋은 건 아닌 것 같구나.”
붉은 오랏줄은 생명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거미 여자는 피하려 했지만, 그 다리에 엉켜 드는 오랏줄을 완전히 다 피할 수는 없었다.
거미 여자가 오랏줄에 시선이 팔린 상태였는 동안, 제하가 거미 여자의 뒤로 접근해 척살검을 휘둘렀다.
터엉-!
거미 여자의 등에서 자란 다리들은, 마치 무쇠처럼 단단해서 한 번의 칼질로 벨 수가 없었다.
주안이 창을 들어서 거미 여자의 몸통을 찍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터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이 밀려났다.
“너무 단단한데.”
주안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주안이 공기를 밟으며 허공을 나는 듯 위로 떠 오른 순간, 거미 여자가 오랏줄을 전부 끊어버리고 고개를 들었다.
오싹-
거미 여자의 얼굴을 본 주안은 소름이 돋았다.
아무것도 없던 얼굴에 어느새 커다란 입이 생긴 것이다.
주안 한 명은 통째로 삼킬 것처럼 벌어진 입안에는 마치 끈끈이주걱 같은 촉수가 여러 개 뻗어 나와 있었다.
주안은 창을 세로로 세워서 거미 여자의 얼굴을 찍으려 했지만, 거미 다리가 창을 쳐냈다.
지난번 허서와의 싸움 후, 안 그래도 불안하게 버티고 있던 창의 손잡이가 반으로 쪼개졌다.
“이런.”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도망치려는 주안의 허리를 향해, 거미 다리가 뻗어왔다.
거미 다리 끝이 주안의 등에 닿기 직전.
터엉-!
뛰어오른 제하가 척살검으로 다리를 걷어내고 물러섰다.
하루가 오랏줄을 수습해 다시 한번 거미 다리를 묶어놓는 동안, 제하는 척살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언제부터인가, 척살검에 신경을 집중하면 잠들어 있던 힘이 서서히 눈을 뜨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제하의 힘이 척살검을 향해 흘러 들어가고, 척살검의 힘이 제하에게로 흘러들어왔다.
그 두 개의 힘이 섞이는 순간, 제하의 호박색 눈동자가 황금처럼 빛났다.
제하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을 때.
우우웅-
바닥에 내려서서 손톱을 길게 자라게 하던 주안은 땅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둠보다 검은 척살검이 빛났다.
거미 여자도 제하의 기척이 심상찮은 걸 느낀 듯 제하 쪽으로 촉수 달린 입을 벌렸다.
하지만 제하는 망설이지 않고, 거미 여자를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검 끝이 거미 여자의 가슴을 뚫었다.
“키에에에에엑!”
거미 여자의 비명이 밤하늘을 찢었다.
주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거미 여자의 인간 쪽 몸통을 향해 손톱을 내리그었다.
이번에는 손톱이 들어갔다.
몸 자체가 원래 단단한 건 아니라서, 제하가 준 타격에, 몸을 보호하던 힘이 사라진 모양이다.
“키에에에엑!”
상처가 생길 때마다 거미 여자가 지르는 비명 때문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주안은 멈출 수 없었다.
조금 전 주안이 낸 상처가 다시 아물어가고 있었다.
마치 상급 범과 같은 회복 속도였다.
“제하야. 상처가 아문다.”
“그럼 더 빨리 움직여야겠네.”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회복한 거미 여자가, 주안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주안은 뒤로 훌쩍 뛰어서 공격을 피했지만, 거미 여자의 몸에서 하얀 거미줄 막이 촥 펼쳐졌다.
주안이 손톱으로 거미줄을 베어내려 했지만, 끈적거려서 완전히 벨 수가 없었다.
한 번 실패하자 거미줄이 몸에 엉켜 들었다.
그런 주안을 향해 거미 여자가 타각타각 달려왔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서 더 징그럽다고, 주안이 생각하고 있을 때.
쿠웅-!
뭔가 거대한 것이 거미 여자에게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미 여자가 투웅, 날아갔다.
놀랍게도 거미 여자를 밀친 건 제하였다.
“제하야, 방금 그거…….”
“장난 아니지? 우와, 나 엄청 힘세네.”
제하가 쥐었다가 폈다 하더니, 거미 여자가 몸을 일으키기 전 척살검을 들고 달려갔다.
척살검이 사선으로 움직여 거미 여자의 몸통을 베어냈고, 하루가 달려가 길게 자란 손톱으로 거미 여자의 다리를 잘라냈다.
잘려나가서도 버둥거리던 다리들이 움직임을 멈추자, 거미 여자의 비명도 멎었다.
그제야 제하는 헐떡거리며 주위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구석에서 벌벌 떠는 한 가족이었다.
어린 남자아이와 부모.
제하는 검을 집어넣고 그들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괜찮으세요?”
아이 엄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구급차를…… 아, 요새는 구급차가 잘 안 오지. 저희가 여기 좀 정리한 다음에 병원에 모셔다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려주실 수 있죠?”
아이 부모의 대답을 들은 후, 제하는 싸움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주안과 하루는 거미가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제하는 거미보다는 아까 처참하게 당하고 있던 범이 더 신경 쓰였다.
그 범은 왜 이런 곳에서 저런 것에게 당하고 있었던 걸까?
인간을 잡아먹으려다가 저 거미한테 당한 걸까?
범 옆에 쭈그리고 앉은 제하는, 범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숨을 멈췄다.
제하는 눈을 부릅뜬 채, 몇 번이나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윽고 제하의 입에서 한숨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포…….”
그때, 후포가 움찔, 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언젠가 보았던 노란색 눈동자가 허공을 향해 흔들리다가 제하에게서 멈췄다.
제하는 후포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따지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 건.
‘죽이고 싶어.’
이 모든 사태를 만든 후포를 죽이고 싶었다.
제하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거칠었던 호흡이 냉랭하게 가라앉았다.
제하의 손이 허리에 맨 검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
“풍래…….”
후포의 입에서 꺼져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네가 날 데리러 왔군…….”
비록 죽어가는 음성임에도, 어찌나 친밀한지.
제하는 왈칵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미안……하네. 인제 와서…… 늦었겠지만…….”
후포의 눈이 다시 감겼다.
입술도 굳게 닫혔다.
제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풍래가 누구야?”
언제 온 건지, 주안이 옆에 앉아 있었다.
제하는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