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 분란 (41/85)


41. 분란
2022.10.2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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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음성이 도건의 심장을 헤집었다.

도건은 문득 하라와 싸울 때, 호수나 제하, 주안처럼 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도 생각했지만 새삼스럽게 자신이 한심하고 경멸스러웠다.

이렇게나 고민하는데, 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호수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제하가 위험해지면 구하러 갈 거야. 그 애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갈 수 있어. 하지만 난 역시…… 미안하고 무서워서 제하랑 같이 있을 수가 없어.”

+++

주안은 지난 싸움에서 무기인 창을 잃었다.

“난 무기가 없어도 괜찮아. 손톱을 사용하면 되니까.”

하지만 무기 없는 첫 싸움을 끝낸 후, 제하는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다.

범의 힘을 사용하는 건 체력소모가 큰일이었다.

곰의 힘을 가져서 남들보다 체력이 좋은 제하도, 안에 잠든 힘을 깨워서 사용하면 쉽게 지치곤 했다.

주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보통은 범의 힘을 속도를 내는 것 정도로만 끌어다가 쓰고, 정 안 되겠다 싶을 때 손톱을 꺼내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싸운다.

그런데 처음부터 범의 힘을 전부 꺼내서 사용하니 체력소모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중급 범 두 마리를 처리했을 뿐인데도, 주안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기절할 것 같은 주안을 부축해주며, 제하가 말했다.

“형, 무기 사러 가자.”

주안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무기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치를 부리자는 게 아니잖아. 목숨 걸고 싸우는 일인데 거기에 돈을 아낄 수는 없지.”

“그래도 우리가 다 같이 모은 돈인데, 호수랑 다른 애들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써도 괜찮을까?”

제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제하가 관리하는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모두가 함께 싸워서 번 돈이었다.

“그 아이들이 무기 사는 데 돈 좀 썼다고 해서 비난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우선 무기부터 사고 그 무기로 범을 죽여서 돈을 벌면 될 일이다.”

머뭇거리는 제하와 주안을 보다 못한 하루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그래도 제하는 말 없이 돈을 쓰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주안을 생각해서 흔들림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 하루 말이 맞아. 어차피 범이랑은 끊임없이 싸우게 되니까, 금방 채워 넣을 수 있을 거야.”

주안은 무기를 산다고 한들, 그 무기가 범과의 전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저축한 돈은 옛날이었다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많았지만, 거래소에서 그 돈은 푼돈에 불과했다.

하지만 범과의 싸움 한 번에 체력이 거의 떨어져 비틀거리는 상황에서, 고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주안이 고집을 꺾자, 제하는 잘 생각했다고 말하며 방금 죽인 범의 옆에 앉았다.

현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머리를 잘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 상대한 범은 회색과 갈색. 전투 중에 죽은 터라 귀가 쫑긋하게 서 있고,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비쭉 튀어나와 있었다.

평소에는 쉽게 놈들의 목을 자를 수 있었다.

놈들이 아무리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어도 사실은 인간이 아니니까, 이 신시를 엉망으로 만들었으니까, 내 부모를 죽인 악당이니까, 죽어 마땅한 놈들이니까.

무감정하게 벨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하는 검을 든 자신의 손이 머뭇거리는 걸 느꼈다.

‘왜?’

답은 금방 나왔다.

-“저희는 일단 저 사람을 좀 치료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사람.

누군가에게 범은 사람이었다.

제하에게 후포는 죽어 마땅한 악당이었는데, 그 가족에게 후포는 은인이었다.

그래서 제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만약 신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많은 사람에게 아버지는 그저 증오할 만한 ‘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겠지. 사람.’

주안의 연인이 아직 살아 있다면, 범 사냥꾼들은 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겠지만, 주안은 그녀를 지키려고 애썼을 것이다.

주안에게 그녀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이들은?

방금 내가 죽인 이들은 어떨까?

이 범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람’이지 않을까?

고민에 빠져 있는 제하의 어깨에,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제하야, 괜찮아?”

“아, 형. 괜찮아.”

“내가 할까?”

속 깊은 주안은 제하가 왜 머뭇거리는지 눈치챈 듯했다.

“형도 못 하잖아.”

주안은 나래를 잃고 제하와 합류하게 된 후에도, 범을 죽이는 것까지만 했을 뿐, 그 목을 자르는 것은 하지 못했다.

누구든 하면 되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주안이 왜 범의 목을 자르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주안은 이미 범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하마.”

하루가 제하의 검을 가져가더니, 무표정하게 범들의 목을 슥삭 베어냈다.

제하가 갖고 다니는 보자기를 꺼내서 내밀자, 하루가 잘린 머리를 보자기에 싸면서 말했다.

“이상하지 않느냐. 이 방식.”

“뭐가?”

“현상금을 받으려면 범의 머리를 가져가야만 하지. 그저 죽인 증거가 필요하다면, 너희가 잘 사용하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인증해도 되는 일인데.”

듣고 보니 그랬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인증해도 되는 일이었다. 반드시 사체가 필요한 거라면, 죽은 범을 통째로 들고 가서 보여줘도 되는 일이었다.

하루가 보자기를 잘 묶으며 말을 이었다.

“목을 자르는 건 무자비한 짓이지. 상대가 한낱 짐승이라도, 그 목을 잘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생명을 가진 것의 목을 잘라낸다는 건, 어지간한 각오가 없으면 어려운 일인데, 이상하지 않느냐.”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정말 이상해. 이렇게 범의 목을 잘라내면, 범들의 분노를 부추길 뿐일 텐데. 인간을 잡아먹는 범을 죽이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범의 시신을 잘 수습해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이래서야 살아남은 범들의 분노를 부추길 뿐이잖아.”

인간을 증오하는 범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래나 자후처럼 인간에게 좋은 감정을 품은 범도 적지만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감정이 있다 해도, 인간들이 이미 죽은 동족의 머리를 잘라내는 것을 계속 보게 되면, 그들의 마음도 변할 것이 분명했다.

범에게 잡아먹히는 인간들이 범을 증오하듯, 인간들에게 목이 썰리는 동족을 보는 범들도 인간을 증오하리라.

묵묵히 하루와 주안의 대화를 듣던 제하의 머릿속에, 실처럼 가느다란 빛 하나가 흘러지나 갔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그 빛에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끝을 잡을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해.’

머릿속을 흘러가는 빛 한 자락이 그 이상함의 이유를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가 이상한 거지? 분명 뭐가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걸 잊고 있는 것 같아.’

범바위 뒤의 결계가 깨지고 범들이 신시에 내려와 인간들을 잡아먹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저 힘을 길러서 범들을 죽이고 그들의 대장인 후포만 해치우면 모든 일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결계가 깨진 후 벌써 10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척살검이라는 무기를 얻고, 몸 안에 잠들어 있던 힘을 조금씩 알아가고, 타배의 존재와 두두리처럼 다른 종족이 있다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이 모든 어둠의 근원인 후포까지 마주하게 되었지만.

‘왜 일이 해결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지?’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무엇 하나 명료하게 해결되는 것 없이 의문이 쌓이고 어둠이 깊어진다.

‘그 괴물은 대체 뭐고……?’

아직도 후포를 짓이겨놓던 괴물을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괴물은 본 건 처음이고, 어쩌면 그저 돌연변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인지 제하는 그런 존재를 마주하는 게,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현상금을 수령하려고 방문한 담당처에서 더 짙어졌다.

“현상금이 줄었다고요?”

그럭저럭 쓸 만한 무기 하나가 4, 5억을 가뿐히 넘겼다.

그나마 범 한 마리에 5천만 원이라는 현상금을 받을 수 있기에, 어떻게든 돈을 모아서 무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상금이 천만 원으로 줄었다.

“네에. 아무래도 범은 너무 많고, 환웅 님도 재산이 무한한 건 아니시니까요오.”

담당처 직원은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지겹다는 듯, 말끝을 길게 늘이며 말했다.

“현상금이 천만 원이라고? 이게 말이 돼?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옆이 시끄러워서 돌아보니, 범 머리를 들고 온 범 사냥꾼이 담당처 직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저 범 사냥꾼도 현상금이 줄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나 보다.

“천만 원도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그동안 환웅 님이 현상금을 크게 거신 것도 전부 신시 시민을 위해서 희생하신 건데…… 따지고 보면 환웅 님이 현상금을 다 지급해야 하실 이유도 없고…… 천만 원이라도 감사하게 받아가세요.”

“그래도 천만 원은 너무하잖아! 요새 무기가 얼마인 줄 알기나 해? 그나마 5천만 원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목숨 걸고 뛰어든 일인데, 천만 원은 심하지!”

“그럼 범 사냥 안 하시면 되잖습니까? 누가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직원의 말에 범 사냥꾼은 기가 막힌 듯 멍해졌다가, 곧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외쳤다.

“우리 덕분에 너 같은 놈들이 여기서 편하게 앉아서 일하고 사는 거야! 알아?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네, 네. 그래서 어쩔까요? 천만 원, 드려요, 말아요?”

직원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범 사냥꾼이 태도를 바꿨다.

“이봐요, 선생님. 천만 원으로는 정말 무기 하나 못 사요. 이거 한 마리 잡는 걸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이랑 나눠야 하는데…… 그럼 한 사람 수중에 떨어지는 돈이 20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그 돈 모아서 무기를 어떻게 사겠습니까? 네?”

범 사냥꾼이 우는소리를 하자, 직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소속이 어디신데요?”

“소속? 우리 팀 말이요?”

“네. 상위 10위 팀 소속이면 전이랑 똑같은 현상금을 받으실 수 있거든요. 아니, 포수 설치하셨으면 현상금 관련한 알림을 받았을 텐데, 제대로 확인 안 하셨어요?”

직원의 질책에 괜히 제하가 뜨끔해서 휴대폰을 꺼냈다.

주안도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고 있었다.

포수 앱을 켜자, 가장 상단에 공지사항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직원의 말대로 현상금 제도 변경에 대한 공지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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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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