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송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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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송충이
2022.11.1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이건 아니라고, 경태는 생각했다.
성진이 어디선가 섭외해온 일반인에게, 우리를 도와주면 앞으로 두 번은 공짜로 지켜주겠다는 말을 할 때부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포수 앱으로 도움을 청한 일반인들에게 수고료 명목으로 돈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모난 녀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둔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미련할 정도로 순진하고, 멍청할 정도로 착하다는 말이 욕이라는 걸, 스무 살이 넘고서야 알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하는 옳은 소리에, 친구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모나게 굴지 마.”
-“너만 착하고, 너만 잘났냐? 우리도 다 아는데, 살다 보면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만 행동할 수는 없는 순간도 있는 거라고.”
그래서 경태는 자신이 잘못된 줄 알았다.
안 되는 일에 안 된다고 말하고, 나쁜 일에 나쁘다고 말하는 게 잘못된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옳지 못한 소리를 하며 웃어대면, 웃기지 않아도 함께 웃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살다가 친구들에게 휘말려 강도질을 했고, 저지른 것보다 큰 벌을 받게 되었다.
그조차 경태는 친구들을 탓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말리지 못하고 함께한 자신에게도 죄가 있다고 생각했다.
호랑나비에 들어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니다 싶은 일이 벌어져도, 경태는 언제나처럼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 노력했다.
모난 녀석이 되고 싶지 않다. 동철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 착한 척, 잘난 척하는 녀석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호랑나비의 사냥꾼 수가 점점 줄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다른 팀에 속한 사냥꾼도 사냥을 나갔다가 실종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게다가 무기 제작자와 수리공, 무기 개조사들도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무슨 일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지만, 범의 습격과는 다른 종류의 불길한 무언가가 신시를 물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동철의 귀에 닿지 않았다.
경태는 도무지 동철과 성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신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왜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착호를 죽이는 데 온 신경을 쏟는 걸까?
왜 성과가 좋은 다른 팀의 사냥꾼들을 습격해서 제거하려고 하는 걸까?
여러 의문이 싹텄지만 모난 녀석이 되고 싶지 않기에, 경태는 지금껏 성진의 명령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첫 총성이 울리고, 그저 남을 돕기 위해 달려왔던 세인이 쓰러지는 순간.
“도망쳐!”
저도 모르게 외친 소리 때문에, 옆에 있던 팀원의 공격을 받았다.
“성진 형님이 넌 배신 때릴 거라고 지켜보라고 하셨지.”
경태는 한때 자기 팀의 팀원이었던 부하의 배신을 믿을 수 없었지만, 재빨리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마음먹고 싸우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지만, 동료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려는데, 다른 팀원이 발을 걸어 경태를 넘어뜨렸다.
이 건물 옥상에 주둔하고 있던 팀원은 경태를 제외하고 두 명.
경태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동철과 성진의 계획에 완전히 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달려드는 팀원을 제압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둠이 깔렸다.
강한 범들이 사용하는 검은 안개였다.
팀원들은 범이 나타난 줄 알고 허둥거렸다.
그러는 동안 경태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음 직한 곳을 향해 기어갔다.
총성과 비명이 수도 없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터억-!
누군가 옥상 위에 내려서는 소리가 들렸다.
퍽-! 퍼억-!
방금 전 경태를 공격하던 팀원들이 무언가에 가격당해 쓰러지고 내던져지는 소리도 들렸다.
‘범은 아닌 것 같은데…….’
곧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경태는 착호의 팀원 중에 활을 들고 다니는 사내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경태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선량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
총성과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에 맞춰, 동료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경태는 안심했다.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환을 향해 다가가는 걸 느꼈다.
살기가 전해졌다.
범이 나타났을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도, 호랑나비의 사냥꾼은 여전히 착호를 죽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경태는 저도 모르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푸욱-!
환의 목을 찌르기 위해 세웠던 칼이 경태의 어깨를 뚫었다.
“큭!”
경태가 작게 신음하는 순간, 칼이 뽑혔다가 이번에는 경태의 복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어깨의 격렬한 통증 때문에, 배로 들어오는 칼날을 막지 못했다.
투욱-
비틀거리던 경태의 등이 환의 등에 부딪혔다.
환은 반사적으로 경태의 팔을 잡아 끌어당기며, 공격한 놈을 발로 걷어찼다.
쭉 밀려났던 놈이 금세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환이 더 빨랐다.
두 개의 화살이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놈의 배와 허벅지에 박혔다.
“크아아악!”
환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이 꺾인 놈을 향해 달려가, 머리를 발로 걷어차 기절시켰다.
서서히 검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붕 위로 올라간 도건의 눈에, 저 멀리 도망치는 사내가 보였다.
그의 뒷모습을, 도건은 기억했다.
전에도 본 적이 있으니까.
성진.
도건은 팔을 쭉 뻗어 총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날아간 총알이 성진의 등을 파고들어 척추를 부쉈다.
성진의 몸이 뒤로 꺾였다가 풀썩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검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다.
+++
제하는 몸을 굴려 독액을 피했다.
녹푸른 독액이 쏟아진 땅이 검게 썩어들어갔다.
“저게…….”
하루의 오랏줄에 매달려 끌려간 갈색 범의 눈이 공포에 물들었다.
6미터가 넘는 거대하고 퉁퉁한 송충이의 몸통에, 노인의 얼굴이 달려 있었다.
크고 긴 얼굴은 인간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퀭하게 들어간 눈과 번들거리는 핏빛 눈동자, 그저 구멍이 뚫렸을 뿐인 코와 여러 겹으로 난 뾰족한 이빨들.
하루가 갈색 범을 묶고 있던 오랏줄을 거둬 괴물을 향해 던졌다.
괴물이 또다시 독액을 토해냈다.
독액에 맞은 오랏줄이 힘없이 꿈틀거리다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송충이 같은 몸통에 뾰족하고 짧은 다리들이 꿈틀거렸다.
두툼한 몸통이 꿀렁꿀렁 움직일 때마다 괴물이 제하 일행과 가까워졌다.
‘몸통에도 독이 있을까? 저걸 베도 이 검이 무사할까?’
강철처럼 보이는 머리와 달리, 몸통은 연해 보였다.
“형, 저놈의 주의 좀 끌어줘. 내가 정면에서 저 몸뚱이를 갈라볼게.”
제하의 말에 주안이 땅을 박차 올랐다.
공기를 밟고 괴물의 뒤로 간 주안이 길게 자란 손톱으로 괴물의 머리를 그었지만,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날 뿐이었다.
‘역시 저 머리통은 부수기 힘들 거야.’
제하가 검을 고쳐 쥐는 순간이었다.
슈아아악-
괴물의 몸통에서 녹푸른 안개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독!”
하루가 외치며 제하를 향해 몸을 날렸다.
괴물과 가까이에 있던 제하는 독 안개를 뒤집어썼지만, 하루가 곧바로 밀어낸 덕에 크게 몸이 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잊고 있었다.
아직 도망치지 못한 일반인이 있다는 걸.
“아…… 아…… 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에 돌아보자, 온몸이 검게 녹아내리는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제하가 무엇 하나 해보기도 전에, 아무 힘 없는 그들은 그대로 녹아서 질퍽하게 흘러내렸다.
슈와아악-
괴물이 또 한 번 안개를 뿜어냈다.
제하는 그 안개가 배 쪽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걸 확인했다.
‘등을 베어야겠군.’
제하가 괴물의 등 쪽으로 달려가려는데.
파바바밧-!
가시 같은 것들이 산개했다.
하나하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벽이나 땅에 꽂힌 가시들.
제하의 오른쪽 팔뚝에도 몇 개가 꽂혔다.
“으으으윽!”
꽂히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격통.
가시에 묻어 있던 독이 혈관을 타고 퍼지고 있었다.
제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 옆 어딘가에 존재하는 힘을 오른쪽 팔을 향해 밀어내듯 내보냈다.
본능적으로 그리했다.
잠들어 있던 힘이 해일처럼 오른팔을 향해 움직였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제하의 오른팔이 강철처럼 단단해지며, 꽂혀 있던 가시들을 밀어냈다.
투두둑-
떨어지는 가시를 확인할 새가 없었다.
육체 내부에서 스스로 해독을 하는 느낌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제하는 그저 저 괴물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파바바밧-!
제하가 괴물의 뒤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괴물이 제하 쪽으로 몸뚱이를 돌리며 가시를 쏘았다.
이번에 제하는 멈추지 않았다. 왜인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가시들은 제하의 단단한 피부를 뚫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하지만 독 안개까지 막지는 못했다.
독 안개에 닿은 피부가 검게 썩었다가 재생하기를 반복했고, 비강을 타고 폐로 들어간 독이 제하의 폐를 서서히 잠식했다.
제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독 저항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개화하지 못한 힘이기에 괴물의 독을 이길 수는 없었다.
괴물의 꼬리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괴물의 뒤로 돌아왔을 뿐인데, 숨이 벅찼다.
왈칵-
피를 토해내면서도, 제하는 괴물의 등으로 뛰어올랐다.
제하가 붙은 걸 눈치챈 괴물이 거세게 몸을 흔들었다.
마침 괴물의 머리와 몸통이 연결된 부위를 손톱으로 찍으려던 주안이, 괴물의 몸부림에 튕겨 나갔다.
괴물의 얼굴이 땅으로 떨어지는 주안에게로 향했다.
제하는 괴물이 주안을 향해 가시를 쏘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주안을 향해 몸을 날리며 육체를 강화시켰다.
그 또한 깨닫지 못한 채 해낸 일이었다.
주안을 끌어안자마자 무수히 많은 독 가시가 제하의 등에 부딪혔다.
대부분 떨어져 나갔으나, 몇 개는 피부를 뚫고 깊이 들어와 박혔다.
독 안개 때문에 내상을 입은 탓에, 충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 탓이었다.
“쿨럭…….”
제하는 또 한 번 피를 토해냈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이 시작되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도 하루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괴물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갈색 범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와 갈색 범은 협력해서 괴물을 상대했지만, 그것이 쏘아 보낸 독 안개와 독 가시 때문에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공기를 밟고 날뛰다가 고통 때문에 삐끗한 갈색 범을 향해, 괴물의 입이 벌어졌다.
하루가 날린 오랏줄이 갈색 범의 몸통을 감아 끌어 올렸지만, 완전히 빼내지는 못했다.
콰직-!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갈색 범의 발목을 씹었다.
“크허어어어엉!”
갈색 범이 포효했다.
검을 들고 비틀거리는 제하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독 안개 때문에 엉망으로 헤집어진 육체를 치료할 힘이 더는 남지 않은 탓이었다.
주안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열심히 독 안개를 피해 다니던 하루의 몸도 여기저기 검게 썩어가기 시작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