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 잔혹한 ‘나’는 누구인가? (47/85)


47. 잔혹한 ‘나’는 누구인가?
2022.12.03.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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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는 타배의 어깨에 묻어 있는,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솜털 같은 것을 발견했다.

“뭐가 묻었군.”

털어주려고 손을 뻗자, 그것이 후포의 손을 피해 호다닥 타배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타배의 머리 위에 토끼 꼬리처럼 붙어 있는 그것을 보며, 후포가 미간을 좁혔다.

“자네, 귀여워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걸 달고 다니는 건가?”

타배가 껄껄 웃었다.

“저 숲에서 만난 녀석이야. 늑대에게 쫓기는 걸 구해줬지.”

“살아 있는 거라고?”

후포가 가까이 다가가서 하얀 솜털 같은 것을 가만히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깨처럼 까만 눈이 두 개 달려 있었다.

“그래. 눈송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지.”

타배의 말에 후포는 웃음을 터뜨렸다.

“눈송이라니…… 자네, 정말로 귀여운 걸 좋아하는구먼.”

타배가 얼굴을 붉혔다.

“아니, 왜? 눈송이라는 이름이 어때서? 딱 봐도 눈송이 같지 않은가?”

“아냐, 아냐. 눈송이…… 그래, 눈송이…….”

덩치와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눈송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낸 타배가 귀여웠다.

그래서 웃는 건데, 왜 가슴에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마치 곧 눈물이라도 흐를 것처럼.

“깨는 것 같은데…….”

“아빠, 아빠. 아저씨, 일어나시는 것 같아요.”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후포는 번쩍 눈을 떴다.

노란 눈동자가 천장을 훑어 내려와, 침대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성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

순간적으로 이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후포는 자신이 있는 곳이 그리운 신시가 아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신시라는 걸 상기했다.

후포의 콧등에 잔주름이 맺혔다.

후포가 위협적으로 상체를 일으켰지만, 아이는 무섭지도 않은지 침대 옆에 바짝 다가와서 후포를 올려다봤다.

“아저씨, 괜찮아요?”

“크르르르…….”

후포는 일부러 짐승 같은 소리를 흘렸다.

자신을 향해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이는 인간들, 곰족의 후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기…… 걸리셨나?”

아이 아빠가 중얼거린 말에, 후포는 기가 막혔다.

이것들은 경계심이라는 게 없나?

후포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어지럼증 때문에 휘청거렸다.

아이 아빠가 후포의 팔에 손을 얹었다.

“아직 그렇게 움직이면 힘들 겁니다. 의사를 부를 수도 없고, 병원에 갈 수도 없어서…… 저희가 대충 치료를 했을 뿐이라…….”

후포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의 팔에 닿은 아이 아빠의 손을 응시했다.

아이 아빠가 얼른 손을 뗐다.

“아, 죄송합니다. 함부로 손을 대서…….”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지?”

“일주일을…….”

반나절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나 기절해 있었다니.

그제야 후포는 자신이 기절하기 전에 무엇을 상대했고, 또 누구를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풍래를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하…….’

“그 괴물은 범 사냥꾼이 처리했나?”

“네, 다행히 강한 분들이 오셔서. 착호라고 요새 엄청…….”

거기까지 말하고, 아이 아빠는 입을 다물었다. 착호가 사냥하는 상대가 범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후포는 생각했다.

‘왜 날 안 죽인 거지?’

제하에게 후포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증오의 대상일 터였다.

괴물에게 처참하게 당해서 기절한 후포를 죽이든, 혹은 포로로 잡아서 이 모든 짓을 끝내게 하든, 뭐든 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죽이지 않고 내버려 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기…… 깨어나면 배고프실 것 같아서 뭘 좀 준비해뒀는데…….”

아이 엄마의 말에 후포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저씨, 맛있는 거 많아요.”

아이가 두 손으로 후포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후포는 어이가 없었다.

이 인간들은 내가 뭘 먹는지 모르는 건가?

아이에게 이끌려서 도착한 식탁에는 각종 고기 요리가 산더미처럼 차려져 있었다.

가만히 응시하는 후포의 모습에, 아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익힌 것 말고, 날 것도 있는데…….”

“아저씨, 우리 엄마가 해준 밥 맛있어요.”

아이가 억지로 후포를 의자에 앉히려 했다.

어린아이의 힘을 이기지 못할 리도 없건만, 후포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아이 부모가 후포의 눈치를 살피다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후포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차려진 음식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먹먹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알고 있었다.

기억이 희미해지다 못해 거의 사라질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

범들이 타 종족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불현듯 또렷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제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이 애는 살려줘요!”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아아아!”

듣기만 해도 처참한 비명이 제하의 귀를 꿰뚫었다.

낯선 목소리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익숙한 듯 느껴졌다.

‘내가…….’

도와줘야 해.

그런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온몸이 꽁꽁 묶여 있었다.

‘누가 날……?’

제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굵은 나뭇가지들과 싱싱한 푸른 잎이 눈에 들어왔다.

제하의 몸은 그 굵은 나뭇가지 중 하나에 고정되어 묶인 상태였다.

낯선 광경이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내가 왜 신단수에 묶여 있는 거지?’

제하의 것이 아닌 기억이 흘러들어왔지만, 제하는 그것을 제 기억으로 받아들였다.

종족을 가리지 않는 범들의 살육, 어쩔 수 없이 신시를 위해 검을 들었을 때의 각오, 뜻을 함께하기로 결심해준 곰족과 타 종족들, 그리고 영웅 ‘설’.

범들을 학살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들을 제압하고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인 건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공격에 특화된 재능을 가진 범족을 이기기는 힘들었지만, 타배가 곰족의 편에 서고 타 종족과 설이 힘을 나눠주었기에, 범족을 한계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후포…….’

범족 사이에서 싸우던 후포를 발견했고, 최근 도통 만날 수 없었던 그에게 다가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물어보려 했다.

‘거기서부터 기억이 없군.’

“크아아아악!”

또다시 울리는 비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배는 머리를 최대한 빼내 비명이 들리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애썼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싱그러운 하늘과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게 뭐야?’

갈색 피부를 가진 큰 덩치의 사내가, 전투원도 아닌 범족들을 무자비하게 해치고 있었다.

사내가 든 검은색 검이 범의 머리를 베고, 어린 범의 팔을 잘랐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왜 저기에……? 왜 내가 저기에……?’

타배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 묶여 있는데, 저곳에서 내 검과 같은 척살검을 들고 범족을 살육하는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잔혹하게 학살하는, 저 끔찍한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안 돼…….’

혼란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저 미친 짓을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타배가 힘을 끌어모으자,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안에 응축된 힘이 폭발하기 직전, 타배는 보았다.

도저히 이 세상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괴물이, 덜컥덜컥 소리를 내며 접근하는 것을.

.
.

“헉!”

제하는 헐떡거리며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순간, 혼란에 빠졌다.

여긴 어디지? 나는 신단수에 묶여 있었는데? 그 괴물은 뭐였지? 범족들은 어떻게 됐지? 그곳에서 범족을 학살하던 ‘나’는 대체 누구지?

수많은 질문이 제하의 머릿속에서 뒤엉켰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제하는 자신이 타배가 아닌, 제하라는 걸 자각했다.

제하는 주먹을 꾹 쥐어보았다. 제 몸이 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그건……?’

악몽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했다.

싱그러운 하늘과 옅게 풍겨오던 피비린내, 고통과 증오에 찬 절규가 아직도 제하의 곁을 맴돌았다.

솨아아아-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제하는 이곳 공기를 채운 게 피비린내가 아닌 약품 냄새라는 걸 깨달았다.

‘병원인가?’

기절하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물가물했다.

아예 기억에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오래전에 겪은 일처럼 희미했다.

‘포수 알람을 듣고 갔다가…….’

갈색 범과 싸웠다.

도중에 나타난 괴물 때문에.

‘죽었어. 그 사람들…….’

미처 도망치지 못한 남녀가 독 때문에 새까맣게 흘러내렸다.

이제야 기절 직전에 겪은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타배가 아닌 제하이고, 사람을 구하러 갔지만 실패했다.

제하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 사람들을 먼저 도망치게 해야 했는데. 처음에 갈색 범이랑 싸우는 순간에, 길을 터줬어야 했는데.’

늦은 후회가 가슴을 까맣게 물들었다.

‘살릴 수 있었는데, 범한테 신경 쓰느라 정작 사람들을 신경 쓰지 못했어.’

그저 복수만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었다.

지키고 싶었다.

제 어머니가 지키려 했던 이 신시를, 제하도 지키고 싶었다.

고아인 제하에게 세상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지만,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때때로 온기를 발견하곤 했다.

그러한 온기를 나눠주었던 사람들에게, 전처럼 평화로운 신시를 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지켜야 할 것을 등한시했다.

‘지켜야 할 것.’

퍼뜩 주안과 하루가 떠올랐다.

제하는 상체를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6인실 병동. 주안과 하루는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초췌하기는 해도 무사해 보여서, 제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칵-

그때,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한 제하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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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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