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 용서 (2) (54/85)


54. 용서 (2)
2023.01.2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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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배는 인정받았대. 강해서가 아니라, 그 성격이 굉장히 좋아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이고,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믿을 만한 사람이었대. 그래서 인기가 좋았었나 봐. 그러다가 일이 터진 거야.”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범인이 범이었던 거지. 범족이 다른 종족을 해치고 다니기 시작했어. 하지만 범족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타배에게 의논했더니, 타배가 범족의 우두머리인 후포와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해.”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후포가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졌지. 자세한 건 전해지지 않아. 분명한 건, 모든 종족이 힘을 합쳐서 범족을 이겼다는 거. 하지만…… 타배는 배신했어. 전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종족들을 죽이기 시작했지.”

제하가 눈을 부릅떴다.

타배가 다른 종족을 죽였다고?

그럴 리 없다.

타배는 가짜 타배가 범족을 죽이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잠시나마 타배가 되었던 제하는, 범족이 죽어가는 모습에 타배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고 있었다.

제하가 반박하려 했지만, 하루가 가만히 제하의 허벅지를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당시 가장 많은 게 범족과 곰족이었어. 다른 종족들은 모두 힘을 합쳐도 곰족을 이길 수 없었지. 특히, 타배를.”

타배는 말했다.

신시를 떠나면 죽이지 않겠다고.

“신시 밖은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었다고 해. 그래서 대부분의 종족이 신시 밖에서 멸종했지. 하지만 우리 두두리 족은 그 손재주를 이용해서 땅굴을 파고, 신시 깊은 곳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던 거야. 이게 우리에게 전해지는 전설이야. 섞인 자 때문에 정말로 신시가 멸망한 거지.”

세인이 손을 들었다.

“멸망이라고 하기엔 신시가 너무 건재한데? 곰족은 인간이 됐고, 굉장히 잘살고 있잖아.”

표리가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러네.”

“거기다…… 또 의문인 게. 타배는 왜 곰족의 편을 든 거야? 범이랑 곰이 섞인 거라면, 양쪽 다 발을 걸치고 있는 거잖아.”

“……곰족한테 뭐라도 받아먹은 거 아니겠어?”

“그리고…….”

“아, 잠깐, 잠깐. 나도 너희랑 같은 시대 사람이야. 내가 아는 건 전설이 전부라고. 지금 내가 말한 거 이상으로 자세히 알지는 못해.”

표리의 말에 세인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도건이 물었다.

“범족이랑 곰족이 가진 힘에 대해서도 잘 몰라?”

“아, 그건 알지. 자세히는 아니지만…….”

“말해줘.”

“일단 범족은…… 빠르다는 건 너희도 알지? 주로 바람을 이용해서 움직여. 그림자 안으로 숨을 수도 있고, 급소를 알아내는 능력도 탁월하대. 빠르게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도 가능한 데다가, 상급 범 중에 진짜 강한 녀석들은 최면도 쓸 수 있다더라.”

범족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아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곰족은…… 힘이 세대. 몸을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고, 괴력을 발휘하거나 자기 무게를 일시적으로 무겁게 만들 수도 있었다더라. 아, 그리고 강한 곰들은 엄청 큰 소리를 내서 상대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었대.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자기 육체를 강화시켜서 독이나 병 같은 것도 잘 안 걸리게 하고, 몸에 난 흉터가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대.”

“한마디로 말하면, 범은 공격 특화고, 곰은 방어 특화라는 거네.”

환의 말에 세인이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죽인다. 독 저항이라니. 대박.”

“그리 좋아할 거 없다. 우리 중에 그 힘을 조금이나마 쓸 수 있는 건 제하와 주안이밖에 없으니.”

“하루 너는 꼭 이럴 때 찬물을 끼얹더라. 잠깐이라도 좀 좋아하면 안 돼?”

“너희는 바짝 긴장해서 능력을 좀 더 키우기 위해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놈의 수행.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 봐.”

세인이 투덜거리며 표리를 돌아봤다.

“우리가 곰의 힘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몰라?”

“응. 그런 건 전해지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 일족 중에 옛날 일을 아주 잘 아는 장로님이 계셔. 그분이라면 아실지도……. 무사하신지 모르겠지만.”

표리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거래소에서 판매하는 무기 중 능력치가 좋은 무기들은 대부분 우리 두두리 일족이 만든 거야. 우리는 그걸로 돈을 벌어서 먹고살았거든. 그런데…… 최근에 무기를 만들던 동족이 죽어가고 있어. 누군가가 찾아내서 죽이는 거야. 처음에는 범인가 싶었는데…….”

표리의 눈이 테이블에 놓인 카메라로 향했다.

“저것일지도 모르겠어.”

주안이 물었다.

“저게 뭔지는 몰라?”

“전혀. 저런 건…… 전해지지 않아.”

주안이 제하를 돌아봤다.

주안과 제하는 타배의 기억에서, 그것과 같은 괴물을 보았다.

고대에도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두두리 일족 사이에서는 괴물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지 않은 걸까?

“너희에게…… 특히 제하, 너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놓고 인제 와서 이러는 건 정말…… 창피하지만, 도와줘. 저 괴물을 없애야 해.”

“물론 우리는 괴물을 죽일 거야. 하지만…….”

제하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저런 괴물이 대체 몇 마리나 될까? 저 괴물이 스스로 존재하는 걸까? 대체 뭐가 저런 괴물로 변하는 거지? 저 괴물의 목적은 뭘까?”

“…….”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제하에게, 하루가 말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답을 찾게 되겠지.”

“그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힘없이 대답한 제하가, 힘차게 고개를 저어 복잡한 생각을 털어냈다.

다시 표리를 응시하는 제하의 눈빛은 더 이상 어둡지도, 혼란스럽지도 않았다.

그는 견고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으로 표리를 보며 말했다.

“무기가 필요해. 우리가 쓸 것도 필요하고, 다른 범 사냥꾼이 사용할 무기도 필요해. 최대한 많이.”

“맡겨둬. 동족에게 알릴게.”

“무기는 거래소로 가져가지 말고, 우리 쪽으로 바로 전달해줘. 값은…….”

“필요 없어.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잖아.”

“고마워. 최대한 밖으로 나오지 말고, 뭔가 불안하다 싶으면 바로 연락 줘. 그리고…… 너희 장로님이라는 분께 곰의 힘을 완전히 되찾을 만한 방법이 있을지도 여쭤봐 주고.”

“알겠어.”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표리가 일어나자, 제하도 같이 일어났다.

“데려다줄게.”

“됐어. 애도 아니고.”

“데려다줄게.”

표리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제하와 함께 본부를 나왔다.

표리의 집을 향해 걷는 내내, 둘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이윽고 표리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제하가 물었다.

“저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

“고대의 힘을 되찾으면서 무기를 판 돈으로 먹고산다고 했지?”

“응.”

“……그전에는?”

“응?”

“그전에는 뭘 먹고 살았어?”

“아, 쓰레기통을 뒤졌지. 너희 인간들은 음식물을 낭비하더라고.”

표리가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대답에, 제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안함, 안타까움, 그런 감정들이 달처럼 빛나는 제하의 눈동자를 채웠다.

표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이의 잘못도 아닌데, 왜 모든 것이 제 잘못인 양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나는 너한테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해댔는데…….’

왜인지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표리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제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별일 아니야. 어쨌든 살아남았잖아.”

+++

환웅에게 이름을 받은 지귀는 거리를 걸었다.

이제는 이 육체에도 익숙해졌지만, 가끔씩 육체가 제멋대로 튀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지귀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인간…….’

지귀는 아버지인 환웅이 무엇을 위해 자신을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의 일부를 가졌기에, 알았다.

시야 끝에 현란하게 움직이는 빛이 보여서, 지귀는 걸음을 멈추고 까드득 목을 돌려 그쪽을 응시했다.

창문 안쪽에 있는 여러 대의 TV에서 각기 다른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버지인 환웅의 모습도 여럿 있었다.

위대한 신시의 수호자, 신시를 대표하는 사업가, 신시의 시민을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

까드득- 까드득-

새로운 영상들을 눈에 담느라, 지귀는 자신의 목이 이상하게 삐걱삐걱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엄마, 저 사람 이상해.”

한 톤 높은 음성이 들려와서, 지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끼리릭.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지귀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아이 옆에 서 있던 아이 엄마가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얘가 왜 이래. 얼른 가자.”

“하지만 저 사람 정말 이상해. 이상하게 움직여.”

“얼른 가자니까. 죄송합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돌아섰지만, 아이는 고개를 돌려 지귀를 쳐다봤다.

순간, 지귀의 눈알이 휘릭, 뒤로 넘어갔다가 180도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깜짝 놀란 아이가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거슬려…….’

지귀는 언제나처럼 거슬리는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갈기갈기 찢은 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나는 인간이야. 아버지는 내가 여기서 그러는 걸 원치 않으셔. 하지만…….’

지귀는 조용히 모녀의 뒤를 밟았다.

‘보는 눈이 없다면 괜찮지.’

그날 밤.

아이 엄마는 무섭다고 칭얼거리는 아이의 방에서 아이를 토닥거려주다가 침대에 머리를 대고 잠들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백이……. 백이…….”

음산하게 울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오늘 낮에 보았던 남자가 무언가를 오드득오드득 씹으며 숫자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그 모습에, 아이 엄마는 이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저 남자의 입에서 비쭉 튀어나와 있는 작은 발에 신고 있는 양말이 자신의 딸이 신었던 것과 똑같아 보이지만, 어차피 꿈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윽고 발끝까지 다 삼킨 지귀가 휘릭, 모습을 바꿨다.

지귀가 있던 자리에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생긋 웃는 딸의 모습을 보며, 아이 엄마는 참 이상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딸이 말했다.

“너는 백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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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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