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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불티 (2) (60/85)


60. 불티 (2)
2023.03.04.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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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고개 숙인 마로를, 후포는 지그시 응시했다.

묻고 싶은 것도, 꾸짖고 싶은 것도 많았다.

특히 동족을 죽인 것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후포는 마로를 나무라지 않았다.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정신은 차렸나?”

“……네.”

“그럼 됐다.”

“……아니요, 주군. 제가 나래를 죽였습니다. 자후도, 그리고…….”

“나래는 불티가 죽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니, 마로. 그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 이 신시에 무언가가 있다.”

마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났다.

“주군도 보셨습니까?”

“너도 봤나 보군.”

“네. 그건 정말이지…… 끔찍했습니다. 인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제야 후포는 증오에 미쳤던 마로가 왜 정신을 차렸는지 알 수 있었다.

후포 자신도 그랬으니까.

인간들이 증오스럽지만, 그들은 때로 지독하게 따뜻했다.

빌어먹게도 그랬다.

“대체 그건 뭡니까, 주군?”

“주군이 그걸 아시면 널 산 채로 잡아 오라고 하시지도 않았겠지. 넌 내 손에 죽었을 거다, 마로.”

허서가 툴툴거렸다.

그는 이 와중에도 소파에 앉아서, 음량 제거를 한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 그가 고까웠지만, 마로는 허서에게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후포가 말했다.

“그건 강하더군. 지금 우리의 힘으로는 그걸 상대하기 어려울 거다.”

“그럴 겁니다. 힘이 온전치 않으니……. 옛 힘만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림자 세계에 갇혀 있으면서 너무 많은 힘을 잃었다.

“그게 신시에 존재하는 채로는, 이 신시에서 인간을 몰아낸다 해도 편안하게 살기는 힘들 거다. 그것들을 먼저 상대하는 게…….”

후포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주군!”

허서가 비명처럼 후포를 부르며, TV 음량을 키웠다.

“허서, 내가 지금 마로랑 이야기를…….”

“저거…… 저것 좀 보세요.”

허서가 경악에 찬 눈으로 TV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후포는 TV를 돌아봤다.

후포가 숨을 멈췄다.

마로가 벌떡 일어났다.

“불티…….”

불티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끔찍한 몰골의 불티가, 큰 덩치의 사내에게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잔인한 영상에 대해] 어쩌고 하는 자막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불티는 의자에 팔다리를 꽁꽁 묶인 채, 반항도 하지 못하고 고문을 당했다.

사내가 든 송곳이나 단검 따위가 불티의 몸을 찌르고, 두툼한 팔이 불티의 명치를 쳐올리거나 턱을 가격했다.

그럴 때마다 움찔움찔 떨리는 불티의 육체는, 그가 느낄 고통을 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불티의 두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붉지 않지만, 피눈물이었다.

핏물 가득한 입안에 혀가 없다는 걸 눈치챈 허서가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불티가 뻐끔뻐끔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고여 있던 핏물이 턱을 타고 흘렀다.

“으…… 흐으…….”

제 혈육의 고통을 눈에 담는 마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윽고 불티의 눈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지고, 움찔거리던 육체가 움직임을 멈추며,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암흑보다 검은 칼날이 냉정하게 움직여 불티의 목을 잘라냈다.

그 검을 보는 순간, 후포가 증오에 찬 절규를 내뱉었다.

“제하아아아아아아!”

+++

“나는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봐.”

제하가 비상 연락망에 쓰인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하며 말했다.

“여기에 번호를 쓰고 간 사람들은 우리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아도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인 거야. 그거면 돼.”

“하긴. 누가 날 불러서 갑자기 괴물이 나타난다고 하면, 나 같아도 못 믿었을 거야.”

주안이 제하의 말에 동의했지만, 세인은 불퉁한 표정이었다.

“지들한테 도움 되는 얘기를 해주겠다고 부른 건데, 그딴 태도는 다 뭐야? 너희는 진짜 속도 좋다.”

“나도 뭐, 평소라면 다들 한번 당해보라고 내버려뒀을 텐데, 지금은 상황이 좀 그렇잖아.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비상 연락망에 쓰인 번호는 30개가 조금 넘었다.

사실 제하도 실망스럽긴 했지만, 일행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자신까지 우울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일단 표리 쪽에서 무기는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 무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고…… 문제는 어떤 식으로 괴물에 대한 걸 흘리냐인데…….”

제하는 지금도 괴물이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이 무엇에게 당하는지도 모르는 채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역시 영상을 뿌리는 게 낫지 않을까?”

제하의 말에 세인이 고개를 저었다.

“사냥꾼들 반응 봐봐. 우리가 직접 불러서 보여줬는데도 조작이라고 야단이잖아. 분명 조작 타령 나올걸.”

“그렇긴 하겠지. 그런데 믿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야. 어쩌면 자기도 뭘 찍었는지 몰라서 넘어갔던 사람들이 괴물 관련 영상이나 사진 같은 거, 아니면 경험담 같은 걸 올려줄지도 모르고.”

“도건아, 넌 안 그렇게 생겨서 참 순진하다. 그 경험담 중에 90프로는 주작일걸.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몰라?”

“세인이 넌 매사에 그렇게 부정적이다가는…….”

그때, 조용히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던 환이 벌떡 일어났다.

다들 말을 멈추고 환을 올려다봤지만, 환의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엇을 본 건지,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환의 표정이 심상찮아서, 다들 그에게 말도 걸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환의 눈동자가 제하에게서 멈췄다.

“내가…… 혹시 어…… 괴물에 관한 얘기가 없나 싶어서…… 커뮤니티를 좀 돌고 있었거든…….”

“뭐가 좀 나온 게 있어?”

제하가 반색하고 묻자, 환은 대답 없이 휴대폰을 테이블 가운데에 내려놨다.

그리고 띄워놨던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다들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휴대폰에 시선을 모았다.

괴물 얘기를 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괴물이 나오는 영상일 줄 알았다.

아니었다.

괴물보다 더 끔찍한 것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의자에 꽁꽁 묶인 불티.

이미 죽어가는 불티를,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거침없이 고문하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서 다들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그 영상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불티는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환의 여동생과 주안의 연인을 죽였지만, 그런 생각이 잊힐 정도로 불티가 고문당하는 장면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불티의 움직임이 멈추며 머리가 앞으로 푹 꺾였다.

그리고.

사내가 들어 올리는 검은색 검.

바닥으로 떨어지는 불티의 머리.

영상이 끝났지만, 착호의 시선은 여전히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들은 눈만 꿈뻑거리며 한동안 그렇게 굳어 있었다.

한참 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일제히 한 방향을 응시했다.

그 시선들의 목적지는 제하의 얼굴이었다.

세인이 경악에 찬 눈으로 제하를 보며 물었다.

“제하야. 저거, 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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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커뮤니티 게시판]

대박대박. 님들. 그 영상 봤음? ‘범을 잡았다. 고문을 시작한다.’라는 영상.
⌞봤음. 봤음. 완전 미쳤음. 나 진짜 울 뻔.
⌞님, 범 좋아함?
⌞감동해서 울 뻔. 울 아부지, 범 때문에 돌아가심. 복수 제대로 한 느낌.
⌞222
⌞333
⌞우리의 위대한 고문전문가 님을 시의원으로 모셔야 합니다.
⌞소중한 한 표 던집니다.

[B 커뮤니티 게시판]

여러분. 이번에 올라온 ‘범을 잡았다. 고문을 시작한다.’ 보셨나요? 저, 그거 보고 토할 뻔했어요. 아무리 범이라지만 너무 잔인하더라고요.
⌞미치심? 그거 범임.
⌞아무리 범이라도 생명이잖아요.
⌞쓰니 말에 동의해. 너무 잔인하더라. 나랑 같이 본 친구는 중간에 토했어. 끔찍해. 범 우는 거 봤어? 진짜 불쌍하더라.
⌞님들은 범한테 가족이 안 죽었으니까 하는 말이죠. 저는 언니랑 조카가 죽었거든요. 범한테요. A 백화점 사건 때, 거기서 죽은 희생자가 우리 언니랑 조카예요. 솔직히 저랑 우리 부모님은 좀 끔찍하긴 했어도 속은 시원하더라고요.
⌞우리 형도 내 앞에서 범한테 잡아먹힘. 난 다리 하나 잃었음. 저 영상 올린 게 누군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영웅임.
⌞세상 미쳐 돌아가네. 그냥 죽이면 되지, 고문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저게 뭔 영웅? 그냥 사이코패스 미친 새끼지.
⌞소중한 사람을 잃어보세요. 그런 말이 나오나. 범이 불쌍하다고? 그럼 내 친구는? 범 새끼한테 먹힌 내 친구는 안 불쌍함?
⌞맞아요. 여기서 범 불쌍하다고 하는 분들은 희생자 가족 가슴에 못 한 번 더 박는 거예요. 당신들도 가해자예요.

[C 커뮤니티 게시판]

정보 입수! 나, 저 영상 올린 거 누군지 앎.
⌞허언증 노노.
⌞노잼.
⌞진짜임. 님들, 저 남자가 범 대가리 자른 검, 본 적 없음?
⌞헐. 설마!
⌞뭔데? 누군데?
⌞누구냐아아아. 빨리 말해!
⌞검은색 검, 착호잖아. 착호 제하.
⌞헐. 미친. 진짜?
⌞진짜인 듯. 검도 그렇고, 덩치도 비슷하네.
⌞와, 범 사냥꾼인 줄 알았는데 사이코패스 새끼였네.
⌞뭔 소리야? 영웅이지. 잘했다, 제하.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환웅은 각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확인하며 싱긋 웃었다.

정말이지, 아둔하고도 또 아둔한 놈들이다.

조금만 건드려주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의도한 대로 따라와 준다.

아주 약간만 생각해봐도, 아니, 아주 조금만 더 자세히 영상을 들여다봐도, 제하의 뒷모습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그 검은 머리칼이 가발이라는 것을 알 텐데.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떠들고 싶은 대로 떠들어댄다.

뒤는 생각하지도 않고.

인간이 범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에 희열을 느끼며 환호할수록 범은 착호를, 그리고 인간을 더욱 증오할 것이다.

인간도 범이 고문당하며 울부짖는 모습을 봤으니,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어 할 테지.

“후…… 후후후후…… 후후후.”

환웅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폭소를 터뜨렸다.

“후후후하하하하하하하.”

이 상황이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환웅은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래, 그때도 그랬지요.”

아주 오래전.

이 신시에 진짜 신단수가 자라고 있었던 그 시절에도.

“너희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쭉 미련했지요.”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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